제175화
드래곤이 등장했다.
에탄은 그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의도치 않게 모두에게 발표하게 되어버렸다. 그러자 마나를 주입하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허억!”
“드. 드래곤이다!”
“엄청나게 거대한 드래곤이야!”
그리고 에탄이 말한 드래곤이 정말 허공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만도 했다.
아직 갓난아기에 불과한 뇽뇽이와는 다르게, 성체 드래곤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국에 그림자가 질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육중한 크기를 가진 드래곤이 자신들의 허공에 나타났으니 마법사들이 기겁을 할 만도 했다.
“흐음! 드래곤 찾음!”
그때. 뇽뇽이가 허공에 떠 있는 드래곤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기운을 탐지하고 왔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거였다.
“…아빠.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하지만 이런 해맑은 뇽뇽이와는 다르게, 아린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는 성체 드래곤을 쳐다봤다.
그도 그럴게 저 성체 드래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라는 확신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글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사실 에탄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리 에탄이 회귀를 했다고 해도 드래곤을 상대로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웅! 붕!
그래서 거대한 날개를 움직이면서 점점 땅으로 내려오는 드래곤을 모두가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불안감이 퍼져나갔다.
저 무지막지한 드래곤이 자신들을 공격하면 어찌해야 싶었으니까.
쿵!
그렇게 모두가 불안감을 가지는 순간, 허공에 나타난 드래곤이 마침내 왕궁 한가운데에 두 다리를 내려놓았다.
…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정확히는 자신을 보기 위해 왕궁에서 나온 마법사들과 기사.
그리고 국왕과 그 외에 귀족들.
에탄과 아린이, 뇽뇽이 까지.
모두를 눈동자에 담아내는 거였다.
꿀꺽.
에탄이 그런 드래곤의 행동에 침을 삼켰다. 이 다음부터는 자신도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도 저도 못하려는 순간.
“흐음! 드래곤!”
뇽뇽이가 땅에 착륙한 드래곤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갔다.
“어어.”
에탄이 그걸 보고는 뇽뇽이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하지만 뇽뇽이의 접근을 막지는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드래곤이 웃고 있다?’
그 근거는 감이 아니었다.
좀 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드래곤의 눈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 드래곤!”
그런 드래곤을 향해 뇽뇽이가 두 손을 뻗었다. 마치 오랜만에 어른을 만난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크르릉!
그런 뇽뇽이를 향해 드래곤이 거친 콧방귀를 뿜어냈다. 하지만 그 안에 적의는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온순한 눈빛으로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미소를 짓다가.
-우웅…
용언을 통해 거대한 마법진을 소환했다. 그 순간 드래곤의 몸이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안녕?”
이내 성인 여자의 모습이 되었다.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로 말이다. 에탄이 그것을 보고는 감탄했다.
‘저 정도 크기에서 인간으로 폴리모프 하다니. 역시 성체 드래곤의 마법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압도적인 크기와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일 정도로, 에탄은 그녀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
그걸 통해 성체 드래곤의 압도적인 기세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
“마나가 사라졌다.”
“아니.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거야. 마나는 그대로 남아있어.”
그리고 그건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성체 드래곤이 불같이 뿜어내던 마나를 자신들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흐음. 그래도 마냥 멍청한 놈들은 아닌가 보네.”
성체 드래곤이었던 그녀가 마법사들의 반응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모여있는 쪽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이 아이를 지키기에는 너무 약한데… 너희가 이 애를 대신 데리고 있던 자들이니?”
그녀의 말에 마법사들이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알고 있었다.
드래곤과 엮이면 자신들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생존 본능 덕분에 말이다.
“흐음! 뇽뇽이 아빠! 저기 있음!”
그때. 뇽뇽이가 폴리모프한 여자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한쪽을 가르키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뇽뇽이의 손끝에는 에탄이 서 있었다.
“…에탄이라고 합니다”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을 소개했다. 이제 와서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그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터벅. 터벅.
그래서 그녀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 붉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가 에탄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오른손으로는 뇽뇽이를 꼬옥 잡은 채 말이다.
탁!
그리고 마침내 코앞까지 도달하는 순간,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주변을 녹일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
하지만 에탄은 그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딱히 곤란해 하지도 않았다. 에탄은 이미 아린이가 가지고 있는 얼음 계곡의 힘으로 뇽뇽이의 기운을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내뿜는 가벼운 기세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뒤. 뒤로 물러나.”
“우린 녹는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마법사와 기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가 가볍게 기세를 푸는 순간, 쥐가 도망을 치듯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들이 늘어 붙은 바닥처럼 변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좀 버티는구나?”
그렇게 모두가 물러났지만 두 사람이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에탄과 아린이었다.
“그리고… 아이도 제법이네.”
에탄을 보면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감탄했다. 그 후 옆에 있는 아린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음?”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번쩍였다. 아린이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아린이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었다.
“…호오.”
아린이가 검이었다는 사실.
그녀는 그것을 아린이를 보자마자 단번에 간파했다. 심지어 아린이가 얼음 계곡에 잠들어 있었던 명검이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이건 또 무슨… 운명을 거스르는 존재인가? 아니. 그런데 그건 어른인 너에게서 느꺼지는데. 그런데 이 아이에게도 익숙한 기운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거 참 재밌네. 재밌어.”
붉은 머리를 가진 그녀가 에탄과 아린이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에탄은 그녀가 무엇을 깨닫고 있는지를 간파했다.
자신의 회귀를.
그리고 아린이의 존재에 대해서 서서히 알아간다는 게 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를 향해 에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게 맞을 거라는 대답을 말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모든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러면서 에탄은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녀가 깨달은 걸 발설하지 말라고. 그건 모든 일을 무사히 끝내고 나서도 늦지 않다고 말이다.
“…생각보다 배짱이 크구나. 드래곤한테 그런 말까지 하고.”
에탄의 말에 드래곤인 그녀가 호기롭다는 듯 에탄을 쳐다봤다. 하지만 거기에 분노는 깃들어 있지 않았다.
“화내지마셈!”
뇽뇽이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고는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기 때문이다. 에탄과 아린이에게 화내지 말라고 말이다.
“화 안 낸다.”
그런 뇽뇽이의 말에 드래곤인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종족이 자신한테 저런 발언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비틀었을 것이다.
하지만 뇽뇽이는 예외였다.
녀석은 자신과 같은 드래곤이니까.
“게다가 이 아이를 지금까지 잘 돌봐 준 자들이다. 그러니 죽일 생각은 없다.”
거기에 에탄과 아린이는 뇽뇽이가 알이었던 시절부터 함께 해왔다. 그렇기에 그녀는 에탄과 아린이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이렇게 불러낸 건 무언가 목적이 있는 거겠지.”
하나. 이 모든 일이 우연에 의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 또한 뇽뇽이가 대륙 곳곳에 퍼트린 기운을 눈치채고 이곳에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뭐 하시는 분이신지부터 알려주시죠.”
그래서 그것에 대해 물으려는 찰나. 에탄이 드래곤인 그녀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드래곤이기는 하지만 뇽뇽이의 부모님인지. 그도 아니면 우호적인 세력인지가 궁금합니다.”
그건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좋다.”
그런 에탄의 물음에 드래곤인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지적이기에 별다른 화를 내지는 않았다.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철저히 확인해야 하는 법이니까.
“일단 나는 뇽뇽이의 부모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뒷말은 에탄과 아린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일은 뇽뇽이의 부모를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모두가 탄식을 하는 순간.
“하지만…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
그녀가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에탄을 쳐다보면서.
“나는 불을 다루는 일족의 드래곤 로드다. 그러니까 뇽뇽이의 선조라고 보는 게 맞겠지.”
예상하지 못한 뒷말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