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국왕이 에탄이 있는 숙소를 찾아왔다. 본래 같으면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에탄은 이 왕국의 귀족도 아니니까.
“이렇게 호위 병력도 없이 혼자 들어오시면 위험합니다.”
게다가 지금 국왕의 곁에는 유사시에 대비해줄 자들도 없었다. 그 말은 즉 에탄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국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하!”
하지만 국왕은 걱정하지 않았다.
에탄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옆에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이 저런말을 하는 순간 입을 열었다.
“아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요!”
“국왕 좋음!”
에탄의 발언을 지적하면서 말이다.
에탄의 두 딸이 저러고 있으니, 당사자인 에탄이 자신을 죽일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물론 에탄이 마음을 먹는다면 어쩔수 없이 벌어지기는 하겠지만.
“그것또한 운명 아니겠는가?”
국왕은 자신이 죽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자네가 내 목숨을 살린거나 마찬가지네. 요정을 통해서 병을 낫게 해줬으니까.”
국왕은 이미 한번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그러했다.
이미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귀족들은 아무런 손도 못 쓰고 자신을 바라만 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에탄이 나타났다. 그리고 요정을 이용해 자신을 구해줬으니.
“정말 고맙네.”
국왕은 에탄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에탄이 없었으면 자신은 진작 죽었을테니 말이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해야 하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에탄이 국왕의 감사 인사에 손을 저었다. 자신이 한 건 그저 아린이와 뇽뇽이를 이용해서 요정을 불러낸 것뿐이었다.
게다가 그건 순수하게 국왕을 구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에탄은 요정을 소환해 국왕을 치료한 거였다.
“자네가 나를 순수히 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을 한 건 변하지 않지.”
“…….”
“게다가 내가 목숨이 구해지고 거래에 응하지 않았을 확률도 있네. 원래 귀족들 중에서는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올 때가 다른 이들이 많으니까. 그러니까 자네는 어느 정도 나를 믿고 있었다는 게 증명되는 셈이지. 그 거래를 할 때에도 말이야.”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면 드릴 대답이 없는데요.”
“하하!”
에탄이 국왕의 대답에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저렇게 퇴로를 막아 버리면 에탄은 더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진다.
그렇기에 국왕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흐응!”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린이와 뇽뇽이가 국왕의 말을 거둬 들였다.
의도치 않은 두 사람의 지원 사격에 국왕이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아린이와 뇽뇽이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때보다 더 많이 큰 거 같은데.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나?”
이유는 간단했다.
국왕의 기억 속에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는 아직 5살에 불과한 어린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12살은 되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국왕이 당황을 할만도 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에탄이 그런 국왕의 물음에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조금 많은 일이 있었기에 저 말 한마디로 함축한 거였다.
“그렇군.”
이런 에탄의 대답에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무슨 일이 있었냐고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썩 유쾌한 이야기가 아닐거라는걸 감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곳에는 얼마나 머물 예정인가?”
“적어도 두 달 정도는 있을 거 같습니다. 남부 전체를 돌아다닐 때까지는 거주할 필요가 있어서요.”
“음. 그렇군. 마음껏 머물다가 가게. 우리는 자네를 언제든지 환영하니까.”
국왕이 에탄의 대답에 아무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북부인이 두달동안 머무는걸 허락하는 편은 아니지만 에탄은 예외였다.
“두달이 아니라 일년. 아니 평생 머물러도 상관없네. 오히려 그래준다면 우리야 환영이고.”
“그건 좀….”
“농담일세 농담.”
에탄의 반응에 국왕이 낄낄 웃었다. 그 후 진지하게 에탄을 쳐다봤다.
“그래서. 이곳 남부에 그토록 오래 머무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탄이 이렇게 긴 시간을 남부에 투자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족 섬멸을 위해서입니다.”
“마족?”
“예. 곧 있으면 마족들이 북부를 통해 대륙을 침입할겁니다. 그걸 대비 하기 위해서 남부에 왔습니다.”
“흐음… 대비라.”
그리고 이어지는 에탄의 대답에 역시 그렇구나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이라. 그래. 마족은 항상 위험한 존재였지. 나 또한 놈들의 힘을 아주 일부분 경험해 봤네.”
국왕 또한 마족을 마주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에탄의 말에 일부분 공감을 할수 있었다.
놈들이 뿜어내는 마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남부에 왔다는건 이해가 잘 안 가는군. 북부에서 침입을 한다면 북부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이어지는 에탄의 결정은 국왕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북부. 중부를 모두 돌고 남부로 온 상황입니다. 여기서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면 대륙이 아닌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생각이고요.”
“음?”
“제가 남부에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에탄이 그런 국왕을 향해 덤덤이 입을 열었다. 동시에 옆에 있는 뇽뇽이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뇽뇽이의 부모. 정확히는 성체 드래곤들을 찾아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북부에 다가올 위기를 같이 막아달라고 말이죠.”
국왕에게 남부에 온 진짜 목적을 말했다.
“호오….”
이런 에탄의 대답에 국왕이 두 눈을 반짝였다. 설마 뇽뇽이가 드래곤일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놀라운 정보구만.”
“사실 북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뇽뇽이의 정체를 중부와 남부에 드러낼 필요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 뿐이죠.”
“으음.”
국왕이 에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뇽뇽이와 눈을 마주쳤다.
“뇽뇽이. 무서움?”
그러자 뇽뇽이가 먼저 국왕에게 자신이 무섭냐고 물었다. 드래곤이라고 말했을 때 자신을 보고 움찔하던 이들의 시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나는 네가 무섭지 않다.”
하지만 국완은 뇽뇽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좋다.”
오히려 뇽뇽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그것에 큰 문제를 가지지 않았다.
“우리 왕국을 지키는 수호자와 드래곤이 함께 한다니. 이보다 더 든든한 상황이 어디 있겠느냐?”
에탄과 뇽뇽이와 아린이가 자신들을 위해줄거라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거리가 멀고 하지만 말이다.
“그저 함께 있어준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그렇기에 국왕은 뇽뇽이를 보면서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뇽뇽이의 머리를 쓰담쓰담거렸다.
“흐음!”
그러자 뇽뇽이가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었다.
“뇽뇽이 계속 함께 할거임!”
그리고 국왕에게 자신은 언제나 같이 할거라고 말했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이 왕국과 함께 해준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성체 드래곤은 어떻게 찾을 생각인가?”
하지만 그런 국왕도 에탄에게 드는 궁금증이 있었다. 바로 뇽뇽이의 부모를 어떻게 찾을 건지였다.
“뇽뇽이의 기운을 온 대륙에 퍼트릴겁니다. 그러면 성체 드래곤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뇽뇽이를 찾아 오겠죠.”
그런 국왕의 생각을 알아차린 에탄이 국왕에게 자신이 고안한 방법을 말했다.
“북부와 중부에서는 이미 작업을 끝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남부에서만 뇽뇽이의 기운을 퍼트리는 마법진을 설치하면 됩니다.”
북부와 중부에서의 작업은 벌써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남부에서 뇽뇽이의 마법진을 발동하는 것이다.
“내가 그 일을 도와주도록 하겠네. 마침 왕국에 유능한 마법사들이 있으니.”
“진짜입니까?”
에탄이 국왕의 대답에 크게 놀랐다.
설마 이런 일로 왕국의 마법사들을 내어주겠다고 할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진짜로 왕국의 마법사들을 지원해주신다고요?”
그래서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에탄은 다시 한번 국왕에게 되물었다. 그게 예의가 아닌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렇네. 내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을 내어 주겠네.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리 왕국에 드래곤의 마법을 이해할 만큼 재능이 넘치는 이는 없어서….”
국왕이 그런 에탄을 향해 기꺼이 마법사들을 내어주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이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했다.
“아닙니다. 충분히 해낼겁니다. 그렇게 어려운 마법은 아니니까요.”
에탄이 국왕의 우려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뇽뇽이가 뛰어난 마법을 보인다고 해도, 지금 당장 하는 건 그렇게 복잡한 고위 마법이 아니다.
그저 뇽뇽이의 기운을 널리널리 퍼트리는 것.
그게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이 해야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에탄의 대답에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자한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우리 왕국을 기억하고 와줘서 고맙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지.”
그리고 에탄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