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화염의 지배자가 있는 마탑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마법사들을 산에다 올려버리겠다. 이 말이네?”
그리고 화염의 지배자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실시간으로 보게 됐다. 정확히는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에게 부탁을 건네는 순간부터였다.
그녀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에탄을 뚫어져라 쳐다 봤다. 참고로 이번에도 아린이와 뇽뇽이는 에탄과 함께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문밖에서 에탄의 신호를 기다릴 뿐이었다.
초코가 묻은 설탕 사탕을 먹으면서 말이다.
“예. 정확히 이해 하셨습니다.”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녀가 눈 앞에서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보수로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 대가를 지불할 겁니다.”
북부 대장간을 건설할 때는 사실상 부려먹기나 다름없는 거래를 했었다. 하지만 에탄은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 조건이면 화염의 지배자가 자신의 부탁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에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탄은 한 가지 보상을 그녀에게 건네주기로 했다.
“드래곤의 영역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직접 성체 드래곤을 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흥미로운 게 없겠죠. 마법사들에게 드래곤은 마법의 시초나 마찬가지니까요.”
에탄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가 몸을 멈칫했다. 동시에 불같이 뿜어져 나오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그녀는 에탄이 지금 하는 대답에 아주 큰 흥미를 가졌다. 당연한 거였다.
성체 드래곤을 볼 수 있다는 말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던 발언이니까.
“어떻게 볼 수 있는데?”
하지만 화염의 지배자는 바로 좋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성체 드래곤을 본다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다음 과정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너도 알겠지만 드래곤을 보는 것 자체가 아주 희귀한 일 중 하나에 들어가.”
“맞습니다. 드래곤이 대륙에서 모습을 감춘 지도 100년이 넘었다고 했죠.”
“그래. 그런데 어떤 수로 보게 해준다는 거야?”
화염의 지배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이건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까 확실하게 방법을 말해줘야 해.”
“물론이죠.”
에탄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뇽뇽이도 드래곤 아닙니까?”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말하는 모양새가 꼭 드래곤을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이런 에탄의 지적은 그녀에게 뇽뇽이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에탄이 자신의 마법사들을 산에 던져버린다는 말에 깜빡 잊고 있었던 뇽뇽이가 그녀의 머릿속에 번쩍 나타났다.
“그건….”
에탄의 지적에 화염의 지배자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실수야.”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면서 실수라고 말했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픽 웃었다.
하지만 그 이상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기껏 가라앉은 그녀의 분노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도 있을 테니까.
“이해합니다. 그건 그렇고 성체 드래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으셨죠.”
“그래.”
“뇽뇽이를 연결 고리로 만들 생각입니다.”
“으음?”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대답에 두눈을 꿈뻑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에탄을 빤히 쳐다보는건 덤이었다.
“혹시나 까먹으신걸까 싶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뇽뇽이도 드래곤입니다.”
“그렇지.”
“그리고 뇽뇽이는 아직 애기 드래곤이죠. 뭐 저희 기준으로는 어린이에 가깝지만 드래곤들의 나이를 기준으로 하면 갓난 아기나 다름 없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뇽뇽이가 외형적으로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하지만, 실제 나이는 아직 한 살도 체 되지 않았다.
“…새삼 놀랍네.”
화염의 지배자가 그 사실을 상기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지금까지는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지냈지만, 이렇게 짚어보니 뇽뇽이가 사람과는 다르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체 드래곤을 만날 수 없어.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성체 드래곤이 진작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겠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발견을 못한 거라고 하면 말이 되지 않을까요?”
“음?”
에탄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저게 지금 무슨 소리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를 잃어 버리는 일은 흔합니다. 그런데 보통 엄마 손을 놓친 어린 아이는 무슨 행동을 하죠?”
“그야… 울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뇽뇽이가 성체 드래곤을 찾기 위해 운 적이 있었습니까?”
“없지.”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딱히 그런 말은 뇽뇽이에게서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러면 뇽뇽이를 울린다는 거야? 그 방법은 많은 사람한테 원한을 삼을 거 같은데.”
“저를 뭘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
에탄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즉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말에 반응을 해주지는 않았다.
“백마디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는게 낫겠죠. 뇽뇽아. 아린아 안으로 들어와.”
그러면서 문 밖에 있던 뇽뇽이와 아린이를 불렀다.
덜컥!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뇽뇽이와 아린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화염의 지배자가 갑작스러운 두 아이의 등장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린이와 뇽뇽이랑 같이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
“같이 안 온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기척을 왜 숨기고 있었어.”
“일이 잘못 풀리면 두 번째 작전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너 이….”
화염의 지배자가 숨겨져 있던 에탄의 작전을 듣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웅!
하지만 이어지는 뇽뇽이의 행동에 그녀의 시선은 뇽뇽이에게 팍 꽂히고 말았다.
“…저건 무슨 마법이야?”
지금까지는 본적이 없었던 분류의 마법진이 뇽뇽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마법진이 아린이의 머리위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웅!
얼마 지나지 않아 에탄의 머리 위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을 찾는 마법임!”
그때. 가만히 마법을 발동하던 뇽뇽이가 화염의 지배자의 물음에 환한 표정으로 답했다.
“드래곤을 찾는 마법?”
“흐음!”
“이걸로? 어떻게?”
“기운을 사방에 퍼트림!”
“…허어.”
화염의 지배자가 그런 뇽뇽이의 대답에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뇽뇽이가 만들어낸 마법진을 살펴봤다.
“확실히 뇽뇽이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네.”
그리고 뇽뇽이가 해내고 있는 마법진에서 가능성을 봤다. 성체 드래곤을 찾을수 있는 가능성을 말이다.
“예. 뇽뇽이의 기운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운은 드래곤들이 가지고 있는 기운과 똑같겠죠.”
“드래곤들이 이 기운을 파악하면….”
“뇽뇽이의 존재를 알게 될겁니다.”
“흐음. 꽤 괜찮은 방법이야.”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마법사들을 성벽 건축에 투입하는걸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에탄이 그걸 보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성체 드래곤을 만나게 해주는건?”
“그건 계속해서 시도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 거라 생각되네요. 당장 성체 드래곤을 만날 수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아마 대 마법사의 길을 걸었을 겁니다.”
“하긴.”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설명에 덤덤히 침을 삼켰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그녀 또한 지금 당장 성체 드래곤을 만나는건 무리일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일 년.”
“네?”
“적어도 일 년 안에는 만나게 해줘.”
“일 년이라….”
그래서 에탄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일 년 안에 성체 드래곤을 보게 해달라는 조건을 말이다.
“알겠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턱을 쓸어 만졌다. 그러다가 이내 화염의 지배자가 내건 조건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단, 성체 드래곤이 존재한다는 가정입니다. 저도 없는 드래곤을 만들 능력은 없습니다.”
“물론이지.”
씨익.
에탄이 그녀의 대답에 입꼬리를 올렸다. 이 거래는 어찌보면 화염의 지배자에게는 기약없는 기다림이나 마찬가지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드래곤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에탄이 성체 드래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날 신뢰한다는 거겠지.’
하지만 이 사실을 화염의 지배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에탄보다 더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저런 조건을 거는 이유는 그녀가 에탄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걸 에탄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체 드래곤을 꼭 찾아 내야겠다 결심을 하면서.
“그럼 계약서 쓰죠.”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계약서를 품속에서 꺼내 들었다.
* * *
에탄과 화염의 지배자의 거래가 무사히 끝이 났다. 그리고 에탄은 계약서를 쓰자마자 그녀와 마법사들을 데리고 마탑을 빠져 나왔다.
“또 왔구만.”
그리고 다시 한번 데이른 공작이 있는 영지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무슨 일을 하려는 건가?”
데이른 공작이 우르르 몰려든 마법사들을 보고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화염의 지배자와 수십명의 마법사가 오는 것에도 크게 놀람이 없었다.
워낙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산 위에 성벽을 만들겁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데이른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푸흡!”
입에 머물고 있던 차를 뿜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