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데이른 공작의 영지. 정확히는 북부 대 통합을 위해 마련된 넓은 땅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에서 제일 큰 변화는 풍경이었다. 휑했던 땅에 거대한 시설들이 자리를 잡게 됐다.
“…이걸 한 달만에 완성할 줄이야.”
한 달. 정말 짧은 시간이다.
황량한 땅에 기둥을 세우고 건물을 만들기에는 짧다 못해 너무 짧아서 문제인 기간이다.
데이른 공작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마법사들의 힘은 대단하군.”
하지만 그런 데이른 공작의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화염의 지배자와 그녀가 이끄는 마법사들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 애들이 일을 잘하기는 하지.”
그때. 데이른 공작의 옆으로 화염의 지배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완성된 북부 대 통합의 첫 번째 시설물인 불의 대장간을 보면서 힘껏 미소를 지었다.
“다른 마탑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겼네.”
불의 대장간.
화염의 지배자와 그녀의 수하들이 합심해서 만든 결과물이기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북부 대장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지만, 에탄이 고마움의 표시로 그녀의 특성을 대장간에 붙인 거였다.
화르륵!
그렇게 데이른 공작이 대장간의 이름이 붙여진 계기를 상기하는 순간, 대장간 꼭대기에서 거대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두꺼운 철을 녹이기 위한 작업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수백 명의 대장장이가 여기서 장비를 만들어낸다니. 북부의 중심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거나 마찬가지겠군.”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붙였다.
“네 말이 맞아. 북부의 중심이 여기로 바뀌었어.”
화염의 지배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간에 있는 불도 평범한 불이 아니야. 마나가 녹여져 있는 특수한 불로 만들어졌어.”
마나로 녹인 불.
일명 마법의 불.
화염의 지배자는 이번 대장간을 만들면서 그런 시도를 했다.
마법사의 힘으로 대장장이를 도와줄 수 있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밤새 커피를 마실 정도로 말이다.
“네 녀석도 보기와는 다르게 열심히 했구만.”
“뭐?”
“사실 내가 알던 너라면 딱 대장장이 시설을 만드는 선에서만 끝낼 줄 알았다. 그게 에탄과 거래를 한 조건이었으니까.”
“흥.”
데이른 공작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가 콧방귀를 꼈다.
깡!
그리고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장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 북부가 통합되든… 아니면 다 같이 폭삭 망하든 둘 중 하나뿐이야.”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뒷말을 붙였다.
* * *
북부에 있는 불의 대장간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에탄은 칼라사르 가문의 가주. 지오반과 함께 데이른 공작가의 저택에 있는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로 제국에 갈 거냐?”
그리고 지오반이 서류 더미를 살펴보는 에탄을 향해 말을 걸었다.
“예.”
에탄이 그 말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에 간다. 그 물음에는 상당히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황제폐하가 그걸 허락할지 모르겠구나.”
지오반이 에탄의 대답에 눈썹을 찌푸렸다. 제국의 황제를 만난다. 그건 북부에 있는 대공작을 만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만날 기회도 적으리라.
“저한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음?”
“그리고 지금 당장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시간은 널널하게 있으니까요.”
하나. 에탄은 자신 있었다.
황제를 독대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자신이 말이다.
다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일단 북부를 완벽하게 통합하는 것. 전 그걸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겁니다.”
에탄의 최우선 목표는 언제나 북부 통합이었다. 그건 황제를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북부를 통합하지 못하면 그 뒤의 것들을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족을 섬멸하는 건 물론이고 황제의 얼굴조차 볼 수 없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북부에 더 많은 전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전력이라….”
“그중에 제일 좋은 게 경제죠. 북부로 돈이 모인다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북부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겁니다.”
에탄의 말에 지오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나 지오반은 동시에 의문 또한 가졌다.
“생각은 좋으나 그걸 행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제시안이 있어야 한다. 그건 잘 알고 있겠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너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에탄은 그런 분류와 다를 거라고 지오반은 확신했다. 지금까지 에탄이 보여준 행동들은 모두 말이 아닌 실천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구체적인 제시안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에탄이 지오반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창문 너머에 있는 불의 대장간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버지의 눈에는 저게 무엇으로 보입니까?”
“음?”
“저곳이 여전히 황량한 땅처럼 보이냐고 묻는 거였습니다.”
지오반에 에탄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뒷말을 붙였다.
“저건 북부인들을 위한 대장간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맞습니다.”
에탄이 지오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저 대장간에서 나오는 수많은 무기들을… 북부인들이 독점을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엄청난 변화가 오겠지. 저 대장간에 있는 불은 평범한 불이 아니니까.”
“그렇죠.”
대장간의 불에 대해서는 이미 지오반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북부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화염의 지배자가 대장간의 불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탑에서 만들어낸 작업물이라고 말이다.
“일단 대장간에서 나오는 장비들은 저희가 모두 독점할 겁니다.”
“당연하지.”
“그리고 그중에서 몇 개의 장비를 중부와 남부에 판매할 겁니다. 아주 적은 소량만 말이죠?”
“음?”
에탄의 말에 지오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이상 장비를 내줄 생각은 없으니까요. 얼마나 돈을 준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러면 굳이 소량의 장비를 내줄 필요가 있느냐? 처음부터 우리가 완벽히 가지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 이후의 통합 시설에 자금을 대준다면… 그때부터는 그들과 ‘거래’를 할 것입니다.”
에탄의 말에 지오반이 두 눈을 번뜩였다. 이제야 에탄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거래라….”
거래.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그중에는 확실하게 상대방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물건도 들어가 있었다.
그 물건을 만드는 시설이 북부에 세워진다고 하니, 수많은 이들의 돈이 투자금으로 들어올 게 분명하리라.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지오반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면 상인 길드를 찾아갈 생각이겠구나.”
“예. 맞습니다.”
“혹시 아는 길드가 있는 것이냐?”
지오반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유명해질 길드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뒷말을 붙였다.
“유명해질 길드라… 그러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거대 상인 길드와는 거래를 안 할 생각이구나.”
“그렇습니다.”
“흐음. 다른 북부인들의 반대가 심할 텐데.”
“그들의 자금은 시설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설득해야 하는 이들은 다른 북부인들이 아닌 극히 소수뿐이죠.”
“그 첫 번째 대상이 나고?”
“예. 아버지가 첫 설득 대상입니다.”
지오반이 에탄의 말에 픽 웃었다.
“나는 진작에 설득됐다.”
그리고 예상외의 대답을 에탄에게 해줬다.
“네가 망나니에서 벗어났다는 확실은 준 시점에서 결심했다. 네가 무엇을 결정하든 지지하겠다고 말이다.”
“….”
에탄이 지오반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
“오글거리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뒷말을 붙였다.
“크흠.”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군요.”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전생과는 다르게 자신을 완전히 믿어주는 지오반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다른 이들을 설득하러 가죠.”
탁.
에탄이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와주시겠습니까? 혼자서는 아무래도 약해서요.”
그 후 지오반에게 함께 다른 이들을 설득해달라는 뒷말을 붙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지오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에탄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 혼자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너도 알다시피… 내 힘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서 말이지.”
하지만 지오반은 여전힉 걱정이 많았다. 자신과 다르게 나머지 이들은 좀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에탄은 이번에도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든든한 아군을 더 동원할 생각이었다.
“저희는 이제부터 아린이와 뇽뇽이를 설득하러 갈 겁니다.”
그리고 그건 ‘설득’을 명분으로 한 든든한 아군 모으기였다.
“물론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맨입으로 도와달라는 말은 안 할 겁니다.”
“그럼 무엇으로 도와달라고 할 것이냐?”
지오반의 물음에 에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근처에 아주 유명한 초콜릿 집이 있더군요. 우선 거기서 초콜릿을 사갈 겁니다.”
그리고 설탕 사탕에 이어 또 다른 군것질거리로 아린이와 뇽뇽이의 힘을 빌릴 거라 말했다.
“…….”
지오반이 그 말을 듣고는 멍하니 에탄을 바라봤다. 설마 초콜릿으로 아린이와 뇽뇽이를 설득할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들이 봤을 때의 아린이와 뇽뇽이는 불세출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에탄이기에 가능한 거지.’
하지만 지오반은 알고 있었다.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말이다.
만약 신뢰가 없었다면 초콜릿이 아닌 더한 걸 가져왔어도 함께 하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