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다음 날.
칼라사르 가문과 베르사르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창고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모리헤움 교단에서 그동안 비축한 창고 안에 있는 재물을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재물을 숨기고 있었다니.”
“교단이 이래도 되는 건가?”
모두가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게.
어지간한 왕국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모리헤움 교단의 창고에는 무수히 많은 재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들 모두가 검은 돈들이었으니 이들이 충격을 받을만도 했다.
“이 모든 건 칼라사르 가문의 재산으로 취합하기로 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그걸 허락해주셨고요.”
그러나 이제는 에탄과 칼라사르 가문의 공식 재산으로 변환됐다. 제국의 황제가 이번 일에서 에탄과 칼라사르 가문이 제일 큰 공을 세웠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 가져갈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가문으로 옮기고 나서 나중에 배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죠.”
다만. 에탄은 이 모든 돈을 꿀꺽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황제가 칼라사르 가문의 것으로 돌린다고 해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에탄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얼른얼른 옮기죠.”
짝!
에탄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박수를 쳤다. 그걸 시작으로 칼라사르 가문과 베르사르 가문의 사람들이 창고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그리고 끌고 온 마차에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옮겨 담기 시작했다.
모리헤움 교단에서 하는 마지막 작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모리헤움 교단은 해체하지 않을 겁니다.”
에탄은 그렇게 창고에서 칼라사르 가문의 사람들과 베르사르 가문의 사람들에게 빨리 일하라는 독촉을 보냈다.
그 후 창고를 빠져나와 제국 집무관 헤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해체를 안 한다고요?”
그리고 헤인을 통해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리헤움 교단을 이대로 유지한다는 소식이었다.
“예. 황제 폐하께서 모리헤움 교단을 유지하라는 황명을 내리셨습니다.”
“황명이라….”
“이유가 궁금하신다면 말씀해드릴수 있기는 합니다만.”
“아닙니다. 굳이 거기까지 듣고 싶지는 않네요. 다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일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에탄이 헤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유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연유로 모리헤움 교단을 유지하는지도 알 것 같았고 말이다.
“아마 이 교단을 통치하는 사람은 다른 고위급 사제가 되겠죠. 하지만 그 고위급 사제는 황제 폐하를 지지하는 사람일 거고요. 뭐 대충 그런 이유 때문에 모리헤움 교단을 유지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상관없습니다. 단 또 다른 마족이 침투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주의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에탄의 말에 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맞는 조언들이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모리헤움 교단에 대한 욕심은 없는 건가요?”
하지만 헤인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이렇게 모리헤움 교단이 비어버린 지금, 에탄이 굳이 모리헤움 교단을 떠나는 이유였다.
“계속 여기에 계신다면 자연스럽게 모리헤움 교단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가문으로 돌아가시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으음….”
헤인의 말에 에탄이 침을 삼켰다.
확실히 제국 집무관답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어째서 큰 이득을 포기하고 돌아가냐는 물음이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북부인이니까요.”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에탄은 북부인이니까.
그렇기에 모리헤움 교단을 지배하는걸 포기하는거였다.
“제국인들이 북부인의 진입을 환영할 리가 없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모리헤움 교단을 집어 삼키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견제와 질투가 들어올지 뻔히 보이니까요.”
“…….”
“황제 폐하의 명이 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원래 북부인들을 배척하는 건 제국인들의 고유한 전통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헤인 집무관님.”
헤인이 에탄의 말에 침을 삼켰다.
저기에 아니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헤인도 근본적으로는 북부인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헤인님이 북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꽤 골치 아파질 겁니다.”
“…….”
“아. 물론 그걸 알릴 생각은 없습니다. 굳이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저는 헤인 님과 원만한 관계로 남고 싶으니까요.”
에탄이 말을 마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헤인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짓고는.
“그럼 남은 일은 잘 처리해주실 거라 믿고… 저희는 이만 떠나보겠습니다.”
헤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가세요.”
헤인이 그런 에탄을 향해 싱굿 웃으면서 답했다.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웃는 얼굴을 보이는 그녀였다.
* * *
그렇데 에탄은 나머지 이들과 함께 모리헤움 교단에 있는 재물을 챙기고 북부로 돌아왔다.
“덕분에 창고가 꽉 차버렸네요.”
그리고 마차에 가득 실은 재물들을 칼라사르 가문의 창고에 우겨 넣었다. 가지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와 다른 아티팩트들을 이용해서 최대한으로 압축시킨 결과였다.
“이 재물들로 무엇을 할 생각이냐?”
지오반이 가득 차버린 창고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에탄을 향해 물었다. 이 정도 제물이라면 어지간한 일은 모두 해낼수 있다.
그러니 에탄이 이걸 어떻게 쓰냐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흐음….”
에탄이 지오반의 그런 물음에 턱을 쓸어 만졌다. 확실히 창고에 있는 재물을 쓰는 용도를 정해야만 한다고 본인도 스스로 생각했다.
‘다가오는 북부의 멸망을 막는데 큰 힘이 되어줄거야.’
그렇기에 이것을 개인의 만족으로 소모할 생각이 없었다. 에탄은 북부가 미래에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북부의 발전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음?”
“마족의 위험은 날이 갈수록 커질겁니다. 그 부분을 위해서라도 이 재산은 북부의 통합… 그리고 마족을 막기 위한 재산으로 모두 투자할겁니다.”
“호오.”
에탄의 말에 지오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이 중 아주 적은 양이라도 자신의 금고에 집어 넣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지오반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에탄의 입에서 튀어 나왔으니 그가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어디다 투자할 생각이냐? 투자라는 것도 결국엔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투자는 단순히 돈을 집어넣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오반은 에탄에게 두 번째 질문을 이어 나갔고.
씨익.
에탄은 그런 지오반의 물음에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
“그건 데이른 공작님과 얘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 * *
북부 대통합.
그곳에 가장 중요한건 북부 대통합을 이끌어줄 사람이라고 에탄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를 앞에 세우고 뒤에서 조종하겠다?”
그래서 에탄은 지오반과의 대화를 끝내고 데이른 공작을 찾아갔다.
연무장에서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신나게 대검을 휘두르던 데이른 공작을 말이다.
“조종이라뇨. 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픽 웃었다. 그러면서 침착하게 뒷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이름을 빌려주시라는 뜻이었습니다.”
“흐음.”
“물론 그런다고 해서 데이른 공작의 이름을 아무곳에나 쓰지는 않을 겁니다. 북부 대통합을 위한 일에만 사용할거라 맹세하겠습니다. 정 의심스러우신다면… 저랑 함께 동행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하하!”
에탄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재밌다는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내 이름을 쓸 생각을 하다니. 정말 여러모로 대단하기는 하구나.”
딱히 그런 데이른 공작의 얼굴에 화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에탄을 대견하게 보는 눈빛만 있을 뿐이었다.
“마음씨 좋은 데이른 공작님이라면 이해하고 허락해줄거라 생각해서 요청했습니다.”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면서 답했다. 그 후 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쳐다봤다.
두 사람 모두 데이른 공작과의 수련을 끝내고는 깊은 낮잠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아린이와 뇽뇽이의 좋은 스승님이기도 하시니. 이보다 더 든든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흐음. 확실히 맞는 말이다.”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에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두 아이의 얼굴이 상당히 보기 좋아, 데이른 공작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크흠.”
그렇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데이른 공작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 후 다시 눈앞에 있는 에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하지만. 내 이름 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모집해서 이 이야기를 꺼내야겠구나.”
“예?”
에탄이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꺼냈다.
“북부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대공작에다가 마탑주에다가 적어도 다른 북부 가문들의 지지도 있어야 하지.”
“그건….”
“그러니까 내 이름으로 다시 한번 북부에 선포하겠다. 이번에는 대 연회가 아닌 북부 통합을 위한 회의를 하겠다고.”
그리고 그건 조용한 북부에 큰 격변을 일으키는 내용이었다.
“허어.”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의 대답에 감탄을 내뱉었다. 설마 자신보다 몇 발을 더 앞서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모든건 필연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에탄은 데이른 공작을 만류하지 않고.
“좋습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오히려 그런 데이른 공작의 등을 힘껏 밀어주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