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지오반이 합류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칼라사르 가문에 있는 다른 인원들도 모리헤움 교단에 속속히 도착했다.
모두가 지오반의 지시에 따라 이곳으로 이동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모리헤움 교단을 저희가 지배하고 있군요.”
에탄이 모리헤움 교단에 가득찬 칼라사르 가문 사람들을 보고 콧방귀를 꼈다.
자신의 집사인 세바스찬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이 정말 이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칼라사르 가문을 비워도 되는 겁니까?”
파엘이 그걸 보고는 업무를 보고 있는 지오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왔으니, 지금 칼라사르 가문은 완전히 비어버린 곳이나 마찬가지다.
혹여. 누가 침입을 한다면 막아줄 이가 없을 거라고 파엘은 생각했다.
“주변 가문들이 모두 협력해주기로 했네. 다행히 관계가 나쁜 편은 아니라서 다들 흔쾌히 받아 주더군.”
지오반이 그 말을 듣고는 서류 뭉치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후 쾡한 눈빛으로 파엘과 에탄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래서 집무실에는 무슨 볼일로 온 건가?”
에탄과 파엘이 그걸 보고는 침을 삼켰다. 저 퀭한 눈빛이 그동안 지오반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조금은 쉬시는 게 어떨까 싶어서 왔습니다.”
그런 지오반을 향해 에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일은 누가하고?”
지오반이 그 말을 듣고는 에탄에게 되물었다. 반강제로 서류 업무 처리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게 지오반의 생각이었다.
“대신 할 사람이 왔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지오반에게 덤덤히 답했다.
“음?”
지오반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을 대신해서 서류를 처리할 사람이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거였다.
그래서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끼익.
굳게 닫혀 있던 집무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동시에 안경을 쓴 한 여자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제국에서 파견 나온 집무관 헤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오반에게 소개했다.
* * *
제국 황제 또한 모리헤움 교단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는 모리헤움 교단이 있는 지역에 한 사람을 보냈다.
그 인물이 바로 집무관 헤인이었다.
“칼라사르 가문에서 이번 일에 큰 기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그 점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헤인의 말에 지오반이 침을 삼켰다.
“공로를 세운 건 제가 아니라 에탄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낸 게 아니라고 그녀에게 답했다. 그러자 헤인이 지오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탄이 덤덤히 입을 열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모리헤움 교단에 쳐들어온 건 맞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함께 한 겁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에탄이 주도하는 거였다. 만약. 데이른 공작과 화염의 지배자. 파엘과 같은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칼라사르 가문만 언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에탄은 그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 일은 모두가 함께 한 거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헤인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에탄과 지오반을 쳐다보면서 뒷말을 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공로가 분산될 겁니다. 그러면 칼라사르 가문에 내려지는 하사품도 적어질 텐데… 상관없습니까?”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보상이 줄어든다고 말이다.
“예.”
하지만 에탄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상관없습니다.”
애당초 이번 일은 제국의 보상을 바라고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리헤움 교단의 밑작업은 다 끝났다.’
그리고 원하는 바를 손에 넣기 위한 일도 이미 진행되었다. 하사품보다 더 중요한 교단을 칼라사르 가문의 손아귀에 넣는 것.
그 작업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기에 에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군요.”
헤인이 에탄의 대답에 이번에도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놀라거나 되묻지도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들이는 반응이었다.
“생각보다 평온하시군요.”
지오반이 그런 헤인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이렇게 행동해도 상관없다는 느낌이 드는데… 맞습니까?”
그리고 상당히 민감한 질문을 물었다.
“예. 맞습니다.”
하지만 헤인은 지오반의 대답에 덤덤히 답했다. 딱히 무언가를 숨기거나 할 의도도 없는 거 같았다.
“황제 폐하께서 바라시는 건 마족을 처리하는 거지… 모리헤움 교단을 재건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에탄이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눈치챈 모양새로 뒷말을 붙였다.
“그래서 저희를 내버려 두는 겁니까?”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헤인이게 질문했다.
“예.”
그리고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
에탄이 그런 헤인의 모습에 콧방귀를 꼈다.
“그렇군요.”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황제가 자신이 하는 일을 건들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모리헤움 교단은 제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으로 파견된 거고요. 그러니 서류 업무에 관여를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에탄이 헤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녀가 하는 일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지오반에게 계속 업무를 맡기기도 미안했고 말이다.
드륵.
헤인이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업무를 보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에탄과 지오반에게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하러 가겠다고 선언하고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다.
끼익… 쿵.
그렇게 손님을 맞이하는 방에는 에탄과 지오반 두 사람만이 남게 됐다.
“흐음. 어떤 거 같습니까.”
그제야 에탄이 지오반에게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이냐?”
“저 헤인이라는 자 말입니다.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그리고 지오반에게 헤인에 대해 물었다.
“…….”
그 순간 지오반이 입을 다물었다.
헤인을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에탄의 물음에 뭐라 답해야 하나 고민하려는 순간.
“저는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에탄이 먼저 뒷말을 붙였다.
자신의 기준에서 그녀는 믿어도 되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얘기하는 것이냐?”
지오반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직 헤인을 본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제 감이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탄은 확신했다.
그녀라면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다만. 그 이유까지 지오반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헤안은 북부인 출신이라는 건 아직 비밀이니까.’
그건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그녀의 힘이 강력해졌을 때.
그때 나오는 정보들이기에 에탄은 지오반에게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이 사실만은 확신했다.
이번 일로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다. 굳이 그녀를 의심하거나 감시하지는 않도록 하겠다.”
지오반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빌헬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에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지오반과 함께 이곳으로 왔던 빌헬름이었다.
생각해보면 근 일주일 동안 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에탄은 지오반에게 빌헬름의 존재를 물었다.
얼굴을 코빼기도 보지 못했으니까.
“아. 빌헬름 말이냐.”
지오반이 그런 에탄의 물음에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몸이 조금 찌뿌둥한지 아린이와 산에서 매일 검술 대련을 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에탄에게 덤덤하게 뒷말을 이었다.
“…예?”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린이랑요?”
“그래.”
하지만 이어지는 지오반의 말에 에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쩐지… 조용하더라.”
예전과 다르게 아린이는 엄청나게 성장을 한 상태다. 그러니 지오반을 상대로도 충분히 대련 상대가 되어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일주일이라니.
그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대련을 했다는 사실에 에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마 슬슬 돌아올 거 같은데….”
“설마 일주일 동안 산에서 머문 겁니까?”
“그래.”
“허어.”
그리고 이어지는 지오반의 말에 감탄을 내뱉었다. 두 사람이 일주일 동안 산에서 검으로 치고 박고 싸우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뒷정리를 하느라 바빠서 신경을 못 써준 게 미안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하지만 그것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빌헬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을 대신해서 아린이를 돌봐주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똑똑.
그때. 누군가 에탄과 지오반이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끼익!
이어서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이 힘차게 열렸다. 등에 대검을 찬 데이른 공작의 등장이었다.
“?”
“?”
에탄과 지오반이 갑작스러운 데이른 공작의 등장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가 이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볼일로 이곳에 왔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두 사람 모두 검을 차고 나와라. 빌헬름이 단체 대련을 하자고 제안했다!”
데이른 공작이 두 명에게 힘차게 말했다. 이 대련 놀이에 모두가 가담하게 됐다고 말이다.
“단체 대련이요?”
데이른 공작의 말에 에탄이 두 눈을 끔뻑였다. 이게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아직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태인데 대련을 하자니.
“그래!”
하지만 데이른 공작의 이어지는 대답에 에탄은 깨달았다.
“참고로 안 나오면 내가 억지로 끌고 갈 거다! 이런 재밌는 일에 힘 좋은 사람들을 뺄 수는 없지!”
지금은 어떤 말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