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쾅! 콰아앙!
거대한 폭음이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쉐에엑!
이어서 뱀들이 혀를 낼름거리는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개중에는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면서 사람을 집어삼키려는 녀석도 있었다.
“놈!”
데이른 공작이 상대하는 뱀이 대표적으로 그런 녀석이었다. 놈은 거대한 입과 이빨을 이용해서 데이른 공작을 집어삼키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까앙!
하지만 쉽게 먹혀줄 데이른 공작이 아니었다. 데이른 공작은 녀석의 이빨을 대검으로 막아내면서 거리를 벌렸다.
“하하하!”
그러면서 재밌다는 듯 힘껏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데이른 공작은 이 전투에서 마음을 불태우고 있었다.
-우웅!
그 증거로 데이른 공작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쒸이익!
그걸 본 이름 없는 여인이 소환한 뱀이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데이른 공작으로부터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죽어라!”
서걱!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데이른 공작이 눈앞에 있는 자신의 적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성격이 절대 아니니까.
툭!
데이른 공작의 대검에 녀석의 목이 단칼에 날아갔다. 무식하게 큰 비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데이른 공작의 대검이 더 크고 날카로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흐음!”
그렇게 눈 앞에 있는 녀석을 처리하고는, 데이른 공작이 뿌듯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후 바로 오른편에 있는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부 뱀구이로 만들어주마!”
화르륵!
화염의 지배자또한 자신에게 달려드는 뱀들을 보고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통구이로 만들겠다는 말을 하면서 불꽃들을 만들어 내고는.
화아아악!
말 그대로 불째로 녀석들을 구워 버렸다.
“화끈하구만!”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맘에 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화염의 지배자가 데이른 공작을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구경할 시간 있으면 얼른 다른 뱀들이나 죽여!”
그리고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하하!”
데이른 공작이 그 말을 듣고는 재밌다는 듯 힘껏 웃었다. 그리고 주변을 쓰윽 둘러보고는.
“아무래도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겠구먼.”
아직도 개미처럼 남아 있는 뱀들을 보고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
스르릉!
동시에 대검을 질질 끌면서 그 뱀들을 향해 다가갔다.
* * *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큰 두각을 드러내는 건 아린이. 뇽뇽이. 에탄 이 세 사람이었다.
서걱! 서거걱! 후웅!
세 사람의 공격에 3마리의 뱀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린아. 오른쪽.”
“네!”
이들은 뱀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뚫고 나아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분쇄기의 역할을 하는 거였다.
자칫하면 포위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우려하지 않았다.
콰콰캉!
이들은 그 누구보다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세 방향에서 달려드는 뱀들을 일격에 모두 죽일 정도였다.
[왜 나는 아직 껴 주지 않는 것이냐!]
하지만 단 한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영혼은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에탄의 갑옷 신세가 된 아서왕이었다.
그는 자신을 전투에 껴 주지 않는 에탄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기사로서 이 상황을 구경만 하는 건 그의 기사도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에탄이 아서왕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서왕을 이용한다면 더 빠르게 일을 정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름 없는 여인으로 위장한 저 마족이 다른 수를 발동한다면 정말 곤란해질 것이다.
게다가 아서왕의 힘은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서왕은 결국 에탄의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니.
“힘을 아끼죠.”
에탄은 아서왕을 최후의 카드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래놓고 끝까지 안 꺼내줄거 알고 있다! 어차피 네 녀석이 전부 처리할 생각 아니냐!]
그때. 아서왕의 목소리가 에탄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웅웅 울려 퍼졌다. 에탄이 그걸 듣고는 픽 웃었다.
딱히 틀린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들어가자!”
“네!”
“알겠음!”
그래서 아서왕의 말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무수히 많은 뱀들이 에탄과 남은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우우웅!
에탄이 그걸 보고는 달빛의 기운을 검에다가 있는 힘껏 집중했다. 그리고 일직선으로 검을 쭉 뻗으면서.
파아앙!
달빛의 힘을 그대로 발산했다.
그러자 달빛의 힘이 앞쪽에 있는 뱀들을 갈가리 찢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타탁!
에탄이 그걸 확인하고는 빈 공간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말이다.
* * *
“…흐음.”
이름 없는 여인.
그녀는 맨 뒤에서 이 모든 상황을 두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거대한 뱀의 형태라서 그런지.
인간의 시야로는 볼수 없는 아주 먼 곳 까지도 그녀의 눈으로 확인할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 3의 눈이라고 하는게 맞으리라.
“이거 잘못하면 귀찮아지겠는걸.”
이름 없는 여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뱀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감정 표현은 여전히 인간처럼 할수 있었다.
“흐으음….”
그리고 사고 방식또한 인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이제 슬슬 이 놀이를 끝내야 겠어.”
그녀에게는 인간과 한가지 다른점이 있었다. 바로 그녀는 인간이 아닌 마족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는 놀이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저 인간들에게 자신이 패배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으니까.
파아앗!
그렇게 생각을 끝내는 순간, 이름 없는 여인의 몸에서 검붉은 빛들이 뿜어져 나왔다.
쉐에엣!
동시에 치열하게 전투를 치루던 뱀들이 이름 없는 여인을 향해 되돌아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몸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콰지직!
그렇게 뱀들이 모이자 이름 없는 여인의 몸이 다시 한번 변화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뱀인 상태에서 두 날개가 생기고 작은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
그리고 이름 없는 여인의 입에서 짐승이 울부짖는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탄과 다른 이들이 그걸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변화였기 때문이다.
“…드래곤과 비슷한 형상입니다.”
그때. 파엘이 다시 한번 각성한 이름 없는 여인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두 날개와 긴 꼬리. 누가 봐도 드래곤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드래곤이 되려다가 실패한 자.
그런 파엘의 말에 이름 없는 여인이 덤덤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붉은 눈동자로 주변을 쓰윽 둘러보고는.
-너희들의 목숨을 제물 삼아… 이번에야 말로 드래곤이 되겠다!
우렁찬 목소리로 뒷말을 붙였다.
에탄과 이곳에 있는 남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 힘을 흡수해서 드래곤이 되겠다고 말이다.
“드래곤이라….”
저벅. 저벅.
그 순간. 에탄이 이름 없는 여인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갔다.
우우웅!
그러면서 다시 한번 달빛의 힘을 뿜어냈다.
-하!
이름 없는 여인이 그걸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지금 이 순간 저 달빛의 힘으로는 자신을 막을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도 그럴게. 비록 자신이 드래곤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나오실 때입니다.”
에탄이 하려는건 달빛의 힘으로 이름 없는 여인을 상대하려는게 아니었다. 그가 하려는건 자신이 입고 있는 갑옷. 그리고 그 갑옷안에 있는 원주인을 꺼내는 거였으니.
파아앗!
에탄이 입고 있는 갑옷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지하실에 있는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덮어버릴 정도였다.
-무슨!
그 광경을 본 이름 없는 여인이 경악했다. 자신이 뿜어내는 마기를 역으로 집어삼키는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쉐에엣!
그래서 에탄이 완전히 변하기 전에 놈을 처리할 작정으로 마기를 날리는 순간.
까앙!
황금 갑옷을 입은 한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늦었다.]
과거 기사들의 왕이라고 불렸던 자.
아서왕의 등장이었다.
-노… 노오오옴!
그런 아서왕을 본 이름 없는 여인이 크게 분노했다. 저 목소리와 갑옷의 문양. 모든 걸 잊을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자신을 방해하는 최대의 원수중 한놈이 바로 아서왕이었으니까.
[오랜만이군.]
아서왕이 그런 이름 없는 여인을 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황금 색 투구 안에 있는 그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져있었다. 재회의 즐거움과 다시 한번 놈을 죽일수 있다는 사실에 아서왕이 기쁨을 느끼는 거였다.
-갈갈이 찢어주겠다!
그런 아서왕을 보고 이름 없는 여인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우우웅!
동시에 입을 위아래로 쩌억 벌리고는 아서왕을 향해.
화르르륵!
뜨거운 불길음 뿜어냈다.
[흠.]
그걸 본 아서왕이 재밌다는 듯 그 불길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 불길이 자신에게 들이다치기 직전.
[나와라. 내 검이여.]
자신의 검을 소환하는 말을 내뱉었다.
……!
그 순간 하늘에서 아서왕의 검이 천장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지하실에 뿌연 먼지가 퍼져나갔다. 아서왕이 부름을 받은 검이 천장을 뚫고 땅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여파였다.
그리고 그 먼지가 사라졌을 때.
후웅!
아서왕의 손에는 백색 빛을 뿜어내는 긴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노오옴!
이름 없는 여인이 그걸 보고는 크게 분노했다. 저 검은 자신의 목을 배었을 때 사용했던 검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죽이겠다는 뜻이니.
그녀가 머리끝까지 분노할 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