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페펜 길드의 길드장 페펜.
“크어… 크어어….”
그는 어젯밤 과도한 업무로 인해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냐면 눈에 안대를 쓰고 귀에는 귀마개를 끄고 있을 정도였다.
두둥… 두두둥.
그래서 페펜은 천장이 흔들리며 자신의 책상에 있는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변을 눈치챌 수 없었다.
두두둥!
그렇게 페펜이 신나게 꿈나라에 가있는 동안. 에탄을 열심히 페펜의 방 천장을 (?) 자신의 힘으로 뚫었다.
그리고 마침내.
쾅!
페펜의 방에 큰 구멍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탁!
그렇게 생긴 구멍 안으로 에탄이 폴짝 들어왔다. 그 후 바닥에 착지하고는 침대에 뻗어있는 페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길드장이 이렇게 감이 떨어져서야 되겠나.”
그리고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있는 녀석을 보고는 혀를 찼다. 만약 자신이 순수한 의도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면.
페펜은 쥐도 새도 모르게 생을 마감했을테니 말이다.
터벅. 터벅.
에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페펜을 향해 다가갔다. 그 후 낡은 침대에 누워 있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으음….”
그러자 페펜이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손을 허공에 휘젓고는 옆으로 몸을 돌렸다.
퍽!
에탄이 그걸 보고는 주먹으로 녀석의 등을 타격했다.
“악!”
그러자 페펜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일어났다. 에탄이 우렁찬 녀석의 소리에 눈썹을 찡그렸다.
“손님 받아라.”
그러면서 녀석에게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누. 누구야!”
페펜이 그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랬다. 동시에 머리에 쓰고 있는 안대를 벗어 제끼고는.
“…진짜 누구냐?”
에탄을 보고 두 눈을 끔뻑였다.
그의 기억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전에 여기는 어떻게 들어 온 거지? 분명 문은 잠궜는데….”
페펜이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그리고는 에탄을 빤히 바라봤다.
갑옷에다가 검까지 차고있는.
누가봐도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온 암살자의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 손님이야.”
에탄이 그런 녀석을 향해 자신은 해치러 온 게 아니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쓰릉!
동시에 손에 쥐고 있는 검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손님….”
페펜이 그걸 보고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 그 어떤 손님이 이런 식으로 방문을 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터억!
“일단 보수부터 확인해봐.”
하지만 에탄이 품속에서 꺼내는 골드 주머니를 확인하는 순간, 그런 불순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30골드?”
무려. 페펜의 몇 달치 수입금을 에탄이 지불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손님이 맞군요!”
페펜이 묵직한 골드 주머니를 보고 방긋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녀석을 자신의 품속에 집어넣고는.
타탁!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그 순간 가운데 자리에 책상이 생기고 양옆에 소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구만.”
에탄이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불쾌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원래 페펜은 저런 녀석이니까.
“무엇을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페펜이 침대에서 내려와 소파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시원한 녹차 두 잔을 만들어 내고는, 그중에 한잔을 에탄에게 건넸다.
후룩.
그 후 자신이 만들어 낸 녹차를 들이마시는 중에.
“모리헤움 교단에 내전을 일으킬 생각이다.”
에탄의 말을 듣고는.
“푸흡!”
페펜은 자신도 모르게 입에 머금고 있던 녹차를 뿜어버리고 말았다.
* * *
모리헤움 교단에 내전을 일으킨다.
에탄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페펜에게 해줬다.
그중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의 일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막중한 일을 맡기시는 거였군요.”
페펜이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침을 삼켰다. 처음 에탄을 마주할 때보다 한층 더 진지해진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모리헤움 교단에 마족이 있다니….”
페펜 또한 마족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에탄이 하는 일에 감탄을 하는 거였다.
마족 제거를 위해서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정보들을 저한테 말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한테까지 이 사실을 얘기해주는 게 이해가 가는건 아니었다.
막말로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정보를 뿌리라고만 해도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적어도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알아야 나중에 큰일이 생겨도 대비를 하지 않겠어?”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씩 웃으면서 답했다.
쓰윽.
그리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10골드를 더 꺼내고는.
“이건 위험수당이야.”
맞은편에 앉아있는 페펜에게 내밀었다.
“…저 죽을 수도 있는 겁니까?”
페펜이 그걸 보고는 몸을 움찔했다.
이제는 돈을 더 받는다는 거에 두려움을 느꼈다. 다른 종족도 아닌 마족이 끼어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을 거야.”
“….”
“네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정보만 잘 퍼트린다면 말이지. 그러니까 이건 그걸 위한 작업료로 써.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페펜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에탄을 빤히 바라봤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날 쳐다봐?”
에탄이 그걸 깨닫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니. 제가 알고 있는 칼라사르 가문의 막내 도련님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그러자 페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맨날 술을 퍼먹고 망나니짓을 일삼는 답 없는 인간… 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과거 에탄이 해왔던 행적들을 거론했다.
“맞아.”
“예?”
“그렇게 개차반 인생을 살아 왔던거 맞다고. 거기서 틀린 말 하나도 없어. 오히려 축소된게 있겠지.”
“아….”
에탄의 말에 페펜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식으로 인정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어. 그러니까 크게 걱정 안해도 돼.”
에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페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녀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정보는 최대한 많이 빠르게 퍼트려. 그래야 모리헤움 교단에서 대응을 할 수 없을 테니까. 굳이 그 방법까지 설명해줄 필요는 없겠지?”
“예… 예.”
“좋아. 그러면 난 가본다. 보고는 데이른 공작가의 집으로 찾아와. 그리고 정보 길드에서 왔다고 하면 날 볼 수 있을 거야.”
작별 인사를 건넸다.
“문은-”
훙!
그리고 페펜이 나가는 문을 알려주기도 전에.
“…저 구멍으로 다시 올라가 버리다니.”
에탄은 자신이 뚫어냈던 구멍을 통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 *
에탄이 페펜 길드에 의뢰를 맡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에탄 도련님.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그동안 에탄은 데이른 공작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칼라사르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텔레포트를 이용할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혹시나 모리헤움 교단에 직접 쳐들어 가야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 상황을 가문에 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에탄은 편지를 통해서 지오반에게 현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려줬다.
그리고 [돌아오면 두고 보자] 라는 힘이 넘치는 답장을 받게 됐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오반과의 편지 주고받기를 떠올리고. 에탄이 바깥에 있는 기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끼익.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에탄이 머물고 있는 방문이 열렸다. 동시에 안으로 페펜이 들어오고는.
“데이른 공작님의 덩치는 여전히 어마무시하군요.”
입구에서 마주친 데이른 공작에 대한 감상평을 말했다.
“그런데… 그 공작님과 함께 계시던 두 아이는.”
“내 딸들이야.”
“역시. 그럴 거 같았습니다.”
에탄의 말에 페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른 공작님과 도련님의 따님 중 한 분은 검을 휘두르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마법을 난사하고 있더군요. 그걸 피하려고 구석에 바짝 붙어서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건물 입구에서 벌이고 있는 행동을 알려줬다.
“원래 애들은 강하게 키워야지.”
하지만 에탄은 그걸 만류할 생각이 한 푼도 없었다.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중요한 건 더 많은 실전 경험이니 말이다.
‘데이른 공작님이 그걸 채워주고 있으니까… 사실상 신세를 지고 있는 거나 다름없네.’
그래서 에탄은 데이른 공작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자신을 대신해서 두 사람을 계속 성장시켜주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작업하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안 그래도 그걸 말씀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는데 바로바로 말씀드려야죠!”
페펜이 에탄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녀석의 차림새를 살펴봤다.
“흐음.”
그리고 손가락에 낀 반짝반짝한 금반지를 보고는 눈가를 가늘게 떴다.
“확실히 제대로 돈을 쓰고 있네.”
화려하게 빛이 나는 걸 보니 제법 값이 나가는 녀석이니라. 에탄이 그 점을 지적하자 페펜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한 번쯤은 사보고 싶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라고 주신 돈은 딱 거기에만 쓰고 있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튼짓은 안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고는.
쓰윽.
자신의 품속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에탄에게 내밀었다.
“?”
에탄이 그걸 보고는 이게 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페펜이 입꼬리를 활짝 올리고는.
“모리헤움 교단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에… 제법 재밌는 정보가 나왔습니다.”
에탄에게 속삭이듯 뒷말을 이었다.
“이미 교단에서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밑작업이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탄이 몰랐던 또 다른 정보를 입 밖으로 꺼냈다.
“밑작업이 진행 중이었다고?”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페펜에게 반문하듯 물었다.
끄덕. 끄덕.
그러자 페펜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쓰윽.
에탄이 그의 대답을 확인하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어서 페펜을 향해.
“그거 자세히 말해봐.”
그 정보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라고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