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여기가 왕국의 온갖 아티팩트부터 시작해서 자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돈까지 모여있는 곳이네.”
페른이 에탄을 데리고 간곳은 왕국 가장 중심부에 있는 시설이었다.
어째서 그곳을 시설이라고 칭하냐면 이유는 간단했다.
“7서클 이상의 마법사 5명과 오러 기사 5명이 항상 상주하고 있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시설은 통째로 순간이동되네.”
“어디로요?”
“저 빌어먹을 녀석. 아니 데이른 공작의 자택으로.”
“…….”
이 금고를 지키는 자들과.
유사시에 발동하는 장치가 너무나 어마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탄은 이곳을 하나의 요새로 인식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렇게 보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했고 말이다.
‘이거 뭔가를 훔쳐가기에는 힘들 수도 있겠는데?’
그래서 에탄은 살짝 불안했다.
이 금고에서 자신이 원하는 아티팩트를 가져갈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많은 감시원들을 속여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뇽뇽이라면….’
그러나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에탄에게는 든든한 아군인 뇽뇽이와 아린이가 있으니까.
“자. 마음껏 구경하게. 나는 바깥에서 이 시설을 점검하고 있겠네.”
“…같이 안 들어가도 괜찮으십니까?”
“큰 문제는 없다고 보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네가 물건을 훔치려다가 걸리면 도난 방지 마법이 작동되니까 그건 알고 있게.”
“믿는 구석이 있으신 거였군요.”
페른의 말에 에탄이 픽 웃었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디서나 경계를 하는 건 기본인 거니까.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서 에탄은 이걸 페른과 자신의 대결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막는 방패의 승리냐.
아니면 어떻게든 뚫어버리는 자신의 창이 이길지에 대한 대결 말이다.
“음.”
페른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끼익!
그러자 두꺼운 철문이 알리고 온갖 금은 보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둘러보고 오게.”
페른이 그걸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에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바깥으로 빠져 나갔다.
“…….”
그리고 남은 에탄은.
“가자. 아린아 뇽뇽아.”
“네!”
“알겠음!”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금고 안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반드시 뚫어보이겠다.’
어떻게든 페른에게 한방 먹이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 * *
금고 안은 상당히 넓은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페른이 그렇게까지 자부심을 느끼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요!”
“너무 넓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금고를 보면서 감탄했다.
아니. 사실은 금고라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금고는 사람이 들어가서 움직일 정도로 크지 않으니까.
“여기도 금고를 가장한 요새인 거 같네.”
그래서 에탄은 이곳을 페른의 요새라고 칭하기로 했다. 그게 더 적절한 표현인 거 같았으니까.
“일단 무슨 물건이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자.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에탄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페른의 말대로 온갖 금은보화들이 모여있었다. 남부에 있는 무역 왕국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훔치는 거임?”
뇽뇽이가 그런 물건들을 탐욕스럽게 쳐다보는 에탄에게 물었다.
“훔치는 게 아니라 빌려가는 거야.”
“흐음….”
에탄이 그 질문에 당당하게 답했다.
자신은 훔치는 게 아니라 잠시 빌려가라는 거라고 말이다.
“어려움.”
하지만 뇽뇽이의 기준에서는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빌린다는 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고 가져가는 행위라고 세바스찬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원래 인생은 그런 법이야. 뇽뇽이 너도 나중에 크면 이해할 거야.”
에탄이 말을 끝내고는 뇽뇽이의 머리를 쓸어 만졌다.
“뇽뇽아. 이 아티팩트들에 어떤 마법이 걸렸는지 살펴볼 수 있어?”
“물론임!”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힘차게 답했다.
-우우웅.
동시에 아티팩트에 두 손을 뻗고는.
거기에 걸려있는 마법진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음. 알아냈음!”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뇽뇽이가 두 눈을 번쩍였다. 동시에 자신이 해냈다는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어떤 마법들이 걸려있어?”
에탄이 그런 뇽뇽이를 보면서 원하는 질문을 건넸다.
“3개의 마법 걸려있음!”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데.”
“감시 마법! 도난 방지 마법! 폭발 마법이 걸려있음!”
“…폭발 마법?”
“흐응!”
에탄이 뇽뇽이의 마지막 마법 설명에 미간을 찌푸렸다. 폭발 마법이라니?
그런 마법이 아티팩트에 걸려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싶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폭발함!”
그러나 이어지는 뇽뇽이의 설명에 납득을 하게 됐다.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폭발 마법이 걸려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잠깐. 폭발 마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나 에탄은 그 사실을 페른에게 전해 듣지 못했었다.
‘나한테 한방 먹이려고 했었구나.’
하지만 그 이유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이 이 금고에서 무언가를 가져갈 거라는 확신.
페른은 그런 판단을 하고 있었기에 에탄에게 비밀로 했었던 것이니라.
이 아티팩트들을 잘못 가지고 나오면 폭발 한다는 걸 말이다.
“하… 재밌네.”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하마터면 제대로 쪽팔렸으리라.
‘하지만 페른 폐하께서 간과한 게 있지.’
만약. 에탄이 혼자 이 금고에 들어왔더라면 페른에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뇽뇽아. 아티팩트에 걸려있는 이 마법들 해제 시킬 수 있어?”
자신에게는 화염의 마탑주한테도 눈독을 받은 뇽뇽이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뇽뇽이는 마법계의 주인이라 불리는 드래곤이니.
“시도 해보겠음!”
-우우웅!
에탄은 이 금고에 있는 마법들을 모조리 박살(?) 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파직! 파지직!
뇽뇽이가 여러 가지 도난 방지 마법이 걸려있는 아티팩트들을 향해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작은 번개들이 아티팩트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 곳도 아니고 금고에 있는 모든 아티팩트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
그리고 이어지는 뇽뇽이의 용언에.
-웅….
아티팩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빛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성공했음.”
뇽뇽이가 그걸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이 에탄과 묘하게 비슷했다.
“좋았어.”
그래서일까?
에탄은 지금 이 순간 뇽뇽이가 아주 자랑스러웠다.
“에잇. 기분이다. 돌아가면 설탕 사탕 10개 줄게!”
“흐응!”
무려 자신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던 페른을 역습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니까 말이다.
“아빠. 그런데 아티팩트가 사라지면 그 빈자리를 보고 페른 님이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단순히 가져가기로 끝나서는 안 될 거 같은데….”
그때. 아린이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에탄에게 말을 걸어왔다.
“걱정하지 마. 전부 가져갈 생각은 없으니까.”
“진짜요?”
“그럼. 아무리 아빠가 남의 물건을 잘 빌려 간다고 해도… 그 정도로 양심이라는 게 없지는 않단다.”
아린이의 물음에 에탄이 상냥한 표정으로 답했다. 동시에 설탕 사탕 10개라는 보상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뇽뇽이에게.
“뇽뇽아. 환상 마법도 펼칠 수 있어?”
가짜를 구현해내는 마법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할 수 있음!”
“그래?”
“아줌마 님이!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을 거라고 말했음! 그래서 배웠음!”
“…화염의 지배자님도 예지력이 좋구만.”
설마 뇽뇽이에게 그런 것도 가르쳤을 줄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탄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마탑주는 역시 미래를 예측하는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다가왔으니까.
“좋아. 그러면 우리 딱 하나만 가져가자.”
“흐응? 더 안 가져감?”
“그 이상 가져가면 빌려 간다는 명분이 통하지 않아. 게다가 환상 마법이 들킬 위험도 커지고.”
에탄은 선을 지킬 줄 아는 인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일을 벌이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안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아주 신중하게 골라야 해. 누가 봐도 이건 무조건 챙겨가야겠다 하는 아티팩트.”
“어려움….”
“괜찮아. 우리 셋이서 찾다보면 금방 결정이 날 테니까.”
에탄이 말을 마치고는 아린이와 뇽뇽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뒤집어 엎어보자.”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 * *
그렇게 에탄이 금고에 걸려있는 마법들을 박살내고.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아티팩트를 일일이 살펴보기 시작할 때.
“에탄이라는 청년. 제법 당돌한 친구인거 같군.”
페른은 데이른 공작과 함께 정원을 거닐었다. 금고를 지키는 시설 순찰을 끝낸 지 오래였기에.
두 사람은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 걸었다.
“자네가 키우는 인물인가?”
그러면서 페른은 데이른 공작에게 에탄을 제자로 받아 들인거냐고 물었다.
과거에도 그가 몇 번 제자들을 육성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었다.
“아니. 이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나. 데이른 공작은 에탄을 제자로 들인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
그 사실에 페른이 두눈을 크게 뜨며 놀랬다.
“그런데 계속 따라다니는 이유가 뭐지?”
데이른 공작이 제자들과 함께 하는 경우는 대부분 녀석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탄은 데이른 공작의 제자가 아니라고 하니.
페른은 그가 에탄을 따라 남부 왕국까지 온 이유가 궁금했다.
씨익.
데이른 공작이 페른의 질문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 후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재밌으니까.”
자신이 에탄을 따라다니는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
페른이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그리고 녀석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무슨 가능성?”
“미래의 북부를 이끌어갈 가능성.”
데이른 공작의 이어지는 말에.
“흐음.”
페른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미래의 북부를 이끌어갈 대장이라….”
데이른 공작의 말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