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다행히 교단 사제들에게 붙잡히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에탄은 그 사실을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다.
만약. 교단 사제들에게 잡혔다면 교단을 복구하는 비용에 많은 지출이 생겼을 테니까.
“우리가 굳이 도망쳐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
하지만 데이른 공작은 이해할수 없었다. 일단 에탄이 튀어(?)라고 해서 도망치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잘못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그들에게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일이 그렇게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
“그거 아십니까? 헤베레스트 교단은 돈이 아주 많은 교단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한 구두쇠라는걸 말이죠.”
하나. 에탄은 알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는 순간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 말이다.
“교단이 아예 박살나다 싶이 했으니 이참에 새로 짓자는 말이 나올게 뻔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일정 부분을 저희에게 감당하라고 하겠죠.”
“아니-”
“아니라고 말하시면 안 됩니다. 저 극악무도한 사제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돈을 소중히 여기는지 데이른 공작님은 모르시는 겁니다.”
“…….”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어서 저렇게 단호하게 답하는 걸까.
그게 너무나도 궁금했다.
‘물어봤다가는 욕을 두배로 먹겠군.’
하지만 데이른 공작은 그 이상 에탄에게 묻지 않았다. 그래봤자 좋은 꼴을 볼수 없을게 뻔하니까.
[그래. 옛날에도 그런 놈들이 있었다. 기껏 마족으로부터 구해줬더니 박살난 교단 성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더군.]
“정말 구해주기만 하셨나요?”
[…사실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실험들을 해봤다. 새로 받은 검을 휘둘러도 보고 동료에게 있는 힘껏 마법을 써보라고도 했지.]
“그러면 받을만도 하네요. 받지 않았어도 됐을 피해를 아서왕님때매 입은 거니까요.”
[끄응.]
에탄의 말에 아서왕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저 기사도 건실한 인물이라고 볼수는 없겠구만.”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픽 웃었다. 정확히는 에탄이 입고 있는 아서왕의 갑옷을 비웃는거였다.
아서왕의 영혼이 저 갑옷 안에 거주하고 있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노오옴!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이!]
“거참. 그놈에 나이… 나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나이로 운운하는거 너무 꼴불견이 아닌가 싶군.”
[이익!]
아서왕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마음같으면 당장 튀어나와 머리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아니 가능하다면 머리가 아니라 몸뚱어리까지 총 두 대를 타격하고 싶었다.
“이제 슬슬 잠이나 주무시죠.”
하지만 자신의 힘을 다루고 있는 에탄이 그걸 허락할 리가 만무했다.
[내… 이 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서왕이 그런 에탄과 데이른 공작을 번갈아 째려봤다. 하지만 그 이상 말을 이을 수는 없었다.
이름 모를 마족과 전투를 치르면서 힘을 전부 소진했기 때문이다.
-웅…
[…….]
지금까지 황금빛을 뿜어내던 아서왕의 갑옷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화려했던 외형이 순식간에 보잘 것 없는 갑옷의 형태로 돌아왔다.
쓰윽.
에탄이 그걸 확인하고는 아서왕의 갑옷을 벗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서왕님도 은근히 말이 많으신 분이야.”
그리고 아공간 안에서.
“하지만….”
아서왕이 자신에게 한 말들을 꺼내려는 순간.
타타탁!
“저기 있다!”
“잡아라!”
“교단 파괴자들이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제들이 에탄과 나머지 이들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와….”
에탄이 그런 사제들을 보고는 진심으로 놀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뇽뇽아!”
“알겠음!”
에탄에게는 탈출을 도와줄 든든한 조력자(?) 뇽뇽이가 있었으니까.
[…….]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눈을 감고 용언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에탄과 나머지 이들의 발밑에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아앗!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사람 모두 순간이동으로 현장을 완벽하게 벗어났다.
“….”
그리고 남은 사제들은 이들이 남긴 발자국만 멍하니 바라봤다.
고블린 쫓던 오크처럼 말이다.
* * *
그렇게 에탄은 순간 이동을 통해 무사히 페르세르크 왕국으로 되돌아오게 됐다.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세르크 왕국의 국왕.
페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까딱하면 네 명 모두 골로 갈뻔했습니다.”
“으음.”
페른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이동을 통해 왕국에 도착하고.
자신의 집무실로 와서 뱉은 첫 마디가 죽을 뻔했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페른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고생들을 많이 한 거 같군.”
게다가 에탄의 뒤에 서있는 데이른 공작. 아린이. 뇽뇽이. 세 사람도 페른을 찌릿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미안하네. 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줄은 몰랐어.”
페른이 그런 네 사람을 보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에탄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리고는.
“자네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충분히 알겠네. 그래서 내가 작은 보상을 주려고 하는데….”
“보상이요?”
“그래. 조건에 맞지 않은 일을 해내줬으니 국왕으로서 보답을 하는 게 당연하지.”
페른이 말을 끝내고는 씨익 웃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보게. 딱 한 가지를 들어주겠네.”
그리고 에탄에게 하나의 상을 주겠다고 뒷말을 붙였다.
“나는 뭐 없나?”
데이른 공작이 그 말을 듣고는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페른에게 왜 자기는 쏙 빼놓냐는 걸 돌려 말했다.
“자네는 이미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늙은이가 해봤자 젊은이보다 많이 했을 리가 없지.”
“뭐 임마?”
“어허. 그 대검 내려놓게. 설마 남부 국왕을 찔러 죽일 생각은 없겠지?”
“….”
페른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후우.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여간 나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군.”
그리고 혼잣말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지만…
“그러면 보상은 골드로 해주시죠.”
“역시 돈이 최고다 그건가?”
“예. 가능하면 아주 많은 돈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린이도 돈 좋아요!”
“반짝 반짝 금 좋음!”
그 누구도 데이른 공작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페른과의 거래에 모두가 집중을 하고 있었다.
“….”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서왕의 갑옷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서왕도 고생이 많았겠군.’
그리고 동료애(?)를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서왕을 인정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영혼 상태니까.
“하지만 남부에서 북부까지 골드를 가지고 가려면 많은 돈이 들 것이네.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겠지.”
“흐음….”
그 와중에 페른은 에탄에게 골드는 너무 많은 운송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탄이 그걸 듣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기왕 받는 보상이라면 돈으로 받는 게 제일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게 여러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편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자네한테는 돈이 최고인 거 같군.”
페른이 그걸 보고는 픽 웃었다.
동시에 에탄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는.
“그러면 이렇게 하지. 자네한테 우리 왕국의 금고에 있는 돈과 아티팩트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네.”
에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을 건넸다.
“단. 조건이 있네.”
“그게 뭡니까?”
“어디까지나 남부에서 활동을 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지.”
“흐음….”
에탄이 페른의 말에 턱을 쓸어 만졌다. 오직 남부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금고라.
‘나쁘지는 않은데?’
생각보다는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번에만 남부에 오고 다음에 안 올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게다가 사용하고 나서 남으면… 자연스럽게 챙겨 갈 수도 있을 거고.’
그리고 횡령(?)을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판단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래서 에탄은 페른의 조건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남부에서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왕국 금고 사용 권한을 얻는 걸로 말이다.
“내 제안을 받아줘서 다행이군.”
페른이 에탄의 대답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기준에서는 나름대로 이득을 보는 거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금고에 뭐가 있는지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음?”
“나중에 사용할 때 보는 것보다는. 지금 일일이 살펴보면서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으음.”
에탄의 말에 페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알겠네.”
그래서 에탄의 청을 받아주기로 했다. 데이른 공작이 뒤에서 그걸 보고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자식 이제 경험하겠군.’
그러면서 자신이 당했던걸 페른도 똑같이 당할 거라고 확신했다. 에탄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녀석이니까.
“그러면 데이른 공작님은 여기에 남겨두고… 저와 아린이 뇽뇽이. 이렇게 세 사람이서 금고를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왜 빼두는 거지?”
“데이른 공작님은 굳이 아티팩트를 빌리실 이유가 없으시니까요. 대검 한번 휘두르면 전부 나가떨어질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꿀먹은 벙어리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저 말이 마냥 틀린 건 아니니까.
“알겠다. 여기서 기다리지.”
그래서 에탄에게 자신은 이곳에 있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저 안에서 에탄이 무슨 짓을 할지도 알고 있으니.
차라리 범죄 현장에 아예 안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좋습니다.”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의 대답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페른을 향해.
“금고로 안내해주시죠.”
활짝 웃으면서 뒷말을 붙였다.
“좋네.”
페른이 그 말을 듣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왕국에 있는 금고를 자랑할 생각에 어깨가 으쓱 올라간 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