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이곳에서 길을 잃으면 답이 없다.’
페르세르크 왕국의 항구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리처럼 통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빠 손 꼭잡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이상한 아저씨들이 잡아갈수도 있어.”
데이른 공작이 그 구절을 아린이와 뇽뇽이게 말했다. 그러면서 에탄에게 찰싹 붙으라는 의미를 담아 경고를 했지만.
“저랑 뇽뇽이를요?”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러지는 못하겠구나.”
그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서 아린이와 뇽뇽이를 조용히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길을 잃으면 찾기 힘든 건 똑같다. 그러니까 아빠 뒤에 붙어있거라.”
“네!”
“알겠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데이른 공작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착!
그리고 에탄의 양다리에 바짝 붙었다. 나무에 메달리는 원숭이처럼 말이다.
“어머. 저기 봐.”
“애들이 너무 귀엽네.”
“형씨도 훤칠하게 생겼구만!”
항구에 있는 상인들이 그걸 보고는 한마디씩 툭 던졌다.
“애야. 이리 와서 사과 하나 가져가라!”
“우리는 파인애플 줄게!”
“혹시 마실 거는 안 필요하니?”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먹을거를 권했다.
“감사합니다!”
“고마움!”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들의 권유에 해맑은 미소로 답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세상에! 너무 귀엽다!’ 같은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우리도 하나 줄게!”
“여기 물 좀 가져가라!”
“이거는 열대 지역에서만 나는 건데….”
우르르…
주변에 있는 상인들이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 몰려왔다.
“이거 너무 많이 몰….”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에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상인들을 물리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려다가.
“제 딸들이 예쁘기는 하죠! 주시는 선물들은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
에탄이 상인들을 대하는 자세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저 녀석도 정상은 아니군.’
그리고 세상에는 이상한 놈이 참 많다는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 * *
상인들의 선물 공세는 10분 가까이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한동안 수입이 없어서 우울 했는데 이제는 당분간은 돈 걱정 할 필요가 없겠네요.”
그리고 에탄은 빵빵해진 아공간 주머니를 보고는 입꼬리를 잔뜩 올렸다.
“역시 자네는 상인을 해야 하는게 맞는거 같군.”
저 안에는 제법 많은 골드가 들어가 있었다. 에탄이 상인에게 받은 여러 가지 음식과 물건들을 잡화점에 팔면서 생긴 수입이었다.
“저들에 호의를 팔 때 양심이 찔리지는 않았나?”
데이른 공작이 에탄에게 조금은 무례할수도 있는 질문을 날렸다.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에탄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상인들이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준 선물을 팔았는지 말이다.
“굳이 그렇게 죄책감을 가져야 합니까?”
“음?”
“저들이 선물을 주면서 반드시 음식을 먹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다른 기념품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그런데….”
“게다가 음식이나 기념품은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안 좋습니다. 제 아공간 주머니가 상위 등급이 아니니까요.”
“흐음. 맞는 말이군.”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공간 주머니도 등급에 따라서 보관할 수 있는 종류가 늘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에탄의 아공간 주머니에 음식을 보관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잡화점에 판매 한겁니다. 이들에 호의를 허공에 날려버리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니까요.”
에탄또한 그 점을 알기에 잡화점에 상인들이 준 음식과 물건을 팔아 넘긴 거였다.
‘물론 아니어도 팔았겠지만.’
다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들에 운명은 잡화점 행이었으리라. 에탄은 이 세상에서 제일 유용 한게 돈이라고 확신했으니까.
“그나저나.”
그래서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온 골드를 다시 한번 살펴볼려는 순간. 데이른 공작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벅. 저벅.
“이번에는 조금 늦었구만? 베페슨 기사 단장.”
그리고 갑옷을 입고 중무장한 기사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들은 에탄과 데이른 공작을 향해 질서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길이 조금 막혔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앞에 있는 남자.
독수리 문양이 각인된 은색 갑옷을 입은 베페슨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답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혼자 오시지 않으셨군요.”
이어서 에탄. 아린이. 뇽뇽이를 눈으로 훑어봤다. 경계심은 녹아들어 있지 않았다.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 같아서. 나도 함께 따라왔네.”
“…설마. 저번처럼 왕국에 들어오셔서 대검을 휘두르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덕분에 폐하께서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습니다.”
“크흠. 그건 사고였다고 말하지 않았나.”
데이른 공작이 베페슨의 추리에 침을 삼켰다.
“다른 왕국에서도 대검을 휘두르셨습니까?”
에탄이 그걸 듣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데이른 공작을 바라봤다. 자신도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여러 의미로 감탄을 했기 때문이다.
“몸이 조금 찌뿌둥해서 움직였던 것뿐이다.”
“베페슨 기사단장님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죠.”
“네 녀석까지 그러기냐?”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배신했다는 표정을 보이는 건 덤이었다.
‘아니. 이건 상식 아닌가?’
아무리 에탄이라고 해도 이해가 안가는 행동이었다. 타 왕국에서 대검을 휘두르다니. 솔직히 말하면 목이 베어도 할말이 없을 행위다.
‘역시 사람은 힘을 가지고 봐야돼. 공작위에다가 검술까지 잘하니까 저렇게 행동해도 별탈이 없지.’
하지만 데이른 공작은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머니. 저런 행동을 해도 살아 있는 거라고 에탄은 확신했다.
“데이른 공작님이 잘못한 거 같아요.”
“공작님이 나빴음!”
아린이와 뇽뇽이 또한 그리 판단을 하고는 에탄의 편을 들었다.
“너희들 마저….”
데이른 공작이 아린이와 뇽뇽이의 말에 입을 벌렸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군.”
그러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떨궜다.
“뿌린대로 거두는 겁니다.”
베페슨이 그걸 보고는 꼬시다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이어서 데이른 공작에게 용건을 물었다.
“이 왕국에 있는 유적지에 방문을 하고 싶다.”
“유적지라 하시면….”
“아서왕의 무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에 몸을 멈칫했다.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오신건 아니겠죠.”
“맞다.”
베페슨 기사 단장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순순히 답했다. 여기서 아니라고 발뺌해봤자 믿지 않을 게 뻔했다.
“하지만 무엇인지는 알려줄수 없다. 나는 이 녀석과 거래를 한 입장이라서 말이지.”
그러나 자세한 정보를 말할 생각은 없었다. 비밀을 엄수하기로 맹세했으니까.
“흐음….”
“큰 사고를 치지는 않겠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저번에도 그러시고 대검 휘두르시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사고였다.”
데이른 공작의 말에 베페슨 기사 단장이 눈초리를 가늘게 떴다. 그리고 데이른 공작을 빤히 바라보다가.
“…좋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정말 조용히 다녀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설마 아서왕의 무덤이 붕괴되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죠?”
아서왕의 무덤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쉽게 허락 해준다고?’
에탄이 그 답을 듣고는 속으로 의문을 표했다. 아무리 데이른 공작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해도.
‘아서왕의 무덤은… 왕국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유적지일 텐데.’
지금 자신이 가려고 하는 장소는.
평범한 일반인은 근처에서 구경을 하는게 전부일 정도로 경비가 삼엄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순순히 길을 터주는지 궁금한 모양 이구만?”
그래서 이해가 안 간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데이른 공작이 에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예. 솔직히 말하면 안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었나.”
“몰래 들어가야죠. 당연한 걸 물으십니까?”
“...”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에 벙쪄했다.
설마. 당사자들이 앞에서 걷고 있는데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네 녀석다운 발상이긴 하군.”
하지만 데이른 공작도 이제는 에탄을 어느정도 알게 됐기에 저런 말에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과거 대 전쟁 시절 내가 이 항구를 지켰던 적이 있네. 그 이후부터 이곳 페르세르크 왕국에서는 나를 상당히 호의적으로 봐주더군.”
“그래서 유적지에 들어가는것도 허락 해주는 거군요.”
“따지고 보면 그런 셈이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뒷 설명을 이어 나갔고. 에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가는 호의였으니까.
“아빠. 궁금한 게 있어요.”
그때. 아린이가 뒤에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뭔데?”
에탄이 그걸 듣고는 아린이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혹시. 이번에 가는 곳도 폭파시켜야 하는 곳이에요? 그러면 뇽뇽이한테 미리 준비하라고 하려고요.”
“…….”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설마. 아린이의 입에서 저런 발언이 나올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군.”
그래서 어찌 대답해야 고민하려는 찰나. 데이른 공작이 낄낄 웃으면서 한마디를 툭 던졌다.
타탁!
그 후 베페슨 기사 단장의 옆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반박할 수가 없군.’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반격을 할 수는 없었다. 이번만큼은 맞는 말이었으니까.
“아린아.”
“네?”
“여차하면 아린이 말대로 폭파를 해야 할수도 있을거 같아. 그러니까 뇽뇽이한테 미리 몸좀 풀라고 해줘.”
물론. 가만히 얻어만 맞고 있을 에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