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데이른 공작이 함께 간다.
그 소식을 들은 지오반은 에탄을 가주실로 따로 ‘호출’했다.
“정말 괜찮겠느냐?”
이어서 에탄에게 데이른 공작과 함께 가는 상황을 감당할수 있겠냐고 물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아버지도 아시지 않습니까. 데이른 공작님이 눈먼 검에 당할 사람은 아니라는걸요.”
“으음.”
지오반이 에탄의 대답에 눈을 감았다. 대련에서 봤던 그때의 힘은 지오반이 생각해도 오싹한 수준이었다.
“그래. 데이른 공작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래서 힘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 공작과 함께 가는 일인데… 거기서 오는 부담감은 어찌 감당할 것이냐?”
다만. 이 문제는 단순히 거기서 끝날게 아니었다. 데이른이 단순히 힘만 좋은 기사가 아니니까.
그래서 지오반은 에탄이 중압감을 느끼고 있을거라 판단했지만.
“딱히 부담되지는 않습니다.”
“음?”
“굳이 말을 하자면 오히려 데이른 공작님을 대하는 게 편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완전히 틀린 예상이었다.
“그와 검을 맞대면서 감각이 공유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데이른 공작이 편해지더군요.”
“그래?”
“하지만 공작이라는 작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아무리 데이른 공작과 저의 관계가 좋다고 해도… 남들한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에탄은 데이른 공작과 대련을 하면서 여러 감각을 느꼈다. 그중에는 데이른 공작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데이른 공작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게 됐지만.
“조심은 할 생각입니다. 데이른 공작님의 위치와 제 자리에는 큰 벽이 있으니까요.”
에탄도 조심할 마음은 있었다.
데이른은 ‘공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인물이니까.
“네가 그리 말한다면… 알겠다. 만류하지 않으마.”
지오반이 에탄의 말에 알겠다는 듯 답했다.
“하지만.”
그리고 두눈을 번쩍이면서.
“이번에도 사고 치면 정말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네 녀석 덕분에 내 피로감이 몇 배로 늘어났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에탄에게 경고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에탄이 지오반의 말에 덜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좀 사고를 많이 치기는 했지.’
하지만 그의 발언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가문을 뒤집을만한 일들을 많이 벌였기 때문이다. 망나니 때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할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이만 나가보거라.”
“예.”
지오반이 말을 마치고는 책상에 있는 종이 무더기로 눈을 돌렸다.
꾸벅.
에탄이 그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작게 움직여 인사했다. 그리고 가주실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텔레포트가 있는 장소까지 우리 가문에 1급 기사 한명이 마부 역할을 할거다.”
지오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 네가 마부석에 앉을 필요는 없다.”
“…감사합니다.”
“착각하지 말거라. 이건 어디까지나 데이른 공작님이 함께 하시니까 취한 조치일 뿐이다.”
에탄의 말에 지오반이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에탄을 위한 마음도 어느정도 녹아 들어 있었다.
씨익.
‘이런 감정은 여전히 숨기지 못 하시는군.’
에탄이 그걸 느끼고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알겠습니다. 저도 데이른 공작님이 불편함을 느끼시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쓰겠습니다.”
이어서 덤덤하게 뒷말을 붙이고는.
끼익.
지오반이 있는 가주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덜커덩!
데이른 공작의 영지로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 * *
칼라사르 가문의 인장이 박혀있는 마차가 도로를 내달렸다.
“크허어어….”
그리고 데이른 공작은 코를 골면서 숙면을 취했다. 공작의 품위 따위는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주무셨으니 피곤하실 만하지.’
하나. 에탄은 그런 데이른 공작을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린이와 뇽뇽이를 상대하는 동안 묵묵히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
무려 일주일이나 말이다.
“흐으음….”
그리고 잠을 자는 건 데이른 공작뿐만이 아니었다. 에탄의 오른편에 있는 뇽뇽이 또한 새근새근 숨을 내쉬면서 꿈나라로 떠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쉬지도 않고 마법진을 만들어 내다니.’
에탄이 그런 뇽뇽이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도전할 생각도 못 할 기예를 뇽뇽이는 성공시켰다.
비록. 데이른 공작의 주먹 한 방에 모두 나가떨어졌지만 말이다.
“흐으음.”
그때. 왼편에서 아린이가 무언가를 고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린아. 안 피곤해?”
에탄이 그걸 듣고는 아린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졸려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마창문 너머에 있는 풍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잘수 없어요.”
“왜?”
“데이른 공작님과 대련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기억 하고 싶거든요.”
에탄이 아린이의 대답에 두눈을 크게 떴다. 이제는 저런 생각까지 하는 아린이가 대견하면서도 놀라웠다.
“어떤 것들을 느꼈는데?”
그래서 에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음 질문을 던졌다. 아린이가 데이른 공작과의 대련을 통해 뭘 느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으음…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아린이는 에탄의 물음에 명쾌한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설명을 하자면… 여럿 감각들이 향상된 거 같아요. 특히 빈틈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관찰력이 좋아졌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답을 해주기는 했다. 에탄에게도 자신이 느낀걸 말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래. 그거면 충분해.”
에탄이 아린이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데이른 공작과 대련을 해본적이 있기에.
아린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짐작 하는게 가능했다.
“다음에는 아빠도 껴서 데이른 공작님과 대련하자.”
“정말요?”
“그럼! 한번쯤은 데이른 공작님의 콧대를 눌러봐야 하지 않겠어? 그동안 놀림 당한게 있는데.”
“맞아요… 복수 할 거예요.”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마지막 순간 자신을 놀렸던 그때를 아린이는 아직 잊을수 없었다.
‘귀엽네.’
에탄이 칼날을 갈겠다고 다짐(?) 하는 아린이에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어떨 때는 전장을 누빈 기사 같지만, 가끔은 지금처럼 영락없는 아이 같은 모습도 나오고 있었다.
‘아린이가 더 크면 이런 건 볼수 없겠지.’
그래서일까. 에탄은 지금 아린이의 모습을 보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자식이 성장하는걸 바라보는 부모의 느낌이었다.
“흐으음….”
그때. 아린이가 입을 벌리고는 하품을했다. 이어서 두눈을 꿈뻑이다가.
쓰르륵.
이내 에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아빠. 자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에탄에게 자신이 잠을 자도 되냐고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에탄이 아린이의 물음에 뭐가 문제냐는 듯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불안해요. 이렇게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다시 번개 산맥때처럼 아빠가 쓰러져 있을까봐요.”
하지만 이어지는 아린이의 말에는 에탄도 쉽게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린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기 때문이다.
꼬옥.
그래서 에탄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린이의 손을 쥐어 잡았다.
“걱정하지마. 당분간은 그런일 없을거야.”
그리고 아린이를 안심 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정말요?”
“그럼. 적어도 데이른 공작님이 함께 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아.”
“그건 맞는 말이네요.”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픽 웃었다.
데이른 공작.
그와의 대련을 통해 아린이 또한 벽을 느꼈다.
때문에. 지금 이 상태에서는 에탄도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공작님이 함께 하시는건 아니잖아요.”
그러나 데이른 공작이 떠난다면?
이제는 아린이도 그런 뒤까지 생각을 하게 됐다. 번개 산맥에서의 사건 때문에 말이다.
“그러면 결국에는 힘을 길러야 하는거 아니에요?”
“정론이야.”
에탄이 아린이의 지적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거야. 더 강해지기 위해서.”
“으음….”
“지금은 눈좀 붙여. 텔레포트를 타고 이동하면 그때부터는 정신 없을 테니까.”
“알겠어요.”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싱긋 웃었다.
“흐아암….”
그리고 입을 쩌억 벌려 하품을 하고는.
스르륵.
눈을 감고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아린이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 만졌다.
동시에 한가지를 다짐했다.
‘아린이와 뇽뇽이를 위해서라도… 더 강해지겠어.’
어떻게 해서든 전생의 경지를 뛰어 넘겠다고.
* * *
데이른 공작의 영지.
그중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은 어디인가?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데이른 공작가라고 답할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데이른 공작이 머물고 있는 장소니까.
“영지에 있는 대부분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네.”
하지만 에탄은 텔레포트가 있는 ‘요새’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요새문이 박살나면 제국에 있는 마탑으로 순간 이동을 하게 되어 있지.”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공간만 이동을 한다는 거군요.”
“음? 무슨 소리냐. 순간 이동 범위는 이 요새 전체다.”
“…….”
데이른 공작의 답변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요새가 통째로 이동한다니.’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에탄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설마 그런 비밀이 요새에 있을거 라고는 예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정보들을 가볍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안 되지.”
“…….”
데이른 공작의 대답에 에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에탄을 보고 데이른 공작이 픽 웃었다.
“하지만 네 녀석이 어딜 가서 퍼트릴 사람은 아닌거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에탄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면서 뒷말은 있고는.
“이제 슬슬 안으로 들어가지.”
굳게 닫혀있는 요새문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쿠쿠쿵…
그 순간 요새를 지키던 철문이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탁!
그리고 데이른 공작이 거침없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우리도 가자.”
“네!”
“알겠음!”
에탄. 아린이. 뇽뇽이가 데이른 공작의 뒤를 따라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