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세바스찬.”
“예. 도련님.”
“저 세 사람이 연무장에 틀어박힌 지 얼마나 지났지?”
세바스찬이 에탄의 물음에 턱을 쓸어 만졌다. 그 후 연무장 안쪽에서 대치 상황을 이어 나가는 세 명을 빤히 쳐다봤다. 아린이. 뇽뇽이. 데이른 공작을 말이다.
“이제 일주일째입니다.”
그러면서 연무장에서 보낸 시간을 말했다.
“일주일이라….”
“그동안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린 님과 뇽뇽이 님도 말이죠.”
“그래?”
에탄이 세바스찬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데이른 공작이야 굶어도 상관(?)없지만.
아린이와 뇽뇽이는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두 분 모두 크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공복감을 보충하고 있나 보네. 오러 기사들이 장기전을 버틸 때처럼.”
에탄의 대답에 세바스찬이 두 눈을 끔뻑였다.
“아린 님과 뇽뇽이 님이 벌써 그 정도 경지에 올랐습니까?”
“그러고도 남을 거야. 번개 산맥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말이지.”
“...확실히 그렇군요.”
하지만 납득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아린이가 자신의 힘으로 마계 대공을 죽였으니까.
비록. 녀석이 다른 육체에 ‘강림’한 상태였다고 해도 그건 절대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걱정이 되기는 하네. 저렇게 계속 대치하고 있으면 분명 힘이 들 텐데.”
다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찌 됐든 아린이와 뇽뇽이는 에탄이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애들이니까.
탁!
그래서 중재를 해야 하나 고심하려던 순간.
“흐읍!”
아린이가 묵직한 바위처럼 서 있는 데이른 공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뇽뇽아!”
그리고 데이른 공작과 거리가 완전히 가까워지는 순간 뇽뇽이에 이름을 외쳤다.
-우웅!
“……!”
뇽뇽이가 그 말을 듣고는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사방으로 방출했다.
그러자 연무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일주일 동안 마법진을 영창해왔던 건가?”
에탄이 그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연무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뇽뇽이의 실력이 자신이 알고 있던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번개 산맥에서 각성한 아린이처럼 말이다.
휘이잉!
그 순간 칼라사르 가문의 1급 연무장에 다시 한번 눈보라가 몰아쳤다.
화르륵!
거기에 뇽뇽이가 사방에서 만들어낸 뜨거운 불덩어리들까지 가세하니.
세상이 멸망하면 딱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풍경이 연무장에 나타났다.
“…….”
하지만 데이른 공작은 묵묵히 아린이와 뇽뇽이를 쳐다볼 뿐.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팔짱만 낀 채 아린이와 뇽뇽이를 주시했다.
쓰릉!
그리고 아린이가 칼을 빼드는 순간.
데이른 공작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대단하구나. 솔직히 아주 놀랐다.”
데이른 공작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100여 년을 살았지만, 이 정도 검술과 마법 실력을 가진 아이는 처음 보았다. 이건 단순 천재라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손쓸 수도 없었겠군.’
그러나.
“하지만 아직 나를 따라올 순 없다. 한 수 가르쳐주도록 하지.”
데이른 공작은 아린이와 뇽뇽이를 봐줄 생각이 없기에 이들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퍼엉!
동시에 팔짱을 풀고 주먹을 있는 힘껏 바닥에 내리꽂는 순간.
-후우웅...
푸르게 빛나던 마법진들이 빛을 잃었다.
쩌적!
그리고 금이 가더니 끝내는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아직이에요!”
하지만 검을 뽑은 아린이의 행동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때문에. 아린이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여기고 데이른 공작에게 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으윽?!”
불가능이었다.
아린이의 몸이 데이른 공작의 몸에 닿기도 전에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거대한 파도 속에 잠긴 듯이 말이다.
“나를 이기려면 백만 년은 이르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데이른 공작이 그런 아린이를 보고 픽 웃었다.
딱!
“아야!”
그리고 아린이의 머리에 가볍게 딱밤을 날렸다. 그러자 아린이가 눈썹을 찡그리고는 데이른 공작을 쳐다봤다.
“…알겠어요. 저희의 패배를 인정할게요.”
하지만 그 이상 데이른 공작에게 덤비지 않았다. 더는 동원할 수 있는 수가 없으니까.
“가르쳐주셔서 감사-”
꼬르륵!
이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찰나. 아린이의 배가 밥을 달라고 항의했다.
“...크흠.”
아린이가 그 소리를 듣고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번개 산맥에서 성장을 해서 그런지. 이제는 이런 상황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하하!”
그래서 데이른 공작이 배꼽을 잡으면서 웃자.
“웃지 마세요!”
아린이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데이른 공작을 쳐다보면서.
“다른 사람이 배고파 하는걸로 그렇게 웃으시다니. 공작님 나빠요!”
뒷말을 쏘아붙였다.
“공작님 나빠요~”
하지만 데이른 공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짖궂은 표정으로 아린이에 말투를 따라했다.
“이이…!”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후 자기를 놀리고 낄낄 웃는 데이른 공작을 향해.
“공작님이랑 말 안할거에요!”
절교(?)를 선언했다.
“흥!”
그 후 콧방귀를 끼고는.
터벅! 터벅!
연무장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 * *
다행히 아린이의 절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철회됐다.
“절대 특별한 설탕 사탕 때문에 봐드리는거 아니에요!”
데이른 공작이 자신의 영지에서만 나오는 특별한 설탕을 이용해서 설탕 사탕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 다음부터는 이 할아버지가 좀 더 조심하도록 하마.”
데이른 공작이 아린이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식당에서 사탕을 오물오물하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다음에도 이 할아버지랑 놀아준다고 약속한다면, 이 설탕 사탕을 잔뜩 만들어 주마. 어떻냐? 좀 구미가 당기냐?”
자신과 계속 놀아준다면 설탕 사탕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주겠다고 말했다.
“좋아요!”
“만족임!”
아린이와 뇽뇽이가 데이른 공작의 말에 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하루에 세 개 이상은 먹을 수 없어.”
에탄이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설탕 사탕은 하루에 세 개까지만 허락하겠다고 말이다.
“으음. 그건 조금 아쉽네요.”
“더 먹고 싶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빠아안…
그리고 데이른 공작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 맛있는 설탕 사탕을 하루에 세 개밖에 못먹다니!
아린이와 뇽뇽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잔인한 처사라고 확신했다.
“으음… 아이들도 조금 컸는데 하루에 세 개는 너무 적지 않겠나?”
데이른 공작의 두 사람의 간절한 눈빛을 느끼고. 에탄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공작님이 주신 설탕 사탕은 너무 달아요.”
하지만 에탄은 단호했다.
“그리고 이런 걸 계속 먹으면 몸에도 안 좋습니다. 살도 많이 찔 게 뻔하고요.”
자신이 망나니로 살았을 때 이런 음식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거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으니.
“하루에 세 개. 그 이상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으음….”
태도를 바꾸지 않는게 당연했다.
“그렇다는구나.”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대답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세 개로 만족하거라.”
“으음….”
“우….”
그러자 아린이와 뇽뇽이가 아쉽다는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안 되는 건 안 돼”
에탄이 그걸 보고는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네에….”
“후움….”
그러자 두 사람이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제법 재밌는 모습이군.’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감성에 빠져 들었다.
“하나만 더 먹으면 안 돼요?”
“먹게 해주셈!”
“어허. 자꾸 그러면 두 개로 줄인다?”
“우우….”
자기는 아이가 없기에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나한테도 자식이 있었다면….’
세 사람과 함께 하면서 피부로 와닿고 있었다. 때문에. 좀더 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에탄. 그대에게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데이른 공작은 결심했다.
“아서왕의 무덤. 그곳에 나도 함께 가겠다.”
자신도 이들과 함께 텔레포트를 이용해 아서왕의 무덤으로 가겠다고 말이다.
“예?”
“그대들과 계속 다녀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러니 아서왕의 무덤까지 같이 가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나?”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입을 멍하니 벌렸다. 설마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데이른 공작과 함께라면 무슨 일이 생겨도 걱정은 없겠지만….’
데이른 공작. 대 전쟁에서 공을 세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자다.
게다가 공작위라는 작위도 가지고 있으니 같이 움직인다면 도움이 될게 분명하리라.
‘하지만 만에 하나 데이른 공작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우리 가문에게 돌아오겠지.’
그러나 실패를 했을때의 댓가가 너무나 컸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네. 하지만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거라 장담하지.”
“그렇게 확신하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내 힘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나?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야.”
하지만 정작 데이른 공작은 걱정 근심이 없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는 마족이 직접 나타나야 할 거다. 그것도 고위급이어야겠지.”
“...확실히 그렇겠네요.”
자신의 힘을 믿고 있었으니까.
에탄또한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었다.
‘이 시기면 아직 마계에서 놈들이 넘어올 때도 아니고… 기껏 해봐야 번개 산맥 때처럼 강림을 하는 게 한계겠지.’
만약 번개 산맥을 올라 갔을 때.
포레스트가 직접에탄을 죽이러 왔었다면 에탄은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놈은 그럴 수 없었다.
아직 마계에서 인간계를 넘어올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나는 아직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이 있네.”
“…같이 가는 걸 허락한다면 저도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원한다면 알려주겠다. 가는 게 있는데 오는 게 없어서 야 되겠나?”
“으음.”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침을 삼켰다. 이번에도 에탄은 손해볼 게 없는 거래였다.
‘데이른 공작이 죽을 가능성도 낮고… 가면서 그에게 검술도 배울 수 있다.’
텔레포트를 이동한다고 해서 바로 아서왕의 무덤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의 무덤까지 마차를 타고 일주일은 가야 하니, 그 시간 동안 실력을 향상할 수 있으리라.
“좋습니다.”
그래서 에탄은 결국.
“같이 가시죠.”
데이른 공작의 합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