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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110화 (110/200)

제110화

모래 먼지가 연무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 에탄이 번개 산맥에서 얻은 스크롤을 발동하면서 생긴 여파였다.

“…….”

그리고 그 폭풍 속에 에탄과 데이른 공작이 있었다.

꿀꺽.

에탄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모래 먼지 속에서 침을 삼켰다. 하지만 경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온몸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데이른 공작은 움직일 테니까.

부웅!

이런 에탄의 짐작은 1초도 지나지 않아 들어맞았다.

‘오른쪽!’

먼지 속에서 대검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탄이 그것의 방향과 각도를 감으로 계산하고는.

까앙!

그대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끄윽!”

그 순간 데이른 공작의 대검이 에탄의 검과 맞부딪혔다.

우둑! 우두둑!

그리고 에탄의 두 발이 뒤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묵직한 그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 쿵!

그렇게 계속 밀리고 밀리다 보니.

에탄은 더 이상 밀릴 수 없는 곳에 도달했다.

쉽게 말해 에탄의 등이 연무장 벽과 맞닿게 된 거였다.

“저를 뭉개버리실 생각입니까?”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데이른 공작에게 혹시나 하는 말투로 물었다.

“흐음… 마음 같으면 그러고 싶지만…. 더 큰 재미를 위해서 참도록 하지.”

데이른 공작이 그 물음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에탄을 압박하던 대검을 거두고는.

“대련은 내 승리네. 이견은 딱히 없겠지?”

에탄에게 패배를 인정하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누가 봐도 압도적인 제 패배입니다.”

“좋아!”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에 씩 웃고는.

“흐음!”

대검을 위로 힘차게 들어 올렸다.

이어서 연무장을 뒤덮은 흙먼지를 제거할 생각으로.

붕!

대검을 360도 크게 휘둘렀다.

팡!

그 순간 연무장을 뒤덮은 먼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데이른 공작의 검이 녀석들을 압축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실력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힘으로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탄은 저 기술이 육체적인 강함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생 시절까지 합치면 에탄도 어느 정도 ‘검밥’이 있는 상태였으니까.

“관람객들 눈이 아주 동그래졌구만.”

그래서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 데이른 공작이 연무장 외곽을 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쓰윽.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신호를 확인하고 눈동자를 바깥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지오반의 모습이었다.

‘잔뜩 놀라셨군.’

입이 쩍 벌어진 채 자신과 데이른 공작을 쳐다보고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점잖음을 유지하는 걸 철칙으로 삼는 그였지만.

이번 대련만큼은 예외였다.

“아빠!”

그래서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지오반을 보고 픽 웃으려는 찰나.

“여기임!”

아린이와 뇽뇽이의 목소리가 지오반의 양옆에서 들려왔다.

“이겼나요!”

“이겼음?”

이어서 대련의 결과를 묻는 질문이 뒤따라 울려 퍼졌다. 그런 두 사람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에탄에게 다시 한번 집중됐다.

픽.

에탄이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아빠가 데이른 공작님에게 졌어.”

그리고 자신이 패배했다고 답했다.

“으음… 역시 아직은 이길 수 없군요.”

“예상한 결과임.”

하지만 아린이와 뇽뇽이는 놀라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련님이 패배하셨데.”

“세상에….”

“역시 데이른 공작님은 무리인가.”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에탄이 날고 긴다고 해도. 대 전쟁의 영웅이라 불리는 데이른 공작을 이기는 건 무리일 게 뻔했다.

“대련은.”

그래서 이들은 에탄의 대답에 놀라지 않았지만.

“대련은 내 승리다. 하지만 크게 본다면 나의 패배다.”

“?!”

데이른 공작의 말에는 깜짝 놀랐다.

제국의 영웅이자 북부의 공작인 그가 패배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나를 이기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10년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정확히는 에탄의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는 거였다.

“맞아요! 아빠가 좀 더 늙었다면 공작님을 이겼을 수도 있어요!”

“아직은 어린 거임!”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데이른 공작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아린이한테 저런 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아린이가 자신을 어리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인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뇽뇽이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지났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뇽뇽이는 에탄이 알이었던 시절부터 봐왔으니 확실히 나이를 알 수 있었다.

‘아린이는….

하지만 아린이는 나이를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편의상(?) 8살 취급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에 나한테 5300살이라고 했었지.’

아린이는 자신을 5300살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끈.

에탄이 그때를 떠올리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생각하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 와 계산해봤자 별다른 의미는 없으니까.

“애들한테 사랑받고 있군.”

그때. 데이른 공작이 에탄을 향해 말을 걸었다. 하지만 시선은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재능 넘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지.”

“?”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무엇입니까?”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몸을 그에게 돌렸다. 그러자 데이른 공작도 에탄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어서 에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저 아린이라는 아이에게 검술을 가르칠 기회를 주지 않겠나?”

데이른 공작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해도 되냐고 물었고.

그걸 들은 에탄은.

“…예?”

대련을 하면서 자신의 두 귀가 맛이 가버렸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다행히 에탄의 귀는 정상이었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제안하지. 자네의 딸인 아린이에게 검술을 알려주고 싶네.”

그리고 데이른 공작은 에탄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아린이를 자신의 손으로 가르칠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흐음….”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숨을 들이마셨다.

후루룩.

이어서 앞에 있는 차를 들이켰다.

에탄과 데이른 공작은 지금 식당에서 각자를 마주 보고 있는 상태였다.

“아린이도 아빠가 마시는 거 먹을래요!”

“같이 마실 거임!”

그리고 가운데 좌석에는 아린이와 뇽뇽이가 앉아 있었다.

“안돼. 이건 애들이 먹기에는 너무 써.”

에탄이 두 사람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과일 주스 마셔. 세바스찬이 산에서 직접 따온 거라서 맛있을 거야.”

이어서 아린이와 뇽뇽이의 잔을 쳐다봤다. 새빨간 딸기들이 갈린 딸기주스가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게 아빠가 마시는 것보다 더 맜있을 걸.”

에탄이 그걸 보면서 덤덤하게 뒷말을 붙였다.

“진짜요?”

“흐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두눈을 꿈뻑였다. 에탄의 말에 딸기주스 쪽으로 마음이 다시 쏠리고 있었다.

“그럼. 아빠 거는 딱히 달달하지도 않고 쓴맛만 많이 나거든. 데이른 공작님 것도 마찬가지고.”

“그럼 아빠는 왜 이거 안 마셔요?”

“어린애들만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주스라서 어른은 먹을 수 없어.”

“!”

그리고 에탄의 마지막 말에 아린이와 뇽뇽이가 두눈을 반짝였다.

동시에 딸기주스를 자신들의 쪽으로 끌어당기고는 얌전히 마시기 시작했다.

“애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군.”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그는 자식이 없기에 아이들을 대하는 법을 잘 알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 에탄이 보여주는 행동에 감탄했다. 자신이라면 저런 식으로 대처하지 못했을 테니까.

“아린이와 뇽뇽이가 말을 잘 듣는 겁니다.”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 번도 자기가 육아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린이와 뇽뇽이가 자신을 믿고 따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니 데이른 공작님이 아린이에게 검술을 알려 줄 때도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아린이는 보통 애들과는 다르니까요.”

그래서 에탄은 아린이가 데이른 공작에게 검술을 배우는 거에 긍정적이었다.

“다만. 이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거 같습니다.”

하지만 선택권은 자신에게 없다고 말했다.

“아린이와 직접 거래하시죠.”

“거래라.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상인을 상대하는 기분이군.”

“원래 이런 일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자세야.”

에탄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납득했다.

쓰윽.

“그래서… 이건 계약서입니다.”

“?”

“저는 문서로 남기는 걸 선호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사사로운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데이른 공작에게 에탄이 종이 두장을 내밀었다. 두장 모두 맨 위에 [계약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잠깐. 그런데 왜 두 장인가?”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의문을 제기했다. 계약서를 쓰는 건 인정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 자신이 계약을 두 번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 간단합니다.”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질문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후 오른쪽에 있는 계약서를 가리키면서.

“이건 제가 아린이와 데이른 공작님을 연결시켜 주는 대가입니다. 제가 보호자니까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중간 수수료를 계약으로 받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린이와 데이른 공작님 간의 계약입니다.”

이어서 왼편에 있는 계약서는 아린이에게 내밀었다. ‘저 종이는 저한테 선택권이 없습니다.’ 라는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였다.

“정 그러신다면 굳이 가르쳐주시려고 안 해도 됩니다. 아린이는 이미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두 장의 계약서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데이른 공작에게 선택을 하라고 말했다.

“…….”

데이른 공작이 그 말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으쓱.

하지만 전혀 아쉬운 게 없다는 에탄의 몸짓을 보고는.

“…그래. 알았네.”

결국 에탄의 요구대로 두 개의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대륙의 영웅이라고 불리던 그가 불공정 계약을 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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