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왔다. 그 후 가파른 오르막길이 만들어진 산맥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빠. 정말 두 발로 걸어도 괜찮아요?”
“부축 안 해도 됨?”
그 과정에서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의 부축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온몸에 두르고 있던 붕대도 풀어 버렸다.
“아빠 이제 멀쩡해.”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진짜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냈다.
“진짜야.”
에탄이 그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서 자신의 말에 진실성을 보이기 위해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휙! 휙!
하지만 인상을 찡그리는 일은 없었다. 정말로 멀쩡했으니까.
‘아린이가 성장해서 그런가? 회복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거 같단 말이지.’
하지만 에탄은 그 이유를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예전에도 아린이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힘이 좋아진 경험을 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탄이 움직이기를 멈췄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서.
“이게 다 아린이와 뇽뇽이가 열심히 나를 돌봐준 덕분이야.”
두 사람 덕분에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뿌듯함!”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 말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의 감사 표현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으니까.
씨익.
때문에. 속으로 흐뭇하게 웃고는.
“그러니까 얼른 올라가자! 아빠는 더 걱정 안 해도 돼.”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썰매를 타러 가자고 재촉했다.
“좋아요!”
“올라가겠음!”
에탄의 말에 아린이와 뇽뇽이가 신난 목소리로 답했다.
처벅! 처벅!
그 후 에탄과 함께 오르막길로 향했다. 썰매놀이를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
.
.
“우아아!”
“내려간다!”
눈이 쌓인 번개 산맥. 그중에서도 입구에서 위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웅!
수우웅!
각각 만들어 온 썰매를 타면서 말이다.
“우아아….”
“신기함.”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 광경을 보고 넋을 놓았다. 에탄 또한 제법 재미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썰매를 끌고 위로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모습이 말이다.
‘벌써 사람들로 가득 찼네.’
물론. 그거와는 별개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오르막길에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는 거였다.
에탄이 그런 오르막길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썰매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기사부터 애들까지 정말 두루두루 모였네.’
산맥을 오르던 탐험가부터 시작해서. 산맥 밑에 사는 어린이들까지.
썰매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반증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모여 있다니….”
“바글바글함.”
아린이와 뇽뇽이도 몰려든 인파를 보고 두 눈을 반짝였다. 많은 사람이 썰매를 타고 있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끼는 거였다.
게다가 두 사람은 썰매를 이번에 처음 보는 거니 흥미가 배로 생기는 게 당연했다.
“어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네!”
“들음!”
그래서 에탄의 물음에 고개를 열정적으로 끄덕였다. 당장 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를 경험하고 싶었으니까.
“좋아. 그러면 이제부터 썰매를 만들어야 하는데….”
에탄이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썰매로 만들만한 재료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만들 수 있음!”
그때. 아린이가 에탄이 뭘 찾는지 눈치채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후 두 손을 눈이 쌓여 있는 바닥으로 향하고.
-우우웅…
새하얀 눈에다가 마나를 흘려보냈다.
파팍… 팍!
그러자 눈들이 모이면서 형태를 잡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람이 탈 수 있는 썰매의 형태로 진화했다.
“와….”
에탄이 그걸 보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뇽뇽이의 마법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써 저 정도 경지에 오르다니. 난 8살 때 뭐했더라.’
물론 에탄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뇽뇽이와 자신을 비교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뇽뇽이는 마법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드래곤이니까.
‘아린이도 마찬가지지.’
그건 뇽뇽이에게만 속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린이 또한 엄밀히 따지면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다.
얼음 계곡에 잠들어 있던 전설의 명검이니까.
“…음.”
하지만 머리로는 그걸 이해해도 마음까지 납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너무 뒤처지는 느낌인데.’
그래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려는 찰나.
“아린이 것도 만들었음!”
뇽뇽이의 상큼한 목소리가 에탄의 잡념을 깨부쉈다.
“역시 뇽뇽이야!”
이어서 아린이의 들뜬 반응이 귀에 들려왔다. 에탄이 그걸 듣고 뇽뇽이가 만들어 낸 썰매를 살펴봤다.
“잘 만들었네?”
그리고 감탄했다.
뇽뇽이가 만들어낸 썰매가 제법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유려한 곡선에다가 중간중간에 있는 가문의 문양.
거기에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손잡이까지. 썰매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적절히 녹여져 있었다.
게다가 눈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다른 썰매와는 다르게 느낌도 신선했다.
“흐응!”
뇽뇽이가 에탄의 칭찬에 콧방귀를 꼈다. 아무리 성장을 했다고 해도, 칭찬은 여전히 뇽뇽이를 춤추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와… 저런 썰매가 있다고?”
“신기하게 생겼네.”
“저건 어떻게 만든 거야?”
게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뇽뇽이가 만든 썰매를 보고 감탄하고 있으니.
“빨리 타고 싶음!”
뇽뇽이는 자신이 만든 썰매를 빨리 이용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썰매를 타고 내려와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얼른 올라가자.”
에탄이 그런 뇽뇽이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언덕을 올랐다.
* * *
수웅…
썰매는 느리다.
수우웅…
“흐음. 생각보다 느린데요?”
“재미없음.”
경사가 180도인 길이 아닌 이상은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썰매에 타고 있는 사람의 무게를 이용해서 내려가는 거니까.
“이런 속도면 뛰는 게 더 빠를 거 같아요.”
“동의함!”
그래서 아린이와 뇽뇽이는 썰매에게 실망했다.
“음….”
에탄이 느릿느릿 아래로 내려온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고 턱을 쓸었다.
“그러면 노를 만들어서 저어봐.”
“노요?”
“응. 바닥을 긁으면서 속도를 내게 해주는 수단이야. 네모난 지팡이처럼 만들면 될 거 같은데?”
그러면서 눈에다가 노를 그리고는.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녀석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거라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겠네요!”
“속도 낼 수 있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두눈을 반짝였다. 자신들의 힘으로 속도를 낼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면.
지금보다 몇배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테니.
-우우웅!
뇽뇽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노를 만들어 내는 게 당연했다.
척!
처억!
뇽뇽이가 바닥에 있는 눈을 이용해서 딱딱한 노를 만들었다. 그 후 아린이에게 두 개의 노를 건네주고는.
“바로 가고 싶음!”
얼른 언덕 위로 올라가고 싶다고 아린이를 재촉했다.
“좋아. 가보자!”
아린이가 뇽뇽이의 말에 두눈을 반짝였다.
터벅! 터벅!
그러면서 뇽뇽이와 함께 언덕 위로 거침없이 올라가고는.
“출바아아알!”
“흐응!”
힘차게 노를 저으면서 다시 내려왔다. 다만. 거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파아아앙!
뇽뇽이와 아린이가 모든 힘을 노에다가 집중했다는 거였다.
“…어?”
아린이와 뇽뇽이가 땅에서 노를 밀어내자 위에 쌓여 있던 눈들이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폭발이 일어난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쿠쿠쿵…
수북히 쌓여 있던 눈들이 흔들렸다.
“모. 모두 옆으로 피해!”
“눈사태다!”
그리고 오르막길에 있는 눈들이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 * *
‘하마터면 사람들을 눈으로 묻어 버릴 뻔했네.’
눈사태는 다행히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고 끝났다.
“으음… 썰매는 안 타는 게 좋겠어요.”
“위험함.”
하지만 아린이와 뇽뇽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희가 좀 더 힘조절을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자기들로 인해 눈사태가 벌어졌으니까. 그래서 산에 있던 사람들은 다른 오르막길을 찾아 떠나야만 했으니.
추우욱…
아린이와 뇽뇽이의 어깨가 쳐질만도 했다.
“너무 마음에 안 담아도 돼. 바로 옆에 또 다른 오르막길이 있었잖아.”
에탄이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저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반성해야함.”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건 달라지지 않기에.
두 사람의 마음이 무거운 게 당연했다.
탁!
에탄이 그 말들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쓱.
“으음?”
“흥?”
그 후 아린이와 뇽뇽이의 머리를 쓸어 만지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원래 어릴 때는 실수하면서 크는 거야.”
그리고 오른편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저기 봐봐.”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자신이 보는 쪽을 쳐다보라고 말했다.
“우아아….”
“아름다움.”
그러자 아린이와 뇽뇽이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새하얀 산맥.
그 모습을 보는 아린이와 뇽뇽이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아름답네요.”
“새하얌!”
눈이 가득 쌓여 있는 산맥은 정말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맞아. 아름다워.”
그렇기에 에탄도 아린이와 뇽뇽이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눈 덮인 산맥의 모습이 정말 좋았으니까.
“아린아. 네가 이 산맥의 모습을 바꾼 거야. 그러니까 자랑스럽게 여겨도 돼.”
에탄이 그걸 바라보다가 아린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린이를 쳐다보고는.
“네 덕분에 산맥에 있던 몬스터 들도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산맥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됐어. 그러니까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
진심을 담아서 아린이를 칭찬했다.
“진짜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두눈을 꿈뻑였다. 그걸 본 에탄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그러면서 아린이의 대답에 확신하는 목소리로 답하고.
“이제 슬슬 안으로 들어가자.”
꼭대기 쪽에 있는 구멍을 쳐다봤다. 던전에서 스텐과 전투를 하면서 생긴 흔적이었다.
“가져갈 건 가져가야지.”
에탄이 그걸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원래 번개 산맥에서 얻고자 했던 물건. 그 녀석이 아직 저기에 잠들어 있으니.
‘기다려라 보물아… 내가 간다!’
지금은 그걸 얻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