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다행히 뇽뇽이가 마법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에탄과 아린이가 뇽뇽이의 분노를 간신히 달랬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다시 누울 뻔했네.’
에탄이 그 사실을 상도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뇽뇽이가 자신을 사나운 눈빛으로 쳐다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어째 애들이 성장하면서 성질이 조금씩 나오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에탄은 뇽뇽이한테만 혼(?)이 난 게 아니었다. 뇽뇽이를 진정시키고 나서는 아린이의 훈계가 이어졌다.
자기를 너무 믿지 않는다는 둥.
앞으로는 그런 위험한 일을 줄이라는 등의 잔소리를 장창 30분이나 들어야 했다.
“끄응.”
하지만 전부 맞는 말이라서 에탄은 반박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을 걱정하는 아린이의 눈가에 있는 눈물 자국까지 선명히 남아있으니.
‘이러니까 내가 대역죄인 같잖아.’
천하의 에탄도 조금은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에탄이 생각을 끝내고는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렸다. 그리고 방 안에 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맥의 모습을 보고는.
“아린이가 엄청난 짓을 저질렀네.”
진심으로 감탄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맥의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번개 산맥이 아니라 겨울 산맥이라고 불러야겠어.’
새하얀 눈들이 산 정상부터 입구까지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런데 밝게 떠 있는 달이 눈들에게 빛까지 주고 있으니.
‘아름답다.’
에탄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정도로 산맥의 야경은 예술적이었다.
거기에 휘몰아치던 번개와 먹구름도 사라진 상태였기에.
산맥을 더 선명하게 보는 게 가능했다.
‘마계 대공인 그놈이 죽을 만도 하네.’
에탄이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빙의 상태에서 저런 공격을 받으면 녀석도 어쩔 수 없지.’
아린이가 마계 대공 중 한 명인 포레스튼을 죽였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내 오른팔도 무사하고.’
에탄이 겨울 산맥에서 자신의 오른팔로 시선을 돌렸다.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는 모습이 제법 우스웠다.
하나. 그것에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원래 같으면 팔을 잘라내야 했을 정도로 큰 상처였으니까.
“후우.”
에탄이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 숨을 내쉬었다.
탁!
그리고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오른팔을 제외한 나머지 부위가 멀쩡했기에 움직임에 제약은 없었다.
끼익.
그래서 방문을 열고 조심히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이 야밤에 어딜 가시려고 하세요?”
“잠깐 산책 좀….”
“안 돼요. 그 몸으로 밖에 나가면 감기 걸려요.”
거실에서 철통 감시를 하고 있는 아린이와.
“허락할 수 없음!”
뇽뇽이에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그래. 다시 들어갈게.”
에탄이 두 사람의 눈에서 나오는 흉흉한 눈빛에 침을 삼켰다. 5살에서 조금 더 성장을 해서일까.
며칠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세가 선명해졌다.
‘빨리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추가됐구만.’
에탄이 그런 두 명을 보고 다짐했다.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성장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 * *
결국. 에탄의 야간 산책 작전은 완벽한 실패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죄송해요.”
에탄과 두 사람을 향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레스트 대공에게 몸을 빼앗겼던 스텐이었다.
“모든 건 제 잘못이에요. 제가… 제가 만약 그때 검은 고양이를 내쳤다면….”
털썩.
스텐이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연회때 봤던 드레스와 귀품 있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하고 볼이 홀쭉히 들어가버린 앙상한 사람.
딱 그뿐이었다.
“…….”
에탄. 아린이. 뇽뇽이.
세 사람이 그런 스텐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또한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온몸에 붕대를 침침 감고, 심지어 오른쪽 눈에는 검은 안대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렸지만 제가 억지를 부렸어요.”
스텐이 자신의 몸 상태를 훑어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입을 열었다.
그때. 사막처럼 말라버린 그녀의 입술이 에탄의 눈에 들어왔다.
“안 그러면 제가 미쳐버릴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입을 통해서 스텐은 사과를 하고 있었다.
‘10살….
10살. 검술 천재라고 불렸던 스텐의 나이는 불과 10살이다. 아린이와 뇽뇽이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도 큰 차이가 없다.
“어떤 벌이든 받을게요. 설령 저를 검으로 베신다고 해도 아무런 저항도 안 할게요.”
그런데 그런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에탄은 그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알겠으니까 일어나.”
그래서 스텐에게 무릎을 피라고 말했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 네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게 더 불편하니까.”
“…네.”
스텐이 에탄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탁…
그 후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온몸이 성하지 않았기에 균형을 잡는 것도 스텐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오는 데 얼마나 걸렸지?”
“네 시간이요. 다리를 다쳐서 빨리 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탓하려고 물어본 게 아니야.”
에탄이 스텐의 사과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 아이를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일단 몸을 추스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린아. 뇽뇽아. 스텐을 데려다 주고 와줄 수 있겠니?”
그래서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그녀를 데려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요.”
“알겠음.”
다행히 아린이와 뇽뇽이는 에탄의 부탁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답하고는.
“가자. 스텐. 데려다줄게.”
“같이 가주겠음.”
멍하니 서 있는 스텐을 향해 다가갔다.
“저는… 사죄를 하러 왔는데….”
“그것도 사과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 맞춰서 해야죠.”
“지금은 때가 아님.”
스텐의 말에 아린이와 뇽뇽이가 단호하게 답했다.
터억!
그러면서 각각 스텐의 한쪽 팔을 잡고는.
질질질.
그대로 오두막 집을 빠져 나갔다.
에탄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끼익… 쿵!
그리고 마침내 혼자가 되는 순간.
“후우….”
뒤쪽에 있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 * *
그렇게 40분이 지났을 때.
끼익.
아린이와 뇽뇽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고생했어.”
에탄이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스텐이 40분거리를 4시간 걸려서 온 것일 게 뻔하니까.
“저희는 괜찮아요.”
“맞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런 두 사람의 복장이 문득 에탄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그 옷들은 어디서 난 거야?”
두 사람 모두 움직이기 좋은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보온까지 챙길 수 있는 곰과 늑대 가죽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 따뜻이 안 입으면 몸 상한다고 하면서 다른 탐험가분들이 주셨어요.”
“고맙다고 했음!”
“…….”
에탄이 아린이와 뇽뇽이의 말에 새삼 감탄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게 됐다.
‘애들은 어디 가도 굶어 죽지 않겠어.’
아린이와 뇽뇽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설령. 수중에 돈 한 푼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아빠는 괜찮아요?”
그때. 아린이가 에탄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씨익.
에탄이 그 말에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 이어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는.
“아빠는 멀쩡해.”
아린이의 물음에 웃으면서 답했다.
“…….”
그리고 다시 입꼬리를 내리면서.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이번에는 에탄이 두 사람에게 스텐에 대해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어요.”
“복잡함.”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물음에 눈을 감았다. 두 사람도 에탄과 마찬가지로 이번 일을 어찌 처리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마계 대공과 손을 잡은 사람은 처리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스텐은 너무 어렸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랬을 것이었다.
아직 10살밖에 안 된 아이를, 한 순간의 실수로 처분한다는 건 너무나 거리껴졌다.
“하지만 스텐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요.”
“마찬가지임!”
그러나 스텐을 살리겠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음. 그래. 그렇구나.”
에탄이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짝!
그러면서 박수를 치고는.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 무조건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대화 주제를 자연스럽게 전환했다.
“혹시. 썰매에 대해서 들어봤니?”
겨울이 오면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놀이 중 하나인 ‘썰매’로 말이다.
“썰매요?”
“그게 뭐임?”
하지만 아린이와 뇽뇽이는 썰매가 무엇인지 몰랐다.
두 사람은 아직 겨울을 지내보지도 않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눈을 타고 내려오는 놀이야.”
그래서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썰매에 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주고는.
“저기 밖에 썰매 타는 사람들이 있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몇몇 탐험가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철판 혹은 가죽을 이용해서 썰매를 만들고 신나게 내려오고 있었다.
“우아….”
“재밌어 보임!”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 모습을 보고는 두눈을 반짝였다. 아무리 성장을 했다고 해도 아직은 8살에 불과하다.
그러니 저런 것들에 흥미를 가지는 게 당연하기에.
탁!
에탄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두 아이를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아빠랑 같이 밖으로 나가자. 썰매가 무슨 놀이인지 알려줄게.”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썰매 놀이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설마 별일이라도 일어나겠어?’
아무리 아린이와 뇽뇽이의 경쟁심이 커졌다고 하지만. 썰매로 사고를 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