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에탄이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번개 산맥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번개가 몰아친다는 것만 빼면 생각보다 별거 없는 곳이긴 하지.’
하지만 별다른 일을 겪지는 않았다.
이 산맥의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번개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번개만 해결할 수 있으면 다른 걸림돌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흐아암….”
“졸림.”
아린이와 뇽뇽이의 입에서 하품이 나올 만도 했다.
“조금만 참아. 곧 있으면 던전이 나올 거야.”
하지만 에탄의 입에서 던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빠. 던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해 주세요. 또 듣고 싶어요!”
“재밌음!”
졸려 하던 아린이와 뇽뇽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 눈을 반짝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던전은 미로 같은 곳이야.”
에탄이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씨익 웃었다. 동시에 던전에 대한 정보를 풀어 나갔다.
그러면서도 두 다리는 번개 산맥의 꼭대기를 향해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목숨을 위협하는 함정들도 많이 도사리고 있어.”
“그런 곳을 저희끼리 가도 되는 거예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을 듣고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에탄이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계속해서 강조했기에.
아린이와 뇽뇽이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던전을 무사히 공략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럼! 우리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하지만 에탄은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과 아린이 뇽뇽이의 힘을 합치면 던전에 있는 기연을 가지고 나올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확신을 하는 건 아니었다.
‘함정의 위치를 전부 외웠으니까.’
에탄은 전생 때 던전을 들어간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모든 정보를 알고 있으니.
“아빠만 잘 따라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아린이와 뇽뇽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을 한 거였다.
터억!
그리고 그 순간에 맞춰.
‘드디어….’
에탄의 눈앞에 큰 동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물을 가져갈 때가 왔다.’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였다.
* * *
동굴은 암흑 그 자체였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기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뇽뇽아. 마법으로 횃불 좀 만들어줘.”
“알겠음!”
하지만 에탄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화르륵!
마탑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마법에 재능이 넘치는 뇽뇽이가 있었으니까.
“피웠음!”
뇽뇽이의 오른손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횃불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의 불이었다.
“역시 뇽뇽이야.”
“뇽뇽이 최고!”
에탄과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박수를 쳤다. 그러면서 뇽뇽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했다.
“흐응!”
그러자 뇽뇽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동시에 보란 듯이 더 큰 불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드래곤이라고 해도 애는 애구나.’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의 칭찬에 들뜨는 뇽뇽이의 모습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화르륵….
그래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뇽뇽이가 만들어 낸 불덩어리의 크기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거였다.
“뇽뇽아 그만 키워도 돼!”
그래서 뇽뇽이게 다급히 외쳤다.
“어째서임?”
“그렇게 크게 만들 필요는 없거든. 게다가 동굴 안이니까 잘못하면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
“…알겠음.”
뇽뇽이가 그 말을 듣고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에탄과 아린이가 다칠 수도 있다는 말에.
화르륵….
마법으로 만들어 낸 불덩어리의 크기를 줄였다.
추우욱.
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돌아가면 마법 실컷 사용하게 해 줄게.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
“진짜임?”
“그럼. 화염의 지배자님 마탑이라면 뇽뇽이가 마음껏 마법을 쓰면서 놀 수 있을 거야. 그때 나랑 아린이도 뇽뇽이의 마법을 구경해 줄게.”
“알겠음!”
하지만 금방 기운을 되찾았다.
에탄이 뇽뇽이를 위한 말들을 해줬기 때문이다.
“아빠. 화염의 지배자님이랑은 이야기 된 거예요?”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어. 당연히 허락해 주실 거라고 믿고 있거든.”
다만. 화염의 지배자는 자신의 마탑이 드래곤의 놀이터로 변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에탄은 개의치 않아 했다.
지금 이 자리에 그녀가 있는 건 아니니까.
* * *
“끄응!”
베이덴프의 앓는 소리가 산맥에 울려 퍼졌다.
질질질.
이어서 자이언트 멧돼지 사체가 바닥에 끌리는 소음이 베이덴프의 귀에 들려왔다.
“하필 이럴 때 통신구가 고장 나다니!”
베이덴프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자이언트 멧돼지 사체를 혼자서 끌고 가는 중이었다.
“돌아가면 아티팩트 담당하는 녀석부터 조져야겠군!”
통신구를 통해서 드워프들을 부르려고 했지만 응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의 드워프도 말이다.
“후우!”
그래서 베이덴프는 혼자서 자이언트 멧돼지를 끌고, 일주일가량을 산에서 내려왔다.
주변 탐험가에게 도움을 요청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가 약탈이라도 당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에 그러지 않았다. 대신 자신만 아는 길을 통해서 산맥을 내려오고.
“문 열어 이 자식들아!”
결국에는 드워프 협회가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됐다.
….
“자이언트 멧돼지 잡아 왔어!”
….
“?”
그리고 베이덴프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하다. 왜 아무도 안 나오는 거지?’
자이언트 멧돼지라면 맨발로도 뛰쳐나올 놈들인데. 지금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부를 밝히는 조명도 꺼져 있었으니.
쓰윽.
베이덴프는 허리춤에 있는 도끼를 본능적으로 빼냈다.
탁… 탁.
그리고 아주 천천히 협회 건물로 다가가고는.
끼익.
문을 여는 순간.
“으아악!”
베이덴프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다… 다.”
협회 안에 있는 드워프들이 모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닥은 그들이 흘린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으니.
‘도망가야 한다!’
베이덴프는 이 공간에서 빠져나가야 된다고 판단을 내렸다. 동시에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냐오오옹.]
뒤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
아니.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베이덴프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괴-”
그리고 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는 순간.
푹!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가시 하나가 튀어나오고.
…툭.
무언가를 말하려던 베이덴프의 복부를 꿰뚫어 버렸다.
“아….”
그 순간 베이덴프의 눈에 자이언트 멧돼지 사체가 들어왔다.
‘거래는 미안… 하게 됐소.’
그걸 마지막으로 베이덴프의 눈이 감겼다.
* * *
번개 산맥 안에는 무수히 많은 함정들이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절대 피할 수 없는 녀석도 존재했다.
쿠쿠쿠쿵!
그래서 함정을 돌파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던 중에.
“그래. 이제 저 녀석이 나올 때가 됐지.”
거대한 돌덩어리 하나가 에탄과 두 사람을 향해 굴러왔다.
“아빠! 이번에는 제 차례예요!”
하지만 녀석의 등장에도 이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는 놀이를 하듯 서로 순서를 정하고는.
콰앙!
함정들을 파괴해 나갔다.
쩌억!
아린이의 검격에 돌멩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으음. 생각보다 물렁물렁하네요.”
아린이가 허무하게 죽어 버린(?) 돌멩이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아쉽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기껏 자신의 차례가 와서 기대했는데.
“허무해요.”
함정이 너무 빈약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걸 좋아하는 게 정상인데.’
에탄이 혀를 차는 아린이를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흘러가는 상황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내 예상보다 함정이 약할 줄이야.’
거기에는 던전에 대한 과대평가가 큰 몫을 해 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너무 강한 건가?’
자신들에 대한 과소평가도 들어가 있었다.
‘전생 때는 여기를 나 혼자 왔었지.’
던전이 어려운 건 맞았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을 기준으로 했을 때였다.
달빛의 힘과 아린이의 검술.
거기에 뇽뇽이의 마법까지 더해진 지금은.
‘이 정도면 애들 놀이터인데.’
아린이와 뇽뇽이가 놀이를 하는 장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난이도가 급격히 내려간 상태였다.
“너무 방심하지는 마. 그러다가 다치니까.”
“네!”
“알겠음!”
하나. 에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원래 이럴 때일수록 감각을 키워야 하는 법이니까.
탁… 탁.
그렇게 말하면서 아린이의 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바위를 지나쳤다.
그리고 안쪽으로 계속 들어간 끝에.
“아빠. 저기 문이 있어요!”
에탄은 자신이 목표로 한 기연이 잠들어 있는 장소에 도달하게 됐다.
“뒤로 물러나 있어. 아빠가 문 부술게.”
쓰릉!
에탄이 말을 끝내고 검을 빼들었다.
-우우웅….
그리고 검에다가 달빛의 힘을 집중시키고.
‘일격에 박살 낸다.’
문을 향해 검을 일직선으로 휘두르려는 순간….
[냐오오오옹.]
뒤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에탄이 그것을 깨닫고 몸을 뒤로 돌렸다. 아린이와 뇽뇽이 또한 마찬가지로 후방을 바라봤다.
터벅. 터벅.
그러자 이들을 향해 한 여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어?”
아린이가 그 여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스텐?”
그리고 녀석의 이름을 말했다.
자신과 연회 때 대련을 했던 그녀였기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움찔.
그렇게 아린이가 이름을 부르자.
스텐이 움직이던 두 다리를 멈췄다.
….
이어서 초점 없는 눈동자로 아린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갸오오오.]
기괴한 소리를 냈다.
우득… 우드드득!
그러면서 무수히 많은 가시를 그림자 속에서 뽑아냈다.
아린이를 산송장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