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다행히 헤와른이 번개 마법을 맞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법관이 에탄의 눈앞에서 아티팩트의 저항력을 증명해 줬기 때문이다.
‘굳이 사람이 착용 안 해도 알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말이다.
“이곳을 살아서 떠날 수 있는 거에 감사함을 느껴야겠어요.”
헤와른이 마차 안에서 멀어지는 메레린 왕국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자신의 팔다리가 온전한 거에 안도했다.
“많은 일이 있었지.”
에탄이 그녀의 말에 눈을 감았다.
일주일이 폭풍과도 같았다.
뇽뇽이의 메테오부터 시작해서 여왕 요정과의 거래까지.
놀라운 일이 연달아 일어났으니 정신이 없을 만도 했다.
“그리고 저는 에탄 공.작.님 덕분에 죽을 뻔했죠.”
물론. 헤와른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들이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에탄이 자신을 실험체(?)로 삼으려 했다는 거니까.
심지어 마법관이 만류할 때는 아쉬워하기까지 했으니.
지이잉.
헤와른이 에탄을 죽일 듯이 바라보는 게 당연했다.
“크흠.”
에탄이 헤와른의 지적에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고생했어.”
그리고 그녀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는.
“돌아가서도 포션 제작하는 거 잊지 말고. 돈도 추가로 줄 테니까 최선을 다해.”
칼라사르 영지로 복귀하면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 줬다.
실험체로 삼으려고 한 건 미안한 일이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 말이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헤와른이 에탄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한 가지를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는 에탄과 거래를 할 때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봐야겠다는 거였다.
새근… 새근.
그러면서 에탄의 양어깨에 기대서 잠을 자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녀석들의 숨소리가 꼭 천사들의 자장가와 같았다.
‘아빠가 저런 사람인데… 아이들은 완전 딴판이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갔다.
저런 사악한 사람의 두 딸이 아린이와 뇽뇽이라니.
‘세상은 불공평해.’
덕분에. 헤와른은 자식은 부모를 따라간다는 말이 틀릴 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 에탄의 육아에 불안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책임감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동안 에탄은 두 아이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해 왔으니까.
심지어 아린이와 뇽뇽이를 위해서 목숨을 건 적도 있었으니.
그녀는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그런데 번개 저항 아티팩트 있잖아.”“?”
“딱. 한 번만 네가 착용하고 맞아 보면 안 되나? 고통이 있을지도 알고 싶은데.”
“…….”
물론. 그녀에게 에탄은 악마였다.
동시에 조금 전 말로 인해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메레린 왕국의 프라단은….
“마법관. 자네가 요청한 이 종이에 있는 지출 품목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건가?”
“칼라사르 가문의 에탄에게 가는 물건들입니다.”
“왜?”
“폐하에게 요정 포션을 넘기는 대가라서요. 참고로 요청한 게 더 있었는데 제가 없다고 잡아떼서 이 정도인 겁니다.”
“…….”
뒤늦게 에탄과 마법관 사이에 있었던 거래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시기였다.
* * *
마차는 계속해서 칼라사르 가문을 향해 나아갔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구나.”
그리고 메레린 왕국을 떠난 지 2주째가 됐을 때. 에탄은 자신의 집에 무사히 도착하게 됐다.
“이번 여정에서 뜯어. 아니 얻어 낸 물건들입니다.”
“?”
에탄이 집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지오반을 향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냐?”
지오반이 그걸 보고 몸을 흠칫했다.
“메레린 왕국의 지원 물품들입니다.”
“지원 물품?”
“예. 두 달에 걸쳐서 보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탄의 설명에 눈을 굴렸다.
아무리 왕국에서 지원을 하는 거라고 해도.
“이 전부를?”
“그렇습니다.”
그 목록들이 50개를 넘어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약탈한 거군.’
때문에. 지오반은 에탄이 이걸 어떤 식으로 얻어 왔는지 눈치챘다.
하나. 그걸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가문에 이득이 되는 일이니까.
“아. 그리고 작위도 받았습니다.”
“?”
“명예 작위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도대체 왜?”
“제가 국왕의 중병을 치료했기 때문입니다.”
“…….”
이쯤 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걸까? 라는 의문이 지오반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렇군.”
하지만 구태여 물어보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보인 에탄의 행보도 정상적인 건 아니었으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다는걸 지오반도 알고 있었다.
후루룩.
그래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차를 들이켜는 순간.
“그래서 공작이 됐습니다.”
에탄이 지오반을 향해 덤덤히 자신의 작위를 알려 줬다.
“…….”
지오반이 그 말을 듣고는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내가 백작인데… 저 녀석이 공작이라고?’
그리고 인생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공작이요?”
그렇게 에탄은 지오반과의 대화를 끝냈다. 그 후 3급 기사들을 훈련시키는 모헨을 찾아가.
“그래. 정확히는 명예 공작위를 받았어.”
자신이 공작이 됐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
“그럼. 도련님이 가주님보다 작위가 높은 겁니까?”
“그건 아니지. 난 어디까지나 명예 공작이잖아. 게다가 칼라사르 가문의 막내아들이고.”
사실 명예 공작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에탄은 칼라사르 가문의 막내아들이니까.
“하지만 연회장에 가서 자기소개를 할 때 한마디를 더 붙일 수는 있지. 메헤린 왕국의 명예 공작이라고.”
“사실상 그게 핵심이군요.”
모헨이 에탄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감탄했다. 명예 공작위가 겉으로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만들 때는 좋은 수단이 되어 주리라.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덜 뜯어 먹을걸 그랬나?’
그래서 에탄은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메헤린 왕국에게 받아내는 지원 물품이 좀 많았으니까.
“참고로 훈련은 잘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검술을 연마했고요.”
그때. 모헨이 에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조만간 확인해 봐야겠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모헨이 성실한 기사라는 건 이미 전생 때부터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이번 생에서는 얼마나 빠르게 경지에 오르냐는 거지.’
더 빠른 성장. 에탄은 그걸 위해서 모헨을 자신의 전속 기사로 들였다.
‘거기에 내 제안까지 받아들이면 더 좋고.’
그래야 자신이 최대한으로 지원하는 게 가능하니까.
“도련님. 눈빛이 살벌하십니다.”
하나. 모헨에게는 이런 에탄의 마음이 공포로 다가왔다. 자신을 어떻게든 바닥에 굴려 버리겠다는 심리가 보였으니까.
“기분 탓이야.”
“진짜입니까?”
“아닐 수도 있고.”
“…….”
모헨이 에탄의 대답에 주먹을 꽉 쥐었다. 때릴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공격을 하진 않았다.
그래봤자 이길 수 없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으니까.
“게으름 피우지 말고 계속 수련하고 있어.”
에탄이 고뇌하는 모헨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면서 뒤에 있는 3기사들을 향해서.
“너네도 마찬가지야. 제대로 수련 안 하면 내가 다시 한번 굴린다.”
엄중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예! 알겠습니다!”
에탄의 말에 3기사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그들 또한 에탄의 폭력성(?)을 경험해 봤기에.
‘에탄 도련님이 참가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날이 우리 무덤 가는 날이다!’
‘차라리 모헨이 낫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수련할 생각이었다. 모헨은 자신들을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훈련시키지는 않으니까.
‘짜식들….’
모헨이 그런 3기사들을 빤히 바라봤다.
‘얼마나 살고 싶으면 저럴까.’
그러면서 살기 위해 하나가 되는 그들을 보고 오랜만에 동료애를 느꼈다.
* * *
스테리안 백작가의 딸이자.
검술 천재라고 불렸던 스텐.
“젠장. 젠장!”
그녀는 아직도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린이와 대련을 하면서 느꼈던 압도적인 패배감.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리고 굴욕감을 떨쳐 내지 못하는 거였다.
‘사과까지 하라고?’
거기에 스테리안 백작으로부터 크게 혼나기까지 했지만.
‘내가 왜?’
그녀는 스테리안 백작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다.
‘나보다 못난 가문 녀석한테 고개를 숙이라고? 난 할 수 없어!’
칼라사르 가문보다 자신의 가문이.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후우….”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방.’
자신의 방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독방이 아니라는 거리라.
쓰윽.
하지만 답답한 건 다름없기에.
스텐은 창문 너머에 있는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 한탄을 이어 나가려는 순간.
-냐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
스텐이 그 소리를 듣고 두눈을 꿈뻑였다.
덜커덩!
그러면서 무언가에 홀린 듯 창문을 열자.
-냐오옹.
검은 고양이가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까지 잘도 올라왔구나.”
스텐이 녀석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자신의 방은 평범한 고양이가 올라오기에는 제법 무리가 있는 높이다.
한데. 저렇게 작은 몸으로 방까지 찾아왔으니.
“나한테 원하는 거라도 있니?”
그녀가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주는 게 당연한 거였다.
-냐오오옹.
스텐의 말에 검은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동시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스텐이 그 행동에 의미를 깨닫고는 난감함을 느꼈다. 자신의 방에 녀석을 들여도 되는 걸까? 라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혼자보다는 너라도 있는 게 낫겠지.”
그래서 검은 고양이를 위해 몸을 뒤로 물리자.
타악!
검은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 스텐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스텐을 향해.
-냐오오옹.
평범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냈다.
“귀엽네.”
스텐이 그런 녀석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스물… 물.
녀석의 그림자가.
…….
자신의 그림자를 잡아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