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대륙은 세 가지 분류로 사람의 출생지를 나눈다.
북부인. 중부인. 남부인이라는 호칭으로 말이다.
“폐하! 어찌하여 북부인이게 작위를 수여하신다는 겁니까!”
“이건 너무 과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할 문제입니다. 다른 중부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알현실에 있는 귀족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에탄은 거기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저게 당연하지.’
자신은 어디까지나 북부인이니까.
거기에 메레린 왕국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기도 하니.
‘작위를 주는 건 무리일 게 분명한데.’
에탄이 생각해봐도 프란다의 보상은 과했다.
‘사실 과하면 나한테 좋은 거긴 하지. 더 많은 걸 받아 낼 수 있는 거니까.’
보상이 부담되는 건 아니었다.
에탄이 이런 걸로 부담감을(?) 느낄 인간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작위를 수여하는 건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한 것과 불가능한 건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으니.
“폐하.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에탄은 프라단에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그래?”
프라단이 에탄의 말에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째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냐? 혹시 이걸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건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이유를 말해 보거라.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말이지.”
그 후 에탄에게 설명하라고 했다.
왜 보상을 거절하는 건지.
어찌 보면 주객전도인 셈이나 다름없었지만.
“저는 중부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탄은 거기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댈 뿐이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히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전쟁에서 공을 세운 영웅도 아니고 말이죠.”
“흐음….”“게다가 작위를 받는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프라단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그럼 명예 작위를 수여하겠다.”
명예 작위를 주겠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영지나 권력은 없지만, 어디 가서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이름뿐인 작위라면 문제가 없겠느냐?”
“그렇… 기는 할 겁니다.”
에탄이 프라단의 물음에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확실히 명예 작위는 허울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지?’
그러나 왜일까. 에탄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프라단이 저 말을 함으로써 더 커져 버렸다.
“그대들도 불만은 없겠지?”
“명예 작위라면 합리적인 보상이라 생각합니다.”“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프라단의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는 거세게 반발하던 이들도 모두 수긍했다.
명예 작위는 말 그대로 칭호에 불과하니까.
“좋다. 그러면 명예 작위를 수여하겠다.”
프라단이 귀족들의 대답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침을 삼켰다.
절대 평범한 이의 얼굴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악한 표정(?)이었으니까.
“칼라사르 가문의 에탄은 들어라.”
그래서 저 입을 말려야 하나 고민하려던 찰나. 프라단이 에탄의 이름을 언급했다.
“지금부터 그대를 메레린 왕국의 명예 공작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이 작위는 세습 작위임을 내 이름으로 보장하겠다.”
“…예?”
그리고 명예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한 작위를 그에게 부여했다.
“불만이 있는 자는 칼을 들고 내 목을 쳐라. 어차피 에탄이 아니었다면 죽을 목숨이었으니까.”
자신의 목숨으로 귀족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건 덤이었다.
* * *
프라단이 명예 작위를 수여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공작님. 드디어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데프리안이 2주째가 되는 날. 에탄이 머물고있는 방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몸에다가 다양한 색깔의 가루를 묻힌 채로 말이다.
“진짜요?”
“예. 마법관님을 통해서 이미 성능에 대한 검증도 끝낸 상태입니다. 이제 공작님이 눈으로 확인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에탄이 데프리안의 말에 속으로 감탄했다. 번개 산맥에서 버틸 수 있는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일주일밖에 안 걸리다니.
‘데프리안한테 맡기기는 잘했군.’
다른 연금술사였으면 못해도 한 달은 걸렸으리라. 번개 산맥은 절대 허접한 아티팩트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공작님! 얼른 가시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공작님이라는 호칭은 좀 빼 주시면 안 됩니까? 어차피 명예 작위인데.”
에탄이 데프리안을 향해 조심히 부탁했다. 자신이 받은 작위는 어디까지나 허울에 불과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 이용해서도 연줄을 만들 수 있기는 하지. 프라단도 그걸 생각하고 준 거일 테고.’
보기 좋은 포션이 먹기에도 좋다고.
속은 비어 있어도 겉으로는 ‘공작’이라는 칭호를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남들에게 소개할 때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직접 듣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워.’
다만. 데프리안이 계속해서 공작이라고 부르니. 듣는 에탄도 살짝 마음에 부담이 가고 있었다.
진짜 공작도 아니니까.
“끄응. 공작. 아니 도련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다행.”
“앞으로는 에탄 공작님이라고 불러 드리겠습니다. 누가 봐도 확실히 알아 들을 수 있게요.”
“…그냥 공작으로 불러 주세요.”
에탄이 데프리안의 대답에 이마를 잡았다. 그러면서 공작으로 부르라고 했다.
이름에다가 공작까지 붙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공. 작. 님.”
데프리안이 공작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답했다.
“그럼 공방으로 가시죠!”
이어서 자신의 공방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빠. 데프리안 님이 많이 힘든가 봐요.”
“피곤해 보임.”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런 데프리안을 보면서 한마디씩 툭 내던졌다.
“…그러게. 요즘 따라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두 사람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 * *
데프리안의 공방은 일주일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난잡했다.
“어익후. 작업을 하다 보니 정리할 생각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끝 쪽에 있는 창문까지. 아티팩트 제조에 사용된 재료 찌꺼기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공. 작. 님?”
그리고 그사이에 헤와른이 서 있었다. 나름 빵빵했던 볼이 완전히 쏙 들어가고, 두 눈이 퀭한 상태로 말이다.
“…….”
에탄이 초췌해진 그녀의 몰골에 몸을 흠칫했다.
쓰윽.
‘지금 마주치면 골로 간다.’
그러면서 눈을 안 마주치기 위해 시선을 최대한 피했다. 그녀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자신을 어떻게든 처리하겠다는 깊은 의지를 가진 살기가 말이다.
“흐으음… 명예 공작님. 손에 독특한 반지가 하나 더 늘었네요?”
하지만 헤와른이 그걸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가 이렇게 일하고 있을 때 국왕 폐하의 중병을 치료하셨다고요?”
헤와른이 에탄을 향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뒷말을 붙였다. 하나. 그 안에는 뼈가 담겨 있었기에.
“으음. 그래. 그랬지.”
에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러는 게 제일 낫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제 병도 치료해 주실 수 있겠네요.”
“당연하지. 제자야!”
“?”
그때. 데프리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 공작님이라면 네 정신도 말끔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부탁하거라!”
“진짜요?”
“그래! 폐하의 병도 치료했는데 네 병이라고 못 낫게 하겠느냐!”
“그렇군요. 역시 공.작.님이네요.”
헤와른이 데프리안의 열렬한 지지에 감탄을 표했다.
“맞아요! 아빠는 헤와른 님을 도와주실 수 있을 거예요!”
“치료. 가능함.”
거기에 아린이와 뇽뇽이도 힘을 실어 줬다. 이들은 헤와른이 내뿜는 기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노리는 대상은 오로지 에탄뿐이었으니까.
“아니….”
에탄이 자신을 격렬히 응원해 주는 이들을 보고 당황했다.
‘외통수다.’
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답하기에는 눈치가 보였으니까.
게다가 아린이와 뇽뇽이까지 자신을 믿는다는 듯 쳐다보고 있으니.
“시도는 해 볼게.”
에탄은 결국 헤와른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답했다.
“좋아요. 그럼 제 병명은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그러자 헤와른이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최대한 많은 돈을 준비해야겠군.’
다행히 에탄은 그녀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화를 준다면 싹 나으리라.
‘배 아프다….’
물론. 그 돈들이 자신의 지갑에서 나갈 예정이라는 게 슬펐지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으니 남는 장사이기는 하리라.
짝!
“자. 제 병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죠.”
헤와른이 박수를 치면서 공기를 환기시켰다.
“이제는 아티팩트를 보여 드릴게요.”
어기적. 어기적.
이어서 오른편에 있는 책상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고는.
“어디보자… 아티팩트가. 아 여기 있다.”
재료들이 모여 있는 책상.
그중에서도 제일 위에 자리를 잡은 보라색 돌멩이를 집었다.
“받으세요.”
터억!
에탄이 헤와른이 건네는 보라색 돌을 조심히 받아 냈다.
“이게 번개 저항을 가진 아티팩트야?”
그리고 헤와른에게 반문했다.
“네. 에탄 공.작.님이 원하시던 번개 저항 아티팩트예요. 생긴 건 돌멩이지만 효과는 확실해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에탄이 헤와른의 대답에 침을 삼켰다. 동시에 손에 쥐어진 보라색 돌멩이를 빤히 바라보면서.
“이거. 사람이 착용한 상태에서는 아직 실험 안 해 봤지?”
“…네? 그렇긴 한데.”
“그럼 안 돼. 사람이 직접 맞았을 때 멀쩡한지 확인해야지.”
“?”
헤와른에게.
“그러니까 네가 한번 증명해 주면 좋겠어. 사람이 번개에 맞았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말이야.”
큰 한 방을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