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에탄은 포션을 들고 데프리안을 찾아갔다.
“국왕 폐하의 중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요?”
“예. 아주 ‘힘들게’ 얻어 낸 포션이 있습니다. 그걸 마시면 폐하의 중병도 말끔하게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데프리안의 공방 입구에서, 자신이 메레린 왕국 국왕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니… 그게 가능한 겁니까?”
데프리안이 그 말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공방에서 한참 작업을 하고 있던 상태여서일까.
그의 얼굴과 손에 있는 검은색 흑가루들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데프리안 님이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저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탄이 그런 데프리안을 보면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조금 달라진 거 같아.’
‘흐응!’
뒤에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걸 보고는 자기들끼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나.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에탄이 두 사람에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주의를 준 덕분이었다.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때문에. 데프리안은 에탄에게 완벽히 속아 버렸다. 그가 아무런 흑심도 없이 순수한 마음만으로 도와주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폐하를 만나면 똑같은 병에 걸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탄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왕이 앓고 있는 중병은 전염성이 강하니까.
“바로 앞에다 포션을 두고 나올 생각입니다. 그러면 병이 옮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죠.”“그렇기는 합니다만….”
데프리안이 에탄의 대답에 침을 삼켰다. 그 또한 알고는 있다. 포션을 건네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는걸.
하나.
“다른 이들이 반대할 겁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그렇긴 하지만… 에탄 도련님은 외부인이니까요.”
에탄은 어디까지나 외부인에 불과하니. 왕궁에 있는 다른 자들이 이견을 내놓을 게 분명했다.
“포션의 효과만 보장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는 뜻처럼 들리는데요.”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저런 발언이 나올 거라고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의심을 하는 게 당연하지.’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는 경계가 당연하니까.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한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데프리안의 사과에 손을 휘젓고는.
“마음 같으면 포션을 모두의 앞에서 먹고 효능을 증명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포션은 한 병뿐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역시….”
데프리안이 그걸 듣고는 고개를 떨궜다. 자신은 에탄을 믿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이 일을 풀어 나가기 막막하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합니다.”
에탄이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뒷말을 붙였다.
“다른 방법이요?”
“예.”
“어떤 식으로 증명하실 생각입니까?”
데프리안이 에탄의 대답에 두 눈을 꿈뻑였다. 그의 말대로 포션은 한 병뿐이니 마셔서 보여 준다는 선택지는 보일 수가 없었다.
“사실. 이 포션에는 여왕 요정의 축복이 깃들어 있습니다.”
“?”
“이 왕국에 있는 신관이나 마법사를 불러서 그 축복의 힘을 느끼게 할 겁니다. 그러면 포션의 효능도 자연스럽게 보장이 되겠죠.”
“잠. 잠깐.”
에탄의 말에 데프리안이 다급히 말을 막았다.
“지금 여왕 요정이… 축복을 주셨다고 하셨습니까?”
“예.”
“아니. 그게 말이-”
“안 될 이유는 없습니다. 제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죠.”
에탄의 말에 데프리안이 입을 막았다. 확실히 맞는 주장이었다. 저 모든 게 진실이라면 자연스럽게 결과가 보이리라.
“지금 당장 왕궁 마법사와 신관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래서 데프리안은 에탄에게 다른 질문을 이어 하지 않았다. 대신. 에탄이 증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흐아아!
그때. 안쪽에서 헤와른의 기합이 들려왔다.
“저건 무슨 소리입니까?”
에탄이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당사자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기세가 살벌했기 때문이다.
“아. 헤와른이 작업을 하면서 내는 고함입니다.”
“….예?”
그리고 이어지는 데프리안의 대답에.
‘당분간은 헤와른을 피해 다녀야겠군.’
에탄은 헤와른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로 다짐했다.
* * *
“이쪽은 메헤린 왕국에서 가장 마법에 조예가 깊은 마법관이십니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왕국 소속 신관분입니다. 폐하를 위해 매일 아침마다 신성력을 이용해 성수를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시죠.”
에탄은 데프리안을 따라 한 방으로 안내받았다. 로브를 입은 마법사와 흰색 신복을 입은 신관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칼라사르 가문의 에탄이라고 합니다.”
에탄이 그들을 보면서 고개를 꾸벅였다.
“아린이에요!”
“뇽뇽이임!”
이어서 아린이와 뇽뇽이가 인사를 건넸다.
“허허. 귀여운 따님들이군요.”
그러자 메헤린 왕국 소속 신관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그리고 마법관은 몸을 멈칫했다.
‘이상하군. 평범한 어린아이 같은데 왜 위화감이 드는 거지?’
뇽뇽이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기운이 미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뇽뇽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이상 뇽뇽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에탄이 적절하게 끼어 들 었으니까.
‘마나를 제어하는 방법을 좀 더 공부하게 해야겠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겠어.’
그러면서 생각했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뇽뇽이의 마법 실력을 좀 더 발전시켜야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아.”
신관의 물음에 데프리안이 입을 열었다.
“에탄 도련님이 폐하의 중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후 이들을 바라보면서 뒷말을 붙였다.
“예?”
“그게 무슨….”
데프리안의 말에 마법관과 신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입니까?”
그리고 에탄에게 동시에 물었다.
데프리안의 말이 사실이냐고.
“예. 진실입니다.”
에탄이 질문에 덤덤하게 답했다.
쓰윽.
그 후 품속에서 여왕 요정이 건네준 물약을 꺼내고는.
“여왕 요정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포션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이들에게 직접 살펴보라고 말했다.
“…….”
에탄의 말에 신관과 마법관이 벙쪄 버렸다. 에탄이 여왕 요정의 축복이 깃든 포션을 꺼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제가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마법관은 자세를 진지하게 바꿨다. 그러면서 에탄이 꺼낸 포션을 향해 오른손을 뻗고.
“…….”
눈을 감고 포션의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흠칫했다.
“진짜군요.”
여왕 요정의 힘이 손끝을 통해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저도 한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보셔도 됩니다.”
그걸 본 신관이 포션을 향해 다가왔다.
꿀꺽.
그 후 침을 삼키고는 포션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
마법관과 마찬가지로 화들짝 놀랐다. 살면서 지금까지 느껴 봤던 기운 중에 가장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거면 충분하겠습니까?”
에탄이 그런 두 사람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에탄 또한 포션의 힘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니 신관과 마법관은 더 적나라하게 깨달았으리라.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예. 확실한 거 같군요.”
“저도 마법관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신관과 마법관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포션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과 압도적인 힘.
그건 절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다.
“흐음. 그렇군요. 두 분이 그렇게 보증을 해 주신다니 제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그래서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을 해 주자.
“그런데 이 포션. 아무한테나 주는 게 아닌데. 아니 뭐 그냥 말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에탄이 순식간에 태도를 뒤집었다.
그동안 본색을 숨긴 상인처럼 말이다.
“….”
“….”
신관가 마법관이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 오해는 안 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순수히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고생을 한 거니까요. 절대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더 움찔했다.
에탄이 말하는 내용과 말투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두 분도 알겠지만, 효과는 확실할 겁니다. 무려 여왕 요정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포션이니까요.”“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아무것도 안 받고 폐하께 이걸 넘긴다면. 오히려 폐하께서 부담감을 느끼실 겁니다.”
“……?”
에탄의 말에 마법관과 신관이 두 눈을 꿈뻑였다.
“확실히 그럴 수 있겠군요.”
하지만 데프리안은 예외였다.
“폐하께서 이런 걸로 마음에 짐을 지시는 걸 원하시지 않을 겁니다. 특히 순수한 호의로 도와주시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럴 거고요.”
이미 데프리안은 에탄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린 상태였으니까. 덕분에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고 있었다.
“안 그렇습니까? 신관님. 마법관님.”
“그….”
“게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보답하는 게 맞습니다. 아무리 에탄 도련님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그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데프리안의 말에 신관과 마법관이 입을 다물었다. 차마 여기서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데프리안이 자신들을 향해 어떤 말을 쏟아 낼지 알 거 같았으니까.
‘게다가 데프리안의 말이 맞기도 하지.’
거기에 데프리안의 주장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무려 여왕 요정의 축복을 내어 주는 거니까.
‘데프리안을 미리 포섭하기 잘했군.’
덕분에 아무것도 안 해도 생색을 내는 게 가능했다.
“크흠.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저한테 필요 한걸 아주 조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에탄이 정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들어드리겠습니다.”
마법관이 그 말을 듣고는 무엇이든 말하라고 답했다. 아무것도 안 해 주면 마음이 불편할 거 같았으니까.
물론. 거기에는 데프리안의 발언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좋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쓰윽.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종이 한 장을 그들 앞에 내밀었다.
“…?”
마법관과 신관이 그걸 보고는 두 눈을 꿈뻑였다. 그도 그럴 게. 종이에 있는 에탄의 요구 사항들이.
“제가 평소에 필요로 하던 걸 메모해 둔 종이입니다. 이중에서 챙겨 줄 수 있는 거만 주시면 됩니다.”
자신들이 예상했던 걸 뛰어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