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뇽뇽이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했다. 화염의 지배자가 자신을 향해서 메테오를 떨어트렸던 그때를 말이다.
“떨어짐!”
그렇게 메테오를 경험했을 때. 뇽뇽이의 마음속에는 한가지 소원이 자리를 잡게 됐다.
자신도 언젠가는 메테오를 떨궈 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쿠우우웅!
그리고 그 욕망을 뇽뇽이는 지금 이루게 됐다.
콰아앙!
뇽뇽이가 메테오를 떨어트리자, 거대한 굉음이 호숫가에 울려 퍼졌다.
“흐응!”
뇽뇽이가 그걸 보고는 흡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냈음!”
그리고 자신이 메테오를 떨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화염의 지배자가 만들었던 메테오와 비교하면 보잘것없기는 했다.
하나. 첫 메테오로는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으니.
“흐응!”
뇽뇽이가 자랑스러워하는 게 당연했다.
“뇽뇽아… 메테오는 왜 발동시킨 거야?”
“덕분에 옷이 다 젖었다.”
그런 뇽뇽이를 향해 아린이와 에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의 몰골이 물에 빠진 생쥐와 흡사한 건 덤이었다.
“충격. 필요해 보였음.”
뇽뇽이가 두 사람의 물음에 어깨를 펴며 답했다. 메테오를 떨군 건 단순히 해 보고 싶어서 뿐만이 아니었다.
“요정계. 충격 줌. 그렇게 부름.”
호수를 통해 열린 요정계에게, 자신들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리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그래야 나이아 호수에서 만났던 요정이 나타날 테니 말이다.
“진짜야?”
하나. 에탄은 뇽뇽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뇽뇽이를 쳐다봤다.
“진실임!”
뇽뇽이가 에탄의 미묘한 눈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흐음….”
하지만 에탄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눈빛으로 뇽뇽이를 빤히 바라봤다.
“진짜-”
그러면서 다시 한번 진실을 물으려는 순간.
[오랜만이네요.]
호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에탄이 그 소리를 듣고는 호숫가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저를 불러 놓고 누구냐고 물어보시지는 않겠죠?]
“아… 어….”
그리고 요정과 눈을 마주치고.
“진짜였네?”
당황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요정이 등장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흐응!”
그때. 뒤쪽에서 뇽뇽이의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에탄이 그걸 듣고 다시 눈동자를 뇽뇽이에게 굴렸다.
“…….”
꿀꺽.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뚜우웅.
자기를 쳐다보는 뇽뇽이의 얼굴이 ‘삐짐’으로 가득 찼기에.
* * *
“뇽뇽아. 내가 잘못했어.”
“흐응!”
에탄은 토라진 뇽뇽이를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에탄 님이 마법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 거예요.]
“맞아. 뇽뇽아. 아빠가 뭘 몰라서 그런 거야.”
그리고 요정과 아린이도 뇽뇽이의 삐짐 풀기에 동참을 해 줬다.
‘분명 도와주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기분이 묘하지?’
에탄이 아린이와 요정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말들이 자신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기 때문이다.
“그런 거임?”
하지만. 요정과 아린이의 발언이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닫고는.
“그럼! 내가 마법에 대해 너무 몰라서 나왔던 실수지. 우리 뇽뇽이가 아니었으면 앞으로도 몰랐을 거야.”
에탄이 빠르게 뒷말을 이었다.
다 자신이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이다.
“알겠음. 용서함!”
그제서야 뇽뇽이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무려 5분간의 사과 끝에 보이는 웃음이었다.
‘두 번 다시는 뇽뇽이를 의심하지 말아야겠다.’
그때야 에탄이 속으로안도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린아이를 놀리거나 의심하는 티를 내지 말자고 말이다.
[자. 뇽뇽이 님의 기분도 풀렸으니 이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그때. 요정이 에탄. 아린이.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싱긋 미소 지었다.
“예. 좋습니다.”
에탄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을 부른 이유가 삐진 뇽뇽이를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
할 이야기가 있는 게 당연했다.
“저희가 요정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때문에. 에탄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요정을 바라봤다.
“메레린 왕국 국왕의 병을 치료해 주세요.”
그러면서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국왕의 병이요?]
“네. 이곳 메레린 왕국을 통치하는 국왕이 중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요정님이 그걸 치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에탄의 말에 요정이 입을 벌렸다.
[그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진작에 들었어요.]
그 후 덤덤하게 뒷말을 이었다.
국왕의 소식은 이미 알고 있다고 말이다.
“그럼 치료해 주시는 건가요?”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네?”
하나. 요정은 국왕의 중병을 사라지게 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 아린이가 묻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답은 똑같았다.
[저희의 힘은 여왕 요정님에게서 나와요. 그러니 그분의 뜻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답니다.]
여왕 요정의 결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게 그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게 요정계였으니.
“그럼 여왕 요정님을 설득해야겠네요.”
아린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러면 해결되는 거죠?”
[으음…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요정이 아린이의 물음에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 힘들 거예요.]
여왕 요정은 어지간한 일로는 꿈쩍도 안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도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잖아요.”
하지만 아린이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해 보기 전까지는 실패할지 성공할지 알 수 없다고 배웠어요!”
에탄에게 끝까지 해 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왕 요정님을 만나게라도 해 주세요. 그러면 그 뒤부터는 저희의 힘으로 여왕님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나이아 호수의 요정이 에탄의 말에 두 눈을 꿈뻑였다.
[하아아….]
그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는.
[이런 부탁을 하실 줄 알았다면 저 작은 드래곤의 부름에 반응하지 않았을 거예요.]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말을 마쳤다.
“헉! 뇽뇽이가 드래곤인 건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아린이가 요정의 발언에 화들짝 놀랬다. 뇽뇽이의 정체를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에 간파를 당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이 아이의 이름이 뇽뇽이었죠.]
요정이 아린이의 말에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알인 시절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 뇽뇽이가 내뿜던 기운과 마나의 양이 너무 방대했거든요.]
그러면서 뇽뇽이의 정체를 알게 된 계기를 말해 줬다.
“아하….”
[안심하세요. 그렇다고 해서 아린 님의 친구인 뇽뇽이를 해칠 마음은 없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았어요! 요정님이라면 뇽뇽이도 좋아 해 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요정의 말에 아린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답했다.
[어머나….]
그 모습을 본 요정이 자신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까지 자기를 믿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흐음.]
그래서 아린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눈썹을 찡그리더니.
[좋아요. 여왕 요정님을 만나게 해드릴게요. 단 이번뿐이에요. 다음에는 부탁하셔도 안 도와줄 겁니다.]
여왕 요정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와아…!”
“흐응!”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녀의 말에 입을 벌렸다.
‘세상에. 이게 될 줄이야.’
그리고 에탄은 속으로 놀람을 표했다.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요정이 정말로 들어줄 거라는 기대는 안 했기 때문이다.
‘요정들은 분명 인간을 싫어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어지간한 요정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의아함을 가지려는 찰나.
‘…아니. 가만 보니까 나만 인간이잖아?’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아린이와 뇽뇽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였다.
‘아린이는 검이었고 뇽뇽이는 드래곤이니까….’
에탄. 아린이. 뇽뇽이.
이 세 명 중 순수 인간(?)은 에탄 혼자뿐이었다.
“…….”
그래서 에탄은 지금 상황이 엄청나게 묘했다. 소외당한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에탄 님도 함께 들어갈 수 있게 해 드릴 테니까요.]
요정이 그런 에탄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에탄에게 말을 붙였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정체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어차피 모두 에탄 님을 믿고 따르는 아이들인데.]
그러면서 에탄이 고민하는 부분을 콕 집어서 조언했다.
“…맞습니다.”
에탄이 요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의 말대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아린이와 뇽뇽이는 에탄의 딸이니까.
[어머! 방금 막 여왕 요정님의 부름이 들려 왔어요.]
그 순간 요정이 호들갑 떠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여왕 요정님이 여러분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우아!”
“흐으응!”
그리고 요정의 말에 아린이와 뇽뇽이도 환호를 표했다.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 여왕 요정님은 좋은 분이시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랍니다.]
요정이 기뻐하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고 피식 웃었다. 동시에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고는.
-우우웅!
에탄. 아린이. 뇽뇽이의 머리 위에 황금색을 띤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파아앗!
그렇게 마법진이 나타나자, 세 사람의 몸이 순식간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래요.]
나이아 호수의 요정이 그런 세 명을 향해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리는 순간.
파앗!
에탄. 아린이. 뇽뇽이의 몸이 이동됐다. 여왕 요정이 있는 요정계로.
[흐음.]
그리고 혼자가 된 나이아 호수의 요정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세 사람이 남아 있던 자리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길이 잘못된 거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러면서 다시 한번 입꼬리를 올리고는.
파아앗….
요정 또한 호수에서 모습을 감췄다.
남은 건 아린이가 호수에 떨군 커다란 돌 한 덩어리가 전부였다.
둥… 둥… 둥.
호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습이 제법 인상적인 건 덤이었다.
* * *
요정계는 대륙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차원 너머에 있지.’
정확히 말하면 제3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설명 하는 게 맞으리라.
“아빠! 하늘에 태양이 세 개가 떠 있어요!”
때문에. 요정계는 대륙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에 태양과 달이 동시에 공존하고.
“땅. 황금색임.”
에탄. 아린이. 뇽뇽이가 딛고 있는 땅은 금색이었다.
‘…이걸 캐서 가져가면 비싸게 팔 수 있으려나?’
에탄이 그걸 확인하는 순간 군침을 굴렸다. 내면 속에 기재되어 있던 장사꾼의 기질(?) 이 발동됐기 때문이다.
쓰윽.
그래서 은근슬쩍 황금색 땅을 만져 보려는 순간.
[그건 금으로 팔 수 없습니다. 이 차원에서 나가면 사라지는 물질이거든요.]
누군가 에탄을 향해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위로 돌렸다. 그 후 자신에게 말을 건 존재를 확인하고는.
“!”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왕 요정!’
요정계의 지배자이자 차원의 군주.
여왕 요정이 눈앞에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