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번개 저항 아티팩트가 필요하시다고요?”
데프리안이 에탄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혹시 어떤 이유 때문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사용 용도를 물었다.
“아. 뭔가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보통 마법 저항 아티팩트를 찾을 때는 다속성 저항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말이죠.”
“아하.”
데프리안의 설명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질문이었다.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데, 그걸 얻기 위해서는 번개 저항을 가진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데프리안의 물음에 순수히 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한테 아티팩트를 만들어 줄 존재니까.
“그렇군요. 혹시 번개의 산맥에라도 가시려는 겁니까?”
“…….”
“아. 제가 먼저 가서 물건을 가로챈다거나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건 아닙니다. 얼마나 강한 저항이 필요한지 알아야 해서 말이죠.”
에탄이 데프리안의 발언에 침을 삼켰다.
‘눈치가 장난이 아니네.’
그러면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역시. 노련한 연금술사에 감각은 무시할 수가 없는 법이었다.
“네. 번개 산맥에 갑니다.”
그래서 데프리안의 이어지는 물음에 순순히 긍정했다.
‘막말로 데프리안이 직접 움직인다고 해서 얻어 낼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번개 산맥이라… 그러면 아주 강한 저항이 필요하겠군요.”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제작하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이 소요되겠죠.”
데프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티팩트 제작은 고도의 집중력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저항이 강한 아티팩트 일수록 배로 들어간다.
“하지만… 제 사랑스러운 제자가 함께한다면! 시간이 절반은 단축될 겁니다!”
때문에. 데프리안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헤와른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그러니까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힘을 빌리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에탄에게 헤와른을 빌려 가도(?) 되냐고 물었다.
“안-”
“물론이죠. 얼마든지 헤와른을 이용하셔도 됩니다.”
“네?”“저는 번개 산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저항 아티팩트만 나오면 상관없으니까요.”
헤와른이 에탄의 대답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제 의견은요!”
그리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다급히 입을 열었지만.
“좋습니다. 그럼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도움을 좀 받겠습니다.”
“얼마든지 허락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 악수를 하고 있었다.
아주 흐뭇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
헤와른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확신했다.
‘대륙은 이미 악마들로 넘쳐나고 있었구나!’
이 대륙에는 이미 최상급 악마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 * *
그렇게 헤와른은 데프리안의 공방에서 생활을 하게 됐다.
‘국왕의 몸이 많이 안 좋다라.’
그리고 에탄은 공방에서 한 가지 사실을 전해 듣게 됐다. 데프리안이 머물고 있는 이곳의 국왕이 중병에 걸렸다는 거였다.
‘어쩐지 다들 안 보인다 했어.’
그 사실을 듣고서야 에탄은 왕궁이 허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본래 같으면 국왕이 알현실로 부르는 게 맞지만.
‘중병에 걸려 있으면 그러지 못하겠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힘들 게 뻔하리라.
‘심지어 전염이 된다니.’
게다가 다른 이들에게도 병이 퍼지기에. 그 누구도 국왕의 침실을 방문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제국의 황제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교단이 나섰겠지만… 메레린 왕국에는 그런 도움의 손길조차 없었겠지.’
메레린 왕국은 중부에서 별다른 힘이 없는 왕국이다. 그러니 외부에서 도움을 줬을 리도 없다.
원래 이 대륙은 그런 세상이니까.
하지만.
‘국왕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낫겠지.’
아무리 힘없는 왕국이라고 해도, 국왕과 연줄을 만들면 쓸모가 있을 게 분명하리라.
‘문제는 어떻게 살리냐는 건데.’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해결책을 고민해야 했다. 이 일은 에탄도 전생 때 경험하지 못한 거니까.
“아빠. 뭘 그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흐응!”
그래서 왕국 한가운데에 있는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는 찰나.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옆으로 다가왔다.
“고민이 깊어 보여요.”
“들어 줌!”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흐음.”
에탄이 아린이와 뇽뇽이의 말에 침을 삼켰다.
‘많이 컸네.’
그러면서 아린이와 뇽뇽이의 성장을 체감했다. 에탄의 눈에 아린이와 뇽뇽이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애들한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제는 자신들에게 고민하고 있는걸 털어놓으라고 말하니.
에탄은 시간의 흐름이 상당히 빠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곳 국왕님이 중병에 걸렸데.”
“중병이요?”
“응. 많이 아프다는 뜻이야.”
“아….”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탄식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이 아프다는 소식에 마음이 슬퍼진 거였다.
“치료 해야 함.”
“아직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았다고 하더라.”
“흐응….”
뇽뇽이가 에탄의 대답에 콧방귀를 꼈다. 다만 평소에 보이던 오만한 콧방귀와는 느낌이 달랐다.
축 늘어진 어깨에 시무룩한 표정.
누가 봐도 국왕을 구하지 못하는 것에 슬픔을 느끼고 있는 얼굴이었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그랬나?’
에탄이 그걸 보고 미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아빠. 방법이 없을까요?”
“불쌍함. 구하고 싶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이 너무나 초롱초롱했기에.
“하아.”
에탄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구하고 싶기는 한데….’
사실. 에탄이라고 해서 이 기회를 그냥 날리고 싶지는 않았다.
‘방법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러나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이 쉽지 않을 거 같기에.
“흐으음….”
에탄은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래서 어찌해야 하나 생각에 생각을 물어 간 끝에.
“…꼭 우리가 치료할 필요는 없잖아?”
한 가지 사실을 상기했다.
국왕의 병을 무조건 자신들의 손으로 고쳐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그럼 누가 치료해요?”
“흐응?”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씨익.
에탄이 두 사람의 물음에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를 도와줬던 요정님 기억나?”
그리고 아주 오래전. 각성의 비약을 건네줬던 요정을 언급하면서.
“여기로 불러내자.”
눈앞에 있는 거대한 호수로 시선을 돌렸다.
* * *
과거. 에탄은 요정을 불러내기 위해 헤와른에게 특제 가루를 부탁했었다.
‘다행히 양은 충분하네.’
그리고 그 가루는 아직도 아공간 주머니에 곤히 보관되어 있었다.
“이 가루를 이용해서 요정님을 불러낼 거야.”
“요정님이 과연 저희의 부름에 응답해 주실까요?”
아린이가 에탄의 계획을 듣고는 걱정을 표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요정님을 여기로 부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그렇긴 하지.”
에탄이 아린이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나이아 호수에서 이곳까지는 마차를 타도 2주나 걸리니.
상당히 먼 거리라고 보는 게 맞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요정계를 통해서 요정님을 불러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거야.”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요정들이 머무는 차원을 열고. 그곳에서 나이아 호수에 있던 요정을 불러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뇽뇽이의 도움이 필요해.”
하지만 에탄이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에탄은 어디까지나 검을 주로 다루는 기사니까.
“뇽뇽아. 알이었던 시절 만났던 요정님의 흔적을 떠올릴 수 있겠어?”
그래서 뇽뇽이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마법 분야에서는 자신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아이니 말이다.
“기억함. 떠올릴 수 있음.”
“좋아.”
에탄이 뇽뇽이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요정을 불러내기 위한 조건은 전부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가루를 뿌리면. 바로 요정님의 흔적을 호수로 흘려보내. 마나 에다가 기억을 담기면 될 거야.”
“흐응! 알겠음!”
에탄의 설명에 뇽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을 제법 자유롭게 다루는 뇽뇽이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파앗!
그래서 에탄이 호수에 가루를 뿌리는 순간.
퐁!
아린이는 호수 안으로 두 손을 집어 넣었다. 그 후 흩뿌려지는 가루들을 쳐다보면서.
-우우웅!
자신이 알이었던 시절. 나이아 호수에서 만났던 요정의 기억을 마나에 담아 냈다.
우웅….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 호수를 향해 마나를 흘려보냈다.
파아앗!
그 순간 잠잠했던 호수의 수면이 크게 일렁거렸다.
“….”
“….”
“….”
에탄. 아린이. 뇽뇽이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과연 요정을 불러내는데 성공했을까? 라는 기대감과 걱정이 그들의 눈빛에 담겨 있었다.
…꿀렁!
그래서 이들이 침을 삼키는 순간.
파아앗!
호수 한가운데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생겼다.
“아빠!”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두눈을 크게 떴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변화가 호수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반응이 오고 있어.”
에탄 또한 그 사실을 눈으로 목격하고 있기에, 아린이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소용돌이를 빤히 바라봤다.
…뽀글뽀글.
하지만.
“어?”
에탄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이상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용돌이가 잠잠해지고.
-….
호수에서 나오던 빛이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모습을 본 에탄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려는 순간.
“…떨어짐!”
뇽뇽이가 하늘로 두 손을 뻗으면서 주문을 외웠다.
-…쿠우우우웅!
그 순간 호수면에 불이 붙은 거대한 돌덩어리가 생겼다.
“…뇽뇽아?”
그리고 에탄과 아린이가 그걸 깨닫는 순간.
….콰아아앙!
거대한 불덩어리가 호수 안으로 낙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