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87화 (87/200)

제87화

중부는 북부보다 훨씬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풍요로운 곡물 지대가 많아서 왕국들이 쉽게 번성하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제국에 비하면 모두 상대가 안 되지.’

원래 식량이 넘치면 무기가 만들어지고 전쟁이 일어난다. 사람은 가진 거에 만족할 수 없는 존재니까.

‘제국이 없었다면 지금도 쉴 틈 없이 치고박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 대륙은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중앙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제국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레린 왕국은 제법 독특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국법을 따르지 않는 왕국이라.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군.’

중부에 속해 있지만 제국은 거부하는 왕국이기 때문이다.

덜커덩!

“도련님. 메레린 왕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마차를 이끄는 마부가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수고했어.”

에탄이 마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골드가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그에게 건넸다.

“이건 내가 주는 수고비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받아.”

“허억!”

마부가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골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가는 길도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싹싹한 말투로 뒷말을 붙였다.

“그래. 그래. 잘 부탁해.”

에탄이 훨씬 친절해진 마부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린아. 뇽뇽아. 내리자.”

“우웅….”

“흐으응….”

그 후 어깨에 기대 잠을 자고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의 볼을 콕콕 찔렀다.

“세상에… 넘 귀여워!”

헤와른이 몸을 꼼지락거리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고 손에 힘을 줬다. 당장이라도 깨물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그래서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아린이가 저런 막돼먹은(?) 에탄의 딸인지 말이다.

‘물론 느낌은 딱 아빠와 딸이기는 한데.’

헤와른이 에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백발 머리에 날카로운 턱선. 거기에 짙은 쌍꺼풀까지.

누가 봐도 아린이의 아빠다웠다.

‘하지만 성격이 완전 다르잖아.’

그러나. 천사 같은 아린이와 다르게 에탄은 악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으니.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게 당연했다.

“뭐냐. 그 눈빛은?”

그 순간 에탄이 헤와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

“네!”

“흐음.”

에탄이 헤와른의 대답에 두 눈을 꿈뻑였다. 무언가 있는 거 같은데 없다고 대답하니, 상당히 수상쩍게 느껴졌다.

“알았어.”

하지만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래 봤자 알려 주지 않을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

“미리 내려서 주변 좀 둘러보고 있어. 하는 김에 마차 정비도 하고 식량품도 점검하고.”

헤와른에게 이런저런 잡일을 시켰다.

“…….”

헤와른이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에탄을 쳐다봤다.

‘역시. 악마다.’

그리고 속으로 확신했다.

자신을 막 부려 먹는 에탄은 악마가 분명할 거라고.

그것도 악마 중에서도 사악함이 남다른 최상급 악마일 거라고 말이다.

* * *

메레린 왕국은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는 곳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제자야!”

그래서일까. 헤와른의 스승인 데프리안은 그녀를 보자마자 반가운 기색을 잔뜩 표현했다.

“저도 스승님을 이렇게 보게 돼서 넘 좋네요.”

헤와른이 데프리안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예의를 갖춘 말투와 기품 있는 목소리가 제법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 제자가 오는 길에 이런저런 물건을 구해 왔는데… 혹시 스승님이 구매하실 생각은 없을까요?”

“오오. 이 스승을 위해서 그런 고생까지 했단 말이냐?”

“네. 하지만 구하는데 비용이 제법 들어서… 공짜로 드릴 수가 없는 게 너무 슬프네요.”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딴 건 몰라도 돈은 많으니까!”

물론. 예의를 차린다고 해서 마차에 있는 물건을 안 파는 건 아니었다.

“아빠. 저희는 저거 공짜로 받은 거 아니었어요?”

“그렇지. 분명 공짜로 받았지.”

아린이가 그 모습을 보고는 하품을 하면서 물었다. 헤와른이 스승에게 팔아넘기는(?) 건, 마을 사람들이 아린이와 뇽뇽이가 귀엽다고 하면서 준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곰 인형은 한 어린아이가 특별한 힘이 깃든 곰 인형이라면서 줬고요. 여기 이 붉은 사탕은 특별한 재료로 혼합해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물건들은 상당히 평범한 것들뿐이지만 헤와른은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왜 돈을 받고 파는 거예요?”

“음….”

아린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에탄에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건….”

에탄이 그 대답에 턱을 쓸어 만지고는 찡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른이 되면 이해할 거란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러려니 하렴.”

나중에 현실을 알게 될 때쯤에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거라고 말이다.

* * *

헤와른의 판매 사업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헤와른. 나중에 30% 주는 거 잊지 마.”

“물론이죠. 제가 이런 돈거래는 철저한 거 아시잖아요.”

그리고 에탄도 이득을 보게 됐다.

이번 거래의 진실(?)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게 됐으니까.

“좋아.”

에탄이 헤와른의 대답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누워서 코 풀기 식으로 돈을 벌게 됐으니.

에탄의 기분이 좋은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 공방은 조금 독특하네.”

그렇게 은밀한 대화를 끝내고, 에탄이 주변을 둘러봤다.

“스승님의 공방이잖아요.”

헤와른이 에탄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이들은 지금 데프리안이 작업을 하는 방에 들어와 있었다.

“방에 아티팩트가 널려 있는 게 당연하죠.”

그래서 다른 방들과는 너저분함의 궤를 달리했다. 책상은 너저분한 상태였고, 곳곳에 정체 모를 부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저도 이런 곳에서 일을 하던 적이 있었는데.”

헤와른이 그것들을 보고 옛 추억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나?”

“아니요.”

“?”

그러다가 에탄의 물음에 정색을 했다.

“그냥 생각이 난다는 거지 그립다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그. 그래. 내가 미안하다.”

에탄이 헤와른의 반응에 사과를 건넸다. 건들면 안 되는 부분을 찌른 거 같았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모르셨으니까요.”

헤와른이 에탄의 사과에 씩 웃었다.

그 후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죽고 싶었는데. 매일같이 밤새 연금술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아티팩트를 만들다가 실수해서 방을 폭파시키고….”

추억을 말하듯 그때 그 시절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빠. 헤와른 님이 조금 이상한 거 같아요.”

“무서움.”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런 헤와른을 보고 슬금슬금 거리를 두고 피했다.

“지금은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그건 에탄도 마찬가지였다.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세 발짝 더 그녀로부터 멀어졌다.

하지만 아린이와 뇽뇽이는 에탄에게 왜 거리를 두냐고 묻지 않았다.

‘저게 바로 넋이 나간 사람의 얼굴이라는 건가?’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공허한 그녀의 얼굴이 너무 무서웠으니까.

* * *

다행히 헤와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정신을 차렸다. 에탄이 그녀에게 위로의 뜻으로 작은 골드 주머니를 건넨 덕분이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프리안이 공방으로 들어왔다.

“배정받으신 방들은 마음에 드십니까?”

그 후 에탄과 이들에게 머무는 방에 대해서 물었다.

“이불이 푹신푹신해서 좋아요!”

“흐응!”

아린이와 뇽뇽이가 데프리안의 질문에 힘차게 답했다. 실제로 메레린 왕국에서 내준 방은 훌륭했다.

침대는 물론이고 창문 너머로 호수까지 보였으니까.

“저도 만족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에탄도 데프리안의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했다. 실제로 좋기도 했으니까.

“다행이군요.”

데프리안이 세 사람의 대답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저는 방이 없는데요.”

그때. 헤와른이 데프리안에게 의문을 던졌다. 세 사람이 방을 둘러 보고 있을 때.

그녀는 누구의 안내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니. 내 사랑스러운 제자야. 너를 위한 방에 이미 들어와 있으면서.”

“네?”

데프리안이 어리둥절해 하는 헤와른을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 순간 헤와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자신이 생각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변한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스승님이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작업들이 제법 많이 있단다. 여기 머무는 동안 우리 제자가 함께 도와준다면 아주 좋을 거 같은데… 이 ‘공방’에서 밤을 새면서 말이지!”“아아… 아.”

헤와른이 데프리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획!

그 후 에탄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스승님. 저희가 그렇게까지 오래 머물 예정은 아니라서… 정말 죄송하지만 도와드릴 수 없을 거 같아요! 그렇죠. 에탄 도련님?”

에탄에게 제발 살려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헤와른.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는 최소 일주일 정도는 여기서 보낼 거니까.”

“!”

하지만 헤와른의 도움 요청은 1초도 지나지 않아 묵살되고 말았다.

‘미안하다! 일단 내 물건 좀 얻고 봐야지.’

여기서 번개 저항 아티팩트를 얻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오오. 그렇군요!”

데프리안이 그 말을 듣고는 화색을 띄웠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그리고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두 눈을 꿈뻑였다.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신다면 일주일이 아니라 그 이상도 머물 수 있는데… 들어보실 의향이 있습니까?”

“흐음….”

그 후 에탄의 뒷말을 듣고는.

“좋습니다. 한번 말씀해 보시죠.”

진지한 표정으로 에탄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씨익.

에탄이 그런 데프리안을 보고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빙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지금 번개 저항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