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연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도련님 미치셨습니까?”
그리고 에탄은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모헨에게 미쳤나는 질문을 받았다.
“제가 살다 살다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헨이 미쳤나고 물어본 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뒷말을 붙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경악할만한 발언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다른 의미로 망나니(?)인 에탄에게 미쳤냐고 물어보다니.
죽고 싶은 게 아니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리라.
“모헨. 마차에서 내 던져지고 싶니?”
에탄이 모헨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살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원하면 그렇게 해 줄게. 내 손으로 직접.”
심지어 거짓말도 아니었다.
모헨이 ‘제발 그렇게 해주십셔.’라고 답하는 순간, 에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모헨을 마차 너머로 던져 버릴 작정이었다.
“미치신 게 확실하지 않고서야… 데이른 공작님한테 그런 부탁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 모헨은 이런 에탄의 압박에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어떻게 공작님한테 한판 붙어보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에탄이 데이른 공작에게 어마무시한 걸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 질문을 한 게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저도 모헨의 말에 동의합니다.”
왼쪽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빌헬름도 모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이른 공작과의 대련이라니. 제가 상대한다고 해도 너무 버거운 자입니다.”
데이른 공작은 절대 만만히 볼만한 사람이 아니다. 대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공작위를 받은 인물이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철회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지간한 건 전부 납득하는 빌헬름도 만류를 하는 게 당연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하나. 에탄은 두 사람이 아무리 반대해도 마음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가서 말을 바꾸면. 데이른 공작님이 얼마나 실망하겠어. 난 북부 공작의 미움을 버텨낼 자신이 없다.”
자신이 대련을 제안했을 때.
환하게 웃던 데이른 공작의 얼굴이 눈에 훤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미쳤냐고 했지만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었겠지.’
에탄은 그때의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데이른 공작의 눈빛이 야생마처럼 반짝이던 그 모습을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안 한다고 한다? 그거만큼 최악의 수는 없다.’
때문에. 대련을 포기하는 건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해야 했다.
“그런데 방법은 있습니까?”
“음?”
“데이른 공작과의 대련에서 이길 수단이 있냐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도련님이라면 패배를 하려고 대련을 할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죠.”
“흐음.”
에탄이 모헨의 질문에 턱을 쓸어 만졌다.
“이기는 건 모르겠지만. 깜짝 놀래킬 수는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씨익 웃었다.
“그래… 흐흐. 그거면 되겠어.”
아주 기가 막힌 비장의 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
모헨과 빌헬름이 그런 에탄을 보고는 몸을 움찔했다.
쓰윽.
그러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에탄과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가까이 해봤자 좋을 게 없을 거 같았으니까.
* * *
에탄이 칼라사르 가문으로 돌아가는 그 시각.
“칼라사르 가문의 에탄이라….”
데이른 공작은 자신의 방에서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감을 잡을 수 없는 놈이야.”
그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탁자로 시선을 움직였다. 에탄의 정보가 적혀있는 종이 뭉치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흐음….”
데이른 공작이 그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면서 참으로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종이에 적힌 정보만 보면 세상 편하게 사는 망나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달 전부터 행동이 달라졌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에탄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유흥가로 가던 관심을 완전히 끊은 건 물론이고.
‘베르사르 가문에 침투했던 마족까지 토벌했다.’
북부에 숨어든 마족도 에탄의 주도로 죽였으니.
‘다른 사람이 빙의를 했다고 해도 납득이 가겠어.’
데이른 공작은 에탄이 사실 다른 인물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도 가졌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무슨 계기로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할수 있는 건가?’
하나. 에탄이 환생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그건 드래곤이 와도 해낼수 없는 일이다.
‘아린이라…’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아린이에게 주목했다.
“5살이라는 나이에 그런 움직임을 보이다니.”
아린이는 연회장에서 스텐을 상대로 가볍게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데이른 공작은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었다.
‘정말로 애가 맞나?’
어린이의 수준을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탐나는군.”
마음 같으면 아린이를 제자로 들이고 싶었다. 그만큼 데이른은 아린이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번 계획이라도 짜봐야겠어.’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오랜만에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머리를 굴려 나갔다.
* * *
에탄은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펄럭!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지도를 펼쳤다. 북부와 중부가 그려져 있는 큰 지도였다.
“아빠. 이게 뭐예요?”
“이건 지도라는 거야. 이걸 통해서 여러 가지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어.”
“우아아….”
아린이가 지도를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여기. 우리 집.”
그때. 옆에 있는 뇽뇽이가 손으로 북부에 있는 한 장소를 가리켰다. 그곳은 칼라사르 가문의 영지였다.
“맞아. 뇽뇽이 똑똑하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바로 맞혀버리고.”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처음으로 지도를 보는 상태에서, 바로 위치를 파악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흐응. 뇽뇽이. 원래 똑똑했음!”
뇽뇽이가 에탄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였다.
“…뇽뇽아. 혹시 네가 태어난 장소도 여기에 있니?”
그런 뇽뇽이를 보면서 에탄이 한 가지를 물었다. 뇽뇽이의 출생지에 관한 거였다.
“알 수 없음. 여기 없음.”
그러자 뇽뇽이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동시에 지도에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구나.”
에탄이 뇽뇽이의 대답에 침을 삼켰다.
‘그러면…뇽뇽이는 남부에서 태어난 건가?’
북부와 중부를 제외하면 남은 곳은 남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숨겨져 있는 비밀 공간뿐이니.
‘부모님을 찾는 건 쉽지 않겠네.’
에탄은 뇽뇽이의 부모 드래곤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뇽뇽아. 슬퍼?”
그때. 아린이가 침울한 뇽뇽이를 향해 조심히 다가갔다. 아린이또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뇽뇽이가 버림받은 상태로 자신에게 발견 됐다는 것을 말이다.
“괜찮아. 뇽뇽이한테는 우리가 있잖아.”
그래서 아린이는 뇽뇽이에게 자신들이 있다는걸 강조했다. 뇽뇽이가 외로움을 느끼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
“…뇽뇽이. 사랑 받음?”
뇽뇽이가 아린이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기는 사랑받고 있냐고.
“응! 여기서 뇽뇽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맞아. 우리는 너를 이미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어.”
뇽뇽이의 물음에 아린이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답했다. 가만히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에탄도 힘을 거들었다.
“가족….”
뇽뇽이가 에탄이 말한 ‘가족’ 이라는 단어를 중얼 거렸다. 그 후 바닥을 빠안히 쳐다보다가.
“흐응! 가족 좋음!”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제서야 에탄과 아린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이 찾아왔다.
“흐으응….”
“크응!”
모두가 잠든 야심한 새벽이었다.
‘잘 자네.’
하지만 에탄은 잠에 들지 못했다.
아직 다음 계획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쓰윽.
그래서 다시 한번 바닥에 있는 지도를 살펴봤다.
‘아직 멀리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
사실. 에탄이 알고 있는 기연들은 제법 많이 있는 상황이다. 하나.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힘이 부족해.’
그 기연들을 쟁취하기 위한 압도적인 힘. 에탄은 그게 아직 부족한 상태였으니. 모든 기연을 자유롭게 얻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북부를 오래 비우는 것도 좋은 선택지는 아니지.’
호시탐탐 북부를 노리는 악마 숭배자와 마족들. 녀석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에탄은 확신했다. 놈들이 어떤 식으로 활동하고 언제 움직이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 지금 갈만한 곳은….”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면서 에탄이 지도를 살펴봤다. 그 후 한참을 고민한 끝에.
탁.
중부에 있는 한 장소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밖에 없긴 하네.’
무수히 많은 산이 모여 있는 산맥.
그중에서도 하루도 쉴 틈없이 번개가 몰아치는 ‘번개의 산맥’ 이라고 불리는 산.
‘이곳에 내 다음 기연이 있다.’
에탄은 그 산에 보관되어 있는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리라 다짐했다.
‘그래야 데이른 공작에게 한 방 먹이고… 아서왕의 무덤으로 갈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어.’
에탄은 아직 아서왕의 갑옷의 진정한 힘을 끌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때문에. 어떻게든 데이른 공작에게 강한 충격을 줘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삭.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탄은 번개의 산맥에 표식을 남겼다.
쌔근. 쌔근.
그 후 꿈나라에 가있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쓰윽…
조심스럽게 가운데 자리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
‘내가 지켜야 한다.’
이 평화로운 일상이 파괴되는 걸 막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
.
.
그래서 에탄은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오늘부터는 나도 같이 훈련한다.”
3급 기사 수련장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