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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82화 (82/200)
  • 제82화

    북부인들은 명예를 강하게 챙긴다.

    특히 작위가 높은 귀족일수록 그 경우가 더했다.

    ‘당장 이 연회에 목숨을 거는 데이른 공작만 봐도 그렇지.’

    북부 대연회는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더 화려하고 성대하게 여나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니까.

    “미안하네. 내가 딸을 대신해서 사과 하도록 하지.”

    때문에. 에탄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사과에 크게 당황했다.

    “스테리안 백작님. 고개를 드시죠.”

    아린이에게 폭언과 시비를 걸었던 스텐의 아버지. 스테리안 백작이 직접 아린이와 에탄에게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아니다. 내 자식이 잘못을 했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에탄의 말에 스테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허리를 더 깊게 숙였다.

    “백작님. 저는 괜찮아요.”

    그 모습을 본 아린이가 입을 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물론 마지막까지 그렇게 추한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지만요.”

    그 후 부드럽지만 뼈가 있는 뒷말을 이었다. 스테리안 백작이 그걸 듣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쓰윽.

    이어서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이번 일은 내가 따로 보상을 하도록 하겠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넘어가 줄 수 있겠나? 이번 연회에서 해야 할 게 좀 많아서 말일세.”

    “이해했습니다.”

    에탄이 스테리안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사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안 좋은 일이 퍼지는 걸 백작은 원치 않아 하리라.

    ‘특히 스테리안 가문이라면 더더욱 중요한 자리겠지. 이런저런 사업을 하는 가문이니까.’

    게다가 스테리안 가문은 예로부터 사업을 중점으로 큰 곳이니. 이 연회장이 더 중요하게 와닿으리라.

    “다시 한번 호의에 감사를 표하지. 내 조만간 칼라사르 가문을 찾아가겠네.”

    때문에. 스테리안 백작은 에탄과 아린이의 결정에 감사함을 크게 느끼면서.

    탁.

    “그럼. 먼저 자리를 비워보겠네.”

    다른 귀족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야.’

    그리고 에탄은 생각했다.

    저 스테리안 백작은 전생 때나 지금이나 감을 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끼익!

    그래서 스테리안 백작에 대해 생각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데이른 공작님이 입장하십니다!”

    연회장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이 연회를 주최하는 대상인 데이른 공작이 당도했다고 말이다.

    * * *

    데이른 공작은 용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 제국 전쟁 때 활약했던 용병 대장이었다.

    ‘공이 뛰어나서 북부 공작위라는 작위를 받았지.’

    한낱 용병이었던 그가 북부 공작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눈에 띄는 활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일어난 일이라,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물론. 에탄은 그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다. 벌써 몇십 년 전 과거의 일이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왜 황제폐하가 공작위를 줬는지 알 거 같네.’

    그 전쟁에서 데이른 공작의 활약이 과장은 아닐 거라는 거였다.

    ‘저게 어딜 봐서 100세 노인이라는 거야?’

    위풍당당하게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는 데이른 공작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에탄은 장담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데이른 공작과 싸우면 패배할 게 분명하다고. 그만큼 데이른 공작의 힘은 살아 있었다.

    쿵! 쿵! 쿵!

    연회장 천장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할 정도로 말이다.

    “역시… 데이른 공작님은 여전하군.”

    “저 나이에 저런 힘이라니.”

    “북부의 살아있는 괴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다른 이들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발 머리와 흰 수염이 무성한데, 그 기백은 여전히 산과 같으니.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이 자리에서 보여주는구나.’

    누구도 데이른 공작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아빠…저 사람이 데이른 공작님이에요?”

    그때. 아린이가 에탄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저 사람이 데이른 공작이야.”

    “엄청 강해 보여요.”

    그리고 두눈을 반짝이면서 데이른 공작을 쳐다봤다. 강자에게 도전하려는 도전자처럼 말이다.

    탁!

    그 순간 데이른 공작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 후 앞에 있는 의자에 앉고는.

    “모두 오랜만이군.”

    연회장에 있는 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연한 거였다.

    지금 여기서 데이른 공작보다 작위가 높은 자는 없었으니까.

    ‘북부에 있는 공작들은 자신들의 대연회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대연회를 개최하는 공작을 제외하면, 다른 공작들은 그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기에.

    이곳의 왕은 사실상 데이른 공작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사소한 소란이 벌어졌던데….”

    데이른 공작이 말끝을 흘렸다.

    쓰윽.

    그 뒤 에탄과 아린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잘 해결 된 거 같으니 더 말 안 하 겠다. 참고로 나도 꽤 재미있게 지켜봤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뒷말을 붙였다.

    ‘관심을 끌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데이른 공작이 흥미를 느낄만한 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린이와 스텐의 대련을 지켜봤구나!’

    하지만 바로 깨달았다.

    데이른 공작이 아린이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는 걸.

    ‘이거 의도치 않게 눈도장을 찍어 버렸네.’

    이득이라면 이득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공작의 관심을 끌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심지어 그게 나쁜 방식도 아니었으니.

    ‘잘만 한다면…’

    무언가를 얻어 갈 수도 있을 거라 생각 했다.

    “자. 그럼 어느 정도 대화도 나눈 거 같으니.”

    그렇게 에탄이 계산을 끝내는 순간, 데이른 공작이 다시 운을 뗐다.

    “춤은 생략하도록 하고.”

    “?”

    “이제부터 대련으로 판을 벌일까 하는데, 혹시 불만 있는 사람 있는가?”

    그리고 데이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도련님….”

    근처에 있는 모헨의 강렬한 눈빛이 에탄의 피부를 꿰뚫었다.

    “허허. 밤바람이 좋네.”

    그 순간만큼은 에탄도 모헨에게 나무라 할 수가 없었기에, 있지도 않은(?) 바람을 느끼면서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 * *

    데이른 공작은 싸움 구경을 좋아한다. 아린이와 스텐의 결투를 아무 말 없이 구경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게 분명했다.

    “대련에 참여할 자는 앞으로 나와라. 강제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번 대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모두 예상한 게 있었다. 바로. 데이른이 자체적으로 대련 대회를 열 거라는 거였다.

    “참가 조건은 저번과 똑같다. 각 가문의 후계자들만 대련을 허용하겠다. 그외까지 참여를 시키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이지.”

    물론. 대련의 규모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 일단 이번 행사는 대련이 아닌 ‘연회’가 주니까.

    “참가하겠습니다.”

    하지만 에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련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첫 번째로 말이다.

    “호오. 그대는 칼라사르 가문의 에탄 아닌가?”

    “예. 맞습니다.”

    데이른 공작이 앞으로 나온 에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대련에 참석한다고?”

    “예.”

    “자네는 검술을 배운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데이른 공작의 머릿속 에탄은 검술에 일가견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다룹니다.”

    “호오….”

    하지만 자신만만한 에탄의 대답에.

    “좋다. 참가하거라.”

    대련에 뛰어드는 걸 허락 했다.

    “그럼. 저도 하겠습니다.”

    그때. 에탄의 오른편으로 베르사르 가문의 장남인 테이벤이 나타났다.

    “?”

    에탄이 녀석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이 행사에 놈이 참여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나도 자격은 있다. 베르사르 가문의 후계자니까.”

    테이벤이 에탄의 반응에 덤덤하게 말했다. 자기도 이 대련에 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긴 하지.”

    “그럼 문제없지 않느냐?”

    “맞는 말이긴 한데 감당할 수 있겠어?”

    “무엇을?”

    “나를.”

    “….”

    그러나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흐음. 크음.”

    테이벤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다시 한번…생각해 봐야 하나?’

    자신이 여기에 출전하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 말이다.

    * * *

    에탄과 테이벤의 참석 이후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대련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참가해서 나쁠 건 없지.’

    참가자 대부분이 에탄과 비슷한 나이대였다. 그보다 더 어린 자들은 출전하지 않았다.

    “13살 미만은 참가 금지다.”

    데이른 공작이 참가 조건에 나이 제한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불만을 가지는 자는 없었다.

    ‘전생 때는 대련을 하다가 누군가의 두개골에 금이 갔다고 했던 거 같은데.’

    데이른 공작이 대연회에서 개최하는 대련은 상당히 살벌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관의 힘으로 바로 치료하기는 했지만…어린 애들이 하기에는 조금 그렇긴 해.’

    쓰윽.

    에탄이 생각을 끝내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면서 대련에 참여하는 후계자들의 얼굴을 살펴봤다.

    ‘이번 연회에 그 녀석은 안 온 건가.’

    하지만 그중에서 에탄이 찾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만나기만 해봐. 전생 시절 때의 빚을 톡톡히 갚아 줄 테니까.’

    연회에서 자신을 대놓고 무시했던 ‘놈’이었다. 하지만 에탄은 지금 녀석을 볼 수 없다는 거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앞으로도 연회는 계속 열릴 테니까.

    “자. 대충 정리가 된 거 같으니. 대진표를 만들도록 하겠다.”

    그렇게 총 12명의 후계자가 대련에 참여하게 됐다.

    “상대는 제비뽑기로 정한다. 모두 내 앞으로 와라.”

    데이른 공작이 그들을 자신의 앞으로 불렀다. 이어서 12개의 막대기가 들어있는 통을 내밀었다.

    “에탄. 너부터 뽑아라.”

    그 후 맨 오른쪽에 있는 에탄을 불렀다.

    “같은 색깔이 네 상대방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데이른 공작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통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쓰윽.

    막대기 하나를 뽑았다.

    ‘빨간색이네.’

    그리고 밑부분에 있는 빨간색 점을 발견하는 순간.

    “빨간색이군.”

    에탄의 다음 차례였던 테이벤이 막대기를 뽑았다.

    “…….”

    그리고 에탄의 손에 들려 있는 막대기의 색깔을 확인하고는.

    툭.

    자신이 뽑은 막대기를 힘없이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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