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연회가 열리기까지 이틀이 남았다. 보통 사람들은 그동안 휴식을 취한다.
공작령에 있는 가게를 둘러보거나, 아니면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말이다.
“아린아. 아빠랑 같이 놀게 된 기분이 어때?”
“너무 좋아요!”
하지만 에탄. 아린이. 뇽뇽이.
이 세 명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뇽뇽이도 좋음.”
“그래. 그래. 너희 둘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니까 아빠도 뿌듯하다.”
에탄이 두 사람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저기.”
그때. 뒤쪽에 서 있던 모헨이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여기에 저도 포함되는 겁니까?”
그리고 자신은 이 놀이에 왜 들어가 있어야 하냐고 물었다.
당연한 거였다.
애당초 모헨은 이런 식으로 일정이 진행된다고 듣지도 못한 상태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쉬고 싶기까지 했는데.
“내가 노는데 전속 기사가 쉬는 건 말이 안 되지.”
에탄이 그걸 눈감아주지 않았다.
“네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 나보다 강해졌을 때야.”
“…알겠습니다.”
모헨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떨궜다.
“그래. 마탑주인 내가 특별히 상대해주는데 이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그 순간. 모헨의 맞은 편에 있는 화염의 지배자가 입을 열었다.
“예. 영광이죠…그렇긴 한데….”
그녀의 말에 모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귀한 기회다.
“저는 아직 마탑주님을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서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력이 어느 정도 받쳐졌을 때의 이야기라고 모헨은 생각했다.
“이건 애기한테 뛰는 법을 알려주는 거랑 똑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름 논리를 가지고, 자신이 여기에 끼는 건 무리라고 이들에게 말해봤지만.
“모헨.”
“예. 도련님.”
“근데 넌 다 큰 어른인데 왜 애기를 기준으로 얘기하냐? 네가 갓난아기는 아니잖아.”
“…….”
에탄의 반박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게다가 너는 내 전속 기사잖아. 당연히 이런 자리에 참석해서 실력을 늘려야지.”
“아니…급이 너무 다르시지 않습니까?”
“언제까지나 약한 애들이랑 싸울건 아니잖아. 강한 적을 마주쳤을 때 대처 하는 법도 알아야 해.”
게다가 이어지는 말도 논리적이었기에.
“끄응.”
모헨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상대하겠습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왓네.”
“대신.”
모헨이 말을 멈추고는 에탄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연회가 끝나있었다. 같은 일만 안 벌어지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면서 배운 춤을 한번 춰보기라도 해야 억울하지 않을 테니까요.”
장황하게 뒷말을 붙였다.
요약하면 연회에는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알겠어.”
에탄이 모헨의 청에 픽 웃었다.
하지만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만큼 고생을 많이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 줄 테니까 최선을 다해. 어차피 여기는 화염의 지배자님이 만든 초원이니까 마음껏 날뛰어도 되거든.”
스릉!
에탄이 모헨에게 말을 마치고는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달려 들어!”
“우아아!”
두 다리를 있는 힘껏 박찼다.
* * *
화염의 지배자는 불을 중점으로 다루는 마법사다.
“마탑주를 상대 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깨닫게 해줄게.”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성격은 타의를 불허할 정도로 화끈했다.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한번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장을 보는 심보가 있었으니.
“어디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고.”
그녀는 이번 대련에서 에탄과 나머지 사람들을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걱정 하지 마. 내가 씌어준 방어막이 깨지면 이 공간에서 나가질 테니까.”
물론 안전장치는 있었다.
그녀가 자체적으로 에탄과 이들에게 부여해준 쉴드 마법. 그 방어 마법이 깨지면 공간에서 나오게 조치했다.
“그럼 저도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마음을 다한다는 방증이나 마찬가지니.
에탄은 처음부터 비수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타아아악!
에탄이 있는 힘껏 달리던 두 다리를 멈춰 세웠다. 동시에 허리를 비틀면서.
-우우웅…!
달리면서 모아온 달빛의 힘을 검에 집중시키고.
…!
화염의 지배자가 있는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파아앗!
그러자 달빛의 기운을 머금은 검격이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공기가 갈리고 초원에 있는 풀들이 갈릴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었다.
“흐음.”
하지만 화염의 지배자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다는 표정으로 에탄의 검격을 쳐다보면서.
쓰윽.
오른손을 앞으로 뻗더니.
“사라져라.”
말 한마디를 가볍게 ‘툭’ 뱉었다.
파아앗….
그러자 에탄이 만들어낸 검격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뇽뇽아!”
“흐응!”
하지만 에탄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의 검격이 막힐 거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으니까.
[…….]
그래서 곧바로 미리 준비한 다음 ‘수’ 중 하나인.
우웅…
뇽뇽이의 마법을 발동시켰다.
아린이와 모헨을 공중에 띄워주는 공중부양 마법이었다.
“모헨. 아린. 달려 들어!”
“예!”
“네!”
모헨과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그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쓰릉!
검을 빼들고는.
“오른쪽 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두 사람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맞아준다고 한 적은 없어.”
동시에 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뻗고.
“집어삼켜라.”
조금 전처럼 말을 내뱉는 순간.
-웅….우우웅…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솨아아…
“…미친.”
그리고 에탄은 목격하고 말았다.
“이건.”
거대한 원형 마법진 안에서.
“해도 해도 너무한데.”
초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불덩어리. ‘메테오’ 가 지상으로 떨어지는걸.
* * *
“이제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련은 마탑주인 그녀의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됐다.
“예. 잘 알 거 같습니다.”
하지만 에탄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심을 다 하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리고 화염의 지배자님이 얼마나 치사한지도 이번 대련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의도치 않게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됐다. 화염의 지배자는 자신처럼(?) 상당한 철면피라는 거였다.
“치사한 게 아니라 똑똑한 거라고 해줄래?”
“진심으로 그런 대답을 원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인정은 하겠습니다.”
에탄이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하나. 부정할 수는 없었다.
“주변 환경부터 흘러가는 흐름까지. 모든 걸 꿰뚫어 보셨더군요. 역시 백 년 가까이 살아오신 위대하신 마탑주님다웠습니다.”
“크흠!”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리고 아린이. 뇽뇽이. 모헨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린이는… 아무것도 못 했어요.”
“뇽뇽이도. 마찬가지임….”
“저는… 도대체 뭘 위해서 훈련을 한 건지….”
방바닥에 침울하게 앉아있는 세 사람을 향해서 말이다.
“아린이와 뇽뇽이의 기까지 죽이는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군요.”
“…한 명 더 있지 않니?”
에탄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가 두눈을 꿈뻑였다. 자신의 눈에는 모헨도 풀이 잔뜩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모헨은 상관 없습니다. 저 녀석은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네.”
하지만 이어지는 에탄의 대답에 납득 하고는.
“원래 어릴 때일수록 큰 벽을 느껴봐야 해. 그래야 더 강해지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거든.”
메테오를 땅에 떨군 이유를 말해줬다.
“게다가 이런 고위급 마법을 보는 건 흔치 않은 기회라고? 그러니까 좋은 수련이었다고 생각해.”
“으음….”
에탄이 그녀의 말에 침을 삼켰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녀의 주장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애들 상대로 이렇게까지 한다고?’
다만. 좀 더 놀아줘도 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은 여전했다. 아린이와 뇽뇽이가 저렇게 침울해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나는 약속한 대로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마.”
그때. 화염의 지배자가 뒷말을 붙였다.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피고는.
“그럼 난 가본다.”
에탄의 방을 빠져나갔다.
“후우….”
그리고 방문을 닫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녀는 대련을 끝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하마터면 여지를 줄 뻔 했네.’
그 후 조금 전에 있었던 대련 상황을 천천히 복기해봤다.
‘그 무식한 힘은 도대체 뭐지?’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에탄이 맨 처음 보였던 달빛의 힘이었다.
‘마력이 순식간에 빠져 나갔어.’
에탄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연무장이 그녀의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만약 장소가 화염의 지배자가 만든 세계가 아니라, 이런 현실이었다면.
‘방어 마법을 더 길게 영창했어야겠지.’
시간은 그녀가 아니라 에탄의 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뒤에 뇽뇽이가 보여준 공중 부양 마법과… 아린이와 모헨이라는 기사의 움직임까지.’
거기에 이어지는 후속타도 상당히 훌륭했다고 그녀는 평가했다.
“그래도 나한테는 안 되지.”
물론. 어디까지나 봐줄 만 하다는 거지. 그녀에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나중에 몇 번 더 해보자고 할까?”
다만. 어지간한 일에는 시큰둥한 그녀에 관심을 끌어 올리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