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테이벤은 자신의 목숨을(?) 걱정했다.
‘이 자식을 어떻게 가르치지?’
에탄을 가르치다가 저 막돼먹은 주먹이 얼굴에 꽂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춤의 기본이 되는 발동작부터 알려 주마.”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음?”
하지만 테이벤의 예상과 다르게 에탄은.
척. 척. 척.
“이렇게 하는 거 맞지?”
“…그래.”
생각보다 춤에 소질이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테이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에탄이 춤을 처음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전생 때 춤을 조금 배워 놓은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하지만 그건 테이벤의 착각이었다.
에탄은 전생 때 춤을 춰 본 적이 있었다. 망나니에서 벗어난 뒤부터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단 말이지.’
그러나 춤을 기가 막히게 잘 추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에탄은 베르사르 가문에 찾아오지도 않았으리라.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 기본기는 어느 정도 할 줄 아니까.”
“…그래. 그렇게 보이는군.”
에탄의 독촉에 테이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그리고 에탄에게 심화 과정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에탄. 생각보다 습득력이 빠르구나.”
결론적으로 에탄은 몇 시간도 안 걸려 춤을 완벽히 습득했다.
“이걸로 내가 아는 건 다 알려 줬다.”
전생 때의 경험과 테이벤의 살기 위한 가르침(?)이 합쳐진 눈물겨운 결과였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네.”
그 과정이 험난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거였다.
테이벤이 에탄에게 맞지 않기 위해,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 줬기 때문이다.
그것도 1대1 개인 강습으로 말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모헨뿐인가?”
에탄이 테이벤과의 대화를 끝내고,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아린이, 뇽뇽이, 모헨이 포이른과 베이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춤 너무 재밌어요!”
“신남!”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는 생각보다 춤에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재미까지 느끼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으리라.
“생각보다 재능이 있구나.”
“그러게요.”
두 사람을 가르치는 베이른과 포이른이 감탄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에 비해서… 모헨 님은.”
“크흠.”
하지만 딱 한 사람. 에탄의 전속 기사인 모헨은 두 사람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직도 혼자 첫 번째 동작을 반복하고 있을 정도로 모헨의 습득력은 최악이었다.
“아니다. 맨날 검만 휘두르던 기사였으니 그럴 수도 있지. 너무 기죽지 말거라.”
베이른이 모헨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위로의 말을 더 이어 가려는 순간.
“모헨. 아직도 그러고 있어?”
에탄이 모헨을 향해 다가왔다.
“내가 대신 알려 줄까? 테이벤에게 어지간한 건 다 배웠는데.”
그리고 모헨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제안을 건넸다.
“아닙니다! 도련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모헨이 그 말을 듣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에탄이 자신을 가르치는 순간 앞날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였다.
“그러니까 도련님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때문에 어떻게든 에탄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아니야. 아니야. 생각해 보니까 언제까지고 베이른 가주님과 포이른한테 맡길 수는 없겠더라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따라와. 넌 특별히 내가 일대일 전담으로 알려 줄게. 참고로 거절은 거절한다.”
“아아….”
에탄의 말에 모헨이 탄식을 내뱉었다.
질질질.
하지만 에탄에게 반항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걸 마탑에서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음.”
베이른이 에탄의 손에 끌려가는 모헨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럼 우리끼리 수업을 이어 나가자.”
하지만 모헨을 구해 주지는 않았다.
에탄의 마수가(?) 뻗친 이상, 그를 빼돌릴 방법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 * *
에탄이 뇽뇽이, 아린이, 모헨과 함께 베르사르 가문에 머문 지 일주일이 지났다.
“모헨 님. 얼굴이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데요?”
“저러다 죽음.”
그동안 모헨은 에탄에게 붙잡혀 혹독한 수련을 해야만 했다. 연회장에서 보란 듯이 춤을 추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고 있군.”
“에탄의 수련법이 효과가 있는 거 같습니다.”
“에탄 형이 조금 무섭기는 하죠….”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게 있었다. 날이 갈수록 모헨의 실력이 좋아진다는 거였다.
“살려 줘… 제발 저를 살려 주십셔….”
모헨이 자신을 바라보는 다섯 명의 구경꾼에게 손을 뻗었다. 홀쭉해진 몰골에 도움을 줄 법도 했지만.
“흐음….”
“음.”
아린이, 뇽뇽이, 베이른, 테이벤, 포이른. 이 중에서 그 누구도 모헨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지 않았다.
“모헨 님 파이팅! 아빠한테 열심히 배우세요.”
“할 수 있음.”
오히려 아린이와 뇽뇽이는 모헨에게 좀 더 굴러지라고(?) 응원의 말을 보냈고.
“그 정도는 감수해야 기사로서 성장할 수 있네.”
“에탄. 네 기사님이 아직 체력이 남아나는 거 같다.”
“에탄 형님. 좀 더 많이 가르쳐드려도 될 거 같아요.”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래? 그러면 휴식 시간 없이 바로 이어서 가야겠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모헨에게 다가갔다.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는 모습이 섬뜩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처억!
어차피 자신들이 에탄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니까.
“자. 다시 춤추러 가자.”
에탄이 모헨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그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헨을 손으로 끌어당겼다.
“안 됩니다. 안 돼에에!”
에탄에 의해 안쪽으로 끌려가는 모헨이 절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헨을 구해 주지 않았다.
.
.
.
‘드디어 때가 왔다.’
그리고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 북부에 있는 모든 가문이 모이는 대연회로 향하는 날이 찾아왔다.
* * *
대연회가 열리는 장소로 출발하는 날. 칼라사르 가문과 베르사르 가문은 만나서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벌써 대연회를 같이 갈 정도로 관계가 좋아질 줄이야.’
에탄이 그 사실을 상기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원래 이 시기에 두 가문이 모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전생 때는 그랬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오반과 베이른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아빠! 저기 할아버지가 왔어요!”
그래서 격세지감을 느끼려는 찰나.
아린이가 맞은편에서 오는 칼라사르 가문의 마차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덜커덩!
그 순간 두 대의 마차가 아린이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끼익!
이어서 문이 열리고 안에서 지오반과 빌헬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오반 할아버지!”
아린이가 두 사람의 등장에 환하게 웃었다. 동시에 총총걸음으로 그들에게 달려갔다.
“아린아 잘 지냈느냐?”
“네! 열심히 춤 배우면서 지냈어요!”
그러자 지오반이 아린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흐응!”
뒤에 있는 뇽뇽이가 그걸 보고는 콧방귀를 뿜어냈다. 자신에게도 인사를 해 달라는 항의 아닌 항의였다.
“그래. 뇽뇽이도 보고 싶었다.”
지오반이 그걸 보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뇽뇽이를 달랬다. 그러면서 뇽뇽이의 머리를 쓸어 만졌다.
“뇽뇽이! 춤 잘 춤!”
“호오? 정말이냐?”
“사실임! 칭찬 많이 받음!”
뇽뇽이가 어깨를 펴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피나는 연습을 해 왔기에. 이제는 춤을 추는 거에 자신이 있었다.
“그럼 이번 연회에서 활약하겠구나.”
“당연함!”
뇽뇽이가 지오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 빨리 가고 싶음!”
그리고 지오반에게 얼른 움직이자고 독촉했다.
“그래. 그래. 얼른 출발하자꾸나.”
지오반이 그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동시에 에탄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뒤에 있는 마차에 타거라. 편의 마법이 설치되어 있으니 가는데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칼라사르 가문의 인장이 박혀 있는 마차에 타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지오반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 후 아린이, 뇽뇽이와 함께 뒤에 있는 마차에 타려는 순간.
“아빠. 오늘은 할아버지랑 같이 가도 돼요?”
아린이가 뜻밖의 부탁을 해 왔다.
“할아버지랑?”
“네.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보는 거니까요.”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아린이의 물음에 답하려는 순간.
“그래! 이 할아버지랑 같이 가자꾸나!”
지오반이 먼저 선수를 쳤다.
“뇽뇽이도 같이 타고 싶음!”
“그래. 그래. 뇽뇽이도 타거라!”
“흐응!”
심지어 뇽뇽이의 동승까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허락했다.
‘손주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네.’
에탄이 그걸 보고는 기쁨을 느꼈다.
‘나는 같은 마차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던 거 같은데.’
그리고 잊고 있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에탄이 어릴 때 철저히 자신과 거리를 뒀던 지오반의 모습을 말이다.
‘…그래. 내가 좀 막돼먹긴 했지.’
하지만 그걸로 에탄이 삐질 수는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지 이해가 갔으니까.
‘그런데 이 패배감은 뭐지?’
그래도 마음이 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게.”
그때 지오반이 빌헬름에게 무어라 입을 열었다.
“예. 알겠습니다.”
빌헬름이 그 말을 듣고는 쓸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터벅터벅.
그리고 에탄을 향해 힘없이 걸어와서는.
“저는 도련님이랑 같이 타야 합니다.”
“음?”
같은 마차에 합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탄이 그걸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빌헬름은 지오반의 호위 기사이기에 지오반과 같은 마차에 타는 게 맞기 때문이다.
“아린 님과 뇽뇽이 님이 올라타면 마차에 자리가 없을 거라고… 저보고 도련님이랑 같이 오라고 했습니다.”
“아.”
하지만 이어지는 빌헬름의 대답을 듣고는.
“…….”
조용히 빌헬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
그를 조용히 위로해 줬다.
“가자.”
“예….”
그리고 빌헬름과 함께 뒤에 있는 마차에 올라타고.
덜커덩!
대연회가 열리는 장소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