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오랜만입니다.”
에탄이 자신의 둘째 형을 빤히 바라봤다. 붉은 머리카락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짙은 눈동자.
독특한 성격만큼 신기한 외모를 가진 그의 얼굴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리든 형님.”
에탄이 그런 둘째 형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현생에서는 처음으로 말해 보는 거였다.
“세상에.”
물론 리든의 입장에서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자신을 저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짝!
때문에 리든은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때렸다. 혹시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현실인데?”
하지만 뺨을 때린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곳은 리든의 꿈속 세상이 아닌 현실이었으니까.
“현실입니다.”
에탄이 리든의 행동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여기는 꿈이 아니라고 친절하게 답해 줬다.
“맨날 눈도 안 마주치고 허구한 날 나랑 첫째 형님을 피하려고 하던 게 너였는데?”
리든이 그런 에탄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기억하는 에탄은 망나니였던 모습밖에 없었다.
가문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눌 때까지도 말이다.
“정말 내가 알던 에탄이 맞는 건가? 사실은 마계에서 온 고위급 마족 아냐?”
“…그랬으면 제가 악마 숭배자를 죽일 필요가 없겠죠.”
리든의 추론에 에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리든은 장난으로 말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가설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터억!
에탄의 손을 붙잡았다.
“…….”
그리고 미묘한 눈빛으로 에탄을 빤히 쳐다보는 순간.
‘……?’
리든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에탄의 팔을 통해 스며들기 시작했다. 에탄의 몸으로 말이다.
-우웅!
“형님. 일어나신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리든의 기운은 에탄의 몸을 끝까지 탐색하지 못했다. 달빛의 힘을 통해서 에탄이 리든의 기운을 그한테 되돌렸기 때문이다.
“…어?”
리든이 그걸 깨닫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다. 이렇게 내 몸이 약했나?”
자신의 힘이 에탄에게 밀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제가 성장한 겁니다.”
“…재수 없게 말하는 건 여전히 변함이 없구나.”
“그래도 정신은 차렸습니다.”
에탄이 리든의 말에 당당하게 답했다. 망나니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천사나 다름없었다.
“흐음.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처럼 변하기는 했구나.”
리든이 에탄의 대답을 들으면서 눈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에탄의 변화된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살도 많이 빠지고… 내가 모르는 힘도 가지고 있고 말이야. 이야~ 이거 이제는 마냥 막내라고 귀여워해 줄 수 없겠는데?”
“…….”
“농담이야. 농담!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귀여워하겠니.”
리든이 정색하는 에탄을 보고 손을 휘저었다.
“하아.”
에탄이 그걸 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는 둘째 형이 맞네.’
하지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정말 몸에 이상이 있었다면, 저런 반응이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신기하긴 하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뀌지? 혹시 무슨 약이라도 먹었나?”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음?”
“어떤 임무를 하고 계셨던 건지 알고 싶습니다.”
에탄의 말에 리든이 혼잣말을 멈췄다.
“악마 숭배자들을 토벌하고 있었어.”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다.
“처음에는 나 말고도 많은 녀석들이 있었는데 다 죽었어. 그래서 이제는 함께하는 놈이 없네.”
“…….”
리든이 말을 마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에탄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다가 단호하게 뒷말을 이었다.
“제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니까요.”
에탄 또한 리든과 비슷한 경험을 해 봤으니까. 전생의 마지막 순간은 물론이고, 여러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말이다.
“에탄….”
리든이 에탄의 대답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의 눈빛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압니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거냐?”
“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형님이 저를 도와주신다면 더 확언할 수 있고요.”
“흐음….”
에탄의 말에 리든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계획은 있겠지?”
“물론이죠.”
“한번 말해 봐. 그걸 들어보고 결정할 테니까.”
리든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숨을 들이마시고는.
“일단 북부를 통합해야 합니다.”
리든에게 자신이 구상한 큰 그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원하는 보구를 하나씩 골라 보게.”
다음 날 에탄은 다시 한번 케레니아 왕국의 국왕에게 호출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대들도 마찬가지네. 모두가 공을 세운 것이니 사양 말고 가져가도록.”
에탄과 함께한 아린이, 뇽뇽이, 모헨. 거기에 악마 숭배자에게 잡혀 있었던 리든까지.
총 다섯 명이 케레니아 왕국의 보구 보관고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얻어 냈다.
“정말 가지고 싶은 걸 가져가도 괜찮나요?”
아린이가 국왕을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래.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손에 들고 나오거라.”
국왕이 그 모습을 보고 얕게 웃었다. 그 또한 아린이를 보고 흐뭇함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귀여운 딸아이를 뒀군.”
그래서 에탄을 부럽다는 듯 바라봤다.
“거기다 쏙 빼닮기까지 했어.”
국왕이 에탄과 아린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백발의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금색 눈동자까지.
두 사람의 외모가, 누가 봐도 아버지와 딸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딸이 몇 살인가?”
“다섯 살입니다.”
“허어… 다섯 살. 그 나이에 벌써 검을 들다니.”
거기에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을 들고 함께 악마 숭배자를 토벌하고 있으니.
“정말 훌륭하구나.”
국왕은 아린이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물론. 그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뇽뇽이도 자연스럽게 칭찬해 줬다.
“흐응!”
뇽뇽이가 국왕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흐으음… 이런 훌륭한 딸에 비하면 공주는….”
그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내 딸은 지금… 아니다. 굳이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국왕의 딸은 지금도 한창 사고를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펠에르데르 공주였나?’
에탄은 국왕이 말하는 공주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펠에르데르라는 이름을 가진 21살의 여자였다.
‘공주가 가출했다는 소식이 발표되는 건… 한두 달 뒤였지.’
펠에르데르의 가출.
그 사실이 공표되는 건 지금보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다.
그래서 현재는 이 사실을 아는 이가 거의 없지만, 에탄은 그녀의 딸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전생 때도 그랬기 때문이다.
“여튼. 원하는 보구가 있으면 그걸 가져가도록 하고 혹 없다면 다른 걸로 보상을 해 주겠네.”
펠에르데르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하려는 찰나.
“태양 기사단의 기사 단장 테이론입니다. 보구가 보관되어 있는 장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에탄과 이들을 향해 테이론이 다가왔다.
“가시죠.”
그리고 보구가 있는 보관서로 안내했다.
* * *
보통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장인일수록 더 까다롭게 선별하지.’
에탄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랬으면 검사들이 좋은 검을 찾기 위해 그렇게 목숨을 걸 리가 없으니까.’
살아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을 다루는 실력이 늘수록 더더욱 느꼈다.
장인이 다루는 도구는 아주 중요하다는 걸.(하단에 표시한 부분이랑 반복되는 듯합니다.)
“도착했습니다.”
그때 앞에서 걷던 테이른이 걸음을 멈췄다. 에탄이 그의 말에 생각을 끝냈다.
‘…무지막지하게 크네.’
그 후 눈앞에 있는 문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보구를 보관하는 장소 답네.’
온갖 방어 마법이 문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높이와 두께도 타의를 불허할 정도였으니.
“아빠. 이 정도면 우리 가문에 있는 지하실 문보다 더 큰 거 아니에요?”
“더 큰 거 같음!”
아린이와 뇽뇽이도 감탄을 하는 게 당연했다.
“이거 좀 탐나네. 문짝만 때서 들고 가면 안 되나?”
“…가져가시면 큰일 날 겁니다. 리든 도련님.”
리든의 말에 모헨이 기겁하면서 말렸다. 리든이라면 진심으로 그러고도 남을 인물 같았기 때문이다.
“왜?”
“딱 봐도 다시 만들기 힘들어 보이니까요.”
“흐음. 그렇구만.”
“저도 마음 같으면 리든 도련님과 같이 가져가고 싶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리든의 욕심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모헨도 가능만 하다면 가져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정도로 보관소를 지키는 출입문은 빈틈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문은 보구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대신 안에 있는 보구들은 챙겨 가셔도 됩니다. 그러니 문에 대한 욕심은 접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끄응….”
테이론의 말에 리든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동시에 조금 억지를 부려 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형님. 그쯤 하시죠.”
“하지만-”
“저와 어제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에탄이 그걸 알아차리고 리든을 만류했다.
“좋아. 포기할게.”
그리고 리든은 에탄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어제 북부 통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에탄과 약조한 게 있었으니까.
“대신 안에서 마음에 드는 건 무조건 가지고 나올 거야.”
“그러셔도 됩니다.”
리든의 말에 에탄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에탄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말리지 않았다.
쿠쿠쿵!
그 순간 보관소를 지키는 문이 옆으로 움직였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테이른의 말에.
꿀꺽.
에탄과 리든이 침을 삼켰다.
“형님. 이상한 거 고르시면 안 됩니다.”
“당연하지. 너도 마찬가지다.”
“물론이죠.”
그러면서 탐욕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는, 사이 좋게 보관소 안으로 들어갔다.
.
.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까아앙!
보관소에서 두 사람의 검이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