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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68화 (68/200)

제68화

“…….”

에탄의 감겨 있던 두 눈이 떠졌다.

‘여기는 어디지?’

그러자 처음 보는 공간이 시야에 나타났다. 고급스러운 소파와 나무 탁자가 자리를 잡은 방이었다.

‘나는 분명….’

에탄이 낯선 풍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놈을 죽이려는 순간 하얀빛이 시야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된 상태였다.

“호오. 생각보다 정신을 빨리 차렸군.”

그때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에탄의 귓가에 들려왔다.

‘어느새?’

에탄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몸을 흠칫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남자가 인기척도 없이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

에탄이 남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가 자신의 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탄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의자에 착석한 상태였다.

“걱정 말게. 나는 자네를 해칠 생각이 없으니까.”

남자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 에탄을 향해 씩 웃었다. 나이대에 맞지 않는 느긋한 말투와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방 안에 있는 다양한 마법 서적과 완전히 해진 검은 로브까지.

“…혹시 마법사입니까?”

누가 봐도 마법사의 방이었기에.

에탄은 남자에게 정중하게 정체를 물었다.

“눈치가 마냥 없지는 않군.”

남자가 에탄의 말에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군.’

에탄이 그런 남자의 얼굴을 눈으로 훑어봤다. 백발 머리에 푸른 눈동자. 어찌 보면 에탄과 흡사한 점이 많은 남자다.

‘다르다.’

그러나 에탄은 알수 있었다.

저 남자랑 자신은 비슷하지 않다는걸 말이다.

“자네가 여기에 왔다는 건, 베르사르 가문이 아직 멀쩡하다는 뜻이겠지?”

그때 남자가 에탄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예? 예… 일단은 잘살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군.”

그리고 에탄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베르사르 가문과는 무슨 관계이십니까?”

에탄이 입꼬리가 올라간 남자를 보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베르사르 가문의 이름이 나오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걸 벌써 알려 주면 재미가 없지.”

하지만 남자는 에탄의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언젠간 다시 볼 날이 올 거야. 그러니까 반지 소중하게 가지고 있게.”

대신 에탄에게 반지를 잘 간직하라고 말하고는.

따악!

손가락을 허공에 튕겼다.

…!

그 순간 에탄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여기는….”

“에, 에탄 도련님!”

케레니아 왕국의 대형 연무장이었다.

* * *

“끄으윽….”

“허리. 허리가 나갈 거 같아….”

“난 눈이 너무 아파….”

케레니아 왕국의 대형 연무장에 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대체 그 폭발은 뭐였지?”

“하마터면 정말 다 죽을 뻔했어.”

바로 전 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폭발이 원인이었다.

“모두 무사한가!”

그때 태양 기사단의 기사 단장, 테이론의 우렁찬 목소리가 이들의 귀에 들려왔다.

“예! 전원 생존했습니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습니다!”

그의 물음에 태양 기사단의 기사들이 힘차게 답했다.

“마법사들도 무사합니다.”

그리고 실드 마법을 펼친 마법사도 테이론의 질문에 덤덤하게 답했다.

“좋아. 그러면 다-”

“어!”

테이론이 진열을 갖추라고 명령하려는 찰나, 한 기사가 구멍을 손으로 가리켰다.

“구. 구멍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구멍이 비틀리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전투 준비!”

테이론이 기사의 말에 다급히 뒷말을 붙였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기사들이 전투 대열을 취했다.

척!

그리고 긴장감 가득한 표정으로 구멍을 쳐다보는 그때.

-…웅!

구멍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 나타났다.

쿵!

동시에 구멍에서 나온 녀석이 바닥에 떨어졌다.

“거… 거미?”

“거미잖아?”

“그런데… 이미 죽은 거 같은데?”

에탄이 상대했던 악마 숭배자였다.

“세상에….”

“지독하게 크군.”

태양 기사단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놈의 시체를 보고 침을 삼켰다. 척 보기에도 어마무시한 크기의 괴물이었으니.

“만약 우리가 상대해야 했다면….”

아무리 기사단이 들어간다고 해도, 치명상을 면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했다.

-우웅!

그때. 다시 한번 구멍이 크게 요동쳤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그걸 보고 침을 삼켰다.

그 후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균열을 쳐다보는 순간.

폴짝!

“나왔음!”

뇽뇽이가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온몸에 검은색 가루를 묻힌 채 말이다.

“으으… 눈이 너무 부셔요.”

“전 아직도 눈을 제대로 못 뜨겠습니다.”

그건 아린이와 모헨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두 사람은 주먹만 한 거미들과 전투까지 치렀으니.

“돌아가면 바로 샤워부터 해야겠어요.”

“…살다 살다 이렇게까지 더러운 전투는 처음이었습니다.”

뇽뇽이보다 더 너저분한 상태였다.

주위에 있는 누가 봐도 그렇다고 할 정도로.

웅!

“여기는….”

그렇게 세 사람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탄이 마지막으로 균열을 빠져나왔다. 세 명 중에 제일 멀쩡한 상태였다.

“에. 에탄 도련님!”

소이테르가 그런 에탄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외쳤다.

타탁!

그 후 허겁지겁 에탄을 향해 다가가서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에탄을 살펴봤다.

“멀쩡해.”

에탄이 소이테르의 물음에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하지만… 형은 결국 찾지 못했어.”

그러나 표정이 마냥 밝지는 못했다.

자신의 둘째 형을 저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소이테르가 그 말을 듣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의 둘째 도련님이 저 안에 없었다는 건.

최악의 경우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둘째 도련님은 결국….”

그래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두워지려는 찰나.

파아아악….

거미 형태로 죽은 악마 숭배자의 육체가 녹아내렸다.

“……!”

그리고 그 안에서.

“도련님!”

칼라사르 가문의 둘째 아들인 리든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초록색 액체가 묻은 채로 말이다.

* * *

에탄이 악마 숭배자를 처리함으로써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대의 공헌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네.”

그 덕분에, 에탄은 케레니아 왕국의 국왕과 독대로 식사를 하게 됐다.

제안이 들어 왔을 때부터 거절할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케레니아 왕국의 국왕과 독대를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아닙니다, 폐하.”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을 치켜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가치를 떨어트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에탄이 국왕의 말에 고개를 꾸벅였다. 그 후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의 용모를 살펴봤다.

‘확실히 힘이 있군.’

흰머리와 흰 눈썹이 무성할 만큼 나이가 많은 왕이었다. 하지만 눈에는 여전히 총명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직 자신은 건재하다는 걸 증명하듯이 말이다.

‘하긴 그러니까 왕국을 이렇게 번영시킨 거겠지.’

전생 때도 에탄은 국왕을 본 적이 있었다. 아주 먼 거리에서 말이다.

‘북부가 멸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케레니아 왕국의 국왕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심지어 에탄이 죽는 순간까지도.

케레니아 왕국의 국왕은 살아 있었으니.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에탄은 이참에 국왕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북부 멸망을 막아 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테니까.

“혹시 바라는 게 있다면 서슴없이 말해 보게.”

그때 국왕이 앞에 있는 고기를 포크로 집어 들었다. 그러면서 에탄에게 보상을 말하라고 했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손을 멈칫했다.

“말할 때가 아니다….”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에탄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혹시. 자네가 원하는 걸 못 이뤄 줄까 걱정되는 건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면 어째서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인가.”

케레니아 왕국의 국왕이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안 가는 대답이었다.

“정말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흐음….”

하지만 에탄은 자신이 저리 답한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지금 말해 봤자 어차피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요구가 아닌 부탁?”

“예.”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나중에 저희 가문에서 연회를 열 때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에탄은 케레니아 왕국의 국왕에게 다른 걸 요구했다.

“부탁은 그게 끝인가?”

“지금은 그렇습니다.”

“흐음….”

케레니아 왕국이 에탄의 말에 턱을 쓸어 만졌다. 그러면서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단순히 검을 쓰는데 능한 자라고 생각했지만.

‘재밌군.’

지금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평가를 고치게 됐다.

“좋네. 왕국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참석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래서 에탄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그의 마음속에 흥미가 생겼으니까.

“그럼 이제 슬슬 식사를 하도록 하세. 내가 배가 좀 많이 고파서 말이야.”

이어서 자신의 허기진 배를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얕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국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 접시에 있는 고기를 집어 들었다.

‘…에탄이라.’

하지만 국왕의 시선은 에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 * *

그렇게 에탄은 케르사르 왕국의 국왕과 30분 가까이 독대했다.

“이쪽입니다.”

이후 만남이 끝나고도 에탄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에탄은 자신을 안내하는 시녀와 긴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제법 호화롭게 꾸며져 있는 방문 앞에 도착했다. 왕국 귀빈들이 머무는 최고급 방이었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시면 됩니다.”

시녀가 방문을 살펴보는 에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그래.”

에탄이 그걸 보고는 알겠다는 듯 얼굴을 까딱였다.

끼익….

그리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

침대에 누워 있는 둘째 형이 시야에 들어왔다. 집사들에 의해서 몸이 깨끗이 씻겨진 상태였다.

“후우.”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연 방문을 닫고는.

터벅터벅.

둘째 형이 누워 있는 침대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드르륵.

그 후 옆에 있는 의자에 앉자마자.

“이제 주무시는 척은 그만하시죠. 형님.”

누워 있는 둘째 형을 향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흐음?”

스르륵.

그 순간 에탄의 둘째 형이 감겨 있던 눈을 떴다.

동시에 흥미가 가득한 얼굴로 에탄을 쳐다보고는.

“너… 상당히 재밌어졌다?”

입꼬리를 히죽거리면서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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