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8개의 다리와 8개의 눈은 거미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안녕. 친구들?”
하지만 거미는 사람보다 크지 않다. 지금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악마 숭배자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인사를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나?”
에탄이 악마 숭배자의 인사에 미간을 찌푸렸다. 거미의 입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다니.
이보다 더 기괴한 현상은 흔치 않으리라.
“섭섭한걸. 그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나름대로 관계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에탄의 말에 악마 숭배자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은 영락없는 20대 여자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간인 상태로 만날 걸 그랬나?”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걸.”
에탄이 악마 숭배자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마족이 아니기에 반지가 반응을 하지는 않았지만.
“네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까지 숨길 수는 없을 테니까.”
악마 숭배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운은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전생 때 지겹도록 놈들을 경험했으니까.
“흐으음.”
에탄의 대답에 악마 숭배자가 호기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씨익.
그리고 땅에 있는 네 사람을 쳐다보면서 입꼬리를 올리는 순간.
“온다.”
에탄이 두 다리에 힘을 줬다. 동시에 놈이 온다는 말을 내뱉었다.
촤아악!
그러자 놈의 입에서 두꺼운 거미줄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을 묶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놈이었다.
서걱!
“흐음?”
하지만 녀석이 뿜어낸 거미줄은 제힘을 쓰지 못했다. 옆에 있는 모헨이 단칼에 베었기 때문이다.
“역시 날로 먹을 수 없는 건가.”
악마 숭배자가 그걸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8개의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파아앙!
에탄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거미가 허공으로 점프하듯이 말이다.
“이놈!”
모헨이 그걸 보고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에탄을 대신해서 악마 숭배자를 상대하려고 했지만.
사사사삭!
놈과 같이 있던 거미들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캬아악!
놈이 부리는 작은 거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뇽뇽이, 아린이, 모헨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신경 쓰지 마. 뒤만 잘 막아 줘.”
에탄이 그걸 보고 모헨에게 뇽뇽이를 지키라고 말했다.
까앙!
동시에 자신에게 달려드는 악마 숭배자의 공격을 막아냈다.
끼기긱!
녀석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이빨과 에탄의 검이 맞부딪혔다.
파악!
하지만 그 이상의 상황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좀 하는구나?”
에탄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녀석이 거리를 벌렸기 때문이다.
“이거 제대로 상대해야겠는데?”
“그래야지. 안 그러면 네 목이 날아갈 거야.”
“으음~ 좋아.”
에탄의 경고에 놈이 미소를 지었다.
그 후 얼굴을 붉히면서 에탄과 눈을 마주치고는.
[……]
악마의 언어로 주문을 외웠다.
우드득!
그러자 녀석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고 몸에 붉은색 무늬가 생겨났다.
“제대로 놀아 보자.”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 * *
콰아앙!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폭음이 지하에 울려 퍼졌다.
까앙!
이어서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뒤따라 공간을 채웠다.
‘강하다.’
녀석의 이빨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에탄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만큼 놈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에탄의 둘째 형을 운으로 잡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말이다.
‘아린이와 모헨의 지원은… 힘들겠군.’
에탄이 뒤쪽을 흘깃 바라봤다.
“아린 님. 왼쪽에서 옵니다!”
“지금 막고 있어요!”
아린이와 모헨이 작은 거미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악마 숭배자인 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작다는 이야기였다.
“죽어!”
그렇게 상황을 살피려는 찰나.
악마 숭배자가 눈을 부라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부웅!
동시에 에탄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목표는 두개골을 으깨 버리는 거였다.
탁!
하지만 에탄의 머리가 박살 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에탄이 허리를 숙이면서 놈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으니까.
서걱!
심지어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놈의 몸에 상처를 내기까지 했으니.
“이이익!”
악마 숭배자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질 만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여유만만하던 녀석의 얼굴에는 이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에탄은 놈의 심리가 변한 이유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저 상태를 유지하려면 몸에 많은 무리가 가겠지.’
악마 숭배자는 마족이 아니다.
그러니 악마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크아악!”
그중 대표적인 게 자신의 영혼이었다.
“영혼을 빼앗기는 기분이 어때?”
에탄이 고통에 울부짖는 녀석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놈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미 알고 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건 너다.”
에탄은 여유롭게 녀석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이, 이, 이… 노오오옴! 죽여 버리겠어!”
악마 숭배자가 에탄의 도발에 두 눈을 번뜩였다. 놈의 눈에서는 이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영혼을 악마에게 빼앗기면서 놈의 육체가 붕괴되고 있는 거였다.
“끄아아악!”
하지만 죽어 가는 만큼 힘은 더 강해지고 있었다. 죽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는 지렁이처럼 말이다.
“죽어!”
놈이 자신의 다리를 사방으로 휘둘렀다. 이제는 에탄의 움직임을 예측하지도 않았다. 그저 본능대로 다리를 휘둘렀다.
‘이번에 승기를 잡는다.’
에탄이 자신을 잡으려는 녀석의 다리를 차분히 피해 나갔다. 그러면서 놈과의 거리를 조금씩 줄이고는.
‘우선 시야부터.’
팍!
녀석이 가지고 있는 8개의 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푸푸푹!
그러자 3개의 눈이 물처럼 터져 나갔다. 달빛의 힘을 담지 않았지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녀석의 눈은 검을 막을 정도로 단단하지 않았으니까.
‘아직.’
그렇게 3개의 눈을 베어 버렸지만.
에탄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더 빠르게.’
오히려 녀석의 나머진 눈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시야가 안 보이는 곳에서 공격을 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완전히 멀어 버리게 한다.’
에탄은 지금 이걸 기회로 놈을 완전히 잡을 요량이었다.
“죽어어!”
놈의 멀쩡한 5개의 눈이 동시에 움직였다. 이어서 오른편에 달려 있는 다리를 이용해 에탄을 짓밟으려고 했지만.
터억!
에탄은 놈의 다리를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푸욱!
“끼아아악!”
이어서 녀석의 등에다가 검을 꽂고는 그대로 긁어 버렸다. 위에서 아래로 말이다.
팟!
그러면서 다시 한번 두 다리에 힘을 집중하고는.
서걱!
다시 한번 앞쪽으로 발을 내달렸다.
검날을 왼쪽으로 향한 채 말이다.
지이이익!
그러자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에탄의 검 끝에서 울려 퍼졌다.
“내 눈… 내 누우우운!”
그 소리는 악마 숭배자의 소중한 8개의 눈이 완전히 멀어졌다는 선고이기도 했다.
“안 보여… 보이지가 않아!”
에탄의 검이 눈동자를 베어버리면서 나는 소음이었으니까.
“끝이다.”
에탄이 8개의 눈을 더듬는 놈을 향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후 정면에서 놈을 향해 정자세를 취하고.
“후우….”
남아 있는 모든 달빛의 힘을 검날에 집중시켰다. 녀석의 몸을 완전히 두 동강 내기 위해서 말이다.
“키야악!”
그 순간 피로 물든 녀석의 눈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웅! 우웅! 우우웅!
동시에 사방에서 정체 모를 마법진을 발동시키고는.
“히힣… 히히히히!”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냈다.
“죽더라도 혼자는 안 죽는다!”
그리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뒷말을 잇는 순간.
……!
녀석의 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약 2초가 지났을 때.
웅…!
지하실 전체가 하얀빛에 집어 삼켜졌다.
* * *
케레니아 왕국에 있는 연무장.
“열린다!”
이곳에 케레니아 왕국 소속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마법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분 가까이 사투를 벌인 끝에, 반지에 각인된 마법을 작동시켰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소이테르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에탄의 명령에 따라 케레니아 왕국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칼라사르 가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제발 무사하시기를….’
덕분에 지원군을 받아 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사단을 투입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구멍이 유지될지 모릅니다!”
케레니아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의 힘으로는 반지에 있는 마법을 바로 발동시킬 수 없다는 것.
마법진에 들어가는 마나량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하필 이 순간에 대마법사가 자리를 비우다니.’
원래대로라면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케레니아 왕국의 고위급 마법사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에 일어난 변수였다.
“얼른 들어가세요!”
그래서 하급 중급 마법사들이 모여서 마법진을 작동시켜야만 했으니.
‘조금만 더 버티시기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좋아. 태양 기사단 들어간다!”
하지만 결국 주문은 발동됐으니.
이제는 지원군을 통해 악마 숭배자를 토벌할 수 있을 거라고 소이테르는 생각했다.
‘나도 들어가야겠군.’
그러면서 자신도 에탄을 돕기 위해, 구멍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파아아앗….
구멍에서 하얀빛이 조금씩 뿜어져 나왔다.
“잠. 잠깐! 뭔가 이상해!”
“마나가 폭주한다!”
그리고 구멍을 유지하던 마법사들의 눈이 흔들렸다. 저 안쪽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나의 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어 마법을 펼쳐!”
그래서 당황에 빠지려는 찰나.
태양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이들에게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실드!”
그리고 기사단장의 말에 마법사들이 방어막을 형성하는 순간.
삐이이익….
소이테르와 이들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명과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말이다.
그래서 그 소리에 의아함을 느끼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구멍에서 거대한 폭발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