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터벅터벅.
에탄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주변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금 서 있는 곳은 지하 1층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통로 끝에 있는 길 안내판(?)을 바라봤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이다.
[지하 2층은 오른쪽 통로를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왜 이렇게 친절해?”
처음 구멍 안으로 들어왔을 때. 에탄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맥이 빠지네.’
하지만 이런 에탄의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는 표지판에 의해서 말이다.
“도련님. 이 판을 믿고 따라가도 될까요?”
하지만 모헨은 이 표지판을 믿지 않았다.
“상대는 악마 숭배자입니다. 이런 걸로도 거짓말을 했을 확률이 다분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수법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에탄 또한 모헨의 말에 반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어?”
“…….”
“저번처럼 뇽뇽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
하나 지금은 표지판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구멍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뇽뇽이의 힘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달빛의 힘은 무사히 작동한다는 점 정도네.’
이전처럼 거대한 구멍을 뚫어서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에탄, 아린이, 모헨의 힘은 여전히 써먹을 수 있다.
“힘을 최대한 아껴야 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하지만 에탄은 무턱대고 힘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 또한 뇽뇽이처럼 바닥에 구멍을 내고 내려갈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게 악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투를 치를 때 힘을 못 쓸 수도 있다. 달빛의 힘은 무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니까.
‘게다가 그 방법이 먹힐지도 미지수야.’
심지어 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이 시설은 허접했던 감옥과는 수준이 달랐으니까.
“일단 표지판을 따라 계속 움직이자. 녀석의 의도대로 굴러가는 거 같지만 어쩔 수 없어.”
녀석이 설치한 길을 따라 움직였다.
어찌 보면 걸어서 함정 속으로 가는 격이다.
“그리고 만약 함정이 나온다고 해도….”
하지만 지금 이 표지판을 만든 녀석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박살 내면 그만이야.”
에탄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거였다. 이미 한번 죽어 봤던 몸이니까.
탁!
그런 마음을 먹은 상태로 에탄은 1층을 지나 2층으로 향했다.
[경고! 이 문 너머에는 흉폭한 몬스터가 있습니다!]
[전투를 원하지 않으시면 옆에 있는 탈출 마법을 이용하세요!]
“…이건 또 뭐야?”
그리고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빨간색 경고판과 마주했다. 에탄의 키를 뛰어넘는 거대한 문과 함께 말이다.
* * *
그렇게 에탄이 둘째 형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으윽!”
힐린첸은 칼라사르 가문 연무장에 엎어져 있었다. 흙과 자갈이 가득 있는 모래 바닥에 말이다.
“하아…후…하!”
힐린첸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뛰고 있었다.
그만큼 세바스찬의 훈련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힘들었다.
“고작 이 정도로 내 집사 자리를 이어받겠다는 거냐?”
하지만 세바스찬은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힐린첸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어이가 없군. 그렇게 할 거면 때려치우거라.”
못된 말들을 내뱉었다.
“집사로서 자격이 없다.”
“…….”
힐린첸이 세바스찬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죽을힘을 다해서 훈련을 받아 왔으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더… 더 죽을힘을 다할게요! 그러니까 저를 계속 가르쳐 주세요.”
힐린첸은 그런 생각을 한 줌만큼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 때문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흐음….”
세바스찬이 힐린첸의 말에 턱을 쓸어 만졌다.
“받아라.”
툭.
그러다가 자신의 품속에서 작은 포션 병 하나를 꺼냈다.
피로감과 부상을 회복시켜 주는 회복 물약이었다.
“마시고 일어나라. 바로 이어서 훈련을 시작하겠다.”
“…네!”
힐린첸이 세바스찬의 말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바닥에서 일어나 포션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탁!
그 후 두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는.
“하앗!”
두 개의 단검을 쥐고, 세바스찬에게 달려들었다.
* * *
-끼에엑!
-꾸엙!
머리가 두 개인 오우거가 비명을 내질렀다.
쿵!
그리고 좌우로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에탄이 그걸 보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팟!
동시에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털었다. 오우거의 배를 가르면서 생긴 흔적이었다.
“이걸로 5마리째인가?”
“예.”
지하 5층까지 오면서 에탄은 총 5마리의 몬스터를 죽였다.
‘한 층에 한 마리씩 배치를 하다니. 이번 악마 숭배자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놈이네.’
그리고 지금 오우거를 죽이면서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어째서 몬스터를 각 층마다 배분한 건지에 관한 거였다.
“이상하네. 한꺼번에 배치했다면 우리를 곤경에 빠트릴 수 있었을 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탄의 물음에 모헨이 동의를 표했다.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굳이 몬스터를 나눠서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고 있었다.
마치….
“침입자로 적합한지 자격을 시험하는 건가.”
에탄과 이들의 기량을 확인해 보겠다는 듯이 말이다.
“재밌네.”
“예?”
“자신이 완전히 압도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게 재밌어.”
“…….”
에탄의 말에 모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을 때도 지금처럼 웃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침을 삼켰다. 에탄이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요!”
모헨이 침을 삼키려는 순간, 아린이가 숨겨진 계단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드디어 녀석을 볼 수 있는 건가?”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두 눈을 번쩍였다. 지금까지는 몬스터를 죽이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문이 나타났었다.
“좋아.”
하지만 이제는 비밀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어디 한번 낯짝 좀 보자고.”
에탄은 녀석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헨. 뇽뇽이를 호위해라.”
“예.”
에탄의 말에 모헨이 간결하게 답했다. 그 후 검을 빼 들고 뒤에 서 있는 뇽뇽이를 향해 다가갔다.
“마법… 여전히 못 씀.”
뇽뇽이가 자신에게 다가온 모헨을 보고 축 늘어진 표정을 지었다. 구멍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뇽뇽이는 어깨가 으쓱 올라가 있었다.
자신이 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뇽뇽이. 쓸모없음.”
하지만 지금은 남의 보호를 받아야 하니. 뇽뇽이는 자신이 다른 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뇽뇽이 님. 그렇게 기죽어 있으실 필요 없습니다.”
모헨이 풀이 죽은 뇽뇽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 모든 게 뇽뇽이 님 덕분입니다. 만약 뇽뇽이 님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이 시설을 찾는 데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못 찾았을 수도 있겠죠.”
“…진심?”
“예.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뇽뇽이가 모헨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 자신이 그렇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말을 해 주니.
“흐응!”
언제 그랬냐는 듯 뇽뇽이의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거기 가만히 서서 뭐 해?”
그때 아린이와 함께 앞에 있던 에탄이, 가만히 서 있는 뇽뇽이와 모헨을 향해 물었다.
“지금 가겠습니다.”
모헨이 그 말을 듣고는 바로 뒤따라가겠다고 답했다. 그 후 뇽뇽이에게 손을 내밀고.
“같이 가시죠. 제가 옆에서 지켜 드리겠습니다.”
“…….”
함께 가자고 말했다.
쓰윽.
뇽뇽이가 모헨이 내민 손을 빤히 바라봤다.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손길이다. 마법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니까.
“믿겠음.”
하지만 마법을 쓸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뇽뇽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니.
터억!
뇽뇽이는 모헨의 손을 꽉 잡았다. 그만큼 믿고 의지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씨익.
모헨이 그걸 깨닫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 후 뇽뇽이와 함께 에탄의 뒤를 따라갔다.
* * *
에탄은 계단을 따라 끝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몸에서 흐르는 땀이 모두 식을 정도였다.
탁…
그렇게 한참을 내려간 끝에.
마침내 계단이 아닌 평평한 바닥이 에탄의 발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어둡다.’
하지만 이곳은 이전 층과는 다르게 빛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안내해 주는 표지판도 없었다.
쓰릉!
에탄이 어둠 속에서 검을 빼 들었다.
빛이 없다고 해서 이대로 걸을 생각은 없었다.
-우우웅!
그래서 지금까지는 숨기고 있던 달빛의 힘을 발현시키는 순간.
“……!”
에탄은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멈췄다.
“에탄. 구해 주러 왔구나!”
자신의 눈앞에 둘째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활짝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이다.
“형님. 무사하셨군요.”
“그래… 다행히 놈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에탄의 말에 둘째 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격렬한 전투를 치렀는지 입고 있는 갑옷도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에탄이 그런 둘째 형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바닥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하.”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탁… 타타탁!
이어서 둘째 형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는.
푸욱!
둘째 형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커헉!”
그 순간 둘째 형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어째서 자신을 찌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도, 도련님?”
“아빠?”
당황한 건 둘째 형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모헨과 아린이 또한 크게 놀랐다.
갑자기 에탄이 둘째 도련님을 칼로 찌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그래서 이게 뭐 하는 행동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이 녀석은 형이 아니다.”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모헨은 입을 다물었다.
“사람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이 녀석은 바닥에 그림자가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 둘째 형의 발밑을 쳐다보려는 순간.
“이래서 눈치 빠른 인간은 싫다니까.”
둘째 형의 입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드득!
이어서 몸에 있는 관절들이 기형적으로 꺾이더니.
솨아아앗…
검은색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탁. 탁. 탁.
그 순간 천장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펴졌다. 에탄과 다른 이들이 소음을 듣고 고개를 위로 향했다.
“……!”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네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렸다.
“안녕. 친구들?”
그곳에는 거미처럼 변해 있는 악마 숭배자가 허공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삭… 사사삭!
무수히 많은 거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