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에탄은 남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털어 냈다. 주머니는 물론이고 신발 밑창에 있는 비상금까지 깡그리 가져갔다.
“더 없냐?”
“정…정말 없습니다.”
“내가 뒤져서 나오면?”
“그러면 제 목을 내어 놓겠습니다.”
하지만 에탄은 만족하지 못했다.
자신의 기분을 더럽게 한 대가로는 살짝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흐음… 일단 알겠어. 우선 안내부터 해.”
“예!”
하나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재산 털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기로 했다.
타탁…탁.
그렇게 골목길을 걸은 지 5분이 지났을 때.
“오른쪽 눈이 없는 남자에 대해서 알고 있나?”
에탄이 자신에게 모든 걸 빼앗긴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직접 가게로 가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운영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하지만 에탄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남자가 이곳에 막 가게를 차릴 때. 돈을 수금하려던 녀석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입니다. 제법 유명한 사건이라서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제법 자세하면서도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에탄을 봤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태도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에탄의 손이 검집에 올라가 있었으니까.
‘저 검… 절대 장식용이 아니다!’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 남자는 정보를 술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에탄도 그 점을 노리고 검집에 손을 올리고 있는 거였다.
‘게다가 기운도 심상치 않아.’
물론 단순히 검을 들고 있다고 해서 남자가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그 또한 골목길에서 제법 오래 생활을 해 왔기에 강자를 알아보는 감이 있었다.
…꿀꺽.
그리고 그 감이 말해 주고 있는 상태였다. 에탄을 상대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흐음.”
그 순간. 에탄이 남자의 대답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녀석을 빤히 바라보다가.
“좋아. 계속 움직여.”
이내 자신이 찾고 있는 녀석에게 데려가라는 뒷말을 붙였다.
“알겠습니다.”
남자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떨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다시 정보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 * *
정보상을 찾아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에탄이 뒤에서 남자의 발걸음이 느려질 때마다, 검집을 건드리면서 ‘철커덕’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도. 도착했습니다.”
남자가 한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골목길을 거닌 지 15분 만에 도착한 거였다.
쓰윽.
에탄이 남자가 멈춰 선 가게를 살펴봤다. 종이와 펜이 그려진 간판이 앞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문 열고 안으로 들어가.”
게다가 불도 켜져 있지 않았지만 에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 주인은 원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예?”
“얼른.”
에탄의 말에 남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바로 뒤에 에탄이 서 있기에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끼익….
때문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그 후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피잉!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비수 하나가 날아왔다.
까앙!
그 비수가 남자의 심장에 꽂히기 직전. 에탄이 검집째로 비수를 막아냈다.
“히익!”
그러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약속은 지켰다.”
에탄이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를 보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음에도 헛짓거리하다가 마주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좋아. 이제 가 봐.”
그리고 남자에게 가게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타탁!
에탄의 말에 남자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일어났다. 그 후 귀신을 보고 도망치듯이 가게를 빠져나갔다.
피이이잉!
그때. 다시 한번 비수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에탄의 미간이 목표였다.
깡!
하지만 통할 리가 만무했다.
고작 저런 수준에 당할 만큼 에탄은 나약하지 않았으니까.
“호오….”
에탄이 다시 한번 검집을 이용해 비수를 막아냈다. 그러자 안쪽에서 노인의 감탄이 들려왔다.
“손님 대접이 조금 거칠구만.”
에탄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그 후 거침없이 어둠 안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고는.
“칼라사르 가문의 둘째 도련님을 찾으러 왔다.”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탁!
그러자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어두웠던 가게 내부가 환해졌다.
남자가 안에 있는 랜턴을 작동시킨 덕분이었다.
‘역시.’
그 순간 에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이 찾고 다니던 사람의 얼굴이 맞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리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거기에 손에 있는 무수히 많은 굳은살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인물이 확실했다.
“누구-”
“오랜만이군. 소이테르.”
그래서 에탄은 남자의 말을 자르고, 그의 이름을 읊었다.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겠나?”
동시에 머리카락을 가려 주는 후드를 벗어 내자.
“이러면 좀 알겠지.”
“…어. 어!”
소이테르가 입을 벌리면서 경악했다.
“에. 에탄 도련님…!”
그리고 에탄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 * *
후룩.
에탄이 앞에 있는 차를 들이켰다.
방금 막 소이테르가 만든 따끈따끈한 녹차였다.
“녹차 맛이 좋네.”
그렇게 녹차를 들이켜고는 덤덤하게 한마디를 툭 뱉었다. 그러자 대역죄인처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이테르가 몸을 움찔하고는,
“…그. 조금 전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에탄에게 비수를 날렸던 걸 사과했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위압감을 풀어내던 그였지만.
“아니야.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했지. 내가 암호를 말하고 들어온 게 아니었잖아.”
지금은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만큼 소이테르는 자신이 에탄에게 큰 무례를 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에탄이 소이테르의 사과에 손을 휘저었다. 가게에 아무 말 없이 들어갈 때부터 비수가 날아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거기서 끝난 게 다행이라 여겼다. 소이테르의 진짜 무기는 비수가 아닌 그다음 것이니까.
“네가 날 빨리 알아본 거 자체가 용한 거야. 나였으면 형님이 주신 무기까지 꺼냈을걸?”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에탄은 소이테르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이테르가 에탄의 말에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후 고개를 들어 에탄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는….
“…많이 달라지셨군요.”
혀를 내두르면서 감탄했다.
“제가 알던 도련님의 모습과는…확실히 거리가 멉니다. 외모도 그렇고 몸에서 나오는 기운까지 말이죠.”
비대한 살덩어리 대신 근육이 자리를 잡았고. 턱선 또한 제법 날카로워졌다. 거기에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까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정말 도련님이 맞나 싶기도 합니다.”
망나니였던 에탄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 소이테르가 저리 말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여전하시군요.”
그러나 에탄의 특징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백발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그대로였기에.
“만약 염색까지 하셨다면 지금까지 도련님을 의심했을 겁니다.”
소이테르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에탄인 걸 간신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에탄이 소이테르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저 말은 에탄에게 칭찬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성장했다고 말해 주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둘째 도련님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 겁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소이테르의 질문에, 에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북부에서 마족이 발견됐어.”
그건 에탄의 대답을 들은 소이테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북부에 있는 베르사르 가문에 마족 출현. 에탄은 그 전후에 관한 이야기를 소이테르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들려줬다.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소이테르는 에탄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도련님.”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말이다.
“해야 할 일을 한 거 뿐이지.”
에탄이 소이테르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이 한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회귀를 하기 전에 겪었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한 거니까.
“그럼 지금. 모헨이라는 기사와 도련님의 두 따님도 함께 있는 겁니까?”
“그래. 지금 여관에서 잠을 자고 있어. 확실히 비싼 값을 하더라.”
“아쉽군요.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알아서 모든 걸 준비했을 텐데….”
소이테르는 에탄의 둘째 형을 보조하는 정보원이다. 그러니 에탄이 이곳에 오는 걸 알았다면, 당연히 여러 가지 도움을 줬으리라.
“괜찮아.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하지만 에탄은 그걸 바라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니. 소이테르에게 괘념치 말라고 말했다.
“형은 어디에 있어?”
그리고 둘째 형의 위치를 물었다.
“…….”
후루룩.
소이테르가 에탄의 물음에 아무 말 없이 차를 들이켰다. 그 후 차를 탁자에 천천히 내려놓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응?”
“도련님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에탄에게 자신도 모른다고 답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래도… 누군가 도련님을 납치한 거 같습니다.”
외부의 누군가가 둘째 형을 데려갔다는 답을 내놓았다.
* * *
다음 날 아침. 에탄은 모헨, 아린이, 뇽뇽이가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둘째 도련님의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는 소이테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갈 때와는 다르게 한 명이 더 늘어나 있었다.
둘째 형의 조력자인 소이테르였다.
“도련님의 전속 기사인 모헨입니다.”
소이테르의 인사에 모헨이 고개를 꾸벅였다. 그리고 소이테르를 눈으로 훑어보고 침을 삼켰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지만, 손에 있는 굳은살과 상처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가 절대 약자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아린이예요!”
“뇽뇽이임.”
하지만 이런 소이테르도 아린이와 뇽뇽이 앞에서는.
“세상에… 정말 인형 같군요.”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린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뇽뇽이의 미묘한 목소리에 말이다.
“우리 딸들이 좀 귀엽기는 하지.”
에탄이 소이테르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피가 이어진 딸은 아니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만큼 아린이와 뇽뇽이를 각별히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섯 명이서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게 서로 간의 인사를 끝내자, 에탄이 모두를 바라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내 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둘째 형의 실종 소식을 알리고는.
“우리가 찾는다.”
자신들의 힘으로 형을 찾을 거라고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