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덜커덩!
에탄은 화염의 지배자와 인사를 한 뒤, 그녀가 제공해 준 마차를 타고 마탑을 떠났다.
그리고 케레니아 왕국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둘째 형님이라.’
두 형에 대해서 말이다.
‘마지막 순간에 함께했었다면… 북부 멸망을 막을 수 있었을까?’
북부가 멸망하는 날. 에탄은 첫째 형과 둘째 형을 눈으로 보지 못했다. 그들이 가문으로 오기도 전에 북부가 박살 났기 때문이다.
‘야만족과 마족….’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북부 너머에 있는 그놈들이 넘어 올 거라고는. 그리고 북부가 힘도 못 쓰고 허무하게 무너질 거라고는.
‘이번 생은 막아야 한다.’
에탄이 그때를 생각하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가문이 망하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빛이 차가워지려는 순간.
“아빠! 둘째 큰 아빠는 어떤 분이
에요?”
“음?”
아린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에탄의 귓가에 들려왔다.
“흐음.”
에탄이 아린이의 물음에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까 곰곰이 머리를 굴린 끝에.
“조금 신기한 사람?”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
에탄도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해서 저런 답밖에 못 하는 거였다.
‘전생 시절에 딱히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전생 시절. 즉. 에탄이 정신을 못 차리고 망나니로 살고 있을 때. 이들은 가문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몇 번 밥을 같이 먹은 게 전부였지.’
에탄과 별다른 만남이 없는 게 당연했다.
“무서운 사람이에요?”
“아니. 그건 아니야.”
아린이의 물음에 에탄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단호했다.
“그랬다면 아빠가 빨리 착해졌을걸.”
그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즉.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에탄을 참교육(?)할 수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하지만 에탄은 두 형에게 뚜드려 맞은 적이 없었다. 아니 애당초 잔소리조차 들어 보지 못했다.
‘첫째 형은 나한테 무관심했고. 둘째 형은 되려 나를 위로해 줬지…. 나였다면 검으로 머리를 깨 버렸을 텐데.’
그 점이 아직도 신기했다.
자신이 얼마나 막 나가면서 살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를 떠올리면 미간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말이다.
‘왜 내버려 둔 걸까.’
막 나가다시피 살았던 자신을 두 사람은 전혀 건들지 않았으니. 에탄이 의문을 품는 게 당연했다.
끼익!
“도련님. 케레니아 왕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의 늪에 빠지려는 찰나.
마부석에 앉아 있는 모헨이 입을 열었다.
“이제 내리시면 됩니다.”
마침내 케레니아 왕국에 도달했다고.
* * *
케레니아 왕국은 북부와 중부를 이어 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주변 풍경은 예술이네.”
그리고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강줄기가 흐르는 곳이기도 했다.
“저 강들 덕분에 상업이 번창했다고 하더라.”
에탄이 성벽 너머에 있는 강들을 바라봤다. 수많은 배가 물줄기를 따라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뿐이랴.
육지로 오는 마차 또한 긴 행렬을 이룬 상태였다.
‘화염의 지배자님이 미리 언질을 해 줘서 다행이야. 만약 그런 호의가 없었다면 나도 저기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했겠지.’
다행히 에탄은 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화염의 지배자가 통신구를 통해서 왕국 경비대에 미리 말했기 때문이다.
-거기 들어가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 곳이야. 아린이와 뇽뇽이가 힘들어할 게 훤히 보이니까. 내가 미리 말을 해 놓을게.
에탄을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
‘역시 마탑주의 힘이라 이건가.’
에탄은 그걸 통해 새삼 느꼈다.
화염의 지배자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그리고….
“그건 그렇고. 사람 참 더럽게 많다.”
“공감입니다.”
케레니아 왕국은 정말 사람이 많다는 걸 말이다.
“도련님. 여기서 둘째 도련님을 찾을 수 있는 거… 확실합니까?”
모헨이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인파를 쳐다봤다.
“내가 언제 만날 수 있다고 장담한 적 있어?”
에탄도 모헨이 보는 광경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퉁명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했지. 만나겠다고 한 적은 없어.”
말장난으로 대답을 마쳤다.
“…….”
“장난이야. 장난. 말장난도 못 하게 하네.”
하지만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모헨의 시선에 뒷말을 더 붙일 수밖에 없었다.
“아빠! 사람이 너무 많아요!”
“더움. 쉬고 싶음.”
그 순간 아린이와 뇽뇽이가 한마디씩 입을 열었다.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몸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좋아. 일단 여관에 들어가서 짐부터 풀자.”
에탄 또한 더위를 느끼고 있기에 우선 여관으로 향하기로 했다.
“기왕 온 거. 제대로 쉬고 가 보자.”
다만 이번에는 사치를 조금 많이 부려 볼 생각이었다. 가문에서 가져온 돈도 있으니까.
* * *
케레니아 왕국에는 다양한 여관이 있다.
“온천은… 정말 좋네요.”
“몸이 녹음. 흐늘흐늘해짐.”
“덕분에 없는 기운도 나는 거 같습니다.”
에탄은 그중에서 온천이 있는 여관을 선택했다.
“실제로 그럴걸?”
“예?”
“이 온천에는 신성력이 들어가 있거든. 그래서 육체 회복을 빠르게 해 주는 효과가 있어.”
심지어 온천도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무려 신관들의 신성력이 포함되어 있는 곳이었으니.
“허어….”
모헨의 입이 쩍 벌어지는 게 당연했다.
“아빠! 침대가 엄청 커요!”
“뇽뇽이. 굴러다님.”
“…제 방에 있는 침대보다 훨씬 좋군요.”
게다가 에탄은 방도 여관에서 제일 비싼, 최상위급 방으로 구했다. 덕분에 네 사람이 같이 잠을 자도 좁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우움….”
“흐음….”
덕분에 아린이와 뇽뇽이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고.
“으으. 도련님. 으윽 아픕니다….”
에탄에게 일주일 내내 뚜드려 맞은(?) 모헨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식은 잠꼬대도 신기하게 하네.’
에탄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헨을 쳐다봤다. 침대 위에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어휴….”
하지만 모헨을 깨울 생각은 없었다.
녀석 또한 고된 여정으로 지쳐 있을 테니까. 그 원인이 일주일 동안 자신과 치른 대련 때문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스르륵.
그래서 에탄은 몸부림치는 모헨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흐음.”
그 후 발소리를 죽인 채 여관을 빠져나온 뒤.
“후우….”
차가운 밤공기를 있는 힘껏 들이마셨다. 폐에 들어가는 찬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 줬다.
‘고요하네.’
그렇게 밤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조용한 골목길로 에탄이 시선을 돌렸다.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겠어.’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대여서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목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휑해졌다.
딱히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도 아니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 녀석을 이 시기에 보는 건 처음인가?’
하지만 에탄은 예외였다.
단순히 밤 산책이나 하자고 세 사람 몰래 빠져나온 게 아니다.
쓰윽.
에탄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곧 있으면 만날 녀석을 대비해서 챙겨왔다.
자신이 아는 그놈이라면 분명 자기를 시험하려 할 테니까.
‘그럼 가 볼까.’
그래서 검의 상태를 간단히 점검하고는.
탁!
조용하게 가라앉은 밤 골목을 거닐었다.
* * *
케레니아 왕국은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왕국이다. 다른 곳에서 몰려드는 상인들을 지켜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암시장인가.’
하지만. 이런 케레니아 왕국에도 밤에 다니기 위험한 곳은 존재했다.
불법적인 물건을 파는 암시장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확실히 공기가 다르네.’
암시장임을 표현하는 붉은 가로등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게다가 검을 찬 자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녀석이라면 이곳에서 활동하겠지.’
에탄은 자신이 찾는 이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길 좀 물어봅시다.”
에탄이 머리카락이 없는 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근처에 오른쪽 눈이 없는 남자가 운영하는 정보상이 있습니까?”
이어서 둘째 형을 찾는 데 필요한 남자의 생김새를 말했다.
“맨입으로?”
“이거면 충분하나?”
에탄이 자신의 품속에서 1골드를 꺼냈다. 그러자 머리를 민 남자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돈이 제법 많은 도련님인가 보군?”
그러면서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
하나 에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고 있는 1골드를 여전히 남자에게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 이거. 아무래도 암시장은 처음 온 모양이구만.”
남자가 그걸 보고 에탄의 몸이 굳어 버린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동시에 에탄이 챙겨 온 검집을 보고는 씩 웃었다.
“그래도 꼴에 검은 차고 온 거 같은데… 그런 걸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네.”
“그래?”
“하지만 내가 함께한다면 다르지. 10골드만 준다면 남자한테 안내를 해 주는 건 물론이고, 자네를 지켜 주는 것까지 하겠네. 어떤가? 제법 괜찮은 거래지?”
10골드면 실력 있는 용병 두세 명을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남자의 제안은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 좋은 거래네.”
“그러면 10골드를-”
“네가 딱 처맞기 좋은 거래야.”
땡그랑!
그래서 에탄은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1골드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퍼억!
골드를 쥐고 있던 오른손으로 남자의 복부를 가격했다.
“커헉!”
그러자 남자가 배를 움켜잡으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자신의 몸이 반응도 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기에.
남자는 배에 힘을 주는 ‘방어’조차 할 수 없었다.
“끄으윽….”
그래서 벌레처럼 몸을 꼬면서 몸부림쳤다.
“나도 너한테 좋은 거래를 제안할게.”
“끄읅!”
에탄이 자신에게 골드를 갈취하려던 남자의 머리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크게 쥐어 잡고는.
“나한테 10골드를 주고, 내가 원하는 녀석에게 안내해 주면 목숨은 살려 주마.”
남자가 자신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거래를 제안했다.
“만약 거절하면….”
그리고 남자가 무어라 대답하기 전에 자신의 검을 눈으로 가리켰다.
‘죽. 죽는다!’
동시에 살기를 살짝 흘리자.
바닥에 누워 있던 남자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에탄이 자신을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으니까.
“하. 하겠습니다!”
때문에. 남자는 에탄이 다음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10골드. 아니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내어 드릴 테니 제발 살려 주세요!”
그리고 목숨을 구걸했다.
“흐음. 그래도 눈치가 마냥 없는 놈은 아니구만.”
에탄이 남자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그 후 남자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는.
“그럼 가지고 있는 거 지금 다 꺼내.”
한없이 냉혈한 눈빛으로 남자를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