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에탄은 아린이, 뇽뇽이, 모헨을 데리고 방 안에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더럽-”
“여긴 내 방이야.”
“죄송합니다.”
화염의 지배자가 먹고 자면서 생활하는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크흠.”
“…….”
화염의 지배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에탄을 쳐다봤다.
“흥. 한 번만 봐준다.”
그러면서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그녀가 봐도 방이 ‘조금’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는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아니야. 그러니까 조금 너저분할 수도 있지… 안 그래?”
이곳에 사람을 초대하는 일은 극히 드무니까.
“그럼. 저희를 여기로 데려오신 이유가 뭡니까?”
그 말은 즉. 화염의 지배자가 이들을 방에 들인 건 아주 특별하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했다.
“좀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지.”
화염의 지배자가 모헨의 물음에 미소를 띠었다. 그 후 자신과 격렬한 공놀이를 했던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저 아이. 평범한 인간은 아닌 거 같은데.”
뇽뇽이의 존재를 떠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거였다.
뇽뇽이가 다른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맞지?”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
그녀의 물음에 에탄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침을 삼켰다.
혹시 모를 일이 생길까 긴장하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첫째. 마나의 양이 너무 비상식적이야.”
에탄의 물음에 화염의 지배자가 검지를 들어 올렸다.
그 후 중지를 연달아 올리고는.
“둘째. 어린아이가 낼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벗어났어. 심지어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도 아니잖아. 마법사가 아무런 보조 마법도 없이 그 정도 수준의 힘을 내는 건 불가능해.”
뇽뇽이가 인간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 두 번째 이유를 말했다.
“…….”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납득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이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뇽뇽이를 데려올 때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으니까.
“맞습니다. 뇽뇽이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녀의 말에 덤덤하게 답했다. 놀라거나 변명하거나 감추지 않고 사실대로 답을 해 줬다.
“그럼 무슨 종족이야? 엘프? 아니면 엘프와 인간 사이?”
“…둘 다 아닙니다.”
“그래? 마법을 사용하는 대표 종족은 엘프인데… 엘프가 아니면 뱀파이어라도 되나? 하지만 걔네는 블러드 마법 쪽인데.”
하지만 그녀조차 못 맞추는 게 있었다. 뇽뇽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이었다.
“뇽뇽이는 드래곤입니다.”
“아니면 뱀파…어? 뭐라고?”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
“뇽뇽이는 이제 막 태어난 드래곤입니다. 사람으로 비유를 하면 100일을 넘긴 갓난아기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에.
“…하.”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쉬고는.
“역시 인생은 불공평해. 누구는 개같이 굴러서 여기까지 왔는데, 누군 드래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렇게….”
극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 * *
“진정하셨습니까?”
“응.”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때.
화염의 지배자는 사라졌던 정신 줄을 간신히 되찾아 왔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
화염의 지배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들 앞에서 인생을 한탄할 줄은 몰랐기에 상당히 머쓱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에탄은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 오히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걸 느끼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요.”
화염의 지배자가 뇽뇽이를 보고 허탈감을 느꼈듯.
에탄 또한 아린이를 보고 비슷한 기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
“예. 그러니까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소리를 질렀다.
“…….”
그러자 그녀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책상에 있는 휴지로 향했다.
자신은 헛살았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걸 닦기 위해 마법으로 소환한 휴지로 말이다.
“크흠. 아무튼 그런 거 아니야.”
화염의 지배자가 그 사실을 깨닫고는 다급히 뒷말을 붙였다.
휘릭!
그러면서 책상에 있는 휴지를 순간 이동 마법으로 치워 버렸다.
“울다가 화내면 머리 나빠짐.”
“화 안 냈거든?”
“소리 지르는 거 봤음.”
“안 냈다니까…!”
뇽뇽이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찌릿.
그러면서 뇽뇽이를 쏘아봤지만.
“지금도 화냄.”
뇽뇽이는 그녀의 눈빛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후….”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건 화염의 지배자 쪽이었다.
“내가 참아야지….”
아무리 뇽뇽이가 드래곤이라고 해도, 외형부터 실제 나이까지 어린아이다.
그러니 여기서 말싸움을 해 봤자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용건이 뭐야?”
화염의 지배자가 뇽뇽이에서 에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후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거래?”
“예.”
“흐음….”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대답에 눈썹을 찡그렸다.
“일단 들어나 볼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디 한번 말이나 해 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에탄이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싫다고 거부를 해도, 할 말이 없는 건 에탄 쪽이었기에.
저 반응은 긍정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첫발은 뗄 수 있게 된 거니까.
“제가 화염의 지배자님한테 바라는 건 하나뿐입니다.”
“뭔데? 참고로 마탑 전체를 움직이는 건 힘들어.”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저었다. 마탑 전체를 동원할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인 그녀에게 원하는 건.
“마족을 탐지할 수 있는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전투에도 써먹을 수 있는 걸로요.”
북부에 숨어 있는 마족을 찾기 위한 도구였으니까.
“마족을 찾기 위한 아티팩트?”
“예.”
“그걸 어디에 써먹으려고?”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두 눈을 끔벅였다. 자신이 예상했던 거래와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마족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마족을 본 것처럼 얘기하네?”
“맞습니다.”
“응?”
“북부에 있는 베르사르 가문. 그곳에 있는 집사가 사실은 마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놈을 죽였죠.”
“…….”
화염의 지배자의 표정이 급격히 냉랭해졌다.
마족이 나타난 건 보통 일이 아니기에.
“그 이야기 자세히 좀 해 봐.”
에탄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요구했다.
“알겠습니다.”
에탄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칼라사르 가문에서부터 시작해….”
그리고 그녀에게 페르메를 죽이게 된 과정을 말해 줬다.
.
.
.
“그렇게 해서 놈을 죽였습니다.”
에탄의 이야기는 15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네.”
하지만 화염의 지배자는 쓸모없는 이야기라고 구박하지 않았다.
“잘 왔어.”
오히려 자신을 찾아온 에탄을 칭찬했다.
“그 말은….”
“마족을 탐색하는 아티팩트를 제작해 줄게. 공격 마법까지 탑재한 걸로.”
그러면서 에탄의 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짜는 아니야. 우리는 거래를 하는 거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에탄이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침을 삼켰다. 마탑주와 거래를 하는 만큼, 그녀가 많은걸 요구할 거라 생각했다.
“간단해.”
한데.
“네가 마탑에 머무는 동안, 저 두 아이가 나랑 함께하게 해 줘.”
에탄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생각보다 간단한 걸 요구했다.
“뇽뇽이와 아린이요?”
“그래.”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에탄은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거라면 몰라도 뇽뇽이와 아린이는 가족이니까.
“별거 안 시킬 거야. 그냥 나랑 계속 놀아 주기만 하면 돼.”
“…예?”
“진짜야. 청소 같은 건 가끔 같이하겠지만. 어린아이들이 하기에 힘든 건 시킬 생각 없어.”
에탄이 그녀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건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모헨도 마찬가지였다.
“심심하십니까?”
그래서 에탄은 화염의 지배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 거 같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모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니야!”
물론. 화염의 지배자는 모헨의 대답을 부정했지만.
“심심하신 거군요.”
에탄은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연민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그런 이유라면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뭐… 아린이와 뇽뇽이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아린이와 뇽뇽이가 받아들인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아린아, 뇽뇽아. 괜찮겠니?”
그 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물었다.
“으음….”
“고민 중.”
그러자 아린이와 뇽뇽이가 고민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걸 본 화염의 지배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맛, 맛있는 것도 주고 재밌는 마법도 보여 줄게!”
“그러면 설탕 사탕도 주는 거예요?”
“설탕 사탕? 물론이지. 더 맛있는 음식들도 차려 줄 수 있어. 어차피 요리는 내가 안 하거든.”
“!”
아린이가 그녀의 대답에 두 눈을 반짝였다. 설탕 사탕을 먹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값진 거래는 아린이에게 있을 수 없었다.
“좋아요!”
그래서 아린이는 화염의 지배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쓰윽.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뇽뇽이한테 집중됐다. 이제 남은 건 드래곤인 뇽뇽이의 선택뿐이었다.
“너는 뭘 원하니.”
“음….”
그녀의 물음에 뇽뇽이가 턱을 쓸어 만졌다. 그러다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발로 바닥을 치고는.
“마법 배우고 싶음.”
화염의 지배자에게 마법을 알려 달라고 말했다.
“마법?”
“뇽뇽이. 아줌마처럼 강해지고 싶음.”
“그래?”
화염의 지배자가 뇽뇽이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흐흥! 짜식! 뭘 좀 아네!”
그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뇽뇽이가 자신을 ‘강자’로 인정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거였다.
그래서 평소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가르침의 청을.
“좋아! 이 ‘언니’가 제대로 알려 줄게!”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침내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