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북부에 숨어든 마족들.
놈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에탄은 유능한 마법사와 접선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 미래에 다가오는 대침공에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마탑의 힘을 빌린다.’
아무리 에탄이라고 해도, 북부에 있는 남은 마족들을 콕 집어서 죽일 수는 없었다.
전생 시절 에탄이 알고 있었던 마족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지금 이 시기면… 다들 은밀히 활동하고 있을 때야.’
마족들이 제대로 활동 하는 건 몇 년이 더 지났을 때다. 그러니 녀석들을 찾는 건 모래사막에서 바늘을 발견하는 격이리라.
“하지만 아티팩트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러나 놈들을 탐색할 수단이 전무한 건 아니었다. 마탑에서 아티팩트를 지원받는다면, 놈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에탄은 확신했다.
탁!
에탄이 정리를 끝냄과 동시에 발을 멈췄다. 그 후 앞에 있는 가게로 시선을 향했다.
“여기도 오랜만에 오는구만.”
연금술사 헤와른이 운영하는 가게.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아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네!”
띠리링!
그리고 예고도 없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쳐서는(?)
“헤와른! 거래를 하러 왔다!”
“…네?”
헤와른과 협상을 시작했다.
* * *
“화염의 지배자님을 소개시켜 달라고요?”
“그래.”
에탄이 헤와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룩.
그 후 그녀가 가져온 차를 들이켜고는.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 베르사르 가문에서 마족이 나타났어.”
베르사르 가문의 이야기를 꺼냈다.
“네… 그리고 도련님께서 녀석을 죽이셨다고 들었어요.”
헤와른이 에탄의 말에 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걸 모를 리가 없죠. 광장에 저렇게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요. 게다가 어딜 가든 전부 그 이야기로 화제예요.”
그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헤와른이 바깥 세상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이면 알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에탄이 무지막지한 일을 벌였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아빠가 큰일을 해낸 거기는 하죠!”
그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린이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아.”
헤와른이 그 말을 듣고는 아린이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 아린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만지고는.
“그런데. 그거랑 화염의 지배자님을 소개해 달라는 것에 무슨 연관이 있죠?”
에탄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주 큰 연결 고리가 있지.”
“흐음.”
“마족들을 찾아낼 수 있는 아티팩트를 제작해 달라 할 거거든.”
“…화염의 지배자님한테요?”
“정확히는 그 사람이 운영하는 마탑에 부탁할 생각이야.”
헤와른이 에탄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가능할까요?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마탑에 있는 사람들은 성격이 상당히 더러운데….”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은 성격이 상당히 독특하니. 그들의 이목을 끌 만한 걸 제안하지 않으면 듣는 척도 하지 않으리라.
“마탑주만 설득하면 해결될 거야.”
“마탑주님은 어떻게 만날 건데요.”
“너를 통해서.”
“…….”
하지만 에탄은 이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헤와른이 화염의 지배자를 연결해 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저도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닌-”
“30골드 줄게.”
“네?”
“만날 수 있는 자리만 마련해 줘. 그러면 30골드 줄게.”
꿀꺽.
헤와른이 에탄의 말에 침을 삼켰다. 30골드. 그 돈이면 가게 월세를 내고도 남을 액수다.
“거래가 잘 안 돼도 제 탓하기 없기예요. 교환 및 환불 불가고요.”
“당연하지.”
헤와른의 말에 에탄이 순순히 답했다. 그다음은 자신이 생각해 둔 묘수가 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터억!
에탄이 품속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속에 있는 골드중 5골드를 위에 올렸다.
“깨끗한 돈이야.”
“어제 영지민들한테 받아 낸 골드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내가 무력으로 뜯어낸 건 아니잖아. 그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길래 돈 좀 내라고 한 거뿐이었어.”
“으음. 맞는 말이긴 하네요.”
확실히 합법적인 돈이기는 했다.
헤와른도 그걸 알기에 더 이상 돈을 얻어 낸 경로를 왈가불가하지 않았다.
“진짜 주는 거죠?”
“그럼.”
“비밀 보장은….”
“당연히 해 줘야지. 제국의 황제가 와서 물어봐도 안 알려 줄게.”
“크흠.”
그 대신 5골드를 조심스럽게 가져와,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입꼬리 찢어짐.”
“아니야. 이거 그냥 하품하는 거야.”
헤와른이 뇽뇽이의 말에 몸을 움찔했다. 정곡을 찔린 거였다.
하나 맞다고 할 수 없었다. 자신도 나름 고귀한 연금술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어허. 뇽뇽아. 다른 사람한테 그러면 안 돼. 가끔은 눈에 보여도 모르는 척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야.”
“…애한테 좋은 거 가르치시네요.”
그러나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결국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자식 교육 하나는 잘하거든.”
“칭찬 아닌데….”
“어쨌든. 이걸로 거래는 성사된 거다?”
“그래요.”
에탄의 말에 헤와른이 긍정했다.
하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가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이 해결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화염의 지배자를 만난 뒤부터가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탑주님의 흥미를 끌 만한 제안을 하셔야 하는데… 따로 준비한 건 없나요?”
“당연히 있지.”
에탄이 헤와른의 물음에 자신 있게 답했다.
“뭔데요?”
헤와른이 당당하게 답하는 에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짓고는.
“설마 돈으로 매수하겠다. 그런 건 아니죠? 오히려 그런 걸로 시도했다가는 잿가루로 변하실 수 있어요.”
진지하게 뒷말을 이었다.
“세상 모든 마법사가 너처럼 돈만 밝히지는 않아. 그러니까 안심해라.”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말문이 턱 막혔다. 이번에도 정곡을 찔린 거였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요. 마법으로 돈을 만들어 낼 수는 없잖아요?”
“그건 맞지.”
에탄이 헤와른의 변명에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어쨌든. 화염의 지배자에 흥미를 끌 만한 건 확실히 준비했어.”
그리고 씨익 웃으면서 뒷말을 이었다.
“그게 뭔데요?”
“마법에 재능이 넘치는 5살 어린이.”
“…네?”
5살 어린이.
그 말을 듣는 순간, 헤와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린이에게 향했다.
“아린이는 마법이 아니라 검 담당이야.”
“그러면….”
하지만 에탄은 아린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헤와른이 그걸 듣고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아린이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뇽뇽이에게 말이다.
“맞아. 얘가 마법 담당이야.”
“어딜 봐도 평범한 어린아이인데요?”
“그만큼 힘을 잘 숨긴다는 뜻이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뇽뇽이는 몸 안에 있는 마나를 꼭꼭 숨기고 있었으니까.
“미리 말하지만 화염의 지배자님한테 거짓말하면 큰일 나요.”
그래서 헤와른은 에탄이 자신을 속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뇽뇽이가 마나를 너무 잘 숨겼기 때문이다.
헤와른이 꼼꼼히 살펴봐도 평범한 아이로밖에 안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럼 증거라도 보여 줄까?”
“네?”
“여기서 뇽뇽이가 마법을 사용하면 되는 거지?”
“어… 그렇긴 하죠.”
그래서 헤와른에게 미끼를 던졌고. 그녀는 에탄이 던진 낚시에 제대로 낚였다.
“좋아.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그게 무슨-”
“뇽뇽아. 이 언니한테 파이어 볼 좀 보여 줘.”
“알겠음.”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폴짝.
그리고 의자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서는.
[……]
용언을 발동했다.
우웅!
그러자 뇽뇽이의 머리 위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수련실 벽을 박살 냈을 때와 비슷한 크기의 녀석이었다.
“잠, 잠깐!”
헤와른이 그걸 보고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 거였다.
“안 돼에!”
그래서 뇽뇽이를 멈추게 하려고 했지만.
화르륵!
“불태움!”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은 시기였다.
콰아아앙!
뇽뇽이가 마법진에서 파이어 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걸 가게 벽면에 있는 힘껏 내던졌다.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가게 안에 울려 퍼지고….
“안 돼에에에! 내 재료드으으을! 내 도오오온!”
헤와른의 절규가 뒤를 장식했다.
* * *
그렇게 헤와른의 가게에서 한바탕 난동을 부린 후. 에탄은 뇽뇽이와 아린이를 데리고 가문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다 끝났네.”
물론 빈손은 아니었다.
“마법사의 추천서라….”
에탄은 헤와른에게 추천서를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화염의 지배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흐음. 확실히 신기하게 생겼어.”
에탄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추천서를 빤히 쳐다봤다. 전생 때는 못 받아 본 물건이니.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마나로 인장을 각인한다….”
마법사의 추천서는 일반 편지지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추천을 해 주는 마법사의 마나를 이용해 인장을 만든다는 거였다.
추천서를 날조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한다고 했다.
“역시 마법은 신기해.”
에탄이 그 말을 상기하면서 편지지에 있는 인장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마나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에탄의 눈에 보였다.
“뇽뇽이도 할 수 있음.”
뇽뇽이가 그걸 보고는 두 눈을 끔뻑였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래그래. 뇽뇽이도 할 수 있지.”
에탄이 뇽뇽이의 말에 픽 웃었다.
동시에 녀석의 머리를 쓸어 만졌다. 지금만큼은 뇽뇽이가 마음에 들었다.
“다 네 덕분이다!”
뇽뇽이의 뛰어난 마법 실력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거니까.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할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일찍 자자.”
“네!”
“알겠음.”
에탄의 말에 아린이와 뇽뇽이가 힘차게 답했다. 그리고 이불을 덮고 눈을 꼬옥 감았다.
“크응….”
“으으음….”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졌다. 에탄이 새근새근 잠을 자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빤히 바라봤다.
‘아직은 어린 애들이네.’
그 후 속으로 미소를 짓고는.
쓰윽.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모헨. 수련은 잘 돼 가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그리고 수련실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헨을 찾아가서.
“내가 재밌는 제안을 할까 하는데. 한번 들어 볼래?”
자신이 생각한 또 다른 계획을 말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