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터벅터벅.
에탄이 세바스찬과 함께 숲길을 걸었다. 아이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곁을 아린이가 지키고 있었으니까.
‘이걸 말해도 될까?’
사실. 에탄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뇽뇽이의 정체를 세바스찬에게 말해도 되는지에 관한 거였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지금까지는 뇽뇽이의 정체를 숨겨 왔기에 상관이 없었다. 하나. 뇽뇽이가 드래곤이란 걸 알게 된다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는 에탄도 예측할 수가 없으니.
걱정이 태산 같은 게 당연했다.
탁.
그래서 계속 고심을 하며, 걸은 끝에.
“세바스찬.”
에탄이 마침내 움직이기를 멈췄다. 그 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따라온 세바스찬의 이름을 불렀다.
“예. 도련님.”
“그대는 날 믿나?”
그리고 세바스찬에게 묘한 질문을 던졌다.
“저는 언제나 도련님을 믿어 왔습니다. 망나니이던 시절에도요.”
“…그렇군.”
세바스찬이 에탄의 말에 인자한 미소로 답했다. 그걸 들은 에탄이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전생에도 저렇게 대답하더니. 이번 생에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네. 설마 답을 미리미리 만들어 놓은 건 아니겠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세바스찬 말해 줄 게 있다.”
하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에탄이 저 질문을 한 건, 세바스찬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으니까.
“사실 뇽뇽이는 드래곤이다.”
그리고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에탄은 확신했다. 그에게는 뇽뇽이의 비밀을 말해도 될 거라고.
“예?”
“뇽뇽이는 드래곤이야. 지금은 헤츨링인데 인간으로 변신한 상태고.”
“…….”
에탄의 말에 세바스찬이 두 눈을 끔벅였다.
“그렇군요.”
그리고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놀라지 않는 거야?”
에탄이 그걸 보고는 살짝 당황했다. 적어도 다시 한번 물어보기라도 할 줄 알았다.
한데. 저대로 납득을 해 버리니 오히려 에탄이 세바스찬의 반응에 놀랐다.
“어느 정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바스찬이 에탄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뇽뇽이 님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뇽뇽이 님이 나타나기 전날, 아린 님이 등에 메고 있던 알도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자신이 놀라지 않는 이유를 말해 줬다.
“그래. 눈 가리고 아웅이긴 했지.”
아린이가 메고 있던 알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뇽뇽이의 존재를 어느 정도 유추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니 다른 이들 또한 뇽뇽이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짐작하고 있으니라.
“다만. 드래곤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뇽뇽이가 드래곤이라는 건, 세바스찬도 어느 정도 놀랄 만한 점이긴 했다.
이 세상에서 드래곤이 사라진 지 제법 오래됐으니까.
“하지만 숨긴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이미 뇽뇽이 님이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본 사람이 수두룩하니까요.”
“그렇지.”
산채에 있는 마법의 흔적들.
세바스찬은 그게 뇽뇽이가 해낸 거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러니 지오반과 다른 이들 또한 뇽뇽이의 힘을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이니라.
“아버지한테는 내가 직접 말하겠다.”
그래서 에탄은 이번 기회에 뇽뇽이에 대한 정보를 말하기로 했다.
“스크롤을 찢어라.”
“알겠습니다.”
에탄의 말에 세바스찬이 상냥한 미소로 답했다. 그 후 자신의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고.
부욱!
손으로 찢어 버렸다.
파아아앗….
그러자 에탄과 세바스찬의 주위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팟!
이어서 그 위로 지오반과 발헬름. 1급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주님. 뇽뇽이 님을 찾았습니다.”
“안내해라.”
“예.”
세바스찬이 지오반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그 후 에탄과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움직였던 것이기에, 현장으로 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끄으윽….”
“으읅.”
그렇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산적들의 앓는 소리가 이들의 귀에 들려왔다.
놈들은 여전히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녀석들에게 응급 처치를 해 줘라.”
지오반이 쓰러진 놈들을 보고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적들이 지오반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리고 감옥에 집어넣어라. 전원 빠짐없이 노역장으로 갈 거다.”
이어지는 말에 이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노역장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이들도 알고 있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지오반의 말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때. 빌헬름이 남은 아이들의 처리를 물었다.
“…….”
그러자 10명의 아이들이 지오반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들의 운명이 지오반에게 걸려 있다는 걸 눈치챈 거였다.
“일단은 데려간다. 당장 갈 곳도 없는 아이들 같으니까.”
다행히 지오반은 이들을 내치지 않았다. 이런 지오반의 결정에는 아린이와 뇽뇽이가 보내는 간절한 눈빛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예.”
빌헬름이 그걸 알아차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남은 기사들과 함께 아이들을 챙기고는.
“지금부터 가문으로 복귀한다. 아이들을 유심히 보호해라.”
마침내 칼라사르 가문으로 돌아갔다.
.
.
.
“아버지. 사실 뇽뇽이는 드래곤입니다.”
그리고 가문으로 돌아온 에탄은 지오반에게 뇽뇽이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게 문제라도 된다는 뜻이냐?”
“예? 그건 아닌데….”
“그럼 됐다. 나가 봐라.”
그런데.
“뇽뇽이는 우리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 * *
다음 날.
“…허어.”
에탄은 아침을 먹고 수련실로 향했다. 그리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멍을 때렸다.
어제 지오반이 했던 대답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라니.”
지오반 또한 뇽뇽이가 범상치 않다는 건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애초에 아린이가 메고 있던 알이 사라지고 뇽뇽이가 나타났으니까.
- 드래곤이면 오히려 좋다. 가문에 큰 힘이 되어 줄 테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지는 상황에 놀라웠다. 지오반이 뇽뇽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에 환하게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드래곤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찌 보면 확실한 보증 수표 같은 셈이니까.
-하지만 사고 치면 네 책임이다.
-예?
-그러니까 알아서 뇽뇽이를 제어하거라. 만약 이번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그때는 네 녀석에게 처벌을 내리겠다.
-아니… 어째서.
-원래 자식의 잘못은 부모가 책임지는 법이다. 반론은 듣지 않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뇽뇽이가 사고를 치면 이제 에탄이 벌을 받는다. 그러니 에탄은 뇽뇽이를 좀 더 세심하게 봐줄 필요가 있었다.
“우우….”
“어허. 손 똑바로 들어. 자꾸 팔 내려간다?”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두 팔을 내리지 못했다.
“뇽뇽이 팔 아픔.”
“안 돼. 이번에는 뇽뇽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혼나야 해.”
“우….”
아군이었던 아린이 마저, 이번에는 뇽뇽이의 편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가출을 할 수 있어?”
“…….”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잘못했어, 안 했어.”
“뇽뇽이. 잘못했음….”
“그럼 팔 열심히 들어. 이번에는 안 봐줄 거야.”
아린이의 단호한 대답에 뇽뇽이의 두 눈이 흔들렸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이었다.
“끌끌.”
에탄이 그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뇽뇽이가 아린이에게 혼이 나는 모습이 제법 웃겼기 때문이다.
‘재밌네.’
전생이 검이었던 아이가 드래곤을 혼낸다니. 그 어디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없으리라.
그래서 에탄은 이 광경을 신난 마음으로 바라봤다.
“들… 들어가도 될까요?”
그때. 연무장 바깥에서 힐린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
우르르!
그리고 에탄의 대답에 연무장 안으로 힐린첸과 10명의 아이들이 들어왔다.
“똑바로 서.”
힐린첸이 아이들과 함께 뇽뇽이 앞에 일렬로 줄을 맞췄다.
“하나… 둘.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 뇽뇽이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는.
“감사합니다!”
에탄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공짜 아니야. 너희들은 이제 가문의 집사, 시녀로 일하게 될 거야.”
에탄이 아이들을 빤히 바라봤다.
10명의 아이들은 결국 칼라사르 가문에서 일을 하게 됐다.
오고 갈 데도 없는 불쌍한 녀석들이니까.
“그리고 힐린첸이라고 했나?”
“네!”
“넌 많이 힘들 거야. 세바스찬이 워낙 깐깐한 집사라서 말이지.”
게다가 힐린첸은 세바스찬의 후계 집사로 임명됐다. 그 말은 즉 미래의 전투 인원으로 키우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
“각오하는 게 좋아.”
힐린첸의 앞날이 험난한 건 당연한 거였다.
“어떤 일이든 해내겠어요. 저는 어차피 한 번 죽었던 목숨이니까요.”
에탄의 말에 힐린첸이 침을 삼켰다. 눈빛에 두려움은 깃들어 있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대신해서 뇽뇽이를 살리려고 했던 그녀니까.
“좋아.”
그래서 에탄은 힐린첸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니 말이다.
“그럼 나가 봐. 보이는 것처럼 뇽뇽이를 혼내고 있는 중이었거든.”
“아… 네.”
힐린첸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뇽뇽이를 향해 파이팅 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그럼 가 보겠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연무장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재밌는 애들이네.”
에탄이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삶에 의욕을 잃어 가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든 살려고 하니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적어도 망나니였던 자신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계속 길러야 한다.’
하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에탄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니까.
슬쩍….
“손 내려간다.”
“우….”
그 와중에 뇽뇽이가 팔을 내리려고 했다가 에탄에게 걸리는 건 덤이었다.
* * *
그 시각.
“놈이 당했다고?”
“…예.”
얼어붙은 산맥 너머에 있는 궁정의 주인이자.
“하.”
마계 대공 중 한 명인 7대공 포레스튼.
“어처구니가 없군.”
그는 자신의 수하인이 전한 소식에 황당함을 느꼈다.
“가문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죽었다?”
북부에 있는 가문에 침투시킨 최하급 마족, 페르메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과정은?”
“그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파악하지를 못했습니다.”
포레스튼의 물음에 수하인이 침을 삼키면서 답했다.
“최대한 빨-”
그리고 뒷말을 이어 가려는 순간.
콰직!
포레스튼이 녀석의 머리를 마기로 박살 냈다. 이유도 모른 채 자신에게 보고를 올렸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는 거였다.
후두둑.
순식간에 수하인의 머리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포레스튼이 권좌에 앉은 채 그 흔적을 바라봤다.
“흐음. 베르사르 가문이라.”
탁. 탁.
그리고 의자에 있는 받침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한번 살펴볼 필요는 있겠군.”
북부에 아주 작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