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마법은 검술과 다른 분야다.
기사가 오러를 사용해서 적들을 벨 때. 마법사들은 마나를 통해 힘을 발휘한다.
“어떻게… 저 아이가….”
그래서 할린첸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최소 5살은 어려 보이는 뇽뇽이가 마법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무영창?”
게다가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때문에 상급 마법으로 갈수록 시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한데. 뇽뇽이는 다중 마법을 완성시키는 데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도대체….”
그래서 힐린첸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뇽뇽이가 절대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마법사다! 마법사가 있어!”
“저 꼬맹이 놈을 죽여!”
“녀석만 처리하면 끝이다!”
그때. 산적들이 검을 빼 들었다.
뇽뇽이의 마법진을 보는 순간, 놈들은 뇽뇽이를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나머지 아이들을 인신매매로 팔아넘길 수 있으니까.
“뇽뇽이. 약하지 않음.”
산적들의 말에 뇽뇽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드래곤으로 태어난 그에게 있어, 인간은 하등한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린이나 에탄과 같은 이들은 예외였다.
자신을 돌봐주는 존재니 말이다.
“하지만… 너희는 아님.”
그러나 산적들은 아니었다.
뇽뇽이의 눈에 이들은 지나가던 개미보다 못한 놈들이니.
“사라지게 해 줌.”
뇽뇽이는 놈들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화륵… 화르르륵!
5개의 마법진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앙!
이어서 거대한 폭발음이 산채에 울려 퍼졌다. 불붙은 돌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일어난 소음이었다.
쿵! 쿠우웅!
수십 개의 화염 구가 마법진에서 물밀듯이 뿜어 나왔다. 그리고 몰려 있는 산적들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어어….”
“일. 일로 온다!”
“모두 피해!”
그렇게 3초가 지났을 때.
이들의 머리 위에서 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막… 막아!”
“방패 들어!”
그러자 산적들이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떤 이는 돌을 피하기 위해서 방패로 머리를 보호했다.
콰앙!
콰아앙!
하지만 그 어떤 행동도 소용이 없었다. 드래곤이 발동한 용언 앞에서는 말이다.
“아아악!”
곳곳에서 놈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화염구는 멈추지 않고 놈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타탁… 탁.
그렇게 5초가 지났을 때.
산채에 있던 수많은 산적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마법….”
할린첸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놈들이 서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거구들이, 흔적도 없이 명을 달리했다.
눈앞에 있는 작은 어린아이에 의해서 말이다.
“으응….”
그 순간 뇽뇽이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뇽뇽이… 졸…림.”
그리고 좌우로 몸을 비틀거렸다.
엄청난 힘을 가진 드래곤이지만 아직은 헤츨링. 고작해야 1살도 되지 않은 몸이라 고위 마법을 펑펑 써 댔던 게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앗!”
할린첸이 휘청거리는 뇽뇽이를 두 손으로 받아 냈다.
“흐응…흥….”
그 후 새근새근 잠들어 버린 뇽뇽이를 빤히 바라봤다. 조금 전 산적들을 처리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언니. 우리 이제 어떡해요?”
그래서 신기함을 느끼려는 찰나.
다른 아이들이 할린첸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었다.
이들 또한 뇽뇽이처럼 어린 나이였기에, 자신들을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일단 도망가자. 곧 남은 산적들이 여기로 몰려올 거야.”
할린첸이 그걸 깨닫고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끝냈다. 이 정도로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으니, 바깥에 있는 산적들이 이변을 눈치채고도 남으리라.
아니. 어쩌면 벌써 이곳으로 오고 있을 수도 있다.
“모두 날 따라와.”
그러니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중요했다. 마법을 사용하던 뇽뇽이도 잠들었으니.
“최대한 산채로부터 멀어져야 해.”
도망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타탁!
할린첸이 말을 끝내고는 숲 쪽으로 내달렸다.
우르르!
그러자 열 명의 어린아이가 할린첸을 따라 산채에서 빠져나갔다.
뇽뇽이의 마법에 기절을 한 나머지 산적들을 내버려 두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오… 재밌는 일이 벌어졌네?”
우두머리 산적이 뇽뇽이가 납치당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 후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과, 기절했다가 깬 산적들의 상황 설명을 듣고는.
“마법을 사용하는 어린아이라… 이거 잘하면 재미 좀 볼 수 있겠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칼라사르 가문의 대대적인 뇽뇽이 찾기 작전이 시작됐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웠던 빌헬름과 1급 기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뇽뇽이의 기운이 희미해졌어요.”
처음에는 뇽뇽이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린이가 뇽뇽이에 힘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뇽뇽이가 마법을 쓰면서, 아린이가 느끼던 뇽뇽이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뇽뇽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면 어떡하죠? 아빠… 저 너무 불안해요.”
그때부터 아린이는 마음이 흔들렸다. 최악의 경우에는 뇽뇽이가 죽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뇽뇽이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하지만 에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뇽뇽이가 보여 준 마법의 위력을 생각해 보면, 어지간한 놈들은 생채기도 내지 못하리라.
‘좋은 상황이 아닌 건 분명하다. 더 늦기 전에 뇽뇽이를 찾아야 해.’
하나. 아린이가 기운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는 건 뇽뇽이에게 이변이 생겼다는 뜻일 테니.
에탄은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여기부터는 뿔뿔이 흩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가문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수색해야 할 테니까요.”
에탄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 후 자신과 함께 수색을 하던 지오반에게 뒷말을 붙였다.
“저는 아린이와 둘이서 움직이겠습니다.”
“알겠다.”
지오반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칼라사르 가문 영지는 이미 살펴본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뇽뇽이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지금부터는 3인 1조로 수색을 시작한다.”
이제는 인원을 완전히 쪼개야만 했다.
그러나 지오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가문의 1급 기사 3명이면 잔챙이들은 거뜬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
“발헬름. 스크롤을 각 조에 배분해라.”
“예.”
지오반의 말에 발헬름이 힘차게 답했다.
“상자를 열어라.”
그 후 1급 기사들이 들고 있는 상자를 개봉시켰다. 그러자 빨간색과 파란색 스크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색은 위급 상황 시 이용하는 귀환 스크롤이다. 그리고 파란색은 뇽뇽이 님을 발견했을 경우에 사용해라. 그러면 우리 모두 그쪽으로 텔레포트를 할 것이다.”
발헬름이 두 개의 스크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3명으로 조를 짠 기사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다.
“그러고 보니 도련님은 인원이 한 명 비는군요. 정말 두 분이서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에탄이 2인 1조 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제가 도련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뒤에 있던 세바스찬이 에탄과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집사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발헬름이 세바스찬의 말을 듣고는 순순히 긍정했다. 그가 에탄과 함께하는 거에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도련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세바스찬 또한 어느 정도 무위를 겸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그걸 겉으로 드러낸 적이 잘 없을 뿐이다.
“음… 나는 상관없는데.”
하지만 에탄은 세바스찬의 합류를 반기지 않았다. 뇽뇽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련님은 제가 싫으십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러면 함께하겠습니다. 발목을 붙잡을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러나 거절할 만한 명분도 없었다. 오히려 세바스찬을 밀어내면 더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으리라.
“세바스찬 님! 잘 부탁드려요!”
게다가. 아린이도 세바스찬의 합류를 좋아하고 있었으니.
“알겠어. 대신 뒤처지면 바로 버릴 거야.”
에탄은 세바스찬과 함께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다리에 불이 나도록 달려야겠군요.”
세바스찬이 에탄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인자한 미소로 아린이와 에탄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그럼 다시 뇽뇽이 님을 찾아보죠. 집사로서 도련님과 아린 님을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뇽뇽이를 어떻게든 찾아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 * *
타탁! 탁!
우지끈!
할린첸과 열 명의 어린아이가 숲길을 내달렸다.
“잡아!”
“절대 놓치지 마!”
그리고 이들의 뒤를 산적들이 쫓아왔다.
“다들 이쪽으로!”
15시간. 무려 15시간 동안 할린첸은 숲을 내달렸다. 그러면서 계곡과 나무에 있는 과일들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다만. 할린첸조차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벌써 발견할 줄이야.’
산채에 있는 우두머리의 추적 능력이 자신의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에 들르는 게 아니었는데.’
중간에 아주 잠깐 마을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산적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질끈.
모두 좋지 않은 운명을 맞이했다.
할린첸이 그때의 광경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아!”
그리고 뒤쪽에 있는 아이들에게 입을 열었다. 할린첸은 녀석들을 데리고 규모가 큰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작은 마을과는 다르게 경비대가 있으니. 도착하기만 하면 몸을 보호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언. 언니. 앞에!”
그때. 한 어린아이가 전방을 확인하고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할린첸이 아이의 소리에 오른쪽 앞을 살펴봤다.
“이 애송이 자식들 드디어 잡았다!”
“너희만 마을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게 아니지.”
다른 산적들이 자신들을 잡기 위해 미리 매복해 있었다.
“무슨….”
할린첸이 그걸 보고는 망연자실했다. 자신들이 포위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흐음… 흠… 아린이….”
게다가 뇽뇽이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언니. 우리 이제 어떡해…?”
이 위기를 벗어날 수단이 전혀 없었다.
“이제야 잡혀 주는군.”
그걸 깨닫는 순간, 할린첸을 쫒던 우두머리 산적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스릉!
그러면서 도끼 두 자루를 허리춤에서 꺼내고는.
“그럼… 도망친 대가를 받아야지? 걱정하지 마. 가볍게 팔과 다리 한 짝씩만 가져가 줄 테니까.”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을 덤덤히 내뱉었다.
“…그래.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후 할린첸이 품에 안고 있는 뇽뇽이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네 품에 잠들어 있는 녀석.”
그리고 뇽뇽이를 도끼로 가리키면서.
“그 아이를 넘겨라. 그러면 너를 포함한 나머지 애들은 살려 주마.”
할린첸에게 달콤한 제안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