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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39화 (39/200)
  • 제39화

    타탁! 탁!

    마차를 탄 에탄과 세바스찬이 모이세른의 가게 앞에서 내렸다.

    “조심히 내리세요.”

    “네!”

    뒤쪽 마차에 타고 있던 시녀장 리른이 아린이의 손을 잡고 이들을 따라 하차했다.

    리른이 먼저 내리고, 아린이가 넘어지지 않게 손으로 잡아 보조해 줬다.

    아린이의 다리가 아직 마차에서 땅까지 닿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린이는 키가 더 커야겠네. 아직 애기야. 애기.”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검을 잡을 때는 그 누구보다 기사다운 아린이도. 마차에서 내릴 때는 조심스러운 모습이 재밌었다.

    이럴 땐 영락없는 5살 어린아이 같았으니까.

    “흥. 아린이는 더 클 거예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볼을 부풀렸다. 키가 작다는 걸로 놀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반항심이 발동된 거였다.

    “맞아요. 아린 님은 저보다 더 크실 수 있답니다. 에탄 도련님이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그때. 리른이 아린이를 향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에탄을 찌릿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린애를 놀려서 되겠냐? 는 무언의 훈계였다.

    “아니. 나는….”

    에탄이 리른의 살벌한 눈빛을 보고 몸을 흠칫했다. 그러다가 세바스찬을 향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거였다.

    “저도 리른의 말에 동의합니다. 에탄 도련님이 나빴습니다.”

    하나. 아린이의 편은 리른뿐만이 아니었다. 에탄의 옆에 있는 세바스찬 또한 리른의 말에 힘을 실어 줬다.

    “세바스찬… 너 마저.”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세바스찬만큼은 자신을 옹호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 버렸으니 충격을 받을 만도 했다.

    “흐흥~ 이번에는 아빠가 패배했네요.”

    아린이가 배신당한 자의 표정을 짓고 있는 에탄을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리른 님. 세바스찬님! 안으로 들어가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리른과 세바스찬을 데리고 모이세른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에탄이 자신을 버리고, 먼저 들어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검술로는 아린이를 압도적으로 이기는 그였지만, 사랑을 독차지 하는 건 아린이였다.

    5살 아린이의 귀여움 앞에서는, 천하의 에탄도 이길 수가 없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 * *

    “마침 좋은 순간에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아린 님이 연회에서 입을 법한 옷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모이세른이 아린이가 연회에 참석한다는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반면 에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린이의 연회복이 제작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설마. 아린이가 이번 베르사르 가문 연회에 같이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아린 님이 연회에 참석하는 걸 예상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연회에 입을 옷이 있기는 해야 하니 만들고 있었죠. 사교계가 활발해질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혹시 모이세른이 예측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단순히 아다리가 맞아떨어진 것뿐이었다.

    “그럼 제작은 언제 끝나나요?”

    이번에는 시녀장 리른이 모이세른에게 질문했다.

    “3일 뒤에는 완성될 겁니다.”

    모이세른이 그녀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삼 일이면 연회가 열리기 전이니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다만. 이런 모이세른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그런데. 이번에는 나도 연회에 참석한다.”

    “예?”

    “나도 아린이랑 같이 간다고.”

    바로. 에탄이 아린이와 함께 베르사르 가문에 간다는 거였다.

    “도련님이… 가신다고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도련님은 그쪽 가문을 싫어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모이세른이 그 말을 듣고는 의아함을 가졌다. 에탄이 베르사르 가문을 싫어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아니야.”

    “으음….”

    “거기에 좀 재수 없는 동갑내기 녀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놈보다 더 잘났다고 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피할 이유가 없지.”

    “그렇군요.”

    에탄의 말에 모이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많이 강해지신 거 같습니다. 검술에 검 자도 모르는 제가 봤을 때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니까요.”

    그리고 에탄을 훑어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에탄이 모이세르의 칭찬에 피식 웃었다.

    ‘그 자식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놈 때문에 베르사르 가문과 척을 질 필요는 없지.’

    그러면서 속으로 한 녀석을 떠올렸다. 베르사르 가문의 장남인 테이벤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악연이었다.’

    테이벤. 베르사르 가문의 장남이자 에탄과는 동갑인 인물이다.

    게다가 검을 잘 다루기까지 해서 이목을 많이 받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누가 알았을까. 마물이 쳐들어왔을 때 가문의 비고를 챙겨서 도망갈 줄은. 그것도 가문의 지원은 전부 받아먹은 녀석이 말이야.’

    테이벤은 마물과 야만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북부에서 도망쳤다.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에탄도 모른다. 그걸 알아내기 전에 마물에게 죽었으니까.

    “아빠? 표정이 안 좋아요. 무슨 일 있어요?”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 아린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제서야 에탄은 자신의 얼굴이 싸늘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뿐이야.”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답했다. 그리고 아린이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만지고는.

    “결론을 말하면 내 옷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데… 5일 안에 할 수 있겠어?”

    모이세른을 향해 뒷말을 이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모이세른이 에탄의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러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련님처럼 저도 베르사르 가문에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쪽 가문의 옷을 담당하는 장인이죠.”

    “음… 누군지 알 거 같은데. 그 콧수염 길쭉하게 기르는 녀석?”

    “맞습니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식이 제 옷의 수준이 낮다는 뒷말을 하고 다니더군요.”

    “오호.”

    “그러니 이참에 콧대를 박살 내 버리겠습니다.”

    “아주 좋아.”

    모이세르의 대답에 에탄이 흡족함을 느꼈다. 불타는 그에 의지가 마음에 든 거였다.

    “5일 안에 아린 님의 옷과 함께 완성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힘들다고 엄살을 부릴 법도 한데. 이번에는 모이세르가 먼저 해내겠다고 말을 꺼냈다.

    “진정한 옷의 아름다움이 뭔지 톡톡히 보여 주마… 이 콧수염쟁이 자식. 어디 한번 콧대 좀 박살 나 봐라!”

    그리고 전투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잘 부탁한다.”

    그 뒤 모이세르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다시 가문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모이세르가 운영하는 가게 전등이 3일 내내 꺼지지 않았다는 후일담이 멀리 퍼지는 건 덤이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연회가 열리는 날이 찾아왔다.

    “뇽뇽아! 나 없는 동안 얌전히 있어야 해!”

    “알겠음. 뇽뇽이. 잠자고 있을 거임.”

    그동안 에탄은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수련을 했다. 딱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

    뇽뇽이가 검을 휘두르다가 에탄의 머리카락을 살짝 잘라 낸 것 빼고는 말이다.

    ‘낮잠 자다가 눈먼 검에 골로 갈뻔했지.’

    수련을 끝내고 벽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때 뇽뇽이가 검을 휘두르다가 놓쳤고… 그 검이 에탄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다행히 에탄의 예민한 감각 덕분에 큰 사고는 면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에탄은 아직도 오한이 느껴졌다.

    “…미안함.”

    그때. 뇽뇽이가 에탄을 향해 시무룩한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에탄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눈치챈 거였다.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난 안 죽었으니까 괜찮아.”

    “…….”

    “대신 내가 없는 동안 사고 치면 안 된다. 우리가 한 약속도 계속 지키고.”

    “알겠음.”

    에탄의 말에 뇽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 일 덕분에 뇽뇽이는 에탄을 아주 조금 따르게 됐다.

    ‘그래도 착한 편이네.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에탄은 뇽뇽이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나이를 불문하고 어려운 거니까.

    “왜. 아린이의 친구를 괴롭히고 있느냐.”

    그래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려는 찰나. 뒤쪽에서 지오반이 다가왔다.

    “어른답게 행동하거라.”

    그리고 에탄을 쳐다보면서 혀를 찼다. 지오반이 보기에는 에탄이, 뇽뇽이를 나무라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그게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냐. 딱 봐도 맞는데.”

    “아니.”

    “마차에 타기나 하거라. 연회장에 늦으면 네 탓이다.”

    에탄이 지오반의 말에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아린이에 이어서 뇽뇽이까지 감싸고 있다.

    ‘귀엽지 못한 내 잘못이다.’

    하지만 그걸 억울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5살이고 에탄은 나이를 있는 대로 다 먹은 상태니까.

    “할아버지! 아빠 괴롭히지 마세요!”

    “아니… 이건.”

    “변명하지 마세요! 제가 뒤에서 다 들었거든요!”

    “크흠. 흠.”

    하나. 에탄의 지원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전에 에탄에게 패배를 안겨 주기는 했지만.

    아린이는 여전히 지오반보다 에탄을 좋아했다.

    “아린아….”

    에탄이 자신을 대신해서 지오반을 혼내(?)는 아린이를 보고 감동을 먹었다. 연회장에 가기 위해 옷까지 차려입어서 그런지.

    아린이의 모습이 꼭 하늘에서 내려온 수호천사와 같았다.

    특히 드레스에 걸려 있는 은빛 보석들이 아린이의 머리 색과 어울려서 더 빛이 나고 있었다.

    아린이의 얼굴에서 말이다.

    “아빠도 잘한 건 없어요.”

    그렇게 에탄이 아린이의 모습을 넋 놓고 구경할 때. 아린이가 에탄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응?”

    “뇽뇽이는 제 친구잖아요. 그러니까 뇽뇽이를 슬프게 하면 안 돼요.”

    “그래… 알겠어.”

    에탄이 아린이의 말을 듣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기도 혼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네.’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린이 덕분에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출발하자.”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에탄의 생각이었다. 가주인 지오반은 자신이 아린이에게 혼났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터억.

    그래서 힘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피식.

    에탄이 그걸 보고는 작게 웃었다.

    지오반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이제는 재밌었다.

    전생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면모니까.

    “아린아. 나중에 할아버지 한 번 안아드려.”

    하지만 저대로 내버려 두면 삐질(?)수도 있으니. 아린이에게 지오반의 기분을 풀어 주라고 넌지시 말했다.

    “우리도 마차에 타자.”

    그 후 아린이와 함께 뒤쪽 마차에 올라타고는.

    타탁!

    베르사르 가문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뇽뇽이. 같이 가고 싶음.”

    그 모습을 뇽뇽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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