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폭포.
위에 있는 물이 아래쪽으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곳. 그 규모가 클수록 웅장함이 배가 된다고 한다.
“이걸 베라는 말씀이십니까?”
모헨 또한 폭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폭포를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작은 녀석들은 계곡에 흔히 있으니까.
“떨어지는 물을….”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폭포를 검으로 베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걸 시도하는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래서 에탄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건 명령이다.”
에탄은 자신이 한 발언을 취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에 있는 폭포를 검으로 베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아빠! 물이 계속 아래로 내려와요!”
그때. 아린이가 아래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잔잔한 호수와는 다른 묘미에 빠져든 거였다.
“이게 폭포라는 거야.”
“폭포?”
“응. 위에서 아래로 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지? 저런 걸 폭포라고 불러.”
“우아아… 폭포….”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폭포라는 걸 처음 보기 때문에, 아린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 저 물을 검으로 베어야 하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제일 궁금한 게 폭포를 베라는 에탄의 명령이었다.
“그래야 산에서 내려올 수 있어.”
“우움… 그러면 폭포를 베지 못하면 영원히 여기에서 사는 거예요?”
“맞아.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해낼 때까지 산에서 계속 지내야지.”
에탄이 아린이의 물음에 단호하게 답했다. 옆에 있던 모헨이 그걸 듣고는 침을 삼켰다.
에탄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자신을 빤히 바라봤기 때문이다.
‘이건 네 얘기니까 잘 들어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이다.
“뭐냐, 그 얼굴은. 혹시 내가 불가능한 걸 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야?”
에탄이 모헨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딱 봐도 자신을 못 미더워 하는 게 보였으니.
내심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가 망나니였다고 해도, 너한테 불가능한 걸 해내라고 하지는 않아.”
“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망나니…죄송합니다.”
모헨이 에탄의 말에 반박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용히 올라가는 검집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백 마디 말보다 한번 보는 게 더 납득하기 쉽다고 했지.”
“?”
“보여 줄게. 폭포를 검으로 베는 거. 그러면 너도 군말 없이 내 말에 따르는 거다?”
에탄이 말을 마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이 꼭 자신이 원하던 대로 그림이 흘러가서 만족하는 느낌이었다.
모헨이 보기에 말이다.
“…….”
그래서 굉장히 싸한 기분을 느꼈지만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터벅터벅.
그저 에탄이 폭포로 가는 걸 가만히 보는 게 전부였다.
쓰릉!
에탄이 폭포 앞에서 검을 빼 들었다. 세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폭포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후우….”
그 상태에서 에탄이 숨을 들이마셨다.
동시에 양손으로 검을 쥐어 잡고 폭포를 빤히 바라봤다.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찰나의 순간.
그 틈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
그렇게 3초가 지났을 때.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에탄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촤악!
그러자 에탄의 검이 물을 집어삼켰다.
“베었다…?”
그리고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폭포가 사선으로 베어져 나갔다.
모헨이 그걸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말 폭포를 벨 줄 몰랐으니까.
“어떻게….”
사실. 모헨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수준으로는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러가 없는데.”
최소. 오러 기사급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에탄 님이 오러 기사급…?”
에탄이 일정 부분에서는 오러 기사와 맞먹는다는 뜻이니.
모헨이 놀라는 게 당연한 거였다.
“이제 불만은 없겠지?”
에탄이 검을 집어넣었다.
그 후 모헨에게 시선을 돌렸다. 턱이 빠질 기세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제법 예술이었다.
“오러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해낼 수 없는 과제는 아니야. 그러니까 하기도 전에 포기하지 마.”
에탄이 벙쪄 있는 모헨에게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나 때는 말이….”
“아린이도 해 볼래요!”
그리고 뒷말을 이으려는 순간, 아린이가 에탄의 옆을 지나쳤다.
타탁!
이어서 폭포 앞에서 에탄처럼 걸음을 멈추고.
“흐으음….”
에탄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더니.
부웅!
파파팍!
에탄처럼 폭포를 사선으로 베어 냈다. 앞서 시범을 보인 에탄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아빠! 해냈어요!”
“어어… 어. 잘했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아린이가 검술 천재라고 해도, 저걸 바로 해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크흠. 봐 봐! 아린이도 저렇게 해내는데! 내 전속 기사인 네가 못해서 되겠어?”
하지만 능숙한 어른답게(?) 1초도 지나지 않아 모헨을 압박했다. 아린이가 만들어 낸 결과를 이용하는 거였다.
“아린 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5살인데.”
“대련에서 제가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5살 어린아이도 하는데. 20살이 넘은 네가 못 한다고? 그냥 가문에서 쫓아낼까.”
“…하. 하겠습니다.”
모헨이 마지막에 나온 에탄의 말을 듣고 몸을 움찔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에탄은 진심으로 그럴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에탄의 명령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해낼 때까지 여기서 살아라.”
“그… 성공하면 어떻게 합니까?”
“알아서 내려와. 오는 길은 알고 있지?”
“확인은 따로 안 하시는 겁니까?”
모헨이 에탄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속된말로 자신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 네 손해지. 내가 피해를 입는 건 아니잖아.”
에탄이 모헨의 반문에 피식 웃었다. 그 후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리고 네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놈이 아닌 건 알고 있어. 누구보다 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진 녀석이니까.”
나지막하게 뒷말을 이었다.
“…….”
모헨이 에탄의 말에 숨을 들이켰다. 저 발언은 자신을 믿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모헨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벅찰 수밖에 없었다.
“꼭 해내겠습니다.”
그래서일까.
조금 전과는 다르게 모헨의 두 눈에 강렬한 빛이 생겼다. 어떻게든 폭포를 베어 보겠다는 다짐이 모헨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거였다.
“좋아.”
에탄이 조금은 변한 모헨의 모습을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늦게 오진 말아라. 적어도 한 달 안에는 완성하는 걸 목표로 해.”
“죽기 살기로 해야겠군요.”
“당연하지. 누구 전속 기사인데?”
“하하!”
에탄의 말에 모헨이 입을 벌리면서 웃었다. 그 뒤 에탄을 빤히 바라보고는.
“한 달 안에 해 보겠습니다.”
한 달 안에 칼라사르 가문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에탄이 그걸 듣고는 피식 웃었다.
그 후 모헨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아린아. 가자.”
아린이와 함께 산길을 내려갔다.
* * *
그렇게 삼 일이 지났다.
“아빠. 모헨 기사님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모헨은 여전히 산속에서 폭포를 베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럼. 그 녀석이 보기에는 비실해 보여도. 성격 하나는 독한 자식이야.”
하지만 에탄은 모헨을 걱정하지 않았다. 전생 시절 그가 봤던 모헨은 단단한 강철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어떻게든 해낼걸.”
그래서 믿고 있었다.
자신이 보여 준 길을 끝내는 걸어갈 거라고. 그리고 당당하게 돌아올 거라고.
“으음. 하지만 산에는 야생 동물도 많이 있는데….”
하지만 아린이는 아니었다.
혹시나 모헨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이 아린이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아린이는 신경이 쓰이겠지.’
어찌 보면 당연한 거리라.
자신을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사람이 산에서 혼자 지내는 거니까.
200전 200패(?)라는 기록이 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아린아.”
“네?”
“너무 걱정하지 마. 모헨이 아린이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기는 하지만… 산속에 있는 야생 동물보다는 강해.”
“으음.”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두 손을 꼼지락거리는 걸 멈췄다. 그 후 혼자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알겠어요.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그게 맞는 거겠죠. 솔직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빠가 저보다 더 똑똑하잖아요!”
이내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에탄의 말에 수긍을 하는 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에탄을 믿는 거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아린아….”
그걸 느낀 에탄이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믿는다고 하니.
마음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맙.”
“끄응… 흐응!”
그래서 아린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려고 했지만.
“끙! 흐으으응!”
“…뇽뇽아. 아직도 검이랑 싸우고 있어?”
뇽뇽이의 앓는 소리가 그걸 막아냈다.
“할 수 있음… 끄응!”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와중에도 아린이의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도 휘둘러 보겠다는 집념이 남아 있었으니까.
‘저 녀석도 포기를 모르네. 이걸로 3일째인가?’
모헨을 산에 버리고(?) 내려온 당일. 뇽뇽이는 아린이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바로. 산에 있는 폭포를 검으로 베었다는 이야기였다.
“할 수 있음… 아린이 하는 것. 할 수 있음!”
그때부터 검을 휘둘러 보겠다는 집착이 시작됐다.
‘아니. 애당초 드래곤이 검을 휘두르는 게 의미가 있나? 그냥 마법을 사용하면.’
에탄은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가?
마법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절대적인 경지에 오른 녀석들이다.
그러니 검을 휘두를 시간에 마법을 연마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만….
‘내가 하지 말라고 했구나.’
에탄이 그걸 못하게 막아 놨다.
그 사실을 상기한 에탄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그 검도 익혀 두면 언젠가는 쓸 때가 오겠지.”
차마. 다시 마법을 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뒷수습을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게 뻔하니까.
“아린아.”
“네?”
“아빠 검 가지고 가서 뇽뇽이한테 검 잡는 법 알려 줘.”
그래서 검을 단련시키는 쪽으로 노선을 틀었다.
“네. 아빠!”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눈웃음을 보이면서 답했다. 그리고 에탄이 건네는 검을 받고는.
“뇽뇽아! 나랑 같이하자!”
뇽뇽이를 향해 토끼 걸음으로 다가갔다.
“…….”
에탄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일단 두 다리를 이렇게….”
“움직임… 어려움.”
“으음… 그러면 우선 오른쪽 다리부터….”
아린이가 뇽뇽이를 알려 주고.
뇽뇽이가 두 눈을 반짝이면서 아린이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이 제법 보기 좋았기에.
“…나쁘지 않네.”
에탄은 이번 생이 제법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련님. 가주님이 찾으십니다.”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 가주 지오반이 에탄을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