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끄으윽….”
모헨의 앓는 소리가 1급 기사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죽어… 이러다가는 죽는다.”
차디찬 흙바닥에 모헨이 몸져누웠다. 입고 있는 연습복과 머리카락이 더러워졌지만, 모헨에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자신이 죽게 생겼으니까.
에탄과 아린이가 몰아붙이는 훈련으로 말이다.
“생각보다 잘 버텼네. 좀 더 굴려도 되겠어.”
“모헨 기사님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놀아요!”
“…나약함.”
에탄. 아린. 뇽뇽. 세 사람이 제집 안방인 양 드러누운 모헨을 보고 한마디씩 툭 던졌다.
“…….”
모헨이 그들의 말을 듣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단 한 사람도 나를 걱정하지 않는 거지?’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모두 자신을 좀 더 수련시키겠다는 뜻으로 일맥상통했으니까.
그 말은 즉.
앞으로는 더 고된 날들이 이어진다는 거나 다름없으니.
“하하… 하하하.”
‘난 죽었구나. 죽었어.’
모헨이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게 당연했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다. 가서 저녁 먹고 푹 쉬어.”
벌떡.
에탄의 말에 모헨이 흙바닥에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
“… 훈련은 매일 합니까?”
바로.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자신이 3급 기사일 때는 매일매일 수련을 했지만, 이 정도 강도라면 적어도 하루는 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모헨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
“당연하지. 설마… 기사가 되겠다는 녀석이 쉬는 날을 가지려고 했어?”
“아닙니다. 그냥… 예. 그저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모헨의 작은 소망은 1초도 지나지 않아 박살 났다.
‘그래… 이게 맞지. 맞는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는 이 지옥 같은 수련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게 됐다.
* * *
에탄이 모헨을 전속 기사로 뽑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모헨 기사님! 오늘도 제 승리예요!”
그동안 모헨의 일과는 딱 두 개뿐이었다. 오전에는 아린이와 3시간 대련을 하고, 오후에는 연무장 바닥을 죽어라(?) 구르는 거였다.
“이걸로 200번째 승리네요.”
“…축하드립니다.”
“흐흥!”
200전 0승 200패.
모헨이 아린과 대련을 하면서 만들어 낸 성적이다.
‘이걸 대련이라고 할 수 있나?’
사실상 뚜드려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린이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으니까.
쓰윽.
“고생하셨어요! 모헨 님.”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린이는 에탄과(?) 다르게 제법 자비롭다는 거였다. 만약. 자신의 눈앞에 아린이가 아닌 에탄이 있었다면.
‘엄청난 잔소리가 날아왔겠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투덜거렸으리라.
“에잉… 쯧. 아직도 한 번을 못 이기냐.”
아니나 다를까. 에탄이 모헨이 패배한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모헨이 시선을 회피하면서 그 말을 애써 무시했다.
터억!
그 후 아린이가 내민 손을 잡으면서 일어나고는. 몸에 묻어 있는 흙먼지들을 털어 냈다.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비록 모헨 님이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자세가 많이 좋아졌으니까요!”
“음….”
아린이의 말에 모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나름의 위로라고 봐야 하나? 싶었으니까.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거짓말 또한 아니었다.
비록. 한 번도 아린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은 없지만. 모헨은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면 뭐 하냐. 아직 이기지를 못하는데. 저래 가지고 내 전속 기사 역할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탄이 모헨에게 다가왔다. 입으로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아빠! 그렇게 말하면 모헨 님이 슬퍼하잖아요!”
아린이가 그 말을 듣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모헨이 에탄의 발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걱정하는 거였다.
“아니… 하지만 맞는 말이잖니. 아린이보다 약하면 모헨이 아빠를 어떻게 지켜 주겠어.”
“아빠!”
“끄응… 그래. 알았어.”
에탄이 두 손을 들면서 항복을 취했다. 이 이상 투덜거리면 아린이가 삐질 거 같았으니까.
“아린 님….”
그래서 모헨이 큰 감동을 먹으려던 찰나.
“모헨 님이 검도 아직 제대로 못 휘두르고! 다리를 움직이는 게 훤히 보인다고 해도! 모헨 님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모헨 님도 언젠가는 성장하실 거니까요!”
아린이에 악의 없는 폭언(?)을 듣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언젠가는 강해지겠지.”
에탄이 그런 모헨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영혼이 반쯤 나간 모습이 제법 볼 만해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점심 먹고 나면 외부로 나갈 거야.”
그 상태에서 에탄이 모헨을 향해 뒷말을 이었다.
“어디로 갑니까?”
“영지 바깥쪽에 있는 산.”
모헨의 질문에 에탄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정확히 어디인지 알려 줄 필요가 없기에, 산이라고만 말을 해 줬다.
“어쨌든. 점심 먹으면 방으로 찾아와. 마차 타고 떠날 거니까.”
그러고는 모헨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가자. 아린아.”
“네!”
이어서 아린이를 부르자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해맑게 답했다.
“좀 이따 봐요! 모헨 님!”
그 후 에탄과 함께 연무장을 떠나면서 모헨에게 나중에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예. 아린 님.”
모헨이 고개를 숙이면서 아린이의 말에 반응했다.
“…어휴.”
두 사람이 완전히 떠나자. 연무장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걸 깨달은 모헨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부디. 평범한 외출이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는 건 덤이었다.
* * *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버티네.’
에탄은 모헨을 한시도 빠짐없이 괴롭혔다. 전속 기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통과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진작에 나가떨어졌겠지.’
만약. 다른 이에게 지금과 같은 훈련을 시켰다면. 아마 에탄을 욕하면서 나갔으리라.
오전에는 5살짜리 어린 아이와 대련을 하고, 오후에는 흙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는 짓거리밖에 안 하니 말이다.
검술이라도 가르쳐 주면 모를까.
에탄은 모헨에게 검을 휘두르는 방법조차 알려 주지 않았다.
‘물론… 모헨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는 아니지만.’
에탄이 본 미래의 모헨은. 누군가 알려 준다고 해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에탄은 모헨의 검에 간섭하지 않았다.
‘내가 해 줘야 하는 건 모헨이 길을 만들기 위한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 딱 그거뿐이다.’
검술은 모헨이 알아서 하리라.
그러니 에탄은 모헨이 자신의 검술을 만들 때, 덜 어렵게끔 기초적인 기반을 잡아 주고 싶었다.
그 목적을 가지고 전속 기사로 임명한 거고 말이다.
“아빠. 다 준비됐어요!”
“도련님. 저도 출발할 채비를 마쳤습니다.”
그때. 아린이와 모헨이 에탄의 뒤쪽에서 나타났다. 에탄이 그들의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가문 입구에 서 있는 아린이와 모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 마차에 올라타.”
에탄이 두 사람을 훑어보고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요!”
“네. 알겠습니다.”
모헨과 아린이가 그런 에탄을 따라 마차에 동승했다.
“출발해.”
그렇게 두 사람이 마차에 올라타자, 에탄이 마부에게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예.”
덜커덩!
그러자 마차가 위아래로 동시에흔들리며 세 사람을 태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에탄이 말한 목적지로 말이다.
* * *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을 때.
“…여기는.”
모헨은 에탄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깨닫게 됐다. 그도 그럴 게.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게.
“산 아닙니까?”
나무가 한가득 자리 잡고 있는 산이었으니.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알 수밖에 없으리라.
“맞아. 산이지.”
에탄이 모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있는 산.
“아주 훌륭한 산이야.”
그걸 보고 함박 미소를 지었다.
“…….”
모헨이 그 모습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저 산에서 자신에게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빠! 오늘은 산에서 노는 거예요?”
반면. 아린이는 해맑게 웃었다.
모헨과는 다르게 걱정 근심이 전혀 얼굴에 없었다.
당연한 거였다.
아린이는 에탄과 거의 비슷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어지간한 일로는 힘들어하지 않으리라.
“맞아. 오늘은 산에서 재밌게 놀 거야.”
“흐흥!”
아린이가 에탄의 대답에 흥겨운 듯 콧노래를 불렀다. 모헨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5살 어린아이 그 자체다.
‘그런데 대련을 할 때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기사.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처럼 눈빛이 확 바뀐단 말이지.’
200전 0승 200패.
그렇게 뼈저린 패배를 겪으면서 모헨은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그중에 하나가 아린이가 검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부끄럽구나.’
3기사들 사이에서도 저렇게 진중하게 검을 대하는 자들이 몇이나 있을까?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행이겠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가 아린이 보다는 못하리라 확신했다.
“올라가자.”
“네!”
그런 생각이 들 때.
에탄이 아린이와 함께 산을 거침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헨이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뒤처지지 않게… 아니 적어도 발목은 붙잡지 않아야 한다.’
이어서 최소한 짐 덩어리가 되지는 않겠다 다짐하면서, 앞선 두 사람을 따라갔다.
“…그러니까.”
그리고 산 중턱에 있는 폭포에 도착했을 때.
“이걸 베라는 말씀이십니까?”
모헨은 다시 한번 벙쪄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