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에탄이 3기사들과 대련을 하던 날.
‘엄청났지.’
모헨은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시기를 상상하면 심장이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에탄 도련님이 그런 실력을 가지고 계실 거라고는… 꿈도 못 꿨는데.’
모헨에게 있어 그날은 자신의 인생이 달라진 분기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끄럽다. 기사로서 도련님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압도적으로 패배하다니.’
모헨은 칼라사르 가문의 기사다.
즉. 언젠가는 가문을 지켜야 하는 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데. 칼라사르 가문의 막내 도련님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경험하고 말았으니.
‘이대로는 안 된다.’
모헨의 생각이 깊어지는 게 당연한 거였다.
‘에탄 도련님이 말했던 것처럼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어.’
모헨은 에탄이 보여 준 초식을 계속 기억하고 되새겼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검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끝내는 어느 정도 문을 만들게 됐다. 모헨 식 검법을 완성하기 위한 문을 말이다.
‘이제는 도련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겠지.’
때문에…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으려던 찰나.
“도련님은 괴물이 분명해.”
에탄과 빌헬름의 대련이 성사됐다. 그 현장에서 모헨은 기겁했다.
빌헬름과 에탄 두 사람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특히 마지막에 보여 준 그 힘은….”
게다가 마지막에는 오러 비스무리한 힘까지 발현했으니.
모헨이 아연실색하는 게 당연한 거였다.
‘기사의 길을 포기해야 하나?’
그래서 방황에 빠질 뻔했는데….
콰앙!
“모헨. 넌 이제부터 내 전속 기사다.”
에탄이 자신을 전속 기사로 임명했다. 모헨의 입장에서는 예상조차 못 한 이변이었다.
* * *
에탄은 모헨을 데리고 3급 기사들의 수련실을 빠져나왔다.
-끼익.
그 후 1급 기사들의 수련실로 옮겨 간 순간.
“허어.”
모헨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3급 기사들의 수련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공간.
거기에 곳곳에 걸려 있는 화려한 장식들과.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게 준비된 장비들까지.
자신이 평소 수련을 하던 곳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시설이 좋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앞으로 네 수련실이다.”
“예?”
“네가 검을 휘두를 곳이라고.”
“…….”
모헨이 에탄의 말을 듣고는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이 좋은 곳에서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
“여기서는 내가 시키는 대로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지금 포기해.”
에탄이 말을 끝내고는 모헨을 빤히 바라봤다.
“…….”
모헨이 대답을 원하는 에탄의 눈을 마주쳤다. 그 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알겠습니다. 저는 도련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모두 수행하겠습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좋아. 나중에 무르기 없기다?”
“저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으음! 아주 마음에 들어. 그래…그렇단 말이지.”
에탄이 모헨의 대답에 낄낄 웃어 보였다. 모헨이 그걸 보고는 의아하다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타타타탁!
“아빠! 저 왔어요!”
그때. 설탕 사탕 만들기를 끝낸 아린이가 연무장 안으로 들어왔다.
냠냠….
이어서 설탕 사탕을 녹여 먹는 뇽뇽이가 뒤따라 등장했다.
“아린 님과 뇽뇽이 님…?”
“맞아.”
“저 두 분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그야 당연히 수련을 하려고 오는 거지. 그게 아니면 여기에 올 이유가 있나?”
에탄이 모헨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아린아! 뇽뇽아! 일로 와 봐!”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를 불렀다. 그러자 아린이와 뇽뇽이가 총총걸음으로 에탄에게 다가왔다.
“앞으로 같이 수련할 모헨 기사님이다.”
에탄이 사람에게 모헨을 소개시켜 줬다.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모헨 쪽으로 돌리고는.
“안녕하세요!”
“…반가움.”
간단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린 님. 뇽뇽 님.”
모헨이 두 사람의 인사에 웃으면서 답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신기하구나.’
그래서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고 감탄했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고 하니. 모헨이 호기심을 느끼는 게 당연한 거였다.
“그나저나… 아린 님은 에탄 도련님을 정말 쏙 빼닮았군요.”
“그래요?”
“예. 눈동자부터 시작해서 머리카락 색깔까지. 누가 봐도 에탄 도련님의 따님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모헨의 말에 아린이 해맑게 웃었다. 그러면서 모헨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는.
“그런데… 사람들이 아빠 성격까지 닮으면 큰일 난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해야 해요?”
순수한 표정으로 한 가지 질문을 툭 던졌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모헨이 아린이의 질문을 듣고는 시선을 회피했다. 이걸 뭐라 답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으니까.
“아린아. 그거는 물어보는 거 아냐.”
“왜요?”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질문이거든.”
에탄이 모헨이 곤란해하는 걸 보고는 슬쩍 껴들었다.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아빠 성격과 관련된 건 질문하지 마.”
“네!”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힘차게 답했다. 다행히 그 이상 파고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짝!
에탄이 대답을 끝내고는 박수를 쳤다. 그 후 자신을 쳐다보는 모헨을 향해.
“모헨.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주겠다.”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엇입니까?”
모헨이 에탄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지한 그의 분위기에 모헨도 덩달아 긴장을 했다.
“바로… 아린이와 대련을 해 주는 거다.”
“예?”
“진검으로 아린이랑 대련해라. 아린이가 만족해할 때까지.”
“그게 무슨….”
“농담 아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김이 새 버렸다. 아무리 자신이 3급 기사라고 해도, 아린이와는 경지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린이가 검을 다루는 모습을 본 적이 없구나?”
“예. 그렇습니다.”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아직 아린이의 실력을 아는 이가 없다는 거였다.
‘세바스찬 정도뿐이네.’
굳이 뽑자면 세바스찬 정도이니라.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잘됐네. 이제 슬슬 아린이도 실력을 뽐낼 때가 됐지.”
“……?”
“이참에 한 번 경험해 봐. 내 딸이 얼마나 검을 잘 다루는지!”
그래서 에탄은 이 기회에 아린이의 실력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내 딸이 이렇게 잘났다고 자랑하고 싶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모헨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에탄도 아린이 앞에서는 딸 바보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해 드리면 되겠지.’
그래서 에탄의 장단을 맞춰 주는 정도로만 상대하면 될 거라고 판단하고는.
“가시죠. 아린 님.”
“네!”
터벅터벅.
아린이와 함께 연무장 한가운데로 발걸음을 움직이고.
쓰릉!
검을 빼 들었다.
“흐음!”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콧방귀를 꼈다. 이어서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 진검을 꺼냈다.
“봐주시면 안 돼요!”
“알겠….”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그리고 모헨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는, 그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부웅!
이어서 모헨의 머리 쪽으로 아린이가 검을 휘둘렀다.
“!”
까앙!
모헨이 빠르게 자세를 취하고는, 아린이의 검을 막아냈다. 검날에서 일어난 진동이 팔을 통해 몸으로 전달됐다.
“무…무슨.”
무지막지한 그 힘에 모헨이 얼굴을 찡그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씨익.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안 그러면 다칠 수도 있어요.”
모헨을 향한 살벌한 경고는 덤이었다.
“…….”
그 순간 모헨은 깨달았다.
아린이를 얕봤다가는 정말 머리가 깨질 수도 있겠다는걸.
* * *
“끄응….”
뇽뇽이가 목검을 집었다.
에탄과 아린이가 사용하는 검과, 비슷한 무게를 가진 녀석이었다.
“…뇽뇽아. 이제 슬슬 검은 포기하는 게 어떠냐?”
“할 수 있음! 포기 안 함!”
하지만 딱 들어 올리는 정도까지였다. 아린이나 에탄처럼 힘차게 휘두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애당초 이게 정상인 건데.’
에탄이 그걸 보고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린아이의 기준에서 에탄이 휘두르는 검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가볍게 만들었다고 해도 말이다.
까앙! 깡!
그리 생각하면서, 에탄이 연무장 한가운데로 시선을 움직였다.
‘벌써 점심 먹을 때네.’
대련을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났다.
하나. 모헨과 아린이는 검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이 악물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린이는 그렇다 쳐도….’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침을 삼켰다. 아린이는 자신과 함께해 온 게 있기에 그러려니 싶었다.
하지만 모헨은 아니다.
제아무리 모헨이 미래에 1급 기사가 된다고 해도, 지금 기준으로는 3급에 불과하다.
그런 녀석이 아린이를 상대로 3시간을 버티고 있으니.
‘역시 난놈은 다르다 이건가.’
에탄이 감탄을 하는 것도 당연한 거였다.
까아앙!
“으윽!”
그때. 모헨이 앓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오른쪽 다리가 굽어지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쓰릉!
아린이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헨의 목에 검을 겨눈 뒤.
“21번째 승리예요!”
자신이 이긴 횟수를 말했다. 모헨이 그걸 듣고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5살짜리 어린 아이한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거였다.
‘이래서야….’
그래서 기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판단하려는 찰나.
“근성 하나는 좋네.”
에탄이 쓰러진 모헨을 향해 다가왔다. 이어서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넌 합격이다. 내 전속 기사로서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예? 그 말은…”
“그래. 이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모헨이 에탄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린이와 대련을 하는 게 설마 자신을 시험하는 거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 앞으로는 제대로 된 수련을 할 테니까.”
“…이것도 충분히 배움이 됐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주구창창 대련만 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군요.”
모헨이 에탄의 말에 씨익 웃었다.
그 후 에탄이 내민 손을 잡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그럼 점심 먹으러 가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후부터 제대로 훈련해 보자고.”
“…예?”
그리고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오늘 해야 하는 수련이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훈련이…더… 남아 있다고요?”
모헨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3급 기사인 그가 아린이를 상대로 없는 힘까지 전부 쥐어짜 냈으니 말이다.
만약. 다른 3급 기사였다면 진작에 쓰러졌으리라.
“이건 우리한테 몸풀기에 불과해.”
에탄이 벙찐 모헨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후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난 죽은 놈이다. 라고 생각해.”
“…….”
“설마 이제 와서 포기하겠다는 말은 안 하겠지? 교환이랑 환불은 안 받아 준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게….’
그 순간 모헨은 생각했다.
‘맞나?’
자신이 에탄의 전속 기사로 뽑힌 게 좋은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