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33화 (33/200)

제33화

빛이 생겼다.

그 순간 에탄의 시야가 흐려졌다.

삐이익.

동시에 양쪽 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대련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눈이 부신 건 마찬가지였던 걸까?

그들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

하지만 에탄과 빌헬름.

그리고 가주인 지오반은 그러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상대를 보기 위해서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러다가 실명이 오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성직자들을 고용해 주겠지.’

칼라사르 가문의 자금력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눈을 감지 않고 빌헬름을 노려봤다.

“!”

악으로 버티는 에탄의 모습에 놀라기라도 한 건지, 빌헬름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훌륭하군요.]

그리고 혼잣말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귀로 들리지는 않지만, 에탄은 입 모양을 통해 빌헬름의 말을 알 수 있었다.

“뭐….”

그래서 말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휘청.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어서.

쿵… 쿵… 쿵…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고, 메아리처럼 쿵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팟.

동시에 시야가 까매졌다.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온 것처럼.

* * *

-도련님. 집사로서 마지막까지 도련님을 모시겠습니다.

-저희 1기사들이 가문을 지키겠습니다.

-에탄.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불타고 있는 칼라사르 가문.

피를 흘리는 1기사들.

목이 날아가기 직전인 가주 지오반. 심장이 사라진 세바스찬의 뚫린 몸.

잊고 싶었던 광경이 에탄의 눈앞에 펼쳐졌다.

-모두 죽여 버려라!

-북부는 우리의 것이다!

이어서 북부 너머에서 넘어온 마물과 야만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라사르 가문을 위하여!

그들을 막기 위해 남은 이들이 항전을 시작했다.

에탄이 마물을 막다가 하나둘 쓰러져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검을 잡으려고 했지만 손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방관자처럼 말이다.

‘……!’

그래서 눈이라도 감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눈꺼풀이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에탄은 다시 한번 온몸에 힘을 줬다. 동시에 쓰러지고 있는 이들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허억!”

에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익숙한 천장.

즉. 에탄이 사용하고 있는 자신의 방이었다.

“아빠?”

그렇게 멍을 때리는 에탄을 아린이가 불렀다. 그제서야 에탄이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그 후 자신을 잔뜩 걱정하고 있는 아린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에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나왔다. 에탄이 그걸 깨닫고는 어색하게 기지개를 켰다.

“흐어엄!”

이어서 자기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아린이에게.

“너무 푹 잤나? 하품이 절로 나오네!”

조금은 어정쩡한 넘기기를 시도했다.

“피곤한 건 사라졌어요?”

아린이가 에탄의 모습에 두 눈을 끔뻑이며 질문했다. 에탄이 그걸 듣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리고 당연한 걸 물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후아….”

아린이가 에탄의 대답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끼익.

그때. 누군가 에탄의 방문을 열었다. 때문에 에탄과 아린이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다.

“…일어남?”

뇽뇽이가 물이 뚝뚝 흐르는 수건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에탄의 몸에 있는 열을 식히면, 조금 더 빨리 깰까 싶은 생각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 수건은 뭐야?”

에탄이 뇽뇽이가 들고 있는 수건에 의도를 물었다.

“…아무것도 아님.”

뇽뇽이가 에탄의 물음에 콧방귀를 끼면서 답했다. 그 후 물에 젖은 수건을 든 채 에탄에게 다가가서는.

척!

수건을 안 쥔 반대쪽 손을 에탄의 이마에 올렸다.

열을 재 보기 위해서였다.

“이상 없음.”

그리고 에탄의 체온이 멀쩡한 걸 확인하고는, 물에 젖은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를 걱정해 준 건가?’

에탄이 뇽뇽이의 행동에 얼떨떨함을 느꼈다. 설마.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수고를 들일 줄은 몰랐으니까.

“고맙네. 걱정해 줘서.”

그래서 뇽뇽이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자.

“…징그러움. 오글거림.”

뇽뇽이의 엄청난 표정과 정색이 답으로 돌아왔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후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역시. 도련님을 챙기는 건 아린 님과 뇽뇽 님밖에 없군요.”

세바스찬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히익!”

“세바스찬 할아버지!”

뇽뇽이는 세바스찬의 목소리에 놀랬고, 아린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세바스찬에게 다가갔다.

“아린 님. 세바스찬 할아버지가 아니라. 세바스찬 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바스찬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지적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고치게 할 마음은 없기에, 상냥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붙이는 게 더 편한걸요?”

“음….”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어요. 가주님만 빼고요.”

아린이의 말에 세바스찬이 얕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 후 고개를 꾸벅이면서 아린이의 말에 대답하고는.

뇽뇽이에게 옷가지를 잡힌 에탄을 향해 다가갔다.

“도련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멀쩡해. 역시 사제들이 치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니까.”

세바스찬이 에탄의 말에 수긍했다. 불러오면 상당히 많은 돈이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효과를 내주는 자들이 바로 사제들이기에 말이다.

쓰윽.

그렇게 에탄의 발언에 반응을 하고, 세바스찬이 에탄의 귀 쪽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눈이 실명될 수도 있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셔야 합니다.”

그 후 아린이와 뇽뇽이에게는 들리지 않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참고하도록 하지.”

에탄이 세바스찬 말에 엄지를 들어 올렸다. 제대로 알아먹었다는 의미였다.

“감사합니다.”

세바스찬이 에탄의 손동작을 보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 후 고개를 다시 원위치하고는.

“가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를?”

“예. 깨어나면 바로 가주실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지오반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알겠어.”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

하지만 뇽뇽이는 에탄이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가지를 놓지 않았다.

“뇽뇽아. 세바스찬이 그렇게 무서워?”

“무서움.”

“왜?”

“…본능.”

에탄이 뇽뇽이의 대답에 머리를 긁적였다. 뇽뇽이가 저렇게 말하는 게 이해는 갔다.

세바스찬은 확실히 강한 힘을 가진 존재니까.

“걱정하지 마. 세바스찬이 널 해칠 일은 없어. 오히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돼 줄 거야.”

“…….”

그래서 에탄 나름대로 설득을 해 보려고 했지만, 뇽뇽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흐음….”

세바스찬이 자신을 겁내는 뇽뇽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몸을 흠칫하는 뇽뇽이를 향해서.

“그러고 보니 설탕 사탕을 만들 시간이군요. 이번에는 두 개를 만들어 보도록 하죠. 뇽뇽 님도 드셔야 하니까요.”

“!”

설탕 사탕을 꺼냈다.

그러자 뇽뇽이가 두 눈을 반짝였다. 이전에 설탕 사탕을 한 조각 맛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뇽뇽이 것?”

“예. 뇽뇽이 님을 위해서 하나 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저를 피하시면 설탕 사탕을 먹을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이 만드실 의향이 있다면 제 손을 잡아 주시죠.”

“…….”

뇽뇽이가 세바스찬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설탕 사탕을 위해서는 세바스찬을 향한 경계를 풀어야만 했다.

쓰윽….

그래서 에탄의 옷가지에서 천천히 손을 놓고는.

터벅터벅.

세바스찬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스윽.

그 후 흰 장갑을 끼고 있는 세바스찬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린이도 갈래요!”

아린이가 그 모습을 보고는, 폴짝폴짝 세바스찬에게 달려들었다. 그 후 나머지 손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잡았다.

“좋습니다. 함께 움직이시죠.”

졸지에 양손이 봉인당한 세바스찬이었지만, 불편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아린이와 뇽뇽이를 쳐다보고는.

“그럼. 저희는 설탕 사탕을 만들러 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만들고 와.”

설탕 사탕을 만들기 위해 에탄의 방을 나갔다.

‘애가 두 명이나 생기니까 조용할 틈이 없네.’

에탄이 고요해진 방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전생 시절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분위기였다.

이렇게 화기애애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조금 정신을 차렸다 싶을 때 칼라사르 가문이 멸망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일까.

에탄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

“후우.”

그러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아버지를 뵈러 가야겠군.’

가주실에 있는 지오반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 * *

그렇게 에탄이 지오반을 찾아갔을 때.

“끄응!”

“뇽뇽아. 거기서는 좀 더 약하게 반죽을 주물러야 해.”

“어려움!”

아린이는 뇽뇽이와 함께 설탕 사탕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얼굴과 조리복에 흰 가루를 덕지덕지 묻히면서 말이다.

“재료는 많으니 편하게 시도하셔도 됩니다.”

세바스찬이 땀을 뻘뻘 흘리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보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

그리고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역시.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건가.’

정확히 말하면. 뇽뇽이가 기절해 있는 에탄을 위해 물수건을 만들 때였다.

-수건. 차가움. 따뜻하게 해야 함. 마법… 비밀이지만. 어쩔 수 없음.

거실에서 우연히 들려오던 뇽뇽이의 목소리. 세바스찬은 그걸 듣고 뇽뇽이가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파아아앗!

그리고 놀라운 모습을 목격했다.

뇽뇽이가 마법을 이용해서 차가운 물을 따뜻하게 데우는 장면이었다.

‘마법이라….’

5살 어린아이의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교했기에. 세바스찬은 그걸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었다.

“뇽뇽아. 거기서는 힘을 약하게 줘야 해!”

“으으응… 어려움!”

하지만 이 일을 지오반에게 보고할 생각은 없었다.

‘뇽뇽이 님은 아린 님의 친구다.’

뇽뇽이는 아린이의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까.

‘게다가 도련님을 위해서 마법을 쓴 거니….’

게다가 뇽뇽이는 남을 해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련으로 인해 기절한 에탄을 위해서 자신의 마력을 소모했다.

퍼엉!

“아아! 반죽이 터졌어!”

“짜증 남! 가루 묻음!”

그때. 아린이와 뇽뇽이가 주물럭거리던 반죽이 터져 버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얼굴이 눈사람처럼 변해 버렸다.

“하하!”

세바스찬이 그걸 보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후 찔끔 흐른 눈물을 닦고는.

“아린 님. 뇽뇽이 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설탕 사탕을 만드는 걸 도와주기로 했다.

‘가주님.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뇽뇽이의 비밀을 눈감아 주기로 결정하면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