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다행히 벽은 금방 원상 복구 됐다.
1급 기사들의 수련실에는 회복 마법이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벽을 파손시킬 줄이야.’
덕분에 지오반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아야 할 일은 없었다. 하나. 에탄은 여전히 조금 전의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
‘역시 새끼 드래곤이라고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이건가.’
아린이와 비슷한 수준의 외형.
아니. 엄밀히 따지면 아린이보다 더 어린 뇽뇽이가 마법을 사용하던 모습을 말이다.
“…검술 천재에 이어서 마법 천재 친구가 생겼네.”
정확히 말하면 아린이의 친구지만. 어찌 됐든 에탄에게 중요한 건 한 가지뿐이었다.
‘뇽뇽이의 마법 실력은 뛰어나다.’
아린이와 비슷한 급으로 뇽뇽이의 재능이 출출하다는 것. 그게 에탄의 두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뇽뇽이! 칭찬받음! 기분 좋음!”
“다음에는 다른 마법도 보여 줘!”
“물론임!”
게다가 아린이와 뇽뇽이는 둘도 없는 친구니. 에탄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기도 했다. 그동안 자신밖에 없었던 아린이에게 새로운 ‘세상’ 이 생긴 격이니 말이다.
‘마음 같으면 뇽뇽이의 마법 실력을 보여 주고… 그걸로 가문에 계속 남게 해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뇽뇽이의 정체를 말해야겠지.’
사실. 이 정도 마법 실력이라면 지오반도 뇽뇽이를 두 손 들고 환영하리라. 5살에 저런 마법을 구사하는 어린이는 흔치 않으니까.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뇽뇽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할 수도 있으니.
“뇽뇽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법 보여 주지 마.”
에탄은 뇽뇽이가 마법을 사용하는 걸 숨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째서?”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왜 감춰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거였다.
“안 그러면 곤란해질 수도 있거든.”
“싫음! 마법 좋음!”
그래서 에탄의 부탁에 고개를 저었다. 뇽뇽이는 마법이 쓰고 싶었으니까.
“으음….”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뇽뇽이를 설득하지 않으면 나중에 대형 사고가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린아. 네가 뇽뇽이한테 말해 봐. 다른 사람 앞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더 이상 너랑 함께 다니지 못한다고.”
그래서 자신의 옆에 있는 아린이에게 귓속말로 부탁했다. 뇽뇽이를 자기 대신 설득해 달라고.
“뇽뇽아. 다른 사람 앞에서 마법을 쓰면 안 돼.”
아린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뇽뇽이를 향해 침착하게 에탄의 말을 전했다.
“어째서?”
“그러면 뇽뇽이랑 나랑 같이 붙어 다닐 수 없기 때문이야.”
“!”
뇽뇽이가 아린이의 말에 화들짝 놀랬다. 그러면서 아린이의 오른팔을 꼬옥 잡고는.
“뇽뇽이! 친구! 붙어 있을 거임!”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린이와 함께 하겠다고 선언했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역시 애는 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속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법 사용하기 금지야.”
“알겠음! 약속!”
뇽뇽이가 아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쓰윽.
그리고 새끼손가락을 아린에게 내밀었다.
“약속! 할 때의 행동! 배움!”
약속을 할 때 치루는 의식(?)을 배웠기에. 그걸 그대로 아린이에게 행하는 거였다.
“응! 약속!”
아린이가 뇽뇽이의 동작에 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가르쳐 준 걸 그대로 실천하는 모습에 기쁨을 느끼는 거였다.
그러면서 뇽뇽이의 손가락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역시 애는 애야.’
에탄이 그걸 보고 속으로 웃는 건 덤이었다.
* * *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둘째 날이 찾아왔다.
“세바스찬 할아버지! 제 친구 뇽뇽이에요!”
이른 아침부터 아린이의 목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졌다. 자신의 친구 뇽뇽이를 세바스찬에게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아린 님에게 드디어 친구가 생기셨군요.”
세바스찬이 아린이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아린은 에탄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한데. 지금은 친구와 함께 둘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벌써 한 단계. 성장하셨군요….”
이제는 에탄에게만 의지하는 어린이에서, 조금은 성장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러면. 옆에 계신 분이 아린 님의 친구 분이십니까?”
“네! 이름은 뇽뇽이에요! 아린이가 이름을 만들어 줬어요.”
“호오. 뇽뇽이….”
아린이의 말에 세바스찬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는 나무 손질용 가위를 내려놓았다.
빠아안.
뇽뇽이가 태양 빛을 가려 주는 원형 모자를 쓰고 있는 세바스찬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인사! 악수!”
그 후 아린이에게 배운 대로 손을 내밀었다.
씨익.
세바스찬이 아린이의 행동에 함박 미소를 지었다. 당돌한 성격과 반짝이는 두 눈동자가 제법 귀여웠다.
“아린 님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군요. 서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될 거 같습니다.”
뇽뇽이는 세바스찬이 봐도 아린이와 정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말투까지 모든 게 말이다. 그래서 세바스찬은 두 아이에게 더 큰 기대감을 가졌다.
극과 극인 사람끼리 만나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많으니까.
“팔! 아픔!”
그때. 뇽뇽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세바스찬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악수도 안 해 주는 거에 신경질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생각을 깊게 했군요.”
뇽뇽이의 닦달에 세바스찬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뇽뇽이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터억.
“!”
그 순간 뇽뇽이의 동공이 확장됐다.
“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세바스찬이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뇽뇽이는 그거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저 세바스찬과의 악수를 빨리 마무리 할 뿐이었다.
“아린 님의 친구분이 낮을 좀 가리시나 보군요.”
세바스찬이 그 모습을 보고는 사람 좋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으음… 그래요?”
아린이가 세바스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뇽뇽이가 낮을 가린다는 게 의아했기 때문이다.
어제저녁 가주인 지오반과 식사를 할 때도 그런 기색은 없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이상함을 느꼈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뇽뇽이와 세바스찬이 사이좋게 악수를 했으니까.
“아린 님은 이제 뭘 하실 예정이십니까?”
세바스찬이 그런 아린이를 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오늘은 에탄과 함께 다니지 않을 모양새 같아, 다음 일정이 내심 궁금했다.
“오늘은 뇽뇽이를 가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줄 거예요!”
“그렇군요. 에탄 도련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네! 아빠한테 미리 말해 놨어요. 그러니까 좋은 생각이라고 아린이 칭찬해 줬어요! 참고로 아빠는 오늘도 수련실에서 계속 검을 휘두르고 있을 거래요. 그래서 아린이가 뇽뇽이를 챙겨야 해요!”
아린이가 양손을 허리에 올리면서 말을 마쳤다. 자신이 한 행동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맞습니다. 아린 님의 행동은 정말 훌륭합니다. 역시 도련님과는 다르게 머리가 좋으시군요.”
“아빠 머리 나빠요?”
“…아린 님 나이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세바스찬이 아린이의 물음에 싱긋 웃었다. 에탄이 태어날 때부터 봐 왔으니, 에탄의 과거사(?)를 전부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특히 아린 님을 데려온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고요.”
“으음….”
“그러니 도련님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많이 똑똑해지신 편이니 말이죠.”
“네! 알겠어요!”
아린이가 세바스찬의 말에 해맑게 답했다. 아빠의 머리가 멀쩡하다는 것에 안도하는 건 덤이었다.
“그럼 아린이는 이만 가 볼게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뇽뇽이를 소개해 줘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몸 다치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세요. 넘어지면 아프니까요.”
“네!”
세바스찬의 주의에 아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뇽뇽아. 가자!”
그리고 세바스찬을 바라보는 뇽뇽이의 손을 잡고 정원을 빠져나갔다.
“…흐음.”
세바스찬이 멀어지는 아린이와 뇽뇽이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뇽뇽이라.”
아린이 앞에서는 보여 주지 않은 묘한 눈빛으로 말이다.
* * *
아린이와 뇽뇽이의 가문 둘러보기는 약 두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가문 사람들이 모두 뇽뇽이랑 악수를 했어요!”
아린이가 수련실에 있는 에탄을 향해 신난 목소리로, 두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그래? 그중에서 뇽뇽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아니면 조금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수련을 멈췄다. 그 후 아린이에게 중요한 걸 질문하고는.
“없었어요! 모두 하나같이 귀엽다고 말해 줬어요.”
“다행이네.”
이어지는 대답에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드래곤의 기운은 사람과는 다르니까,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끼는 자들도 있다고 했지.’
혹여. 누군가 뇽뇽이의 이질감을 눈치챘을까 싶어서였다.
“…세바스찬. 무서움.”
“응?”
“강한 사람. 무시하면 큰일.”
뇽뇽이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 나는 세바스찬 할아버지 좋은데.”
아린이가 뇽뇽이의 발언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바스찬은 자신에게 한없이 인자한 할아버지였으니까.
달콤한 설탕 사탕도 주고 말이다.
“무서움… 이유 모름.”
하나. 뇽뇽이는 세바스찬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오한이 느껴질 정도로 공포를 느꼈다.
‘세바스찬을 무서워 한다고…?’
에탄이 그런 뇽뇽이를 보고 생각에 깊게 잠겼다. 하나. 뇽뇽이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세바스찬이 너한테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테니까.”
“진심?”
“그래. 진심이야. 그만큼 세바스찬은 우리 가문에서 믿음직한 집사거든.”
에탄의 말에 뇽뇽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음. 믿어 봄.”
그러다가 이내 에탄의 말을 믿겠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뇽뇽이의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을까?’
그런 뇽뇽이를 보고 있잖니. 에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바로. 부모의 행방이었다.
‘…지금 생각해 봤자 해결법은 안 나오겠지.’
뇽뇽이한테 믿을 만한 존재를 뽑자면 피로 이루어진 부모이니라.
그들이 있다면 뇽뇽이가 좀 더 가문에 잘 적응할 수 있겠지만. 허황된 꿈이나 마찬가지였다.
뇽뇽이의 부모가 그걸 받아들일 리 없을 테니까.
꼬르륵!
“아빠 밥 먹으러 가요!”
그때. 아린이의 뱃속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아린이가 그걸 깨닫고는 에탄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다그쳤다.
꼬륵!
“…배고픔. 밥 먹고 싶음.”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고 해야 할까? 아린이가 배고픔을 말하자 뇽뇽이도 허기짐을 느꼈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에탄이 그걸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완전히 극과 극인 존재지만, 이렇게 통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꼬르르륵!
“…….”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에탄의 배 속에서도 밥을 달라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돼지.”
뇽뇽이가 그 소리를 듣고 피식 웃는 건 덤이었다.
* * *
그렇게 에탄이 가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
칼라사르 가문의 노기사이자 기사단장. 발헬름은 마침내 감았던 눈을 떴다.
“때가 됐군.”
그 후 비릿한 미소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
칼라사르 가문이 있는 곳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주변에 있는 수천 개의 박살 난 나무 밑동을 뒤로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