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각성의 비약을 먹은 에탄은 아린이와 함께 가문으로 돌아왔다.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네. 아빠!”
그 후 다음날부터 수련실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훈련들을 진행했다. 평소보다 강도를 높여서 말이다.
‘별다른 변화는 없네.’
하지만 극적인 성장은 일어나지 않았다. 각성의 비약을 마셨다고 해서, 갑자기 몸의 근육이 몇 배로 늘어나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로 딱 일주일째인가.’
각성의 비약을 마신 지 일주일째가 됐음에도 말이다.
‘그래도 꾸준히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는 폭발하겠지.’
각성의 비약은 섭취한 존재의 몸을 한 번에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요정의 말을 에탄이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게 문제란 말이야. 빌헬름과의 대련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것이 에탄의 발목을 잡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에탄을 불안하게 만드는 거였다.
대련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못해도 두 배는 더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안 좋아요.”
아린이가 고심에 빠진 에탄을 향해 다가왔다. 이어서 걱정을 하는 눈빛으로 에탄을 빤히 쳐다봤다.
“아빠가 배고파서 그래.”
“진짜요?”
“응. 우리 4시간 넘도록 검만 휘둘렀잖아? 그러니까 아빠가 지칠 만도 하지.”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이도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그 후 에탄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보챘다. 나이아 호수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 아린이의 식욕이 제법 늘었다.
‘하긴. 한참 먹고 자랄 때이긴 하지.’
하지만 에탄은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원래 성장기의 아이들은 많이 먹는 법이니까.
“좋아. 그럼 방에서 옷 갈아입고 주방으로 가자.”
그래서 아린이와 함께 환복을 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끼익.
이어서 닫혀 있는 방문을 여는 순간.
“어?”
아린이가 침대에 고이 올려 둔 자신의 친구. ‘알’의 껍질이 깨져 있는 모습이 두 사람의 눈에 발견됐다.
-크르릉!
그리고 그 옆에는….
“…드래곤?”
새끼 드래곤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 * *
드래곤은 보통 상징적인 존재다.
수가 별로 없기도 하고, 설령 어딘가에 있다고 해도 세상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드래곤을 운 좋게 본다고 쳐도… 그 뒤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
게다가 드래곤은 보통 심보가 더럽고 꼬여 있기로 알려져 있으니. 드래곤을 마주치면 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녀석들은 인간을 벌레처럼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드래곤이 눈앞에 있네.”
에탄이 드래곤에 대한 생각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크릉!
여전히 자신과 아린이가 잠을 자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크기가 아린이와 비슷한 걸 보아 새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스르릉!
에탄이 검을 빼들었다.
비록. 갓 태어난 새끼라고 하지만 녀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존재니까.
“아린아. 뒤로 물러나.”
그래서 녀석을 경계하려는 찰나.
“아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
아린이가 에탄의 두 팔을 잡았다.
“아린이 친구예요.”
그 후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저 새끼 드래곤이 자신의 친구라고 말이다.
“…친구라고?”
“네. 저 알에서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빠랑 저랑 함께했던 친구가 분명해요.”
“하지만 녀석은 드래곤이야. 우리한테 위해를 가할 수도 있어.”
하지만 에탄도 이번에는 쉽게 검을 거두지 않았다. 비록. 요정을 정화시킬 정도로 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드래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크릉… 크르르릉!
에탄의 말에 놈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몸을 아린이 쪽으로 움직이고는.
-크릉!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응.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해 볼게.”
아린이가 녀석의 소리에 무언가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친구가 속상해하잖아요.”
그리고 에탄을 향해 두 볼을 부풀리면서 말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말이다.
“만약 친구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으면. 요정님을 구해주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검을 거둬 주세요!”
“하지만.”
“얼른요. 안 그러면 앞으로 아빠랑 같이 밥도 안 먹고 수련도 그만둘 거예요.”
아린이의 말에 에탄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벌렸다. 설마 저렇게까지 단호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아린이의 말이 끝나자 방에 정적이 찾아왔다. 에탄은 무언가를 고심하듯 계속해서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래. 알았어.”
그러고는 결국 알에서 나온 드래곤에게 겨누던 검을 거뒀다.
“제 말을 믿어 주시는 거예요?”
아린이가 에탄의 행동에 두 눈을 끔뻑였다. 이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딸이 하는 말인데 믿어 봐야지.”
“아빠….”
에탄의 대답에 아린이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믿어 준다는 말에 기쁨을 느끼는 거였다.
물론. 단순히 아린이가 실망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경계를 푼 건 아니었다.
‘요정을 정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줬으니까… 일단은 살펴보자.’
알에서 깨어나기 전.
녀석은 마기에 물든 요정을 정화시켜 줬다. 덕분에 각성의 비약을 얻어 낼 수 있었으니. 조금은 믿어 보기로 마음먹은 거였다.
-크르릉….
“아니야. 아빠도 조금 놀래서 그랬던 걸 거야. 너무 싫어하지 마.”
-크릉!
아린이의 말에 녀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아린이에 말을 알아듣고는 대답하는 모양새 같았다.
“아린아. 혹시 저 녀석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에탄이 질문을 하니.
“네!”
아린이의 해맑은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에 드래곤이랑 대화를 할 수 있다니. 대 마법사조차 해내지 못 하는 걸, 우리 아린이가…!’
드래곤과 대화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에탄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이건 에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어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이 세상에서 드래곤과 대화가 가능했던 존재는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크르릉! 크릉!
“사과를 받고 싶다고?”
-크릉!
그때. 녀석이 아린이를 향해 항의하듯 입을 열었다.
“아빠. 친구가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대요.”
“어?”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의심했던 걸 진심을 담아서 사과하래요.”
“…….”
아린이의 말에 에탄이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내가 저 녀석 입장이었으면 마음이 상할 만도 하지.’
그리고 이해했다.
녀석이 자신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거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크르릉!
자신의 행동이 조금 과했다는 걸 에탄도 알았기에, 녀석에게 진심을 다해서 사과했다.
그러자 녀석이 콧방귀를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화해했으니까. 우리 모두 사이좋게 지내는 거예요!”
아린이가 그 모습을 보고는 꽃처럼 웃는 건 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걸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설명하지?’
그리고 에탄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저 녀석을 어떻게 가문 사람들에게 보여 주냐는 거였다.
* * *
사실 설명하는 건 쉽다.
알에서 나온 녀석이 드래곤이었다! 라고 하면 끝이니까.
하나. 그랬다가는 가문이 발칵 뒤집히리라.
‘…생각해 보니까 드래곤은 마법에 능통하잖아?’
그래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마법에 능하다는 거였다.
“아린아. 친구한테 인간으로 폴리모프 해 달라고 부탁 좀 해 줄 수있니?”
“폴리모프요?”
“응. 아린이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이야.”
“우아…! 그럼 친구도 아린이처럼 바뀌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아린이의 물음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니까.
“좋아요! 아린이가 친구한테 부탁해 볼게요!”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린이의 두 눈이 반짝였다.
타탁!
동시에 침대에 앉아 있는 드래곤을 향해 다가가서는.
“친구야! 얼른 폴리므프 해 줘!”
에탄이 부탁했던 걸 그대로 말했다.
‘폴리므프가 아니라 폴리모프인데.’
단어 철자를 조금 틀리기는 했지만, 에탄은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어쨌든 말만 통하면 되는 거니까.
-크르릉!
아린이의 말에 드래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눈을 감더니.
…우웅!
자신의 머리 위에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파앗!
허공에 만들어진 원형 마법진이 푸른 빛을 뿜어냈다. 동시에 머리 쪽으로 마법진이 내려오는 순간.
“변했다!”
녀석의 모습이 순식간에 인간으로 바뀌었다.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 친구가 저처럼 바뀌었어요!”
그리고 에탄에게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친구가 인간으로 변했다고 말이다.
“그러게… 진짜 인간이 되었네.”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두 눈을 끔뻑이며 반응했다. 그리고 드래곤에서 인간이 된 녀석을 살펴봤다.
검은색 긴 생머리에 파란 눈동자.
거기에 아린이와는 다르게 제법 개구쟁이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빨간색 드레스는 어디서 구한 거야?’
한데. 인간으로 변하면서 아까까지 없던 옷까지 생겼다. 아린이가 입고 있는 복장과는 반대되는 붉은 드레스였다.
‘역시 드래곤이라 이건가.’
하지만 이 모든 게 드래곤의 마법이라고 한다면, 마냥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원래 드래곤은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는 존재니까.
‘사고 좀 많이 칠 거 같은 성격인데. 이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문제는 녀석의 마법이 아니었다.
에탄은 놈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척 봐도 장난기가 상당히 많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으음.”
녀석은 인간으로 변한 몸이 어색한지 눈만 끔뻑끔뻑하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친구야, 안녕!”
아린이가 먼저 해맑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이미 알인 상태에서부터 대화를 했기 때문인지, 크게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우리 악수하자!”
아린이가 인간으로 변한 드래곤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녀석이 아린이가 내민 손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면서 끔뻑이더니.
터억!
“친구! 조아!”
웃으면서 손을 맞잡았다.
씨익.
그러자 녀석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아린이가 자신의 손을 잡아준 거에 큰 만족감을 느끼는 거였다.
“흐음….”
에탄이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아린이와 녀석에게 다가갔다.
“반갑다.”
그 후 아린이가 악수를 건넨 것과 똑같이 손을 내밀었지만.
획!
“친구 아님.”
녀석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버렸다. 즉. 에탄과 악수를 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아린, 친구! 아린 조아!”
그렇게 거절의 몸짓을 보이고는 아린이에게 두 팔을 뻗었다.
이어서 푹신푹신한 강아지를 안듯이 아린이에게 안겼다.
“따뜻! 아린! 친구!”
“맞아! 아린이는 친구야!”
아린이가 녀석의 말에 까르르 웃으면서 답했다.
‘…확실하게 미움받고 있네.’
에탄이 그걸 보고는 확신했다.
자기는 첫 단추부터 글러 먹었다고 말이다.
.
.
.
그리고 가주 지오반은….
“…그 아이는 또 누구냐?”
에탄이 저녁 식사 자리에 데려온 뇽뇽이를 보고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