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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24화 (24/200)
  • 제24화

    나이아 호수는 평범한 장소가 아니다. 당연한 거였다. 애당초 아무것도 없는 호수였다면 에탄이 굳이 이곳을 올 이유가 없다.

    ‘요정이 사는 호수.’

    이 호수에는 특별한 존재가 살고 있다. 에탄이 그 사실을 알아 차린 건, 가문이 망하기 몇 달 전이었다.

    ‘재앙을 예고하는 요정이었지. 문제가 있다면 그때가 너무 늦었다는 거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걸 소문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가문의 그 누구도 요정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마물과 야만인들이 북부를 넘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제는 아니다.’

    만약. 그때 자신이나 가문의 일원이 요정을 만났다면. 멸망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거라고 에탄은 확신했다.

    “아빠! 호수는 어디에 있어요?”

    그때. 아린이 에탄을 향해 해맑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쓰윽.

    “저기 산꼭대기 보이지? 저곳에 아린이의 몸보다 몇십 배는 큰 호수가 있어.”

    에탄이 아린이의 물음에 덤덤하게 답했다. 두 팔을 크게 벌리면서 호수의 크기를 몸짓으로 표현해줬다.

    ‘아린이와는 이런 식으로 대화하라고 했지.’

    이러면 어린아이가 어른의 말을 이해하기 쉽다고, 가문의 시녀들한테 배웠기 때문이다.

    “우아…!”

    아린이가 에탄의 몸짓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후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는.

    “호수가 이렇게 크다고요?”

    에탄이 했던 몸짓을 똑같이 따라 했다.

    “흐음. 그거보다 몇십 배는 더 크지. 아린이가 두 팔을 벌린 거보다 훠어어얼씬!”

    아린이의 행동에 에탄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더 과장된 말투로 답했다.

    “우아아! 얼른 호수 보고 싶어요!”

    아린이가 에탄의 행동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두 손을 꼬옥 주먹 쥐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만큼 거대한 호수가 아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거였다.

    “좋아. 대신 조심할 게 있어.”

    “조심할 거요?”

    “응. 저번에도 이야기 했지? 무조건 아빠 뒤에 바짝 붙어 있어야 돼. 산을 올라가다가 야생 동물이랑 마주칠 수도 있거든.”

    “야생 동물….”

    에탄의 말에 아린이가 두 눈을 꿈벅였다.

    “말과는 다르게 공격을 할 수도 있는 녀석들이야. 그러니까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

    “네!”

    그리고 이어지는 에탄의 뒷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탄이 아린이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올라가자.”

    그 후 산꼭대기를 향해 등산을 시작했다.

    * * *

    터벅. 터벅.

    나이아 호수로 향하는 길은 험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오고 다니는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등산길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당연했다.

    ‘생각보다 잘 따라오네.’

    툭 튀어나온 바위는 물론이고, 때로는 움푹 파인 돌길을 지나야 하기도 했다. 등산길이 아니라 견습 기사들을 훈련 시키는 장소라고 해도 될 정도로 험난한 길이었다.

    “으흠! 으음!”

    에탄이 바위 하나를 넘고 뒤를 돌아봤다. 아린이가 자신이 왔던 길을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짧은 팔과 다리를 이용해서, 바위를 짚고 올라오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역시… 평범한 어린애는 아니야.’

    5살 어린 아이의 움직임이라고 하기에는… 아린이의 운동 능력이 너무 뛰어났다. 어지간한 견습 기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빠! 산 올라가기 너무 재밌어요!”

    게다가 지치지도 않고 있으니.

    “그래. 조심히 올라와.”

    에탄이 감탄을 하는 게 당연했다.

    “네!”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 그 후 알을 등에 멘 채로 열심히 에탄의 뒤를 쫓았다.

    어미 오리를 쫓아가는 병아리처럼 말이다.

    바스락.

    “크르릉!”

    그리고 2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멧돼지네.’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에탄과 아린이의 눈앞에 나타났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어…어어? 붉은 멧돼지?”

    녀석이 평범한 야생 동물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는 거였다.

    * * *

    붉은 멧돼지.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있어?’

    일반적인 멧돼지들보다 3배는 큰 덩치를 가진 녀석이다. 게다가 흉포함도 상당해서, 마주치면 싸움을 무조건 거는 놈들이기도 했다.

    “아린아 뒤로 물러나 있어.”

    쓰릉!

    에탄이 놈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검을 빼 들었다. 일반 멧돼지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붉은 멧돼지는 예외였다.

    놈은 눈앞에 생명체가 보이면, 무조건 돌진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크르릉!”

    놈이 에탄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뜨거운 콧방귀를 뿜어내면서, 에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타탁…탁.

    동시에 뒤에 있는 두 다리를 움직이면서 돌진 자세를 취하려는 찰나.

    “멈춰!”

    에탄의 뒤에 있던 아린이가 놈을 향해 소리쳤다.

    터벅! 터벅!

    그리고 에탄을 지나쳐 붉은 멧돼지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아린아. 위험…?”

    갑작스러운 아린이의 돌발 행동에 에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칫하면 아린이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린이한테 뒤로 물러나라고 말하려는 순간.

    “크릉…크르르릉.”

    붉은 멧돼지가 아린이를 보고 몸을 움찔하더니.

    타타탁!

    이내 멀리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아린이를 보고 저렇게 행동한다고?’

    붉은 멧돼지의 갑작스러운 도망에 에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아린이가 전설의 검이라고 해도, 아직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니까.

    ‘…아니. 아린이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의아함을 품다가 사실을 깨달았다. 붉은 멧돼지가 도망친 이유는 아린이가 아니라.

    ‘저 알이 붉은 멧돼지를 물러나게 했다.’

    아린이가 등에 메고 있는 알 때문이라는걸.

    “아빠! 친구가 자기 덕분에 붉은 멧돼지가 물러난 거래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린이가 에탄을 향해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등에 있는 친구가 붉은 멧돼지한테 겁을 줬다고 말이다.

    “그래? 어떻게 물러나게 한 거냐고 물어봐 줄 수 있어?”

    “네!”

    아린이가 에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알을 향해 에탄의 물음을 전달하고.

    “으음…아직은 알려줄 수 없데요. 나중에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거라고 궁금해하지 말래요!”

    에탄에게 알의 대답을 들려줬다.

    “비밀이 많은 친구네.”

    알의 대답에 에탄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봤자 의문이 해소될 거 같지는 않았으니까.

    “아빠. 친구가 자기 잘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데요?”

    “그래… 잘했네. 잘했다고 전해줘.”

    잘한 행동이 맞기는 했다.

    아린이 앞에서 살생을 안 하게 됐으니 말이다. 아린이에게 살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산적을 제거할 때도 자는 틈을 이용했었다.

    ‘아무리 야생 동물이라고 해도, 아린이 앞에서 죽이는 건 좀 그렇지.’

    엄밀히 따지면 진짜 어린아이는 아니다. 5000살을 넘게 존재했던 전설의 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찝찝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지금 아린이는 영락없는 5살짜리 어린이니 말이다.

    “계속 이동하자. 호수까지 얼마 안 남았어.”

    “네!”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스릉!

    그 후 검을 다시 집어 넣고는, 호수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저 알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지?’

    아린이가 등에 메고 있는 알속의 녀석에게 다시 한번 의문을 품으면서 말이다.

    * * *

    푸른 색깔의 깊은 웅덩이.

    에탄과 아린이가 나란히 벌려도 둘러쌀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넓이.

    “우아…아빠! 호수에요 호수!”

    그 정도로 거대한 나이아 호수에 에탄과 아린이 마침내 도착했다. 산에 오른지 약 3시간이 지났을 때 였다.

    “너무 아름다워요! 반짝반짝거리는게 꼭 보석을 보는 거 같아요!”

    아린이가 나이아 호수를 보고는 들뜬 목소리로 뒷말을 붙였다.

    “그렇게 좋아?”

    “네!”

    “흐음…왜?”

    에탄이 아린이의 행동에 궁금증을 가지고 물었다. 나이아 호수가 제법 크기는 하지만, 아린이가 저렇게까지 놀랄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빠랑 처음으로 같이 보는 호수 잖아요! 그러니까 기분이 어어엄청 좋아요!”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아빠와 처음으로 같이 보는 호수라서 기분이 좋다니.

    ‘세상에…’

    에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안 기뻐요?”

    “아니. 아빠도 아린이랑 똑같은 마음이야. 아린이랑 처음으로 같이 보는 호수라서 그런지, 더 기분이 좋네!”

    아린이의 질문에 에탄이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아린이의 예상치 못한 대답 덕분에, 에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 건 덤이었다.

    “앞으로도 아빠랑 같이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자.”

    “네!”

    “대신 그러기 위해서는 수련을 열심히 해야 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에탄이 앞으로 돌아다녀야 할 곳은, 일반 사람들이 활동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장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아린이가 어느 정도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내가 옆에서 최선을 다해 지켜주겠지만, 큰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물론. 아린이를 일부로 위험에 처하게 할 생각은 에탄에게 전혀 없었다. 하지만 대비는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아린이의 잠재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네! 아린이도 아빠처럼 강해질게요!”

    “좋아. 그런 자세 아주 훌륭해.”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아린이가 에탄과 수련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오히려 검을 휘두르는 걸 좋아하니, 에탄의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맛까지 있을 정도였다.

    “좋아. 그럼 이제 호수에 있는 요정님을 불러볼까.”

    에탄이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후 미리 준비했던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헤와른을 통해 준비한 ‘특약’ 액체가 들어있는 녀석이었다.

    “아빠 그게 뭐예요?”

    아린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걸 바라보면서 질문했다.

    “요정님이 좋아하는 가루.”

    에탄이 아린이의 물음에 씨익 웃으면서 답해줬다. 이어서 아공간 주머니 입구를 열고는, 안에 들어 있는 가루를 나이아 호수에 뿌렸다.

    파아앗!

    그러자 잠잠하던 호수에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 이제…?”

    에탄이 그걸 보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음?”

    그러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호수에서 나오는 빛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끼에엑!

    때문에 뒤로 물러나려는 찰나, 호수 안에서 기괴한 악마의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촤아악!

    […]

    그 후 검은 날개를 가진 요정이 호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게 아닌데?’

    에탄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온몸으로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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