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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천재 딸이 생겼다-20화 (20/200)
  • 제20화

    시녀장 리른이 아린이의 옷 사기 원정대에 합류하게 됐다.

    “그래. 리른이라면 믿고 맡길 만하지.”

    에탄에게 그 사실을 들은 지오반이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집무실에 아린이 옷 사기 업무 보고를 하러 온 에탄에게.

    “모든 걸 그녀에게 위임하거라. 네 녀석은 옆에서 돈만 지불하라는 뜻이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

    다시 한번 경고했다.

    절대로 리른의 말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저는 옆에서 조용히 지갑만 여는 역할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만 마차를 구하러 가 보겠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냐.”

    마차를 잡으러 가겠다는 에탄의 말에 지오반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차라면 이미 준비되어 있다.”

    “예?”

    “설마. 아린이가 타야 하는 마차를 평범한 걸로 선택할 생각이었느냐?”

    “그동안은 그래 왔습니다. 아버지한테 말해 봤자 들어줄 리가 만무할 거 같았으니 말이죠.”

    “이제는 아니다.”

    “…….”

    에탄이 지오반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외출을 할 때는 한 번도 저런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망나니에서 벗어난 뒤에도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 다니라고 했었지.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심지어 에탄이 정신을 차렸을 시기에도 그러했다.

    ‘가끔은 나도 편안하게 움직이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지오반이 에탄에게 가문에 있는 ‘정식’ 마차를 내어 주는 경우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뿐이었다.

    ‘그런데 아린이가 나간다고 하니까… 그래. 음 이해는 할 수 있지. 아린이는 아직 어리고 연약하고 귀여우니까.’

    한데. 아린이와 함께 옷을 사러 나가는 것뿐인데도 가문에서 운영하는 정식 마차를 일말의 망설임 없이 빌려준다고 하니.

    ‘그래… 원래 자식보다 손자, 손녀가 더 좋다고 하잖아.’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문에서 준비한 마차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거라.”

    “예.”

    “그리고 4명의 1기사가 뒤에서 마차를 호위할 거다. 아린이가 옷을 사러 간다는 소식에 자기들도 따라가겠다고 말하더군.”

    “허어….”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려 칼라사르 가문의 1기사들이 호위까지 해 준단다.

    심지어 지오반의 명령이 아닌 자원 신청이라고 하니.

    ‘이 자식들… 나는 쥐뿔도 신경 안 써 주더니.’

    에탄은 더더욱 큰 배신감을 느꼈다.

    하나. 이걸 가지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아린이를 위해 주는 게 곧 나를 생각해 준다는 뜻이라고 하자.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자.’

    어찌 됐든 아린이한테는 좋은 일이니까.

    에탄에게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아린이를 향한 모든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아린이 옷을 사러 나가 보겠습니다.”

    “알겠다. 다녀오면 나한테 데려오거라. 그 아이가 변한 모습을 확인해 보고 싶으니 말이다.”

    “예.”

    지오반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주실을 조용히 빠져나와서.

    “아빠! 아린이 옷 사러 가요?”

    “가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린과 시녀장 리른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움직이자.”

    아린이의 옷 사기 임무를 시작하자고 말이다.

    * * *

    칼라사르 가문의 마차는 특별하다.

    가문의 이름과 문양이 새겨져 있으니 당연한 거였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칼라사르 가문 마차.”

    그중 하나가 마차의 진동이었다.

    다른 일반 마차들과는 다르게, 칼라사르 가문의 마차는 위아래로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아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마차의 제일 좋은 기능을 설명한 거야.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편하다는 뜻이지.”

    “아하!”

    에탄의 설명에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눈을 꼬옥 감고는 마차의 움직임에 집중하더니.

    “우와… 정말 흔들림이 없어요!”

    에탄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거에 크게 놀랬다.

    “정말 귀여우시네요.”

    아린의 오른편에 있는 시녀장 리른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참고로 아린이는 에탄과 시녀장 리른 사이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어쩜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렇게 보기 좋은지… 하긴 그러니까 1기사님들도 아린이를 따라 온 거겠죠.”

    리른이 말을 끝내고는 양옆에 있는 창문 너머를 살펴봤다. 우측과 좌측에서 1기사들이 마차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아빠. 왜 기사님들은 뛰어다녀요?”

    아린이 리른과 함께 그 모습을 보고는 질문했다.

    “그게 말을 타는 것보다 편하거든.”

    에탄이 아린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실제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말이나 마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현저히 적어진다.

    ‘튼튼한 내 두 다리가 더 빠르니까.’

    그럴 시간에 달리는 게 실제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부의 습격에도 바로 자세를 취할 수 있으니, 기사들이 말을 이용하지 않는 건 당연한 거였다.

    ‘기사들의 임무는 호위 대상을 지키는 거지. 설령 자기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고 해도.’

    칼라사르 가문의 기사들은 충직한 편이다.

    그 사실을 에탄은 가문이 멸망할 때 깨달았다.

    3기사들 중에서는 도망가는 이가 꽤 있었지만, 1기사와 2기사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수없이 몰려오는 마물을 막기 위해, 그들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죽었다.’

    물론.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문은 멸망했지만….

    ‘이번 생은 달라야지. 내가 바꿀 거야.’

    에탄은 그 운명을 다시 한번 맞이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악착같이 강해지려는 거고 말이다.

    꼬옥.

    “아빠… 화났어요?”

    그런 결심을 하는 순간.

    아린이 에탄의 옷깃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표정이 안 좋아요. 아린이 친구도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 달래요.”

    그리고 품에 안고 있는 알과 에탄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아빠 화 안 났어. 오히려 기분 좋아.”

    “진짜요?”

    “그럼. 아린이 새 옷 사 주러 나가는 건데 왜 화가 나겠어.”

    아린이의 반문에 에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린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만졌다.

    덜컹!

    그때. 앞으로 움직이던 마차가 움직임을 멈췄다.

    동시에 마차의 문이 열리고는.

    “모이세르 장인의 옷가게에 도착했습니다.”

    1기사 중 한 명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말을 꺼냈다.

    “자! 어디 한번 시작해 보죠!”

    리른이 그 말을 듣고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어서 마차에서 빠르게 하차하고는.

    “얼른얼른 움직여요. 가게가 열려 있는 시간 안에 최대한 어울리는 옷을 많이 구매해야 하니까요.”

    마차에 있는 에탄과 아린에게 빨리 행동하라고 닦달했다.

    ‘…방금 나보다 움직이는 속도가 빨랐던 거 같은데?’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리른한테 아린이 옷 사 주기는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라는걸.

    * * *

    모이세르 장인은 칼라사르 가문의 영지에서 옷을 제작하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오랜만이군요. 리른 님.”

    그리고 그가 만드는 옷들은 대부분 칼라사르 가문이 가져간다. 당연한 거였다. 하나하나가 헉 소리가 나올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문 전속 옷 제작자나 마찬가지지.’

    돈을 주면 그만큼 확실하게 옷을 만들어 주니.

    자연스럽게 모이세르한테 제작을 의뢰하는 빈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옆에 계신 분은….”

    “칼라사르 가문의 장자. 에탄 도련님입니다. 그리고 그의 따님도 함께 왔습니다.”

    “아! 에탄 도련님이시군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리른의 말에 모이세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그는 에탄을 못 알아봤다.

    혹독한 수련을 통해서 에탄의 모습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모이세르의 사과에 에탄이 손을 휘저었다.

    그런 걸로 시비를 걸 만큼 성격이 파탄 나지는 않았다.

    전생 시절의 에탄이라면 모를까.

    ‘그건 그렇고 입고 있는 옷은 생각보다 평범하네.’

    에탄이 모이세르의 복장을 슬쩍 훑어봤다.

    옷 장인이라고 해서 입고 있는 옷이 화려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작업을 해야 하기에, 움직이기 편한 거적때기 천 옷을 걸치고 있었다.

    ‘더욱더 신뢰가 가는구만.’

    때문에 에탄은 모이세르를 믿을 수 있었다.

    다른 풋내기 장인들과는 다른 느낌이 그에서 느껴졌으니까.

    “내 딸한테 새 옷을 입히고 싶은데 가능하겠지?”

    “도련님의 따님 말씀이시군요.”

    “그래. 이 부분은 리른과 얘기해서 정하도록. 나는 결제만 해 줄 거니까.”

    “알겠습니다.”

    에탄의 말에 모이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알을 품에 안고 있는 아린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허억!”

    모이세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렇게. 이렇게 보석 같을 수가!”

    그리고 아린을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정말… 저한테 따님의 옷을 맡기시는 겁니까?”

    “그래.”

    “아아아!”

    모이세르가 에탄의 대답에 탄성을 내질렀다.

    “…아빠. 저 사람 약간 이상해요.”

    아린이 그 모습을 보고는 에탄의 뒤로 숨었다.

    동시에 1기사들이 모이세르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아린을 놀라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크흠. 아. 죄송합니다. 저렇게… 저렇게 엄청난 어린아이는 처음 봐서.”

    그 모습을 보고 모이세르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어서 광기에 가득 차 있던 눈동자가 차분해졌다.

    ‘…이 자식도 정상은 아니구만.’

    에탄은 그걸 통해서 깨달았다.

    각 분야의 정상에 있는 장인들은 대부분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다는 거였다.

    “리른 님. 몇 벌 정도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때. 모이세르가 리른을 향해 한 가지 질문을 내던졌다. 아린이를 위한 옷을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거였다.

    “…그런 건 없습니다.”

    “예?”

    그 후 이어지는 리른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른이 그 모습을 보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몇 벌인지 제한 같은 건 없습니다. 중요한 건 아린 님한테 어울리는 옷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겁니다. 한 100벌 정도 있으면 좋겠네요.”

    가문의 금고가 동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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