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사실. 에탄도 처음에는 모헨과 진검으로 승부할 생각이 없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뀌었다.’
하나. 두 가지 이유가 에탄의 식은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첫 번째는 모헨이 자신한테 보이는 눈빛과, 미래의 그가 도달하게 되는 경지를 에탄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걸 계기로 모헨이 좀 더 빨리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건 나를 넘어서 가문에까지 이익이야.’
모헨의 성장은 칼라사르 가문의 이득이다.
실력 있는 충실한 기사를 얻어 내는 것이니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목숨을 불태울 만큼 충의 넘치는 인재를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진검을 받았는데 한 번쯤은 사용해 봐야지.’
에르덴에게 받은 진검을 휘둘러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진검 승부를 걸기도 싫었다.
굳이 송사리들로 힘을 빼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아아!”
때문에 에탄은 모헨을 자신의 몸풀기 상대로 선택했다. 자신의 진검을 받아낼 수 있는 모헨으로 말이다.
부웅!
모헨이 기합을 내지르면서 에탄에게 달려들었다.
이어서 에탄의 머리 쪽으로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혹여나 에탄 도련님이 다치면 어떡하나? 같은 걱정 따위는 없었다.
까앙!
에탄이 자신의 검을 거뜬히 막아낼 거라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모헨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들었다.
“막아냈다!”
에탄의 검과 모헨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3기사들이 놀람을 잔뜩 표했다.
“모헨의 공격이 막혔어!”
“세상에. 저걸 에탄 도련님이 방어해 낸다고?”
그도 그럴 게. 3기사들 사이에서도 검술이 제일 좋기로 소문난 이가 모헨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체격은 남들보다 조금 작지만. 모헨의 동물적인 감각과 검을 다루는 실력이 그걸 보완해 주고 있었다.
“잠깐… 그러면 에탄 도련님이 검술에도 능하다는 소리잖아.”
“단순히 힘만 강하신 게 아니라고?”
“그게 말이 되나?”
3기사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의 기억 속 에탄은 검 한번 잡아 보지 않은 ‘애송이’었으니까.
“…예상외군.”
“도련님이 검을 다루다니.”
그건 2기사와 1기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 또한 눈에 이채가 서린 채 에탄을 쳐다봤다.
누구도 에탄이 모헨의 검을 막아 낼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기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깡… 까앙!
물론. 모헨과 에탄은 3자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해서 검을 부딪치면서 대련을 이어 나가기 바빴으니까.
‘이게 도련님의 검술이라고?’
그럴수록 모헨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 갔다.
에탄과 자신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수십 개가 있다고 해도 말이 될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검술은 도대체 뭐지?’
동시에 에탄이 선보이는 움직임에 의문을 가졌다.
가문의 그 누구한테도 느껴 보지 못하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탄의 동작을 더 유심 깊게 보려는 순간.
퍽!
“크헉!”
에탄이 모헨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쓰릉!
이어서 쓰러진 모헨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베일 정도로 아주 가깝게 말이다.
“나의 승리다.”
그 상태에서 에탄이 자신이 이겼다고 입을 열었다.
“…저의 패배입니다.”
모헨이 에탄의 선언에 고개를 떨궜다.
깔끔한 승복이었다.
“한데. 조금 전에 보여 주신 검술은….”
“왜. 탐나?”
“…조금 그렇습니다.”
“그러면 잘 연구해 봐. 어차피 내 몸에 맞는 검법은 아니거든.”
에탄이 모헨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처음부터 예상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보여 준 동작들을 초식 삼아서 뻗어 나가.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일 거야.”
실제로 그러했다.
에탄이 지금 선보인 움직임은, 모헨이 자신의 검술의 근본으로 삼는 동작들이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금방 감을 잡겠지.’
그렇기에 에탄은 모헨이 자신의 검술을 더 빨리 완성할 거라고 확신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의 중심을 선명하게 보여 줬으니까.
“할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이제 들어가. 너도 코뼈 박살 나고 싶은 건 아니지?”
“아… 예.”
에탄의 물음에 모헨이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자신보다 먼저 대련을 했던 녀석의 코뼈가 뭉개지는 걸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에탄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3기사들이 있는 장소로 다시 되돌아갔다.
“다음.”
에탄이 그걸 확인하고는 나머지 3기사들을 쳐다보면서 손을 까딱였다.
하지만.
“…….”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미 자신들보다 실력이 훨씬 좋은 두 사람의 패배를 똑똑히 목격했으니까.
“이제는… 대련을 끝내도 될 거 같습니다.”
“그… 저희의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대련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3기사들이 에탄을 향해 대련을 마무리하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뭐?”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후 짧게 혀를 차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희 모두 나랑 한 번씩 대련하기 전에는 여기서 못 벗어나.”
3기사들을 향해 비릿한 미소로 뒷말을 이었다.
“아… 아.”
“하아.”
그 순간 3기사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건드린 존재가 보통 망나니가 아니라는걸.
* * *
3기사들과의 대련은 30분이 더 지나서야 끝이 났다. 결과는 당연히 에탄의 완벽한 승리였다.
“아빠! 어제 정말 멋졌어요!”
반짝반짝.
가뜩이나 동그랗고 커다란 아린이의 눈이 여느 때보다 커져 있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아린이가 방 침대에 걸터앉은 채, 관중석에서 본 에탄의 모습을 묘사했다.
“아린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놀랬어요! 막 눈이 이만큼~커져서 아빠를 쳐다봤다니까요?”
몸짓과 손짓을 총동원해서 말이다.
“그래. 그래. 아빠가 조금 멋지기는 했지.”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대련이 끝난 직후부터,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질리지가 않았다.
아린이가 자신의 검술 실력에 그 정도로 놀랬다는 뜻이니까.
‘뭐… 놀란 건 아린이뿐만이 아니겠지.’
에탄은 대련이 끝났을 때 관중석에 있는 다른 자들을 살펴봤다. 2기사부터 시작해서 가주까지. 모두가 의외라는 듯이 에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같아도 놀라긴 할 거야. 실제로 전생 때는 검을 잡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들의 얼굴이 제법 볼 만해서 웃음이 절로 나왔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전생 시절 에탄은 이 시기에 정말 검 한 번 휘둘러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걸 빌미로 아버지한테 돈 좀 받아 낼 수 있겠는데?’
3기사들과의 대련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그 말은 즉. 한 명도 빠짐없이 에탄의 손에 박살 났다는 뜻이니.
‘나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바뀌었겠지.’
에탄은 이걸 계기 삼아, 가주인 지오반한테 금전적인 부분을 해결해 달라고 청할 생각이었다. 세바스찬한테 뜯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여러모로 기분 좋은 승리였다.
하지만 에탄은 문득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정도로도 놀라는데 내가 죽지 직전에 썼던 검술을 본다면 저택도 내어 주는 거 아니야?’
회귀 이전, 같은 시점과 비교하면 경악할 만한 성장이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아직 완벽하게 힘을 되찾지 못한 거긴 하지.’
그건 바로 아직도 죽기 직전, 발현되었던 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열심히 수련하고, 아린이를 잘 키우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이라는 건가.’
에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린이 말을 걸었다.
“아빠, 아린이는 아빠에게 할 말이 있어요.”
“뭔데?”
“그건….”
그때였다.
똑똑.
“도련님. 세바스찬입니다.”
그때. 에탄의 전속 집사인 세바스찬이 에탄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에탄이 세바스찬의 말에 목을 좌우로 움직여 주면서 답했다.
끼익.
“대련에서 이기신 걸 축하드립니다.”
세바스찬이 방으로 들어온 뒤, 그런 에탄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이어서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3기사들은 특수 훈련을 받기로 결정됐습니다.”
“특수 훈련?”
“예. 가주님이 3기사들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고 하셔서… 2기사들과 함께 ‘특별한’ 훈련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거 잘됐네. 그 자식들은 몸 좀 굴려야 돼.”
에탄이 세바스찬의 말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흐름은 아니지만 제법 만족스러운 변화였다.
3기사들과 대련을 한 이유에는, 녀석들의 정신머리를 개조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전해 드릴 게 있습니다.”
헌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바스찬의 뒷말에 에탄이 두 눈을 끔뻑였다.
“뭔데?”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아버지가 나를?”
“예.”
그 후 이어지는 대답에 입꼬리를 올렸다.
“오우거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니….”
“예?”
“아무것도 아니야.”
지오반이 자신을 부르는 이유가 어째서인지 대략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가주실에서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좋아. 혹시 나쁜 이유로 날 부르시는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가주님의 목소리가 온화하셨으니까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에탄이 세바스찬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침대에 앉아 있는 아린이를 향해 뒷말을 이었다.
“아린아. 세바스찬이랑 잠시 놀고 있어. 아빠는 할아버지 만나고 올게.”
“그러면 설탕 사탕 먹어도 돼요?”
“하나만 먹어. 두 개 이상 먹으면 배탈 난다.”
“네에!”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아빠와 잠시 떨어지는 게 슬프기는 했지만, 그걸 대가로 설탕 사탕을 얻게 됐으니 괜찮다고 판단 하는 거였다.
씨익.
이런 아린이의 속마음을 눈치챈 에탄이 피식 웃었다.
‘나도 저 나이 때는 세바스찬이 주는 설탕 사탕을 자주 먹었지.’
그리고 과거를 떠올렸다.
세바스찬이 건네주던 설탕 사탕을 먹던 자신을 말이다.
물론. 그걸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살이 찌기는 했지만.
‘아린이는 나랑 같이 수련하니까 상관없을 거야.’
아린이는 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으리라.
에탄과 계속 검술 훈련을 이어 나갈 테니까.
“역시 도련님의 따님이십니다. 어릴 때 도련님과 입맛이 똑같으시군요.”
“원래 딸과 아버지는 통하는 게 있는 법이잖아.”
“…부디 성격은 안 똑같았으면 좋겠군요.”
“크흠.”
세바스찬의 말에 에탄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 후 세바스찬이 자신의 과거를 폭로하기 전에.
“그럼 나는 아버지를 뵈러 가 볼게. 그동안 아린이랑 놀아 주고 있어.”
“알겠습니다. 이참에 아린 님에게 정원을 다시 한번 구경시켜 드려야겠군요.”
세바스찬한테 아린이의 육아를 맡기고, 자연스럽게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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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오반이 있는 가주실로 들어가자마자.
“아버지. 돈이 좀 많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저 부르신 이유가 이번 대련의 결과를 보고 상을 주시려는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전초전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돌입했다.
“…….”
지오반이 그런 에탄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 표정이 상당히 예술적인 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