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에탄과 3기사들이 대련을 치르는 날이 왔다.
“확실히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야. 한 것도 없는데 순식간에 지나갔네.”
대련 당일이었지만 에탄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에탄에게 있어 3기사들과 한판 붙는 건 어디까지나 몸을 푸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에탄의 말에 세바스찬이 침을 삼켰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도련님의 몸이 꽤 많이 변한 거 같습니다.”
이어서 수련실에 있는 에탄의 몸을 보고는 감탄했다.
상의를 탈의한 채 훈련을 하고 있었기에, 좀 더 선명하게 에탄의 육체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근육도 많이 갈라졌고… 무엇보다 뱃살이 들어가셨군요.”
헤와른의 포션과 에탄이 가지고 있는 지식, 거기에 극한의 운동량까지 더해졌다. 덕분에 에탄은 최대한 빠르게 자신의 몸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아린이는?”
“대련이 열리는 곳에서 시녀들과 놀고 있습니다.”
“그렇구만.”
에탄이 세바스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이는 처음에 에탄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과 대화가 통하는 정체불명의 알이 생기고, 에탄이 가문의 사람들과 안면을 트게 해 주자 그 증상이 조금은 나아졌다.
‘물론… 알은 여전히 찝찝하지만.’
아린이가 데리고 다니는 알의 존재는 여전히 알아내지 못했다. 놈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여전히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뭘까. 그런 알은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몬스터의 알은 아닌 거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의문이었다.
저 알에서 녀석이 부화하면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도련님. 이제 슬슬 가실 시간입니다.”
“아. 그래.”
에탄이 세바스찬의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이어서 바닥에 있는 옷을 다시 주워 입고는.
“가자. 애들 교육하러.”
3기사들과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련장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사악한 망나니의 미소를 머금은 건 덤이었다.
* * *
칼라사르 가문의 대련장.
이곳은 오직 대련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시설 중 한곳이다.
“여기도 오랜만에 오는구만.”
에탄이 열려 있는 대련장을 보고 추억에 잠긴 듯 입을 열었다. 전생 시절에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장소였다.
“마지막으로 대련장이 열린 게 언제였지?”
“일 년 전에 베르사르 가문의 가주와 지오반 가주님의 대련이었을겁니다.”
“베르사르 가문이라….”
에탄이 세바스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베르사르 가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보다 먼저 멸망했던 가문이었지.’
베르사르 가문은 칼라사르 가문과는 동맹 관계에 있는 가문이다. 허나. 마물과 야만족이 가장 먼저 침공을 한 탓에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하고 몰락했었다.
‘분명 내부에 야만족의 첩자가 있었을 거야.’
베르사르 가문의 전력은 결코 약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에탄은 베르사르 가문 내에서 누군가 배신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도대체 누구….”
그래서 그놈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려는 찰나.
“아빠!”
아린이가 에탄을 부르면서 뛰어왔다.
“아린이가 열심히 응원할게요!”
이어서 에탄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래. 그래. 아빠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 줄게.”
에탄이 자신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아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아빠랑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
“네!”
아린이의 손을 잡고 대련장 안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 * *
칼라사르 가문의 대련장은 콜로세움처럼 되어 있다.
덕분에 에탄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이들 모였구만.’
가주인 지오반과 아린이부터 시작해서 1기사 2기사까지. 가문에 있는 대부분에 사람들이 대련장에 모였다.
에탄과 3기사들의 대련을 지켜보기 위해서 말이다.
‘하긴. 내가 싸우는 모습을 못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 점이 조금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에탄이 검을 잡는 걸 처음 보는 거일 테니까.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겠어.”
그래서 에탄은 한 가지 사실을 느꼈다.
더는 자신이 망나니가 아니라는 걸 이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였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 줘야겠구만.’
때문에 다짐했다.
이번 3기사들과의 대련을 계기로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생각들을 바꿔 버리겠다고.
쓰윽.
에탄이 생각을 끝내고 맞은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자신과 오늘 한판 붙을 예정인 3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흐음….”
“흠.”
“…흥.”
대부분의 3기사들이 에탄을 탐탁지 않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망나니 에탄이 자신들과 한판 붙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하지만 모두가 형편없는 건 아니지.’
하나. 그중에서도 에탄의 눈길을 끄는 자가 있었다.
칼라사르 가문의 1기사 자리까지 올라가는 ‘모헨’이라는 남자였다.
‘저 또렷한 눈빛은 이때도 변함이 없었구나.’
에탄이 3기사들 사이에 있는 모헨을 바라봤다.
녀석 또한 에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얕보거나 무시하는 게 아닌, 진지한 대련 상대로 대하는 표정이었다.
씨익.
그런 모헨을 쳐다보면서 에탄이 미소를 지었다.
“…?”
그러자 모헨이 두 눈을 끔뻑였다.
“처음으로 도전할 놈 나와.”
에탄이 당황하는 모헨을 뒤로하고 3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일 사람은 모두 모였으니, 얼른 대련을 진행할 심산이었다.
쿵!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그렇게 에탄이 입을 열자, 듬직한 덩치를 가진 녀석이 대련장 한가운데로 나왔다. 3기사들 사이에서 힘이 가장 좋아 보이는 놈이었다.
“흐음….”
에탄이 놈을 위아래로 쓰윽 훑어봤다.
자신보다 큰 키에 널찍한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체급 차이였지만.
“선공은 양보해 주지.”
에탄은 녀석에게 먼저 공격할 기회를 줬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최선을 다해서 덤벼. 대신 어디 하나 부러져도 나중에 뭐라 하기 없기다.”
“…알겠습니다. 그럼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에탄의 말에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에탄을 완전히 묵사발 내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팍!
에탄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부웅!
이어서 목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면서 에탄의 머리를 가격하려는 순간.
“느리구만.”
쓰윽.
에탄이 오른쪽으로 한 발짝 움직이면서 놈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넌 목검도 아깝다.”
놈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퍼억!
왼손으로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빠아악!
그러자 코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아무것도 끼지 않은 맨주먹이었지만 그간의 수련을 통해 제법 뼈가 단단해진 상태였기에.
“아악! 코가… 코가아아!”
놈이 고통을 느끼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고작 코뼈 부러진 거 가지고 엄살은.”
에탄이 바닥을 구르는 놈을 보고 콧방귀를 꼈다.
“나 때는 말이야. 팔 한쪽이 잘려도 이 악물고 싸웠어. 안 그러면 목이 날아가거든.”
이어서 전생 시절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해 줬지만.
“으아악!”
들어먹을 리가 만무했다.
“아. 더럽게 시끄럽네. 경비병 얼른 얘 데리고 나가.”
“예… 예!”
에탄이 놀란 채 서 있는 경비병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경비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한 뒤, 놈을 부축해서 대련장을 빠져나갔다.
“…….”
그 순간 모두가 합이라도 맞춘 듯.
대련장에 정적이 찾아 왔다.
* * *
에탄과 3기사의 첫 번째 대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눈 한번 깜빡이는 시간에 결과가 나와 버렸다.
“세상에….”
“저 큰 덩치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어.”
“아무리 3기사라고 해도 체급 차이가 있는데.”
대련을 구경하던 2기사와 1기사들이 그걸 보고는 크게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망나니 에탄이 3기사를 한 방에 쓰러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흐음….”
에탄의 모습을 보고 놀람을 느낀 건 지오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의자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에탄을 바라봤다.
“표정에 변화가 없군.”
자신이 이길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녀석의 얼굴을 말이다.
“변했나.”
그걸 통해서 지오반은 다시 한번 확신했다.
자신의 알던 에탄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 * *
뚜둑! 우두둑!
에탄이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풀어 줬다.
“다음 사람. 빨리빨리 나와라.”
그 후 맞은편에 있는 3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나 나와.”
얼른 대련장 한가운데로 오라고 말이다.
“…네가 먼저가.”
“아니. 난 몸이 안 좋아서.”
“나도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러자 3기사들이 서로를 떠밀기 시작했다.
가장 힘이 센 녀석이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걸 목격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터벅터벅.
그때. 놈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거침없이 대련장 한가운데로 나섰다.
‘역시. 난놈은 싹부터 다르다 이건가?’
미래에 1기사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모헨이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헨이 에탄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코뼈 부러져도 상관없어?”
에탄이 녀석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조금 전 바닥을 구르던 놈과 같을 꼴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이상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헨은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을 반짝이면서 에탄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모든 힘을 보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심을 다해 자신을 상대해 달라고.
“좋아. 안 봐준다.”
“예.”
에탄의 말에 모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목검을 쥐어 잡고 자세를 취했다.
“흐음… 잠깐.”
그리고 에탄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에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후 녀석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집을 쳐다보면서.
“진검을 꺼내.”
“…?”
“목검을 실전에서 쓸 건 아니잖아. 그리고 진검으로 해야 진짜로 싸우는 맛을 낼 수 있어.”
진검을 꺼내라고 말했다.
쓰릉!
그 후 에르덴에게 받은 진검을 빼 들었다.
“…….”
모헨이 그 모습을 보고는 당황했다.
설마. 여기서 진검으로 승부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뻤다.
그만큼 에탄이 자신을 높게 평가해 준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쓰응!
그렇기에 모헨은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검을 빼 들고는.
탁…탁… 타타타타탁!
에탄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씨익.
에탄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모헨을 보고 입꼬리를 얕게 올렸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미래의 네가 사용할 검법을 보여 주마.’
특별한 기연 하나를 맛보여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