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3기사는 아직 정식 기사인 2기사로 승급하지 못한 자들을 칭하는 명칭이다. 즉. 좋게 말해서 기사인 셈이지, 사실상 기사를 지향하는 ‘견습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칼라사르 가문에서 3기사들은 실전에 투입되지도 않는다. 마물이나 야만족을 상대하기에도 부족한 실력을 가진 자들이니까.
“일주일 뒤에 3기사들과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때문에. 에탄은 자신한테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전생의 자신이 망나니처럼 살아서 무시를 당하는 거라고 해도 말이다.
“…흐음.”
에탄의 말에 지오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동시에 서류를 살펴보던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에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유가 뭐지?”
그 후 어째서 3기사들과 대련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한 번은 깨닫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자기들이 생각보다 보잘것없다는 걸 말이죠.”
에탄이 그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그리고 지오반이 뭐라 말하기 전에 뒷말을 붙였다.
“망나니 에탄에게도 패배할 만큼 형편없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2기사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나타날 겁니다.”
“…….”
“이 정도면 대련을 허가해 주실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탁.
지오반이 에탄의 말에 서류를 탁자에 완전히 내려놓았다. 이어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에탄의 두 눈을 빤히 쳐다봤다.
“네가 질 수도 있다. 3기사들이 정식 기사는 아니지만, 검을 잡은 시간은 네 녀석보다 충분히 오래됐다.”
“검을 많이 휘둘렀다고 해서 실력이 좋은 건 아닙니다. 아버지도 그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투자한 시간을 네가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건가?”
“예.”
지오반이 당당한 에탄의 대답에 말을 멈추었다.
“무엇으로?”
그러다가 질문했다.
도대체 뭘 믿고 3기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거냐고.
“그들보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으로.”
에탄이 지오반의 물음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지극히 오만한 말이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낱 양아치들의 허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에탄의 대답은 진실이었으니까.
전생 시절 그가 쌓아 올린 실력과 재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기였다.
“재밌군.”
비록. 그 사실을 지오반은 알 수 없지만, 에탄의 태도를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자신한테 하는 저 말들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거였다.
“네 녀석도 칼라사르 가문의 일원이다. 이건가?”
“그 피가 흐르는 건 사실입니다. 일단 아버지의 자식이니 말이죠.”
“하!”
지오반이 에탄의 지적에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 후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좋다. 네가 바라는 대로 3기사들과 대련을 할 수 있게 해 주마.”
에탄이 3기사들과 한판 붙는 걸 허락해 줬다.
“감사합니다.”
마침내 떨어진 지오반의 승낙에 에탄이 고개를 꾸벅이고는.
“기대하셔도 좋으실 겁니다.”
지오반에게 자신만만한 말투로 뒷말을 붙이고 가주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탄이 3기사들과 대련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 * *
-그거 들었어? 도련님이 3기사들이랑 대련을 한다네.
-진짜로?
-그렇다니까! 일주일 뒤에 열린대.-
칼라사르 가문의 대화 주제가 오랜만에 한 주제로 통합됐다. 이런저런 잡일을 하는 시녀들부터 시작해서.
-벨. 3기사들과의 대련을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2기사들에 비하면 볼품없는 놈들이기는 하지만, 과연 도련님이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3기사들보다 더 실력 좋은 2기사들까지 모두의 관심사가 한곳에 몰렸다.
“어제부터 계속 에탄 도련님의 대련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발헬름이 그 사실을 지오반에게 알려 줬다.
탁.
지오반이 발헬름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 후 주변에 있는 푸른 나무들을 바라봤다.
“날이 좋군.”
지오반은 오랜만에 가문을 나와 산책을 나온 상태였다.
초대 가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가문에 공을 세운 자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가문 부지로 말이다.
“그 녀석의 이야기가 퍼지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전처럼 가문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내용이 아니니까.”
“만약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될 거 같나?”
발헬름의 말에 지오반이 반문했다.
“…….”
그의 물음에 발헬름이 몸을 멈칫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봐 왔던 에탄의 모습을 떠올렸다.
툭하면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내지르던 형편 없던 과거를 말이다.
“예전이라면 망설임 없이 예라고 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한테 당장 그 녀석을 가문에서 퇴출하자고 말했겠지.”
“그렇습니다.”
지오반의 말에 발헬름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했다. 그만큼 ‘망나니’ 에탄은 형편없었다. 발헬름조차 내치자고 할 정도로 그러했다.
“그래서. 그 녀석이 질 거 같나?”
“아마. 가주님이랑 제 대답이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오반의 반복되는 물음에 발헬름이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그 표정을 보고 지오반이 재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선대 가주들의 동상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기대되는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탄과 3기사들의 대련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에 대해 기대감을 가졌다.
“가주님. 멀리 외출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그곳에 가려는 건가?”
“예. 도련님이 저렇게 노력하시는데, 저 또한 철저히 준비를 함이 맞지 않겠습니까?”
발헬름의 말에 지오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군.”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말했다.
설마. 발헬름이 에탄과의 대련을 위해 ‘그곳’ 까지 갈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원래 늙으면 변덕이 심해지는 법입니다.”
“…조심히 다녀오도록.”
“알겠습니다.”
지오반이 발헬름의 사실 적시에 얕게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그곳’으로 가는 걸 허락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럼 이주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발헬름이 지오반을 향해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하고는.
탁!
순식간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
그렇게 혼자가 된 지오반은 조용히 선대 가주들의 동상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에탄.’
에탄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해서 말이다.
* * *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야심한 밤이 찾아 왔을 때.
에탄은 세바스찬과 함께 정원을 걸었다.
아린이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기에, 오랜만에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회귀 후로 따지면 처음이지.’
물론. 그건 세바스찬의 입장이었고.
회귀를 한 에탄의 기준에서는 처음으로 세바스찬과 둘이서만 남은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니 회귀를 하고 나서 정신없이 달리고 있구나.’
에탄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매일 수련에 몰입하느라 세바스찬과 대화도 제대로 못 해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도련님.”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정원 안으로 들어와 몇 걸음을 걸었을 때, 세바스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무턱대고 지르는 건 현명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에탄을 향해 진심 어린 걱정을 했다.
“3기사들과의 대련이라니… 아무리 그 녀석들이 형편없다고 해도 너무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도련님이 제대로 검을 잡은 기간이, 그들보다 훨씬 짧기 때문입니다.”
에탄이 세바스찬의 대답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너는 아직 내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못 봤구나?”
세바스찬이 아직 자신이 검술 실력을 두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아무리 도련님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들이 투자한 시간 또한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세바스찬이 에탄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그래. 참고할게.”
에탄이 세바스찬의 조언에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이걸 건방진 집사의 잔소리라고 하겠지만, 에탄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진짜 나를 위해서 헌신했지. 죽음이 눈앞까지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도.’
회귀를 하기 전 마지막 순간에, 세바스찬이 자신을 위했던 행동이 너무 선명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에탄은 깨달았다.
세바스찬 또한 한때는 검을 다뤘던 자였다는걸 말이다.
‘물론… 끝내는 죽었지만.’
결국은 마물에 의해서 심장이 뚫렸지만.
에탄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받친 세바스찬의 충정을 잊을 리가 만무했다.
“도련님의 입장에서는 제가 잔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세바스찬.”
에탄이 열심히 조언을 이어 나가는 세바스찬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어서 회귀 후 전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말입니까?”
“한 번쯤은 이런 말 해 주고 싶었어.”
“혹시 저 몰래 또 사고 치셨습니까? 설마 아린 님에 이어서 다른 자식을 데려오셨다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예전의 도련님이라면 매몰차게 내다 버릴 줄 알았는데, 저택으로 데리고 오셨으니, 책임이라도 지셔서 다행이라 해야할까요….”
“대체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에탄이 세바스찬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길래, 저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래도 나름 변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구만.’
회귀를 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망나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바스찬의 반응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에탄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냥 말해 보고 싶었어.”
“…그렇군요.”
“그리고 3기사들 많이 다칠 거니까. 대련 날 신전에서 실력 좋은 신관 한 명 불러 놔.”
“예?”
세바스찬이 마지막에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먼저 자러 간다.”
에탄이 그런 세바스찬을 향해 픽 웃었다.
이어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터벅. 터벅.
정원을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흐으음….”
그리고 잠들어 있는 아린이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운 뒤 두 눈을 감고.
‘망나니가 진심을 다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마.’
버르장머리 없는 3기사들에 대해 생각했다. 전생 시절 가지고 있던 망나니의 감각이 다른 의미로 발동하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