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에탄은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린과 함께 연습실로 향했다. 그 후 여느 때처럼 수련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제3기사들 사이에서 도련님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있습니다.”
세바스찬의 말에 훈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린아. 저기서 먼저 몸 좀 풀고 있어.”
“아빠는요?”
“세바스찬 할아버지랑 대화 좀 하고 갈게. 오늘은 진검으로 휘두르기 200번 할 거니까 열심히 준비 운동해야 한다?”
“네!”
아린이 에탄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그 후 구석을 향해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씨익.
에탄이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린이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걸어가는 모습이 아기 오리와 비슷해, 보면 볼수록 귀여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아린이의 걸음을 구경하다가 세바스찬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허허….”
세바스찬 또한 흐뭇한 미소로 아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년에 생긴 손녀를 보듯이 말이다.
“세바스찬?”
“요즘 아이들은 참 귀엽군요… 특히 아린 님은 그중에서도.”
“세바스찬. 아무리 아린이가 귀여워도 하던 얘기는 마저 해 줘야지.”
“아! 크흠.”
세바스찬이 에탄의 말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자각했기에, 살짝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덤이었다.
“3기사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예.”
“이유는?”
“도련님 혼자 제1기사단 수련실을 사용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 집을 내가 맘대로 쓴다는데 지들이 뭔 상관이야?”
에탄이 세바스찬의 설명을 듣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그리고… 기사 단장인 발헬름 님의 가르침을 거부한 것도 불만을 키우는 데 큰 몫을 한 거 같습니다.”
“그래?”
“예. 저도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가기는 합니다.”
세바스찬이 에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말투로 뒷말을 이었다.
“어째서 발헬름 님한테 배움을 받지 않으시는 겁니까?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분인 걸 도련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해야 하는 게 뭔지 이미 잘 알고 있거든.”
“하지만… 도련님은 따로 검술을 배우신 적이.”
“있어.”
에탄이 세바스찬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그 후 세바스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 익혔는지는 말해 줄 수 없어. 개인적인 사정이 있거든.”
“…….”
“그러니까 발헬름한테 배우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는 꺼내지 마.”
단호하게 말했다.
더는 자신에게 배움을 권유하지 말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세바스찬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예전 같았으면 가주인 지오반에게 말을 해서라도 시켰겠지만 지금의 에탄에게서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냥 가르치고 사고나 수습하러 다녀야 할 존재였다면 이제는 정말 믿고 따라도 될 느낌이 든다 해야 할까.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발헬름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도련님.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아직 볼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원래는 3기사들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조금 전에 진검을 사용할 거라고 말하셨는데… 거기에는 아린 님도 포함되는 겁니까?”
아린이의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보고 할 말이 추가로 생겨 버렸다.
“어. 이제 슬슬 목검은 졸업할 때인 거 같아서.”
“…혹시나 아린 님이 다치실까 걱정입니다. 아직은 너무 이른 시기가 아닌지.”
“걱정하지 마. 네 생각보다 아린이가 검을 잘 휘두르거든.”
에탄이 세바스찬의 우려에 별일 없을 거라는 확신을 보였다. 아린이가 전생에 검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게다가 그걸 제외하고 보더라도, 아린이의 검술 실력은 제법 뛰어난 편에 속하고 말이다.
‘검은 잘 다루는데… 고기 써는 건 왜 아직도 어설픈 걸까?’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린이는 아직 고기나 야채는 잘 자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에탄도 여전히 모르고 있다.
하나.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그런 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알아서 하게 될 테니까.
“아무튼. 내가 옆에서 잘 훈련시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습니다.”
세바스찬이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음 같으면 아직 진검은 말리고 싶지만, 집사로서 할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인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에탄에게 인사를 하고 수련실을 빠져나갔다.
끼익… 쿵!
“…흐음.”
에탄이 세바스찬이 나간 걸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3기사들의 불만이라… 마음에 안 들어.’
3기사들이 자신한테 보이는 태도가 탐탁지 않아서였다.
‘본인들이 나를 뭐라 할 처지가 아닌데.’
만약 불만을 품은 자가 3기사들이 아닌, 2기사나 1기사였다면 납득했으리라. 그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하지만 에탄의 기준에서 3기사들은 아니었다.
놈들 또한 전생의 에탄과 비슷한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좋아.”
그래서 에탄은 결심했다.
“이참에 정신 머리 좀 개조시켜 줘야겠어.”
이번 생에는 형편없던 3기사들을 자신의 손으로 바꿔 버리겠다고 말이다.
타탁!
“아빠! 아린이랑 얼른 수련해요!”
그때. 구석에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던 아린이가 에탄을 향해 달려왔다. 이어서 자신과 빨리 진검을 휘둘러 보자고 재촉했다.
씨익.
에탄이 아린이의 행동에 웃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통해, 아린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가 느껴졌다.
‘일단 아린이랑 먼저 놀아 줘야겠네.’
때문에 3기사들에 대한 생각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진검 꺼내 봐. 아빠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려 줄게.”
아린이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진검은 목검과 다르다.
나무로 만든 목검은 사람을 벨 수 없지만, 진검은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으음… 아린이는 아빠가 다치면 많이 슬플 거 같아요.”
아린이가 그 말을 하며 에탄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혹여나 자신이 진검을 잘못 휘둘러서, 에탄을 상처 입히지는 않을까 싶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빠는 그 정도로 허약하지 않아.”
하지만 에탄은 실없이 웃을 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린이가 아무리 검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자신이 몇십 수 위기 때문이다.
아린이 검이라곤 하지만 아직 인간의 몸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탓도 있고, 어른과 아이라는 신체적 차이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검을 휘둘러. 아린이가 아빠를 이기면 세바스찬한테 아린이가 좋아하는 설탕 사탕 만들어 달라고 할게.”
“정말요?”
“그럼. 대신 아빠가 이기면 이마에 딱밤 맞기야.”
“…좋아요!”
아린은 에탄이 내건 공약을 듣고는 두 눈을 반짝였다.
설탕 사탕은 아린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 중에 하나다.
“이번에는 꼭 설탕 사탕 먹을 거예요! 설탕 사탕 못 먹은 지 일주일이나 지났다고요!”
하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에탄은 아린이에게 설탕 사탕을 마음껏 먹을 수 없게 제한했다. 그러니 아린이에 의욕이 불타는 게 당연한 거였다.
탁!
아린이 말을 끝내고는 에탄에게 달려들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돌진이었다.
부웅!
이어서 에탄을 향해 이번에 새로 받은 진검을 휘두르는 순간.
“균형이 무너졌네.”
에탄이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아린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툭.
동시에 오른쪽으로 발을 빼면서, 아린이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밀었다.
“어…!”
그러자 에탄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던 아린이의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쿵!
그리고 끝내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으으….”
아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후 자신을 넘어트린 에탄을 쳐다보면서.
“다시 도전할래요!”
대련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래. 대신 10번이 끝이야. 그 이상의 기회는 없어.”
에탄이 아린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서 열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기회는 10번뿐이라고 강조했다.
쓱.
이어서 다시 자세를 다잡고는.
“최선을 다해. 그래야 설탕 사탕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린을 향해 다시 한번 달려오라고 말했다.
* * *
“후우….”
에탄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동시에 아린을 살펴봤다.
영혼이 반쯤 빠져나가 있는 눈빛이었다.
“10번 다 못 이겼네?”
아린이의 얼굴이 넋이 나가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에탄과 치른 10번의 대련이 모두 패배로 끝났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한 결과긴 하지.’
에탄은 이렇게 될 거라고 처음부터 확신했었다.
전생의 자신이 쌓아 올린 경지가, 뛰어난 재능에 무너질 만큼 얕지는 않았으니까.
“패배를 인정하지?”
“…네.”
에탄의 말에 아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떼를 쓰지는 않았다.
‘성숙하네.’
결과를 받아들이고 승복할 줄 아는 아린이를 보고 에탄이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보통의 어린아이들이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태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러고 보니. 세바스찬이 아린이를 위해서 설탕 사탕을 하나 만들었다고 한 거 같은데… 이미 만든 걸 가만히 내버려 두면 상하겠지?”
“…!”
“나가서 세바스찬한테 설탕 사탕 하나 달라고 해. 상해서 버리는 것보단 나으니까.”
아린이에게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깜짝 선물을 주기로 했다.
“진짜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응. 지금 바로 가서 먹어. 아빠는 어디 좀 들렀다가 방으로 갈게.”
“네에!”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 환하게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서 수련실 문 쪽으로 가려다가.
“아빠! 사랑해요!”
몸을 획 틀어서 에탄을 꼬옥 앉아줬다.
그 후 애교 어린 목소리로 한마디를 툭 내뱉고는.
타탁!
이내 수련실을 빠져나갔다.
“흐흠. 크흠!”
에탄이 아린이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아린이의 애교(?)를 노리고 설탕 사탕을 준 건 아니지만.
“…좋네.”
좋은 건 좋은 거였다.
“그럼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에탄이 손에 들고 있던 진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 후 조금 전 세바스찬이 했던 3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하고는.
“본때를 보여 줘야겠군.”
상긋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수련실을 빠져나와, 가주실로 거침없이 발걸음을 움직였다.
.
.
.
그리고.
“일주일 뒤에 3기사들과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지오반을 향해 재밌는 제안을 건넸다.